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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역에서 연대 근방 하숙집까지 택시(!)를 탄 ‘삼천포’(김성균)가 종로를 지나 서울역의 야경을 스치면서도 택시기사에게 뭐라 항의도 못하던 그 시각. 하숙생을 기다리다 지친 성나정(고아라)의 가족들이 보던 텔레비전에도 홍식(한석규)의 꾐에 넘어가 갓 상경한 춘섭(최민식)의 긴장한 표정이 겹친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는 MBC <서울의 달> 외에도 <마지막 승부> <사랑을 그대 품안에> 등의 드라마가 자주 노출된다. 나정의 엄마(이일화)가 잠시 KBS <한명회>를 언급했지만, 당시의 유행과 정서를 이야기할 때 주로 부름받는 건 MBC 드라마였다. 1991년 SBS의 개국에 MBC는 고 김종학 PD와 송지나 작가 콤비의 <여명의 눈동자>로 맞섰고, 일본 버블경제 시절의 트렌디 드라마를 이식한 <질투>에 이어 신데렐라 드라마의 조상 격인 <사랑을 그대 품안에>로 스타 차인표를 배출하기까
[tvN을 가다] 지상파의 고민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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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7>(이하 <응칠>) 이후 딱 1년 만이다. 준비 기간이 넉넉지 않았을 텐데.
=나는 회사원이다. 하라면 해야 한다. (웃음) 그렇다고 할 이야기도 없는데 억지로 시작한 건 아니다. 제작 시기 문제야 온전히 혼자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었지만 ‘촌놈들의 서울 상경기’란 이야기 자체는 <응칠> 때부터 해보고 싶은 소재였다. 그래도 솔직히 이렇게 빡빡하고 힘든 일정일 줄은 몰랐다. (웃음)
-기본적인 틀은 <응칠> 때와 거의 유사하다.
=나는 사실 빠순이 문화도 전혀 모르는 영역이었다. 그런 게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실상 아는 건 없는. 이번 전국 촌놈들의 상경기도 마찬가지다. 서울 태생인 나와는 거리가 있는 이야기였지만 작가들과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는 중에 내가 왜 이걸 몰랐지, 싶을 만큼 재밌고 친근하더라. 모르는 사람은 신선하고 아는 사람은 공감할 수 있는 소재라는 점에서 <응칠>과 비슷하다. 모두가
[tvN을 가다] 이야기가 먼저고 장르는 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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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는 빙그레가 듣고 있던 이어폰 한쪽을 슬쩍 가져가 귀에 꽂고는 말한다. “야, 가지가지 한다. 김광석이네? 참 좋은 가수였는데.” 그때 갑자기 한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야, 김광석 아직 안 죽었다~!” 스탭들은 촬영을 멈춘 채 일제히 키득거리고 쓰레기 역의 배우 정우는 머쓱한 미소를 짓는다. <응답하라 1994>(이하 <응사>) 촬영 현장에서는 모든 스탭들이 스크립터가 된다. 1994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인 만큼 90년대의 정서를 고스란히 재현하는 게 드라마의 핵심이며, 때문에 전체 배경부터 사소한 소품 하나까지 꼼꼼한 체크는 필수다. 재미있는 건 이런 체크가 현장에서도 수시로, 그리고 즉각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스탭들은 현장에서 의견을 내는 것에 그다지 거리낌이 없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와중에도 틈틈이 의견을 제시하고 수정할 부분이 있으면 화면에 바로 반영한다. 긴장감이 없는 것도 아니고 빡빡한 일정에 피로한 기색도 역력하지만 그 와중에도 다
[tvN을 가다] 살아남으려는 자가 만든 새로운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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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하다. 불온, 부당, 불편한 공기를 두르고 거침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 렌즈 위에 살점이 튀고 화면 아래 피가 낭자할 때 누군가는 스타일리시한 감각을 칭찬하고 누군가는 근본 없는 폭력의 전시에서 고개를 돌린다.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영화는 단순하다. 적과 아군이 선명하게 갈리는 흑백의 세계. 당신은 도식적인 상징과 허무한 과잉으로 범벅이 된 이 세계를 앞두고 한발 내딛을 것인가, 발길을 돌릴 것인가. 폭력, 컬트, 영화광, 잡종성, 마초 등 니콜라스 윈딩 레픈에게 가닿을 여러 단어들을 모아 조심스레 문을 두드려본다.
원초적이고 폭력적인 야생의 충동을 스타일리시하게 연출하는 방식으로 유명세를 탄 덴마크 감독 니콜라스 윈딩 레픈이 ‘똠양꿍’ 내음 가득한 몽환적 신작 <온리 갓 포기브스>로 찾아왔다. 방콕의 환락가에서 타이 복싱장을 운영하는 줄리언(라이언 고슬링)은 마약밀매를 하던 형 빌리가 미성년 성폭력으로 살해당하자 범인을 찾아 나선다. 아들의 장례식을 위해 방콕
폭력의 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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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의 화제작이었던 <한공주>와 <셔틀콕>이 일주일 차로 개봉한다. <한공주>는 집단 성폭행을 당한 열일곱 소녀 한공주(천우희)의 마음을 따라가고, <셔틀콕>은 보험금 1억원을 들고 도망간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누나를 쫓는 열여덟 소년 민재(이주승)의 시점을 따라간다. 두 영화 모두 신인감독들의 데뷔작이고, 배우의 얼굴이 도드라지는 작품이다. 조금 도식적으로 설명하면 <한공주>는 남성감독이 소녀의 심경을 들여다보는 영화이고, <셔틀콕>은 여성감독이 소년의 심정을 묘사하는 영화다. <한공주>의 이수진 감독이 <셔틀콕>의 이주승을, <셔틀콕>의 이유빈 감독이 <한공주>의 천우희를 인터뷰해 보아도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모두들 흔쾌히 이 크로스 인터뷰에 응하기로 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문제가 발생했다(이어지는 기사 참고). 인터뷰는 애초 의도대로 흘러가지 못했
영화처럼 우리도 닮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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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4>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우리를 설레게 하고 있다. 5%가 넘은 시청률만으로는 이 드라마의 파급력을 측정할 수 없다. 1화가 끝날 때마다 기사와 반응들이 쏟아져 나오고 1990년대를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할 것 없이 신촌하숙촌 청춘들이 펼치는 풋풋한 추억 속으로 젖어든다. 이 드라마는 분명 별종이다. 그저 잘 만든 인기 드라마 한편을 넘어 여타 다른 드라마들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낯설고도 익숙한 존재들. 화제의 중심에 놓인 <응답하라 1994>를 비롯해 벌써부터 올해 최고의 드라마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 음악과의 참신한 접목이 돋보였던 <몬스타> 등 최근 TV드라마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tvN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너흰 어느 별에서 왔니?
[tvN을 가다] 억수로 까리봉삼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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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류승완, 류승범 형제'라 불리는, 역시나 감독과 배우라는 조합을 갖춘 형제가 있다. 11월14일 개봉한 <잉투기>의 감독 엄태화와 동생이자 배우인 엄태구의 이야기다. 이른바 ‘정가 형제’의 <기담>에 각각 연출부와 단역으로 참여했다는 사실도 묘한 운명처럼 느껴진다. <기담>(2007)의 단역으로 출발한 동생 엄태구는 <은밀하게 위대하게>에 이르기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고,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의 엄태화 감독은 바로 그 동생이 주인공으로 출연한 장편제작연구과정의 <잉투기>를 통해 충무로를 향한 ‘한방’을 장전했다. 그들의 유년기 기억부터 단편과 장편을 이어 이제 막 역사를 써내려가기 시작한 지금에 이르기까지, 바로 그 '엄가 형제'를 소개한다.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모 영화사가 마련한 파티가 무르익어 야심한 시각에 이를 무렵, 몇몇 감독들이 그 영화제에 초청받지 못한 한 영화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박찬욱
[청춘스케치] 잉여롭고 놀라운 형제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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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즈 다이어리]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 진정한 재능
[헌즈 다이어리]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 진정한 재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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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지켜라! > 이후 1 0 년 만에 돌아온 장준환 감독
-소재와 이야기가 신선하다.
=애초 뼈대가 되는 시나리오를 쓴 작가가 있었다. 그 작가의 작품을 재밌게 읽었고, 거기에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까지 붙잡고 늘어져보고 싶어 각색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주인공의 이름이자 영화의 제목인 ‘화이’에는 어떤 뜻이 담겨 있나.
=원래는 와이(why)에서 출발했다. 촌스럽게 발음하면 화이가 되지 않나. 결국 <화이>는 인간 내면에 대해 질문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대사에도 ‘왜’라는 질문이 많이 나온다. 주인공의 이름과 서서가 잘 맞아떨어진다고 판단했다.
-화이 역에 어떤 배우를 캐스팅할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은데.
=화이를 찾기까지 지난한 과정의 연속이었다. 시나리오 속 화이에 정확히 부합하는 배우가 없었다. 화이는 그냥 화이였다. 그 화이를 누가 제일 잘 구현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여러 배우를 만났다. 그러면서 여진구라면
[봤니, 이 영화] 5명의 괴물들, 그리고 한 소년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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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미리 읽기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로 단박에 문제적 감독으로 주목받았던 장준환 감독이 꼬박 10년 만에 자신의 두 번째 장편영화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이하 <화이>)를 들고 왔다. <화이>와 <지구를 지켜라!>는 장르적으로 방점이 찍히는 지점이 사뭇 다른 영화다. <지구를 지켜라!>가 드라마와 코미디와 SF를 이종교배하며 카타르시스를 안겨줬다면, <화이>는 캐릭터의 심리와 드라마를 정공법으로 파고든다. 거기에 화끈한 액션 신은 보너스. “<화이>는 이야기가 무겁고 날카로워서 코미디가 비집고 들어가기 어려운 영화다.” 장준환식 블랙유머는 기대하기 힘들지만 파국을 향해 무섭게 질주하는 드라마의 힘을 느끼기엔 충분한 작품이란 얘기다.
17살 소년 화이(여진구)는 ‘낮도깨비파’로 불리는 5명의 범죄자 아버지들의 보호 아래 살아간다. 조직의 리더 석태(김
[봤니, 이 영화] 5명의 괴물들, 그리고 한 소년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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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명의 범죄자를 아버지로 둔 소년, '화이' : 여진구
"아버지… 왜 절 키우신 거예요?
화이는 영화의 주인공이자 가장 복잡한 내적 갈등을 겪는 인물이다. 17살이 된 지금까지 학교 대신 5명의 아빠들을 통해 살인 기술을 고루 배우며 남들과 다르게 자라왔다.
장준환 감독은 “아역 배우들은 보통 어렸을 때부터 훈련된 기교를 무기로 연기에 임하지만 여진구에게는 그런 굳어진 패턴이 없었”기에 그를 캐스팅했다고 밝힌 바 있다. 여진구의 연기에 때가 묻어 있지 않다는 말이다. “괴물 같은 아빠들 사이에서도 순수한 느낌을 유지하고 있는 신비한 아이”인 화이를 여진구 말고 다른 누가 표현해낼 수 있을까. 이미 <해를 품은 달> <보고 싶다> 등의 드라마에서 스타성과 연기력을 입증한 바 있는 여진구는 순수한 눈빛 속에 슬픔과 분노를 동시에 담아내며 화이라는 캐릭터를 한층 더 입체적으로 표현해냈다. 소년의 이미지를 벗고 남성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이번 작품을 통해 대한민
[봤니, 이 영화] 5명의 괴물들, 그리고 한 소년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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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인 면에서 본다면 유럽의 예술적인 만화들은 그야말로 심오한 ‘노블’이 많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림과 글을 집중해서 봐야만 하는 만화들이다. 슥슥 넘길 수 있는 페이지 같은 건 거의 없다. 하지만 미리 사전 조사를 하거나, 추천을 받아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고른다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만화들도 많이 있다. <바스티앙 비베스 블로그>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유럽 만화 중 하나다.
한국과 일본에는 소녀만화, 순정만화라는 장르가 있다. 주로 로맨스를 다룬 여성들의 이야기인데, 요즘에는 광범위한 ‘여성만화’라는 개념으로 많이 이야기되고 있다. 단지 로맨스만이 아니라 여성독자 취향의 만화를 모두 포괄하는 것이다. <염소의 맛> <폴리나> <내 눈 안의 너> 등 서정적으로 청춘의 풍경을 그려냈던 바스티앙 비베스는 남성이면서도 여성 취향의 작품을 그리는 작가다. 기존 작품에서는 부드럽고 섬세했지만, 이번에 나온 <바스티앙 비베
[콕!] 유럽식 여성만화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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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설국열차>가 재미있었다면 브누아 페테르스가 쓰고 프랑수아 스퀴텐이 그린 <어둠의 도시들> 시리즈를 읽어보자. 총 16권 중에서 <기울어진 아이> <우르비캉드의 광기> <보이지 않는 국경선> <한 남자의 그림자> 등이 나와 있다. <어둠의 도시들>은 ‘반지구’(counter-Earth)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 태양을 사이에 두고 지구와 똑같은 행성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과학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SF소설에서는 ‘반지구’ 이론을 바탕으로 지구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가치관과 사회구조를 지닌 세계를 많이 그려왔다.
<어둠의 도시들>은 반지구 행성에 존재하는 수많은 도시국가들의 이야기다. 수학, 식물학, 의학, 점성술, 천문학 등의 학문이 발달된 반지구는 지구의 중세가 그대로 진화했다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한다. ‘수수께끼와 비밀들이 존중되며,
[콕!] 건축에 관심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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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시대. 고성능 PC나 콘솔로 즐길 수 있는 대작 게임들만은 못하지만 손에서 뗄 수 없는 중독성과 간편함, 그리고 대중성으로 스마트폰 게임들의 인기는 날로 높아만 가고 있다. 이 중 진정 짜릿한 손맛과 중독성 있는 플레이를 원하는 이들에게 <헝그리 샤크 에볼루션>(Hungry Shark Evolution)을 권한다.
이 게임은 제목 그대로 ‘배고픈 상어를 진화’시키는 것이 목적. 처음 게이머는 크기가 작은 상어만 조종할 수 있는데 바닷속을 헤집고 다니며 작은 물고기들을 잡아먹고 다니면 경험치가 올라서 점점 덩치를 키울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자신보다 큰 물고기나 온몸에 가시가 있는 복어, 해파리, 인간이 설치해둔 기뢰 등을 건드리면 에너지를 잃으며 게임오버로 이어진다. 차분히 능력치를 키우고 아이템, 골드 등을 모은 뒤 귀상어나 백상아리 같은 보다 강력한 상위 포식자 상어를 얻으면, 그때부터는 진정 바다의 무법자가 되어 닥치는 대로 집어삼킬
[콕!] 상어 한 마리 키워볼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