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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열심히 사는 아이인데 정말 나쁘게 나오더라.” 평범한 직장인도 조진웅이 연기를 하면 괜히 악당처럼 보인다. 조진웅에겐 인물이 본래 가진 성향을 증폭시키는 큰 울림통이 있는데 이 울림통은 방향을 가리지 않는다. 그 거리낌 없는 태도와 뻔뻔함이 그를 대하는 사람들을 어딘지 위축시킨다. 형사를 맡을 때나 조폭 역할을 할 때도 그는 한결같이 크고 거대한 존재감으로 돌진한다. 이것은 선과 악의 문제라기보다 욕망의 크기에 관한 이야기다. 정의로운 역할이든 지독한 악당이든 관계없이 조진웅이 그간 맡았던 인물들은 모두 자신의 욕망에 솔직했다. 자신의 욕망에 대한 확고한 믿음 아래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인물. 배우 조진웅은 그걸 두고 “열심히 산다”라고 표현한다. 확실히 조진웅의 페르소나들은 내적 갈등보다는 외적인 장애를 부수는 데 열심이었다. 그래서, 무시무시하다.
<끝까지 간다>의 박창민은 그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조진웅] 액션과 웃음의 리듬을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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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화면에 계속해서 등장하는데 작품이 끝날 때 즈음이면 어딘지 희미해진다. 인상이 흐릿한 것과는 조금 다르다. 캐릭터가 약해서도 아니다. 굳이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편안함’이 적당할까. 이선균을 바라보면 눈이 편하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괴팍한 말투로 독설을 내뱉을 때도 밉지 않다. 제아무리 울퉁불퉁한 캐릭터도 이선균이라는 필터를 거치고 나면 우리 집 욕실에 걸린 수건마냥 부드럽고 친근해진다. 로맨틱 코미디를 통해 쌓아온 이미지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이선균이라는 배우가 두르고 있는 일상의 분위기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그는 작품을 발판으로 스스로 빛나기보다 스스로를 숙여 작품을 받쳐주는 쪽에 가까운 배우다. 두드러지는 한 장면을 만들기보다는 장면마다 스며들어 전체적인 정서를 쌓아나가는 진귀하고 ‘희미한’ 배우. 늘 상대배우를 돋보이게 해주는 ‘케미스트리의 배우’라는 수식어는 이선균의 강력한 친화력을 칭찬해주는 동시에 일말의 아쉬움도 대변하고 있다.
그런 의미
[이선균] 경계에서 끝까지 한숨에 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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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끝까지 쫄깃쫄깃하다. <끝까지 간다>는 나쁜 놈이 더 나쁜 놈에게 쫓기는 이야기다. 아니, 선악의 구별은 의미가 없다. 이것은 단지 큰 놈과 작은 놈, 둘 사이의 거리에 관한 이야기다. 바짝 긴장시켰다가 낄낄거리게 만들고 한참 웃다가도 나도 모르게 의자를 당겨 앉게 되는 흥미진진한 술래잡기, 그 끝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며 서스펜스의 기본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끝까지 간다>만의 호흡은 이선균과 조진웅의 이인 삼각 연기를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 한순간도 숨이 달리는 법 없이 관객의 가슴속 깊이 자맥질하는 두 배우의 호흡에는 진심과 배려, 배우로서의 욕심이 동시에 묻어난다. “형, 우리 끝까지 한번 가보자.” “그래, 근데 끝이 어디지?” 상관없다. 만족할 때까지 간다.
[끝까지 간다] 누가 악당을 보았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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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 휴지 줄까ː 파란 휴지 줄까ː ]
겉뜻 귀신이 자신의 도래를 알리는 선언
속뜻 아직도 빨갱이 타령이나 하느냐는 충고
주석 지금은 양변기가 일반화되어서 시대착오적인 존재가 되었지만, 예전 재래식 변소에는 화장실 귀신이 살았다. 쪼그리고 앉아 있는 사람 머리 위에 긴 생머리를 늘어뜨리거나 볼일 보는 구멍 아래서 앙상한 손을 내밀며 이런 질문을 했다. 빨간 휴지를 줄까, 아니면 파란 휴지를 줄까? 신문지 구겨서 쓰던 시절에 휴지를 내밀다니 꽤나 고마운 귀신이었던 셈인데, 그것도 컬러 휴지를 주다니 패션 감각까지 갖춘 귀신이었다. 그런데 귀신의 질문에는, 당연히 한 서린 사연이 있다.
어린 시절 운동회를 치른 기억, 다들 있을 것이다.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이 세상에 청군 없으면 무슨 재미로, 해가 떠도 청군, 달이 떠도 청군, 청군이 최고야. 아니야, 아니야, 백군이 최고야. 내 낭군도 우리 임금도 아닌데 해가 떠도 달이 떠도 우리는 청군 아니면 백군을 찾았다
[권혁웅의 일상어 사전]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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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 갈런드는 뮤지컬을 위해 태어난 배우 같다. 뮤지컬 스타에게 요구되는 기본적인 덕목인 춤과 노래 두 종목 모두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서다. 할리우드에서 뮤지컬이 장르로 발전할 때, 다른 뮤지컬 스타들은 대개 춤 하나에 뛰어난 솜씨를 보였다. 이를테면 진저 로저스, 시드 채리스 등이 그렇다. 그런데 갈런드는 춤도 잘 췄고, 특히 노래를 아주 잘 불렀다. 뮤지컬의 보석이자 할리우드영화의 보석으로 남아 있는 <오즈의 마법사>(1939)가 발표될 때, 갈런드는 불과 17살이었는데, 이런 행운이 결코 우연히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이미 춤과 노래에서 숨길 수 없는 재능을 드러냈다. 그때부터 갈런드의 실제 삶은 뮤지컬을 닮아갔고, 뮤지컬 경력의 끝은 결국 자신의 삶을 뮤지컬에 반영한 것이었다. <스타 탄생>(1954)을 통해서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노란 벽돌 길’을 걷던 소녀
<오즈의 마법사>는 판타지 뮤지컬의 대표작이다. 도로시(주디
[한창호의 오! 마돈나] 뮤지컬 같은 삶, 삶 같은 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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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캐처> Foxcatcher
감독 베넷 밀러 / 출연 채닝 테이텀, 스티브 카렐, 마크 러팔로, 시에나 밀러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 출품작으로 <머니볼> <카포티>의 감독 베넷 밀러가 연출했다. 영화는 미국 레슬링협회의 후원자로 알려진 억만장자 존 듀폰이 1984년 LA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인 데이비드 슐츠를 살해한 실화에 바탕한다. 존 듀폰 역은 스티브 카렐이, 데이비드 슐츠는 마크 러팔로가, 데이비드의 아내 낸시는 시에나 밀러가 연기한다. 채닝 테이텀은 데이비드의 동생 역이다. 11월 북미 개봉예정.
[WHAT'S UP] <폭스캐처> Foxcat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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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트랜센던스> 세상의 모든 비밀과 정보
[정훈이 만화] <트랜센던스> 세상의 모든 비밀과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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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위는 천당이래. 거기와 비교하면 인간 세상은 지옥이고. 하지만 난 당신과 함께 이 지옥에서 살 거야.” <후예>는 멜로드라마다. 중국 신화에서 신궁으로 알려진 예의 이야기를 중국 소설가 예자오옌이 다시 상상해 풀어냈다. 12살 때 나이 많은 이국남자의 일곱 번째 아내로 살게 된 항아는 배의 통증이 조롱박을 안고 있으면 가라앉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어느 날 조롱박이 갈라지며 사내아이가 태어나는데, 발육이 빠른 그 아이를 항아는 예라고 이름 붙이고 돌본다. 예는 활을 기막히게 쏘는 재능을 발견한다. 나라에 오랜 가뭄이 들어 근심이 깊어지자 사람들은 그 원인이 하늘에 동시에 등장한 열개의 태양임을 알게 되고 예는 그중 아홉을 쏘아 떨어뜨린다. 그사이에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벌어진다. 아이의 정신세계를 갖고 있는 것 같던 예가 항아와 육체적 관계를 맺고 남자로 다시 태어난다(이 표현이 몹시 구리게 들리긴 하지만 정말 그렇게 된다). 그리고 먹기만 하면 불멸의 신이 될 수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신에서 인간으로, 인간에서 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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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생애 마지막 작품. <이것이 인간인가>를 집필한 지 38년 만에 쓴 책으로, 아우슈비츠 경험을 바탕으로 나치의 폭력성과 수용소 현상을 분석한 에세이다. 특히 레비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한해 전에 쓰고, 생환자로서 그의 삶의 핵심 주제였던 아우슈비츠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유서와도 같다. 레비는 이 책에서 강제수용소 안에서 벌어졌던 현상들을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 가라앉은 자(죽은 자)와 구조된 자(살아남은 자)를 가로지르는 기억과 고통을 이야기한다.
[도서] 나치의 폭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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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로 나이든다는 일의 구구절절함을 마스다 미리처럼 소박하고 귀엽게 그려낼 줄 아는 작가는 많지 않다. <여전히 두근거리는 중>은 그녀의 에세이집이지만 곳곳에 만화가 등장해 ‘여전히 두근거리는’ 일상을 중계한다. 무슨 일만 생기면 “이게 마지막일지도 몰라!”라며 눈을 고쳐뜨는 대목을 읽고 있자면, 불과 며칠 전 친구들과 나눈 신세한탄과 어쩜 이렇게 똑같은 말을 하고 있나 놀랄 따름이다.
[도서] “이게 마지막일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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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그린 시대와 작품 공정에 대해 풀어낸 논픽션.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대성당의 돔이 어떻게 지어졌는지에 대한 <브루넬레스키의 돔>이 그랬듯 타임머신을 탄 듯 당대의 문화와 인물들을 되살려낸다. 이 책 후반부에는 <다빈치 코드>에 나온 주장들(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아내였고 둘 사이에 아이가 있었다)에 대한 반박도 꽤 긴 분량으로 실려 있다.
[도서] <최후의 만찬> 탄생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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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folk라는 영어 단어는 본디 친척을 일컫는 데 주로 쓰였으나 이 단어 역시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 정의되어야 할 운명인 모양이다. ‘작은 모임을 위한 가이드’(a guide for small gathering)라는 부제에 걸맞게, 매거진 <킨포크>는 가까운 사람들과 소박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방식에 대한 글과 사진을 담았다. 피가 섞이지 않았지만 가까운 사람들, 나아가 ‘때때로 가까운’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에 대한 제안서인 셈. 이번에 7권의 번역판 <킨포크>가 한꺼번에 선을 보였는데 이전에 <킨포크 테이블>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던 두권의 책을 기억하는 이라면 그 세계의 확장판이라고 여기면 되겠다.
그래서 대체 뭐에 대한 매거진이냐. 목차는 ‘홀로’, ‘둘이서’, ‘그리고 여럿이’로 나뉘며, 그 항목들 아래에는 제각기 다른 작가들이 쓴 글과 찍은 사진이 소개된다. 고독에서 위안을 찾는 사람에 대한 글, 직접 키운 닭이 낳은 달걀을 수확하는 사
[도서] 소박한 삶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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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직업이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다, 사장. 나한테 직업을 물어보면 기자라고 했지 (퇴사 두달 전에 졸라서 간신히 달았던) 과장이라고 하지는 않았으니까(참고로 과장됐다고 월급이 오르지는 않았다. 대체 무엇을 위한 과장이었던가). 하지만 우리 회사 사장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사람의 직업은 사장이다, 그리고 사장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태어나는 것이다. 세상의 빛을 보는 순간 이미 사장이 될 운명이었던 그는 사장의 아들이었다.
모든 직업엔 업무가 따르는 법이다. 우리 회사 사장 A씨도 하루를 바쁘게 보낸다. 아침에 나오면 비서가 내린 커피를 마시며 서너종의 신문을 읽고, 밖에서 법인카드로 누군가와 점심을 먹고, 한두 시간 낮잠을 잔 다음, 목청 좋게 통화를 하며 술 마실 약속을 잡고, 헬스클럽에 가서 두 시간 운동을 하면, 어느덧 퇴근시간. 하루가 짧기도 하지. 틈틈이 밖에서 사기꾼을 데려오거나 사기꾼이 하는 말을 듣고 와서 혼란을 야기하여 직원들의 근무시간을 늘리는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아니라고, 당신 싫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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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옴니버스 <신촌좀비만화>를 통틀어 제일 깊은 공간은, <피크닉>의 소녀가 뒤집어쓴 이불 속이다. 아픈 동생을 보살펴야 하는 의무를 작은 어깨에 짊어진 수민(김수안)이 순정만화를 읽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짓는 우주가 그 안에 들어 있다. <피크닉>은 인물의 상황을 공간감으로 옮겨놓아 감흥을 준다. 수민이네가 사는 좁고 깊은 집의 구조, 작은 아이의 몸집과 대비되는 너른 바다와 호젓한 숲길의 광활함이 기술의 도움으로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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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so serious? <다크 나이트>의 조커(히스 레저) 소환이나 그룹 샤이니의 노래 얘기가 아니다. 이것은 영화 <10분>의 주인공인 6개월 인턴사원 호찬(백종환)에게 정규직원들이 제일 자주 던지는 물음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시청각 지원’을 하자면, “뭘 그렇게 진지하고 난리야? 응?”으로 해석되는 말에 찡긋하는 눈짓과 어깨 툭 치기가 동반되는 그림을 상상하면 된다. 호찬은 초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세대 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