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2, 3월은 아카데미 특수 효과를 노리는 양질의 외화들이 국내 관객을 만나는 시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더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할 영화들이 존재하는 법이다. 여기 개봉 전부터 화제를 불러모은 두편의 미국영화가 있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4년 만의 신작 <버드맨>과 토머스 핀천의 탐정소설을 원작으로 한 폴 토머스 앤더슨의 <인히어런트 바이스>가 그것이다. 각각 뉴욕과 LA를 배경으로 하는 이 두 영화는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버드맨>), 뉴욕영화제(<인히어런트 바이스>)에서 첫선을 보인 뒤 2014년의 베스트영화를 꼽는 영미권 평단의 리스트에서 종종 그 이름을 비쳤다. 유난히 자국영화에 호들갑스러운 영미권 평단의 반응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겠지만, 믿을 만한 매체와 평론가들이 공통적으로 ‘투 섬 업’을 외치는 영화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짐작된다. 올해 오스카의 최대 수혜자로
TWO THUMBS UP!
-
“여기에는 이경영이 안 나오네?” 무려 <인터스텔라> 리뷰 밑에 달린 댓글 중 하나다. 지난 1년간 오죽 수많은 영화에 출연했으면 그런 댓글까지 등장했을까. 도대체 그는 왜 그렇게 강박적으로 많은 영화에 얼굴을 비쳤던 걸까. 2011년 <씨네21> 신년호(786호)를 통해 거의 10년 만의 공식적인 인터뷰를 가졌던 그를 다시 만났다. 그가 사는 일산으로 갔다. 촬영이 없는 날이면 그는 동네라는 ‘구역’을 정해두고, 그곳을 중심으로 지낸다고 했다. 겉으로는 조용한 생활처럼 보이지만 정작 그는 이 휴지기에 시나리오를 보고, 감독과 제작자를 만나고 다음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사무실도 매니저도 없는 그에게 일산에서의 시간은 다음 작품을 위한 암중모색을 의미하기도 했다. 일산에서 그를 만난다는 건 이 모의의 시간이 어떻게 구성되나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1997년 5월, 박찬욱 감독의 <3인조> 개봉을 앞둔 이경영은 당시 데뷔 11년차의
누가 그를 대체할 수 있을까
-
슬금슬금, 소리도 없이 누군가가 카페 안으로 슥 들어왔다. 예의 부스스한 머리와 동그란 안경에 보랏빛 점퍼를 걸치고 베이지색 민무늬 스니커즈를 신은 김창완이다. 그런데 표정이 영 멍하다. 얼핏 봐도 방금, 그것도 겨우 잠에서 깬 듯한 얼굴이다. 그도 그럴 것이 김창완은 지난밤 김창완 밴드의 3집 ≪용서≫의 발매 기념 콘서트에 흠뻑 취해 있었다. 공연의 여흥과 숙취의 고됨이 채 가시기 전일 텐데도 그는 힘든 내색이 전혀 없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며 달콤쌉싸름한 아포가토를 주문하더니 후루룩 넘기고 말 뿐. 그러고는 내리 음악 이야기를 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꼽을 때면 그는 단 한번도 빼놓지 않고 기타와 공연이라 말해오지 않았던가. 그렇게 가수 김창완으로 살아온 지 올해로 꼭 38년째다. 막내동생과의 사별 이후 그는 더이상 ‘산울림’으로 활동하지 않고 있지만, 2008년부터 ‘김창완 밴드’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이어오고 있다. ≪용서≫는 밴드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김창완] “아름다움은 뒷전이 돼버렸다”
-
듀나가 에세이집 <가능한 꿈의 공간들>을 출간했다. 90년대 후반부터 SF작가로 활동한 듀나는 소설 집필과 더불어 각종 매체와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사회 곳곳의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를 해왔다. <씨네21> 초창기부터 영화에 관한 글과 평론을 기고해온 오랜 필진이기도 하다. 광활한 여백이 연상되는 제목에서부터 책의 성격을 가늠할 수 있다. <가능한 꿈의 공간들>은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담은 ‘잡식에세이’다. 영화에 관한 글과 사회 비평을 비롯해 극장 환경, 디지털 문화 등 듀나가 꾸준히 관심을 표현해온 이슈들까지 빼곡하게 담았다. 듀나는 책에 다음과 같이 썼다. “SF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의 영역을 커버한다. 일반적인 이야기꾼은 현실세계에서 가능할 법한 이야기를 다루지만, SF작가는 존재 가능한 우주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룬다.” 뾰족한 듯 섬세하고, 냉정한 듯 사려깊은 그의 글을
[trans × cross] 40대를 넘어도 아줌마 역할에 갇히지 않는 여배우들이 많아지길
-
-
드라마 <상속자들>이 끝난 지난해 1월, 2014년을 빛낼 신인배우로 강하늘을 처음 만났다. 그때만 해도 강하늘은 가능성의 배우였다. 그리고 1년 뒤. 그는 매일 무대에 오르고 있다. 한달에 한편꼴로 자신의 영화가 개봉하고 있다. 2014년을 그 누구보다도 바쁘게 보낸 강하늘과 다시 마주 앉았다. <상속자들> 이후 강하늘은 <소녀괴담> <엔젤 아이즈> <쎄시봉> <순수의 시대> <스물> <미생>을 차례로 찍었다. 작품과 작품 사이 쉴 틈도 없었다. 2015년의 시작은 연극과 함께였다. 1월9일부터 3월1일까지 두달 가까이 월요일을 빼곤 매일 무대에 섰다. 자신의 생일(2월21일)과 설 연휴까지 몽땅 연극에 바쳤다. “생일이요? 그냥 토요일이에요. 공연 두 타임 있는.” “설이 뭐예요? 3시 공연밖에 몰라요.” 능청스럽게 말한 뒤 크게 웃음을 터뜨리던 강하늘은 오히려 연극 <해롤드 앤 모드>
[강하늘] 내일 또 봅시다, 강하늘 씨
-
겉뜻 호구고객이란 뜻
속뜻 호랑이굴[虎坑]이란 뜻
주석 휴대폰이 필수품이 되고나니 단통법, 호갱, 직구… 같은 말들에도 익숙해져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단통법이란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을 줄여 부르는 말인데, 어떤 이들은 ‘전국민호갱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호갱이란 ‘호구고객’의 준말이지만 ‘호객’이 아니라 ‘호갱’이 된 것은 뒤에 ‘님’자가 따라붙어서 자음동화 현상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손님을 존대하면서 뒤로는 호구로 여기는 장사치들의 이중적인 행태를 비꼬는 말이다.
한국은 휴대폰 단말기 가격과 무선통신 비용이 제일 높은 나라다. 그나마 발품을 팔면 단말기에 지급하는 보조금을 챙길 수 있었으나 단통법으로 그마저도 불가능해졌다. 줄어든 보조금이라도 받으려면 7만원이 넘는 높은 요금제에 가입해야한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2년 약정만 하면 아이폰6를 0원에 판다. 그러니까 일본에서는 보조금이 100%인 셈인데, 우리는 단말기도 비싸, 내는 요금
[권혁웅의 일상어 사전] 호갱
-
<알로하> Aloha
감독 카메론 크로 / 출연 에마 스톤, 브래들리 쿠퍼, 레이첼 맥애덤스, 빌 머레이
하와이와 군대 그리고 로맨스의 조합이다. 군무기 전문 컨설턴트 브라이언(브래들리 쿠퍼)은 위성 프로젝트 진행차 호놀룰루로 발령을 받는다. 브라이언은 몇년 만에 첫사랑 트레이시(레이첼 맥애덤스)와 재회하는 한편 업무 파트너인 여군 NJ(에마 스톤)에게도 사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 카메론 크로가 연출과 각본을 맡았다. 5월29일 북미 개봉예정.
[WHAT'S UP] <알로하> Aloha
-
[정훈이 만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비밀 정보 요원 김미영 팀장
[정훈이 만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비밀 정보 요원 김미영 팀장
-
우리 사장은 엄청나게 좋은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회사에 다닌 적이 있다. (물론 예감은 불길했다. 무슨 좋은 사장이 등산복을 차려입고 너희는 일해라 나는 이따 놀러간다는 자세로 출근을 한단 말인가.) 몇주 뒤, 사표를 냈다는 동료가 고백했다, 사실 우린 전부 노비야. (몰랐던 사실도 아니지만.)
30대 후반이었던 그녀는 미국 사는 사장 친척이 서울에 왔다가 짐이 무거워 일단 호텔에 들어갔으니 그 짐을 사장 집으로 옮겨놓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바퀴 달린 가방도 무겁다며 호텔로 직행한 친척이라면 그 옛날 아메리칸드림 시절에 이민 떠난 어르신이라도 되는 건가. 그녀는 기분이 나빴지만 노인 공경의 마음을 다잡으며 호텔로 향했다. 그리고 방문을 열고 나타난 사람은… 웃통을 벗고 젖은 머리를 탈탈 터는 스무살 정도의 건장한 젊은이. 오, 이게 무슨 횡재인가! 사장님, 감사합니다! 아니, 이게 아니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친척은 조기 유학을 떠난 사장의 조카였다. 내일모레가 불혹인 노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복종만이 살길
-
폭발은 연소와 다르다. 폭발은 존나 급격한 연소다. 대비할 틈을 허용하는 연소와 달리, 폭발은 대비할 틈을 주지 않는다. 불이 나면 도망갈 시간이라도 있지만, 가스 폭발은 그마저도 허용하지 않는다. 폭발은 순간의 미학이고, 순간의 한방을 위해서 몇날 며칠이고 숨어 기다리는 미학이다. 마치 당신의 퇴근시간을 끈질기게 기다리고, 도망칠 겨를도 주지 않은 채 순식간에 당신을 급습하는 가스불꽃처럼. 대부분의 영화들이- 관객이 다음 장면을 대비할 겨를을 허용하면서- 자신의 에너지를 서서히 태워나가는 연소 영화라고 한다면, 그에 반해 폭탄처럼 작동하는 영화들이 있다. 구분하기는 매우 쉽다. 전자의 반응이 “음, 그럴 줄 알았어”, “오 상당히 교훈적이군”이라면, 후자의 반응은 “아 띠발, 이게 뭐야”, “옴마야 개심쿵 썅”일 테니깐. 폭탄 영화는, 관객에게 생각하고 예측할 겨를을 주면서 주제와 이야기를 전달하는 영화가 아니다. 폭탄 영화는 관객에게 생각하고 도망갈 겨를조차 빼앗으며, 안구와 시
[곡사의 아수라장] 카운트다운은 없다
-
셀피의 시대다. 지난 2월1일 폐막한 제44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는 14개 비디오아트와 실험영화 독립배급사로부터 ‘미, 마이셀프 앤드 아이’(Me, Myself and I)라는 주제에 맞는 작품 한편씩을 출품받아 흥미진진한 컬렉션을 완성했다. 마르그리트 란츠 감독의 <진주>(La Perle, 2007)는 휴대폰카메라 앞에서 한 여성이 명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의 주인공으로 치장하는 과정을 5분의 비디오에 담았다. 베르메르의 모델이 지은 오묘한 표정을 포착하려는 마지막의 말없는 집중이 백미. 창조할 수 있는 대상으로서의 나(me), 자기도취(myself), 주체(I)가 고루 들어 있다.
01/05
열에 일곱쯤 확률로, 영화의 첫 5분 동안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게 될지 아닐지 맞히곤 한다. 오프닝 5분에는 꽤 많은 단서가 포함돼 있다. 숏과 신을 배열하는 고유한 호흡, 음악 쓰는 패턴, 감독의 유머 취향과 선호하는 이미지, 연출자가 상정한 관객의 이해력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조용한 학교
-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단편부문 황금곰상은 나영길 감독의 <호산나>에 돌아갔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작품으로 제작된 <호산나>는 이미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 단편경쟁부문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을 비롯해 미쟝센단편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클레르몽페랑국제단편영화제의 초청을 받은 화제의 작품이다. 제목의 ‘호산나’는 신약 성경에 나오는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라는 뜻으로, 신과 같은 치유력을 가진 소년과 그에게 의지한 채 파괴되어가는 인간 군상이 살아가는 살풍경한 마을의 이미지를 통해 인간의 구원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짧은 지면으로 풀기 힘든 풍부한 상징과 과감한 비주얼 구현이 인상적인 작품으로, 러닝타임은 25분에 불과하지만 그 해석과 호불호를 둘러싼 논쟁의 시간은 사뭇 길어질 영화다.
-수상의 분위기는 점쳤나. (웃음)
=전혀 언질이 없었고 기대도 안 했다. (웃음) 일단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은 것만으로도 내겐 영광이었다. 클레르몽페랑 때는 14
[flash on] 구원자의 피로감 그리다
-
기자시사회가 열린 뒤 가장 큰 환호와 갈채를 받은 <빅토리아>는 140여분을 원 테이크로 찍어낸 무시무시한 영화다. 베를린에 사는 스페인 출신 20대 여성 빅토리아는 클럽에서 집으로 향하는 길, 껄렁한 독일 청년들이 말을 걸자 편견 없이 이들과 잠시 어울린다. 젊은이들이 서로 열린 마음으로 설렘을 나누며 ‘지금, 여기’를 생생하게 느끼는 현장감이 그대로 전달된다. 영화는 중반부까지 외로운 젊은이들이 마음을 나누는 낭만적 분위기를 잡아내지만 느닷없이 상황이 반전되며 범죄와 추적에 휘말리는 하드보일드 장르영화로 급변한다. <빅토리아>의 제바스티안 시퍼 감독은 대강의 스토리와 상황을 알려주고 배우들의 즉흥연기와 대사에 의지해 몇번의 리허설을 거친 뒤, 세번의 원 테이크 촬영을 했고 세 번째 테이크를 편집 없이 그대로 썼다고 한다. 일간 <베를리너차이퉁>은 “극단적이고, 용감하고, 감동적인 영화”라며 이 작품이 “꼭 금곰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현지보고] 세번의 원 테이크
-
지난 2월12일 오후 2시. 베를린에 위치한 하우극장에서 봉준호 감독 마스터클래스가 열렸다. 이번 베를린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봉준호 감독은 ‘베를리날레 탤런츠’ (Berlinale T alents) 부문의 강사로도 초대받았다. 베를리날레 탤런츠는 해마다 전세계의 재능 있는 젊은 감독과 시나리오작가 등에 선발된 영화인 300여명을 초대해 워크숍을 비롯한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교류의 장을 마련하는 행사다. ‘간극 메우기: 공간 사이의 영화들’(Bridging the Gap: Films between the Space)이라는 주제로 홍콩 영화제작자 로나 티와 함께 대화가 진행됐다. 봉준호 감독의 작품 중 <플란다스의 개> <괴물> <도쿄!> <설국열차>에 대한 질의응답이 오갔다. <괴물>에 대해 봉준호 감독은 “서로 섞일 수 없는 아주 이질적인 것들을 한 화면에 섞어놓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일본말을 할 줄 몰랐
[현지보고] 이질적인 것들을 한 화면에 섞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