-
발신인 권효 감독
수신인 제주도 강정마을 강동균 전 마을회장님께
2011년 강정 해군기지 건설 반대 투쟁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독립영화 감독들이 제주도 강정마을로 내려갔을 때 강동균 회장님의 모습을 처음 보았습니다. 마을 잔치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주민들과 활동가들이 한바탕 어울리던 그날 회장님은 마이크를 잡으시더니 걸쭉하게 트로트 한 자락을 뽑으셨습니다. 왁자지껄하고 구수하고 멋들어진 잔치. 강정마을의 첫인상이었습니다.
저는 강정에 사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으려 했기에 회장님과는 이야기할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해군기지와 관련된 곳이면 어디서나 회장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 강정마을은 기지건설을 놓고 찬성과 반대의 갈등이 극에 달해 주민들간의 사이가 나빠질 대로 나빠진 상황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마을의 회장으로서, 당신 역시 한명의 주민으로서 무척이나 힘든 시기였을 텐데 항상 웃으며 저희들과 활동가들을 대해주셨습니다. 강정에는 많은 평화 활동가들과 예술인들
구럼비 바위의 노래가 듣고 싶습니다
-
발신인 태준식 감독
수신인 유기수 민주노총 사무총장
1989년 벽산사무노조 위원장을 시작으로 97년 건설산업연맹 부위원장, 2007년 건설산업연맹 사무처장을 지냈다. 2006년 하중근 열사투쟁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2013년 7월 민주노총 사무총장으로 선출됐다.
유기수 실장님. 몇 가지 기억이 있습니다. 1999년 1월. 너무나도 추워 고통스러웠던 아침. 계동 현대사옥 앞. 온 천지가 얼음과 눈밭이었던 시멘트 바닥 위에 갑자기 벌러덩 누워 절규하기 시작하셨지요. 그 절규는 결국 현대 본사 앞마당을 장악하는 힘이 되었고 그나마 노제는 치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싸움이 끝나고 해단식을 하던 날, 늙은 노동자들이 감사패랍시고 작은 상장과 선물을 준비해 실장님께 건넨 뒤, 결국 아기같이 우셨습니다. 기억하시는지요. 저도 울었습니다. 젊은 시절 신념의 깊이가 유난히 얕았던 제가 천지개벽할 사회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았던 건 순전히 현대중기 노동자들과 실장님 덕이었습니다. 몇해가 지나
어찌 매번 다시 맞설 수 있는지요
-
발신인 문정현 감독
수신인 ‘평화바람’의 문정현 신부, 오두희 다큐멘터리 감독
문정현 신부님, 뜬금없는 제 편지에 다소 당황하셨을 것 같아요. 사실 신부님은 저를 기억하지 못하실 것도 같습니다. 2002년 즈음 김동원 감독 특별전 뒤풀이에서 처음으로 신부님을 뵀었지요. “문정현입니다” 하는 제 인사에 같은 이름 때문인지 깜짝 놀라셨지요. 이후로도 인사를 드릴 때마다 놀라시는 눈치였습니다. 제가 다큐멘터리를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신부님이 저에게 처음으로 해주셨던 말씀이 “예술하지 마!”였습니다. 현장의 이야기들은 빨리 기록되어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야 한다는 게 신부님의 생각이셨습니다.
신부님을 주인공으로 2010년에 제가 제작한 <용산>이라는 영화에서도 이 정권과 권력의 부조리함을 현장의 언어로 웅변해주셨고, 함께하는 삶으로 그 진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항거로부터, 군산/용산 미군기지들로, 매향리, 새만금, 부안에서 대추리로, 다시 용산 남일당으
깡패신부(?)와 여전사
-
5월은 왠지 사람 냄새가 나는 달입니다. 이끌어주신 선생님, 길러주신 부모님,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해지는 자식들, 서로를 향한 따뜻한 마음이 한가득 차올라 어떻게든 전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화창한 5월의 햇볕은 그렇게 주변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꼭 가까이 있는 사람만 생각나는 건 아닙니다. 일상에 지쳐 잊고 지냈지만 늘 가슴 한켠 품고 지낸 사람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격려가 되는 고마운 사람들의 얼굴도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그럴 때면 5월의 따스한 햇볕에 취한 척 평소엔 건네지 못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집니다. 서로 위로할 일도 많고 기운도 내고 싶은 요즘, 한국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가슴에 품은 ‘그 사람’은 누군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7인의 다큐멘터리 감독들에게 쑥스러움을 이겨낼 약간의 용기를 내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김동원 감독에게도 인터뷰를 청했습니다. 여기, 그들이 차마 부치지 못했던 편지를 <씨네21>이 대신 전달해드립니다.
오월의 편지
-
-
[헌즈 다이어리] <표적> 저보다 더할 수도 있겠다
[헌즈 다이어리] <표적> 저보다 더할 수도 있겠다
-
2014 <역린>
2013 <조선미녀삼총사>
2012 <나는 왕이로소이다>
2011 <혈투>
2010 <방자전>
2009 <작은 연못>
2008 <신기전>
2006 <음란서생> <길>
2005 <형사 Duelist> <혈의 누>
2004 <아홉살 인생>
2002 <YMCA야구단>
1999 <정>
정경희 의상감독의 별명은 ‘한복 아줌마’다. “사극을 많이 했다고,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더라. (웃음)” <혈의 누>와 <형사 Duelist>, <음란서생>과 <신기전>, <방자전>과 <역린>이 모두 그녀의 작품이니 수긍할 수밖에 없는 별명이다. 배우들에게 그녀의 의상을 입혀본 스탭들은 독특한 색감과 질감이 정경희표 사극 의상의 매력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당장 4월30일에
[STAFF 37.5] 퓨전이라고? 전통이다!
-
<표적>은 프랑스영화 <포인트 블랭크>(2010)를 각색 및 리메이크한 액션영화다. 감독은 ‘창감독’이 맡았다. 본명은 윤홍승, 하지만 그는 창감독이라 불리기를 원한다. “감독이 되면 나만의 고유명사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었다. 어떤 이름을 지을까 옥편을 뒤적이다가 ‘창’자가 눈에 들어오더라. 만들 창, 미쳐 날뛸 창 등등 그 몇 가지 뜻들이 내가 하는 일의 정신 같은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 짓게 됐다. 나에게는 소중한 이름이다. 책임감도 생기고.” <표적>은 <고死: 피의 중간고사>(2008) 이후 창감독이 만든 두 번째 영화다. 칸 비경쟁부문 미드나이트 프로그램으로 초대받기도 했다. 창감독은 “<표적>이 나의 데뷔작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자신의 ‘이름’에 값하는 첫 번째 영화라고 생각한다는 뜻인 셈이다.
-영화를 만들기 전에는 뮤직비디오쪽 일을 했다고 들었다.
=원래는 영화를 하는 것이 꿈이었다. <싸이렌
[창감독] “인간적인, 더 인간적인”
-
순박한 시골 청년이라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충남 아산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정이리이리 작가(본명은 이정일)는 <씨네21>과의 인터뷰를 위해서 KTX를 타고 서울에 왔다. 그는 미디어다음에 조선시대 궁궐의 일곱 세자와 주변인물을 그린 <세자전>을 연재중이다. 데뷔작은 자신의 집주변 식물, 동물 등을 소재로 한 <잡초이야기>였다. 데뷔 이후 애인이 없는 솔로들의 애환을 담은 만화 <오! 솔로>로 인기를 얻었다. 조금은 느릿한 그의 말투가 정겨웠다.
-웹진에서 한 인터뷰를 봤다. 그때는 기자들이 시골로 내려가서 인터뷰를 했더라.
=맞다. 그런데 그 인터뷰를 한 사람은 아는 사람이었다. 학사장교(ROTC)로 제대했는데 중대원이었던 친구가 문화 관련쪽 일을 한다고 인터뷰를 해달라고 하더라.
-정이리이리 작가에 대해 정말 잘 알려면 시골에 가야 맞는 것 같다.
=만약 아산에 내려왔으면 목가적인 분위기로, 웹툰 작가라는 느
[trans x cross] 재미와 감자를 캐는 청년
-
인생은 한권의 책이다. 매일매일 비슷해 보여도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몰라보게 달라진 챕터를 마주하고 있다. 배우는 한권의 노트다. 하얀 백지 위에 써넣는 단어에 따라 그 배우가 지닌 이미지가 결정된다. 처음에는 오직 한 단어로 시작한다. 첫 출연작에서 보여준 결정적 이미지가 배우의 모든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던 것이 다음 작품, 그다음 작품이 계속되면서 처음 한 단어를 좀더 설명해줄 말이 더해지고, 문장이 길어질수록 배우의 이미지는 비슷하지만 다르게, 차츰 구체적으로 변한다. 여기 배우 김새론을 설명해줄 단어들을 모아봤다. 당신이 알고 있다고 믿었던, 하지만 미처 모르고 있던 새로운 시선. 김새론을 설명했던 단어들을 김새론의 언어로 다시 들어보는, ‘김새론 사전’이다.
자연인 김새론은 지금 한창 인생의 책장을 넘기는 중이다. 남들보다 조금 빠르게 방향을 정하고 꿈을 향해 차분히 걸어가는 중인 이 성숙해 보이는 소녀는 늘 비슷한 듯 보이지만 며칠만 지나도 몰라보게 달라진 얼
[김새론] 변신이 아니라 확장
-
[ 라면: 머글래요 ]
겉뜻 간단한 요기나 하자는 제안
속뜻 자고 가라는 제안
주석 바래다준 남자에게 여자가 묻는다. “라면, 먹을래요?” 소파에 나란히 앉아 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여자가 다시 묻는다. “재밌는 얘기 좀 해봐요.” “라면에 소주 먹으면 맛있는데. 나 재밌는 얘기 몰라요. 원래 썰렁해요.” 그러자 여자가 대답한다. “재밌다.” 그러고는 라면을 끓이러 주방 앞으로 가서는 남자에게 자고 가라는 엉뚱한 제안을 한다.
늦은 밤이니 ‘차 한잔 하고 가요’ 대신에 요기나 하자고 제안했을 테고, 간단한 식사로 라면만 한 게 없었을 테고, 물이 끓는 짧은 시간의 어색함을 감추려고 재밌는 얘기를 해보라고 했을 테지. 그런데 거기 담긴 얘기가 제법이다. 재밌는 얘기를 하라고 했더니 남자는 소주를 먹자고 한다. 이것은 카드 게임과도 같다. 여자가 라면으로 베팅했더니 남자가 라면 받고 소주 더, 하고 판을 키운다. 재미없죠? 이번에는 여자가 받는다. 콜(=재밌어요). 그러더
[권혁웅의 일상어 사전] 라면 먹을래요?
-
<메이즈 러너> The Maze Runner
감독 웨스 볼 출연 / 딜런 오브라이언, 카야 스코델라리오, 윌 폴터, 토머스 생스터
동명의 인기 영어덜트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SF영화. 기억을 잃고 정체불명의 미로에 갇힌 소년들이 주인공이다. 언제, 그리고 왜 이곳에 갇힌 건지 알지 못해 혼란스러운 소년들이 희망을 잃어갈 때쯤, 한 소녀가 등장하고 이들 일행은 큰 변화를 겪는다. 원작의 재미를 제대로 구현해낸다면 인기 프랜차이즈가 될 가능성도 있는 작품. 그렇기에 더더욱 신인감독 웨스 볼의 정체가 궁금하다. 9월19일 북미 개봉예정.
[WHAT'S UP] <메이즈 러너> The Maze Runner
-
[정훈이 만화] 뉴스특보
[정훈이 만화] 뉴스특보
-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21세기가 되어서도 여전히, 마흔이 가까워지는 시점에도 여전히, 그리고 또래 남자만큼(혹은 그보다 더)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도 여전히, 나는 백마탄 왕자님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있을 리가 없다 하더라도 굳이 실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뭐래? 약간은 이상한 이야기처럼 들릴 것이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 대해 남자들이 갖는 불만은 “둘 중 하나만 해”다. 남근 앞에 순종하든지 네 갈 길을 가든지. 모두 다 가지려고 하지 말라고. 그런 걸 부추기는 책을 읽지 말라고. 그래, 그렇게 현실을 잘 알아서 남자들은 AV를 보나? 결국 우리는 점점, “모두 다 갖는” 환상을 “환상 속에서” 충족시키고 있다. 실제로 갖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은 어디까지나 컴퓨터 안의 폴더 안의 폴더 안의 폴더에 숨어 있거나 이북 단말기 안에 숨어 있기 마련이어서, 다소 분열적으로 진행되는 양상은 있지만 꿈꾼 것을 보거나 읽는 방법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낭만적 사랑과 섹스
-
조각가이자 화가였던 자코메티의 마지막 뮤즈 까롤린이 회상하는 자코메티와의 날들. 미술평론가이자 에세이스트인 프랑크 모베르는 주관적으로, ‘그녀’의 눈으로 돌아본 시간을 기록하고자 했다. 분량이 짧지만, 자코메티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풍성한 창작의 경험을 간접체험할 수 있도록 돕기에 충분하다. 마지막 대목에서 황량하고 쓸쓸한, 하지만 고독하지는 않은 최후의 날들의 침상을 그리는 솜씨도 인상적이다.
[도서] 풍성한 창작의 경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