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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남자>의 최모경(김민희)은 울고 또 운다. 한없이 ‘우는 여자’ 최모경의 사연은 딱하고 또 딱하다. 모경은 아이를 잃은 충격에서 벗어나지도 못한 채 치매에 걸린 엄마의 병수발을 들어야 한다. 죽은 남편이 연루된 사건으로 툭하면 경찰에 소환된다. 심지어는 그 자신이 킬러 곤(장동건)의 타깃이 되어 쫓긴다. 서로를 죽이려고 에너지를 뿜어대는 거친 남자들 사이에서 가냘픈 모경은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다. 탈진할 정도로 우는 가련한 모습을 보고 있자면 저러다 도망치기도 전에 쓰러지는 게 아닐까 걱정이 앞선다. 그런데 이상하다. 보통 여자 캐릭터가 지나치게 울면 답답하기 마련인데 모경이 울면 울수록 어쩐지 영화에 눌어붙은 피와 땀이 지워지는 듯한 착각이 든다. 핏물로 범벅된 곤의 지저분한 얼굴을 모경이 눈물로 대신 씻겨주는 것 같기도 하다. 피와 액션으로 점철된 <우는 남자>에서 관객의 숨통을 틔우는 건 전적으로 모경의 맑은 얼굴이다. 김민희의 얼굴도 시간의
[김민희] 저 깊은 곳까지 내려놓고, 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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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뜻 중요하지 않거나 매력적이지 않다
속뜻 사랑하는 이들을 다시는 볼 수 없다
주석 ‘별 볼 일 없다’를 ‘별로 볼 만하지 않다’로 읽는 데 반대다. 저 ‘별로’는 부정어와 함께 쓰여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이 ~하지 않다’란 뜻을 만든다고 한다. 고작 부정하기 위해서 ‘별’과 ‘보다’가 동원된다는 말인가? 저 예쁜 두 개의 입술소리(‘ㅂ’)와 든든하게 떠받치는 세 개의 설측음(‘ㄹ’)과 저 귀여운 모음들(‘ㅕ+ㅗ+ㅣ’)이 무시하고 부정하고 거절하기 위해 낭비된다는 말인가?
저 별은 우리가 아는 밤하늘의 그 별이어야 한다. 그리고 별들이 우리를 낳았다. 우주가 처음 탄생해서 38만년까지는 가장 가벼운 원소인 수소와 헬륨만 있었다고 한다. 더 무거운 원소들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별의 탄생을 기다려야 했다. 별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핵융합반응이 원자핵을 결합시켜 다른 원소들을 낳은 것이다. 별의 질량이 커짐에 따라서 탄소와 산소가, 네온과 나트륨과 마그네슘과 알루미늄이, 규소와 황과
[권혁웅의 일상어 사전] 별 볼 일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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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접한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위원장 공모 기사. 영화진흥을 위한 국가기관에서 짱을 뽑는 중이란다. 이번엔 잘 뽑아야 한다는 생각이 순식간에 들었다. 이런 자동반사적 리액션은 순전히 단 한분 때문이다. 우린 그분 때문에 영진위의 가치를, 짱의 가치를 더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그렇다. 바로 조희문이다.
1. 분탕질 비긴즈
내가 조희문을 처음 알게 된 건 스크린쿼터 논쟁이 뜨거웠던 2003년이다. FTA와 쿼터 축소를 트레이드하려는 노무현 정권의 정책에 반발해 모든 영화인들이 쿼터 사수를 외치던 그때, 쿼터 축소에 찬성하는 유일한 영화인이 한분 계셨으니 그분이 바로 조희문 교수였다. 논쟁은 당시 손석희의 <100분토론>까지 이어졌는데, 조희문은 정부관료와 함께 쿼터 축소 찬성 패널로 나왔더랬다. 정지영 감독님을 필두로 한 쿼터 축소 반대쪽의 주장은 명확했다. 한국영화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선 오히려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것. 이에 조희문의 발언은 놀라웠다.
[곡사의 아수라장] 분탕질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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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오브 라이프> The Book of Life
감독 조지 R. 구티에레즈 / 목소리 출연 채닝 테이텀, 조 살다나, 대니 트레조, 론 펄먼, 크리스티나 애플게이트, 디에고 루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제작자로 나선 애니메이션. 가족들이 희망하는 바와 달리 음악가가 되고 싶어 하는 청년 마놀로가 영화의 주인공이며, 그가 자신의 미래를 선택하기 직전 세곳의 환상의 세계에서 놀라운 모험을 하는 이야기다. 채닝 테이텀, 조 살다나, 론 펄먼, 디에고 루나 등 비주얼만큼이나 목소리 출연 배우들도 화려하다. 이십세기 폭스에서 제작했고, 북미에서 10월 개봉예정이다.
[WHAT'S UP] <북 오브 라이프> The Book of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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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 Insert Coin!
[정훈이 만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 Insert Co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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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의 편집자이자 뛰어난 서평가이기도 한 (친애하는) <씨네21>의 이다혜 기자는, 나와 함께 책 관련 팟캐스트에 출연한 자리에서 “어째서 김중혁 작가님은 책의 작가 사진을 찍을 때마다 매번 팔짱을 끼는 건가요?”라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 얘기를 듣는 중에도 나는 팔짱을 끼고 있었으므로 이다혜씨의 눈을 보는 순간 뜨끔했다. 내가 그랬나? 그랬구나. 그동안 찍었던 사진들이 일렬로 눈앞을 스쳐갔다. 사진 속의 나는 대체로 팔짱을 끼고 있거나, 팔짱을 낀 채로 한손을 들어올렸거나 (말하자면 제임스 본드 스타일이랄까) 막 팔짱을 끼려던 찰나에 카메라에 찍혔거나, 팔짱을 못 끼게 하니 팔꿈치라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어째서 그토록 팔짱이 편했던 것일까, 이다혜씨 눈치를 보며 슬며시 팔짱을 풀고 대답을 생각하고 있는 사이, 이다혜씨가 대규모 2차 질문 공습을 감행해왔다. “여자들은 가슴을 크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 남자 앞에서 팔짱을 끼는데, 김중혁씨는 무엇을 위해 팔짱을
[김중혁의 바디무비] 이제 소설은 내 손을 떠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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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3일과 14일 일기에 <도희야>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여태 동조자를 만난 적은 없지만, 예나 지금이나 내 눈에 디즈니 만화영화 최고의 미인은 <잠자는 숲속의 공주>(1959)의 말레피센트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의 디자인을 성실히 계승한 실사 말레피센트의 외모 중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날개다. 얇고 하늘하늘한 시폰 날개는 팅커벨에게나 주라고 말하듯 말레피센트는 거대한 맹금류나 익룡의 강건한 날갯죽지를 가졌다. 그녀의 날개는 비행 수단일 뿐 아니라 적을 후려치고 쓸어버리는 무기이기도 하다.
5/12
스승의 날이 있는 달이다. 1년 전 이맘때 개봉한 <라자르 선생님>과 올해의 <디태치먼트>까지 보고 나니, ‘리버럴한 교사와 그를 따르는 아이들 vs. 진학 실적에 목매는 권위적 학교’ 구도로 갈등이 전개되는 <죽은 시인의 사회>류 영화나 사명감 넘치는 스승이 문제아들을 감화시키는 <언제나 마음은 태양>과(科)의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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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떻게 찍었을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고든 윌리스에게 물었다고 한다. 수많은 질문을 받을 때마다 고든 윌리스의 대답은 늘 이러했다. “어떻게 찍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왜 그렇게 찍었는가가 중요하다. 사람들은 내가 찍은 장면을 두고 ‘리얼하다’고 하지만 그건 리얼한 게 아니다. 완벽히 계산해서 찍은 거다. 리얼하게 보일 뿐이다.” 홍경표, 김우형, 김태경, 박홍열 촬영감독이 꼽은 고든 윌리스의 명장면을 곱씹으며 그가 어떻게 그 장면을 찍었는지가 아니라 왜 그렇게 찍었는지를 되물어보자.
홍경표 촬영감독(<해무>(2014), <설국열차>(2013), <마더>(2009) 등)
<대부>(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1972)
“<대부>의 오프닝 시퀀스. 카메라가 대부를 찾아온 장의사의 얼굴을 보여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장의사의 얼굴에서 서서히 줌아웃되면서 드러나는 대부 돈 콜레오네(말론 브랜도)의 실루엣이 굉장히 인상
진짜 ‘리얼’을 보여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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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블스 오운>(1997)
<맬리스>(1993)
<대부3>(1990)
<의혹>(1990)
<재회의 거리>(1988)
<환상의 발라드>(1987)
<머니 핏>(1986)
<카이로의 붉은 장미>(1985)
<젤리그>(1983)
<스타더스트 메모리즈>(1980)
<맨하탄>(1979)
<인테리어>(1978)
<55년 9월30일>(1977)
<애니 홀>(1977)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1976)
<명탐정 하퍼2>(1975)
<대부2>(1974)
<암살단>(1974)
<대부>(1972)
<배드 컴패니>(1972)
<클루트>(1971)
지난 5월18일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수많은 매체가 촬영감독 고든 윌리스에 대한 긴 부고기사를 실었다. 촬영감독의 이름
필름 시대의 ‘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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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 때부터 모델로 활동한 미르카 비올라는 스무살 무렵부터 영화를 공부하며 십여년간 연출팀 스탭으로 일했다. 2011년에야 내놓은 늦은 데뷔작 <사랑의 상처>는 미혼모가 진정한 사랑을 찾기 위해 방황하는 이야기였다. 제16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초청된 그의 두 번째 영화 <캠걸>은 네명의 여성들이 자립하는 과정을 그렸다. 먹고살 길이 막막한 알리체(안토니아 리스코바)와 친구들은 웹캠 앞에서 스트립쇼를 하는 캠걸 사업을 시작하지만 알리체가 마주한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캠걸>은 또한 대학생 딸을 둔 엄마 미르카 비올라가 자신의 자녀 세대에 보내는 응원과 당부이기도 하다.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인물들, 디지털 문화의 부작용 등 <캠걸>은 여성 문제뿐만 아니라 청년 세대의 문제도 관심 있게 다루고 있다.
=이탈리아는 오랜 경제 위기로 직장인들의 은퇴 시기도 빨라지고, 젊은이들이 직업을 구하는 것도 어려워졌다. 인터넷은 접근성이 좋아 효과적이
[flash on] 여성의 강한 면모를 그려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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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언 웨이즈>는 <⑲곰 테드>로 극영화에서도 성공을 거둔 세스 맥팔레인의 두번째 연출작이다. 그는 <심슨>과 더불어 미국 애니메이션계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패밀리 가이>의 창조자이자, 역대 최고의 집필료를 받는 극작가이기도 하다(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그는 폭스사와 1천만달러의 계약을 성사했다고 한다). <밀리언 웨이즈>를 통해 극작가이자 연출자로서 자신의 이력을 다시 쓰고 있는 그가 고른 장르는, 기이하게도 ‘웨스턴’과 ‘코미디’의 조합이었다. 그리고 그는 엉터리 미신과 폭력이 난무하는 1880년대 서부의 한 마을에서 예상치 못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고 있는 양치기 청년 알버트(세스 맥팔레인)의 사랑 이야기를 완성해냈다. 또한 그는 이 작품에서 (목소리가 아닌) 주인공 역할까지 맡았다. 할리우드에서 요즘 가장 핫한 배우 중 한명으로 꼽히는 아만다 사이프리드와 어떤 작품, 어떤 배역에서든 자신의 존재
[현지보고] 서부에서 ‘웃기는’ 백만 가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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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다시 보는 행위는 매우 안전한 일인 동시에 모험적인 일이다. 이미 확립된 평가들 사이에서 아직 말해지지 않은 미지의 무언가와 조우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조셉 L. 맨케비츠와의 만남은 더욱 모험적일 수 있다. 그는 생전에도 사후에도 엇갈린 평가를 받은 작가였기에, 오늘날의 영화 관객은 여러 이견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감상과 판단을 형성해가며 보는 재미를 더 많이 누릴 수 있다. 6월6일부터 부산 영화의 전당 시네마테크에서 열릴 ‘위대한 플래시백의 작가, 조셉 맨케비츠 특별전’을 기다리며 그의 영화 세계에 대한 몇 가지 정보와 단상과 잡념을 무작위적 플래시백처럼 끼적여보았다.
플래시백 하나.
“사람들은 ‘촬영된 연극’(filmed theater)의 프랑스어 표현을 빌려와 내 영화를 설명합니다. 말하자면 내 영화들은, 극히 드문 예외를 제외하면 거의 연극 공연이나 다름없다는 겁니다.” “확실히 내 영화의 서술 방식은 소설적으로도 느껴질 만합니다.” 1967년 2월 <카이
[영화제] 과도한 작위인가, 동물적 감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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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구축이 먼저일까, 자료조사가 먼저일까.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때마다 넘치는 것은 의지와 열정이고 부족한 것은 돈과 자료다. 작가에게 ‘자료’라는 단어를 인수분해시키면 대부분 ‘경험과 지식’으로 나눈다. 결국 자료를 수집하는 방법은 대상을 인터뷰해 그들의 경험을 얻는 방법과 대상을 공부해 지식을 주워담는 것으로 구분되기 마련이다. 물론 이런 구분이 우스울 수도 있다. 온누리 작가들이 인터넷이란 귀인을 만나 구글링은 빛이 되고 지식검색은 소금이 되어 통합 자료라는 은총을 내려주기 때문이다. 스토리 구축과 자료조사의 선후 문제는 뒤로하고 경험과 지식을 얻는 두 가지 방법 먼저 살펴보자.
대부분 작가들의 보조작가이자 자료조사원인 인터넷, 북향사배(北向四拜)를 올릴 만큼 감사하다. 핵공격을 받더라도 지휘통제망을 굳건히 지키기 위해 개발한 미 국방성의 군용통신망 기술이 인터넷으로 발전했으니, 대국에 대한 예의로 치자면 북향사배도 모자랄 지경이다. 자료조사를 위해 서점에 가는 수고를
[천성일의 은밀한 트리트먼트] 그래서 총은 가지고 다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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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윤(황금희)은 습작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소설을 쓰고 싶어 한다. 그사이 친구 희경(김희진)은 유명한 소설가가 된다. 지윤과 희경은 서로 비슷하기에 지윤이 하는 모든 것은 결국 희경을 따라하는 것이 되어버린다. 소설에 도움을 줄 만한 그림을 찾던 지윤은 희경 역시 그림을 소재로 글을 구상 중이라는 말에 신비한 사연을 가진 고가의 명화를 선점한다. 그 그림은 중국 파견 미국 정보원이자 재미동포인 피터(남성진)가 중국의 부호 왕 회장으로부터 선물받은 그림이다.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던 피터는 알고 지내던 동생 혜진(배정화)의 도움으로 그림을 팔기 위해 한국을 찾는다. 그러던 중 피터는 그림이 공개되는 것을 꺼리는 왕 회장으로부터 감시와 협박을 받는다.
<여덟 번의 감정>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려고 시도했던 감독이 여전히 진행 중인 숙제를 품고 4년 만에 내놓은 작품이다. 소설을 쓰려는 지윤의 욕망과 그림의 소유자인 피터의 상황이 이야기를 추동하며 둘을 연결하는 인물로서
소설 쓰는 여자와 그림을 가진 남자 <미국인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