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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은 사실을 남긴다지만 그 기록조차도 사실일까라는 의심은 창작자들에게 좋은 힌트가 되나보다. 인조반정으로 궁에서 쫓겨난 광해군의 유배생활 19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이 질문에서 출발하는 팩션이다. 궁 안에서 의문의 살인사건이 연달아 일어난다. 별감 진현은 궁녀와 애정행각을 벌이다가 인조의 후궁인 소용 조씨에게 붙잡힌다. 죄를 눈감아주는 조건으로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임무를 받는다. 이야기 전개 속도가 빨라 몰입도가 높다.
[도서] 광해군의 유배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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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생이 학교에서 죽은 채 발견된다. 학생의 등에는 꼬집힌 상처가 수도 없고, 휴대폰에는 숙제부터 스포츠음료까지 같은 반 아이들에게 ‘셔틀’당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동네에서 다 아는 부잣집 외아들이지만 왜소한 체격에, 사건을 취재하러온 기자들이 “따돌림당하게 생겼잖아”라고 수군거리는 인상. 경찰은 집단 따돌림에 대해 수사를 시작하고 같은 테니스부 소속이던 네 아이를 본격 조사하기 시작한다.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였던 <공중그네> <남쪽으로 튀어!>를 쓴 오쿠다 히데오의 신작인 <침묵의 거리에서>는 중학생의 사망사건에 연루된 여러 사람의 상황을 차례로 보여주며 진실에 접근하고자 시도한다. 처음 시신을 발견한 선생을 비롯한 학교 관계자들과 죽은 아이의 부모와 친척, 가해자로 몰린 아이들과 그 부모들, 경찰과 검사가 이 사건을 각자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오쿠다 히데오의 유머감각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묵직한 분위기에 놀랄지도 모르지만 등장인물 소개
[도서] 피해자이면서 가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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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11일 일기에 <노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배우의 매력이 지아장커 영화의 손꼽히는 장점은 아니다. 그의 인물에게서 눈을 떼기 힘들게 만드는 힘은 대개 배우보다 카메라의 시선에서 나온다. 감독의 오랜 파트너 자오타오가 예외지만, 그녀는 종종 지나치게 만사를 꿰뚫어보는 관찰자의 표정을 지어 영화 밖으로 돌출한다. 픽션의 양식에 전례 없이 충실한 <천주정>에서 제일 생동하는 배우는 유흥업소 종업원 역의 조연 리멍(李夢)이다. 그녀는 장면과 메이크업에 따라 표변하는 인상 속에서도, 캐릭터의 견고한 본령인 정직함과 상냥함을 보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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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조조 영화 나들이는 즐겁다. 휴일 오전 영화관에는 오후 인파가 밀려들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호젓함이 있다. 관람을 마치고 입장 무렵과 딴판으로 북적이는 로비를 통과하며 느끼는 뿌듯함은 뭐랄까, 한식 새벽에 성묘를 마치고 귀경하며 하염없이 정체된 하행선을 곁눈질하는 우월감과 비슷하다. 전 벌써 한편 봤습니다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뱀도 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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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은 보통의 슈퍼히어로와 달리 근육질에 거구는 아니다. 몸관리는 어떻게 하나.
=앤드루 가필드_이소룡을 모델로 했다. 그는 말랐지만 멋있는 무술을 선보이지 않았나. 슈퍼히어로 중 토르는 근육질인데, 스파이더맨은 나같이 마른 애들에게 희망을 줬다. 스파이더맨은 똑똑하고, 위트와 재치를 활용해 싸운다. 직접 펀치를 날리기보다는 상대가 자신의 꾀에 넘어가게 한다. 물론 3~4%대의 체지방을 유지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남자친구가 스파이더맨처럼 데이트보다 세상을 구하는 데 앞장선다면 기분이 어떨 것 같나.
=에마 스톤_내가 연기한 그웬은 아버지가 경찰청장이라 늘 목숨을 걸고 싸우는 모습을 보았고,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다. 영웅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해할 뿐 아니라 그녀 자신도 그런 충동을 갖고 있다. 늘 다른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군인이나 경찰, 소방관의 파트너는 정말 존경스럽다.
-한국에서 슈퍼히어로영화가 마니아층을 벗어나 대중적인 성공
[현지보고] “대규모 예산의 예술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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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엽고 구김 없는 마크 웹의 스파이더맨은 최초의 신선함이 가신 뒤에도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2편부터 본격적으로 캐릭터의 성장과 길게 드리운 어둠을 다루었다면 마크 웹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는 피터 파커의 과거라는 시한폭탄을 관객의 눈앞에서 똑딱거리게 만드는 서스펜스의 장치로 사용하며 가능한 한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 감독과 배우 인터뷰를 앞두고 공개된 30분가량의 주요 장면 영상을 보면,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이번 속편에서는 바로 그 ‘과거’가 큰 역할을 할 것임을 암시하는 내용이 펼쳐진다. 하지만 스파이더맨은 어둠에 침잠하는 대신 유쾌함을 업그레이드했다. 이제 피터 파커(앤드루 가필드)는 스파이더맨으로서의 삶에 완전히 적응했다. 그의 팬이던 전기 엔지니어 맥스(제이미 폭스)는 우연한 사고로 초능력을 갖게 된 뒤 스파이더맨의 공격을 받자 그의 적이 된다.
[현지보고] 어둠보다 유머를, 무엇보다 스펙터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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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 뵈티커는 갱스터, 누아르 그리고 웨스턴까지 제법 폭넓은 작품 영역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가 영화사에 기록되는 이유는 웨스턴 덕분일 테다. 감독 경력 말기에 발표된 웨스턴들이 특별히 평가받는 까닭에서다. 랜돌프 스콧이 주연을 맡은 뵈티커의, 1950년대의 소위 ‘복수의 웨스턴’은, 맞수였던 앤서니 만의 ‘심리의 웨스턴’과 더불어 웨스턴 장르의 보석 같은 유산으로 기록된다. 그의 작품 세계를 7개의 키워드로 해석했다.
key1. 랜돌프 스콧
랜돌프 스콧은 뵈티커 웨스턴의 스크린 속 분신이다. <7인의 무뢰한>(1956)으로 인연을 맺은 뒤 7편을 함께 만들었다. 무표정한 얼굴과 190cm의 큰 키의 건장한 체구는 뵈티커의 냉정하고 남성적인 웨스턴의 성격을 압축하고 있다. 무표정 속에 숨겨둔 게 죄의식이다. 스콧이 연기하는 남자는 종종 자신의 잘못으로 아내를 잃고 그 죄를 씻기 위해 복수에 나선다. <7인의 무뢰한>, <선다운의 결전>(1957
[영화제] 황야의 복수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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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의 대면이 두려운 나머지 잠시나마 상영관 불이 켜지지 않길 바라게 되는 영화들이 있다. 3월31일 CGV대학로 무비꼴라쥬관에서 열린 <마이 보이>의 시네마톡 역시 처음엔 다소 무거운 분위기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마이 보이>는 기성 배우를 캐스팅했다는 점에서 전규환 감독의 영화 중 가장 대중적인 영화”라는 이화정 기자의 설명을 시작으로 관객도 조금씩 부담감을 덜어나갔다. ‘엄마’ 역을 맡은 이태란과 ‘도공’ 역을 맡은 차인표에게 자연스럽게 관심이 몰리자 이화정 기자는 “오랜 기간 연기 활동을 한 배우들과의 작업은 어떠했는지”를 먼저 물었다. 전규환 감독은 “배우마다 틀에 박힌 이미지가 있다. 그것을 해체하고 기존과는 다른 연기를 보여주는 것이 즐거움이자 숙제였다”라고 답하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시네마톡에 함께 참여했던 부산국제영화제 남동철 프로그래머는 배우들에 대한 질문 공세를 정리하며 다시 본론으로 넘어와 <마이 보이>를 연출하게 된 계기
[시네마톡] 상투적인 분노로 보이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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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운 3부작에서 한국 사회의 치부를 그려왔던 전규환 감독의 신작 <마이 보이>는 전작들과 여러 가지 차별적인 전략을 구사한다. 우선 대체로 일반 대중에게는 낯선 배우들을 통해 규범화되지 않은 영화문법을 지향했던 종래의 작품들과 달리 차인표, 이태란과 함께 작업했다. 기성 배우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연기의 틀을 깨뜨리기 위해 상당히 고심했다는 감독의 의도대로 이름만 들어도 대번에 특정한 연기 톤을 떠올리게 했던 그들이 과도한 감정을 덜어내고 담백하게 연기하는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초등학교 고학년 이천(이석철)에겐 병원에 누워 있는 동생 유천이 있다. 엄마(이태란)는 마트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나머지 시간은 대체로 유천과 함께 보낸다. 유천이의 빈자리는 이천이의 기억으로 채워진다. 늘 병약해서 돌봐줘야 하고 이것저것 귀찮게 물어보기만 하던 동생 유천은 이젠 그 귀찮음마저도 한없이 미안하고 그리운 존재이다. 남편도 없이 분노 조절 장애를 가진 이천과 뇌사 상태의
어떻게 떠나보낼 것인가 <마이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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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는 예나 지금이나 다루기 까다로운 소재다. 혹자에겐 허구적인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 누군가에겐 절대적 진리 차원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런 특수한 조건 덕분에 성서를 소재로 한 종교영화에 상상력이 덧입혀질 경우 종종 논란이 야기되기도 한다. 기존의 해석을 뒤집어놓은 문제작이 될 수도 있고, 원전을 영상으로 충실하게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대런 애로노프스키의 <노아>가 전자에 해당된다면 <선 오브 갓>은 후자의 경우다. <선 오브 갓>의 원작은 지난해 북미에서 방영된 드라마 <더 바이블>로, 성경의 내용을 성실히 옮겨놓았다. 오프닝에서 구약의 사건들이 스펙터클 위주로 속도감 있게 다뤄지고 나면, 2시간20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을 채우는 것은 신약을 바탕으로 한 예수의 일대기다. 전반부는 복음을 전하는 예수의 신성을 묘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크리스토퍼 스펜서 감독은 CG를 동원하여 예수가 행하는 신비로운 기적을 가
신약을 바탕으로 한 예수의 일대기 <선 오브 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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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동료인 시몬(벵상 랭동)과 프랑크(질 를르슈)는 임무 완수를 축하하며, 어느 비오는 날 오후에 함께 차에 오른다. 하지만 그날 집으로 향하는 도중에 그들은 자동차 사고를 내게 된다. 사고 탓에 시몬은 심각한 수준의 부상을 입고, 이후로 성격이 변한다. 폭력적이 되어 알코올에 의존해 지내다가, 아내와도 이혼한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6년 뒤 시몬은 9살이 된 아들 테오와 오랜만에 만난다. 아버지 노릇을 해주고 싶었던 그는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투우 경기장으로 향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예기치 않은 사건과 마주친다. 프랑스 남부의 툴롱은 마약상들이 차례로 암살당하는 연쇄사건으로 사회 분위기가 시끄럽다. 그런데 때마침 화장실에 들른 테오가 마피아의 살해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그렇게 아이를 처단하려는 마피아의 추격이 시작되고, 아들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전직 경찰 시몬이 그들에 맞서 싸운다. 옛 동료 프랑크가 시몬을 도와 마피아를 함께 뒤쫓는다.
<더 체이스>는
‘아드레날린 3부작’ 시리즈의 마지막 편 <더 체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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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자>는 유괴범의 지시에 속수무책 끌려다니는 부모의 무기력함, 내 자식을 살리기 위해 남의 자식을 유괴해야 하는 딜레마를 다룬다. 소재로만 보자면 <그놈 목소리> <세븐데이즈> 등 2000년대 후반 한국 스릴러들을 연상시킨다. 긴박하고 곤혹스러운 상황은 유사하지만, <보호자>는 훨씬 생활에 밀착된 느낌을 준다. 남의 아이를 데려와 씻기고 먹이는 모습이 상세히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유괴의 동기는 추상적으로 느껴진다. 유명인사도 아니고 재산이 많지도 않은 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왜 유괴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더구나 유괴범은 유괴의 이유가 아빠들의 죄 때문이라 하는데 그들은 자신의 죄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처음부터 딜레마를 던지고 인물들을 끝까지 갈등 속으로 밀어넣는 것이 이 영화의 특징이다. 그러다 보니 추격전의 스릴이나 반전의 묘미는 상대적으로 강하지 않다.
아담한 꽃가게를 운영하는 전모(김수현)는 저녁 무렵 이상한 전화
유괴범과 두 아버지 <보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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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치 않는 아이를 가진 어린 소영(전수진)에겐 사회적 기반도 생활력도 없다. 아이를 원하는 불모의 여성 승연(이은우)은 소영에게 아이를 낳아줄 것을 간청한다. 소영과 승연은 시골의 별장에서 격리된 생활을 시작한다. 한달에 한번 별장에 들르는 남편(이승준)은 아내와의 성관계만을 바랄 뿐 아이에 대한 아내의 열망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 채 냉담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야영객 화가(김영재)와 거친 사냥꾼들은 그녀들의 집 주위를 배회한다. 임신과 출산을 둘러싼 여성들의 불안,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성들의 출몰은 별장 주위에 불온한 기운을 드리운다.
영화 <신의 선물>은 미혼모와 대리출산, 생명과 성의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김기덕의 각본에 어느 정도 충실하다. 연출은 <홈, 스위트 홈>으로 데뷔한 김기덕 연출부 출신인 여성감독 문시현이 담당했다. 영화는 현실에서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의 있음직한 일들이 아니라, 추상적인 공간에서 욕망과 동기만으로 추상화된 인물들이
미혼모와 대리출산, 생명과 성 <신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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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도 소란스러우며 놀라운 세계다. 프랑스에서 온 애니메이션 <슈퍼미니>는 꼬마 무당벌레가 개미들과 함께 경험하는 모험을 다룬다. 3D로 제작된 곤충 캐릭터와 실사 배경의 자연 풍경이 어우러져 환상적이고도 사실적인 세계가 만들어졌다.
산통을 느끼고는 급히 산을 내려간 신혼부부가 남기고 간 간 피크닉 도시락에는 개미들이 탐낼 달콤한 것들이 가득하다. 생명의 신비한 탄생은 작은 곤충의 세계에서도 일어난다. 갓 알을 깨고 태어난 아기 무당벌레 삼 남매 중 한 꼬마는 가족과 함께 첫 비행을 하다 짓궂은 초파리떼에게 쫓겨 낙오되고 만다. 거칠고 위협적인 세계에 홀로 남겨진 꼬마는 비를 피해 우연히 각설탕 상자 속에 들어갔다가 검은 일개미들과 함께 멋진 모험을 경험하게 된다.
작품은 다채로운 경관을 자랑하는 프랑스의 국립공원 로케이션 촬영으로 아름다운 실사 배경을 담아내는 데 공들였다. 인간의 언어는 등장하지 않지만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들릴 법한 자연의 소리들이 감정과 의미
작지만 위대한 도전을 만들어내는 세계 <슈퍼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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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200년, 티린스의 왕비 알크메네(로산느 매키)는 전쟁을 즐기는 남편 암피트리온(스콧 앳킨스)의 성품에 지쳐서 여신 헤라에게 기도를 드린다. 그렇게 알크메네는 제우스신의 아이 헤라클레스(켈란 루츠)를 잉태한다. 암피트리온은 헤라클레스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왕비를 몰아세우고, 첫째아들 이피클레스(리엄 개리건)만 편애한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헤라클레스는 헤베(가이아 와이즈)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둘 사이를 질투한 형 이피클레스가 아버지와 결탁해 그를 이집트로 추방한다. 그곳에서 노예가 된 헤라클레스는 검투사로 나서고, 동료 소티리스만이 그의 곁을 지킨다. 둘은 힘을 합쳐 다시 티린스로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마침내 그날이 온다. 헤라클레스가 암피트리온을 물리치고 그리스 최고의 영웅으로 등극하는 순간을 영화는 긴박하게 쫓는다.
<헤라클레스: 레전드 비긴즈>는 <클리프행어>(1993) 등으로 1990년대 초반 액션영화의 마에스
인간적인 그리스 영웅 <헤라클레스: 레전드 비긴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