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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뒷받침해주니 안되는 일이 없다."
내경은 어떤 인물?
조선 최고의 관상가.
사람의 운명을 꿰뚫어보는 비범한 능력으로 위태로운 조선의 운명을 바꾸려 한다.
송강호밖에 없었다. 김종서와 수양대군 사이에서 무게감이 떨어지지 않을 배우는. 영화의 거대한 담론을 지켜볼 얼굴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모든 걸 뒷받침해줄 배우 송강호의 연기력이 절실히 필요했다. 오후 2시에 전화로 제안을 하고, 그날 오후 6시에 만나 함께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시나리오를 송강호에게 맞춰 바꾸었다. 처음 시나리오에서 방관자, 뷰어의 역할에 불과했던 내경 역할이 그의 합류로 한층 부각됐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경을 따라가는 영화, 시골에서 올라와 한양에서 풍파를 겪다가 다시 낙향하는 내경의 일대기가 된 것이다.
송강호는 워낙 단점이 없는 배우여서 감독에게 어려운 장면도 밀어붙일 수 있는 자신감을 준다. 이 배우와 함께라면 두렵거나 회피하는 장면이 없어진다. ‘배우 송강호’ 하면 떠오르는 습관적인
[봤니, 이 영화] <관상>의 여섯 배우 관상을 읽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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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긴 몰라도 한재림 감독은 ‘전생에 나라를 구한 상’인가 보다. 그러지 않고서야 송강호, 이정재, 백윤식, 김혜수, 조정석, 이종석 같은 좋은 배우를 한 영화에 캐스팅하고 “우리 영화는 첫 번째 구애에 모두 성공했다”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영화는 1453년 단종 1년, 수양대군이 김종서 등 핵심인물을 죽이고 정권을 찬탈한 사건을 소재로 한다. 사건의 주역은 익히 아는 수양대군이나 김종서, 한명회가 아니다. 거대한 역사적 흐름을 볼수 있다는 이유로 희생양이 된 관상가 ‘내경’이다. 한재림 감독은 ‘편집이 가장 어려웠다’는 불평 아닌 불평을 전한다. 그도 그럴 만하다.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를 내 손으로 덜어내자니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니더라.” 한재림 감독에게 촬영을 함께한 배우의 관상을 봐달라고 청했다. 영화 <관상>은 9월11일 개봉한다.
[봤니, 이 영화] <관상>의 여섯 배우 관상을 읽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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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함께 MBA과정을 마친 친구를 만났다. 능력이 출중했던 그 친구는 졸업 뒤 야후에서 일했고,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하더니 지금은 구글에 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일자리를 쇼핑하듯 돌아다닌다.
그가 실리콘밸리의 한 식당에서 털어놨다. 회사가 재미없어 못 다니겠다고. 세상에, 세계 청년들의 꿈이라는 회사, 창의와 자율이 넘치고 사원복지가 젖과 꿀처럼 흐르는 회사라는 구글에 다니면서 그런 소리를 해? 친구가 대는 이유가 압권이었다. “회사라는 존재는 원래 악한 것(evil) 같아. 인간과는 맞지 않는 제도인 거지.” 회사가면 죽는다는 이야기다. 일이 고되어서가 아니다. 본질적으로 자기 일이 아니라 남의 일을 하는 곳이어서다.
만화 <미생>의 회사원들은 늘 일에 쫓긴다. 낮에는 프리젠테이션에, 밤에는 술자리에, 일주일은 어떻게 흘렀는지 모른다. 힘겹게 눈을 떠보면 벌써 주말 오후. 다시 눈을 떠보면 이미 대리이고 과장이고 40대가 코앞이다. 그렇게 달려가
[캠퍼스 너머] 회사가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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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손님>(가제)
2013 <한공주>
못 알아볼 뻔했다. 흰색 남방에 넥타이를 맨 옷차림이 회사원에 가까웠다. <한공주>를 찍은 홍재식 촬영감독이 한껏 멋을 부리고 나온 이유를 말했다. “<한공주>를 만든 이수진 감독의 전작 <적의 사과>(2007) 때 <씨네21>과 인터뷰를 한 적 있다. 후줄근한 티셔츠 하나 걸치고 나갔는데, 사진을 본 아내와 주변 사람들이 ‘옷이 이게 뭐냐’고 했다. 오늘은 아내가 직접 코디를 해줬다. (웃음)”
<한공주>는 홍재식 촬영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2년 전 시나리오를 처음 받아들었던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야기가 슬펐다. 공주(천우희)의 얼굴이 슬프게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단편 <적의 사과>와 <아들의 것>(2006)을 함께 만든 이수진 감독과 그는 촬영 원칙의 큰 틀을 세웠다. 인공적인 조명을 자제하고 최대한 현실적인 이미지
[STAFF 37.5] 슬픈 공주를 어깨에 태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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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칼날>의 정재영과 <한공주>의 천우희는 전혀 다른 표정을 보여준다. 정재영은 <방황하는 칼날>에서 성폭행당하고 죽은 딸의 아버지 이상현으로 나온다. 천우희는 <한공주>에서 본인도 성폭행을 당하고 함께 폭행당한 절친한 친구가 자살한 사건으로 고통받는 한공주로 나온다. 그들의 표정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딸을 잃은 아버지 이상현은 종종 절규하지만 내내 넋이 나가있으며 복수에 나선 길에서도 유령 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 한공주는 언뜻 아무것도 읽을 수 없는 무표정으로 일관한다. 그녀가 표정을 보이는 순간은 친엄마나 아빠를 만났을 때, 또는 새로 사귄 친구의 호의에 힘겹게 반응할 때뿐이다.
두편의 영화 모두 선악 구분에 기초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분법 구도에 호소하는 방법을 쓰지 않는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 기초한 <방황하는 칼날>이 상대적으로 스릴러 문법에 더 가깝지만 이 두편의 영화에서 사건은 더디게 전개되는 편이
[신 전영객잔] 배우의 얼굴이 우리에게 말을 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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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연기자 보아’에 대한 칭찬을 여기저기서 들었다. 아마도 연기자 데뷔의 순간이라 불러야 할 KBS 2부작 드라마 <연애를 기대해>(2013)를 본 사람들은 물론, 현재 출연 중인 최호 감독의 <빅매치>(가제)에 대한 얘기를 이래저래 전해들은 사람들 모두 ‘배우로서의 끼가 엿보인다’고 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댄싱영화 버전이라 할 만한 <메이크 유어 무브>를 보면서 그런 말들이 이해됐다. 오빠와 라이벌 관계에 있는 클럽의 댄서 도니(데릭 허프)와 금지된 사랑을 나누는 아야 역을 맡은 보아는 춤 실력을 뽐내는 것 이상으로 ‘준비된 연기자’의 향기를 풍겼다. 하반기에 관객과 만날 <빅매치>의 ‘포커페이스 미스터리 우먼’ 수경 역할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역할에 대한 힌트를 달라고 했더니 ‘욕 잘하는 여자’란다. 어쨌건 뭔가 기분 좋은 ‘발견’의 순간이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춤 실력이 대단하다.
=할리우드의 다른
[보아] “몸이 힘들수록 감정이 살아난다, 그게 춤이고 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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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숙 만화가에게 명함을 받았다. 거기엔 어린이 잡지 <개똥이네 놀이터>에 연재하는 만화 <꼬깽이> 캐릭터가 그려져 있다. “작가님과 꼬깽이가 닮은 것 같아요” 했더니 김금숙 작가가 다들 그렇게 얘기한다며 까르르 웃는다. 시골 골목대장 같은 외모와 밝은 성격을 지닌 그는 프랑스에서 오래 살았다. 조각을 배우러 유학을 떠났다가 만화가가 되어 한국에 돌아왔다. 최근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이하 <지슬>)를 원작으로 한 만화 <지슬: 제주 4.3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이하 <지슬>)를 그렸다. 영화처럼 흑과 백으로 표현한 그림은 그가 4년째 배운다는 판소리처럼 쉽사리 설명하기 힘들지만 분명히 아름답다.
-<지슬>은 어떻게 하게 됐나.
=출판사에서 제의가 왔을 때 사실 영화를 보지 않은 상태였다. 포스터는 봤다. 첫눈에 반하는 스타일인데 포스터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군인 한명이 반대편
[trans x cross] 시대의 아픔에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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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딜, 중대사건이었다.” <스파이더맨> 리부트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자신이 낙점됐을 때 앤드루 가필드가 한 말이다. 그 자신뿐 아니라 다년간 토비 맥과이어의 스파이더맨에 흠뻑 빠져 있던 관객이나 토비의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부담을 잔뜩 짊어진 제작진 모두에게 프랜차이즈 블록버스터영화에 출연한 경험이 전무한 그와의 동행은 분명 새로운 도전이었을 것이다. 과연 그가 뿔테 안경을 쓴 괴짜, 스판덱스 소재의 올인원 스파이더맨 슈트를 입고 공중제비를 멋지게 돌 제2의 맥과이어로 거듭날 수 있을까에 대한 반신반의였다. 결과는 꽤 성공적이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박스오피스 모조 기준으로 약 7억5200만달러의 흥행 성적을 기록하며 마블의 다른 히어로들에 비해 그간 다소 입지가 약했던 스파이더맨의 건재를 알렸다. 성공의 이유에는 전편과는 전혀 다른 스토리라인이 주는 신선함도 한몫했겠지만 무엇보다 앤드루 가필드라는 뉴 페이스의 투입이 이 모든 새로움에 생기를 불어넣었다고
[앤드루 가필드] 영웅의 복면 틈새로 인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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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그면 주거야지 ]
겉뜻 노인들이 탄로(歎老)의 정서를 담아 토해내는 한탄
속뜻 열렬히 누군가를 사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
주석 이 말을 온전한 문장으로 쓰면 이렇다. “만일 내가 늙는다면, 나는 죽겠다.” 전반부는 가정법이니 실은 자신이 아직 늙지 않았다는 말이고 후반부는 그때가 되면 자기 의지로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말이다. 그러니 저 말을 하는 이는 자신이 노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버스나 지하철에서도 한사코 경로석을 찾아가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죽겠다는 건 무슨 뜻일까? 생물이 죽지 않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방법은 무성생식으로 번식하는 방법이다. 아메바나 짚신벌레처럼 몸이 둘로 나뉘어서 번식하는 생물(이분법), 히드라나 말미잘처럼 몸의 일부가 혹처럼 떨어져 나와서 새로운 개체가 되는 생물(출아법), 고사리나 이끼처럼 몸의 일부에서 만들어진 포자가 떨어진 뒤 거기서 싹이 트는 생물(포자법) 등이 이 방법을 쓴다. 자기 유전자와 똑같은
[권혁웅의 일상어 사전] 늙으면 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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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예술세계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인용되는 사실이 그의 여성 관계다. 피카소는 끝없이 여성들과 스캔들을 일으켰다. 딸 같은 여성과의 교제는 말할 것도 없고, 말년엔 손녀 수준의 여성(모델인 자클린 로크)과 결혼했다. 누군가에겐 부러움을, 또 누군가에겐 혐오감을 줄 수 있는 행보인데, 묘하게도 피카소는 새로운 여성을 만날 때마다 화풍의 변화 혹은 더욱 왕성한 작품 활동을 선보이곤 했다. 영화계의 피카소를 꼽자면 단연 잉마르 베리만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베리만의 여성 편력도 ‘염치없는’ 수준이다. 협연한 배우들은 거의 모두 연인이었다. 잉리드 툴린은 ‘베리만 사단’의 고정 배우였는데, 다른 여배우들과는 사뭇 다른 행보를 보여 흥미로운 경우다.
‘베리만 사단’의 지성파 배우
‘베리만 사단’은 물론 공식적인 단체가 아니라, 그와 평생 인연을 맺은 동료들을 말한다. 베리만 사단에 포함되는 여배우들은 대개 한번쯤은 베리만의 연인이었다. 이 점이 많은 추문을 낳았는데, 주로 베
[한창호의 오! 마돈나] 지적인 품위, 그리고 외설의 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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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트 원티드 맨> A Most Wanted Man
감독 안톤 코르빈 / 출연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 레이첼 맥애덤스, 로빈 라이트,윌렘 데포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은 아직 떠나지 않았다. 고인이 세상을 떠나기 2주 전, 선댄스영화제에서 공개됐던 <모스트 원티드 맨>이 개봉한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작가 존 르 카레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며 독일 함부르크를 배경으로 해 테러리스트로 의심되는 체첸 모슬렘 청년의 체포를 놓고 인권변호사와 국제정보기관들간의 대립을 그린다. 북미에서 7월 개봉예정.
[WHAT'S UP] <모스트 원티드 맨> A Most Wanted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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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다이버전트> 핵심부서 5개
[정훈이 만화] <다이버전트> 핵심부서 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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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 걱정 없이 해맑아서 골치였던 상사가 갑자기 어두워졌다. 부잣집 막내아들로 태어나 놀기만 하다가 그 천성을 버리지 못하고 직장에서도 계속 놀고만 있는 철부지로 살아온 세월이 어언 반세기, 상사에게도 드디어 험한 세상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인가. 나는 기뻤다. 기쁜 나머지 3X년을 갈고닦은 필살의 애교를 장착하고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부당니임, 요즘 무슨 걱뎡 있으쩨요?” 그는 흠칫했다. 겁먹은 것 같았다. “아니, 뭐… 옆집에 무당이 이사를 와서….” 굿이라도 한다는 건가. “그건 아닌데… 그 무당이… 닭을 잡아.” 겁먹은 그의 눈이 촉촉해졌다.
상사의 이웃인 박수무당은 이따금 두집 사이 공터에서 하얀 수탉을 잡아 피를 뿌린다고 했다. 심약한 도련님은 그 피비린내와 비명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하지만 태생이 잡초인 나는… 오옷, 제대론데! 흥분하고 말았다. 나도 연화보살과 같은 건물에 살아봤지만 닭 피는커녕 병아리 눈물도 구경 못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진짜 무당이구나,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이런 무당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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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21일 일기에 <론 서바이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방이 레드 라이트다.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온리 갓 포기브스>에 없는 것은 동기와 캐릭터이고 넘치는 것은 운명과 조명이다.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에게 특별히 헌정된 영화답게 <온리 갓 포기브스>에는 조도로프스키의 컬트 <성스러운 피>의 그녀 못지않은 ‘지옥에서 온 엄마’(크리스틴 스콧 토머스)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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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과 실화에 기대지 않은 오리지널 시나리오가 소수파로 밀려나고, 예고편은 물론 예고편의 예고편, 예고편의 속편이 시간차 배포되는 시대에, 신작 영화를 아무 정보 없이 보러 가는 일은 점점 드물어진다. 경험이 축적되면서 ‘나쁜 전조(前兆)’의 목록도 나름 생긴다. 촬영 과정의 잡음, 밑천을 몽땅 노출하는 트레일러, 뷔페식 장르 명명(예컨대 ‘휴먼액션멜로 대서사극’), 언론 시사가 없거나 늦다는 소식 등등을 접하게 되면 영화 기자들은 <스타워즈>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무)자막의 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