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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 갈런드는 뮤지컬을 위해 태어난 배우 같다. 뮤지컬 스타에게 요구되는 기본적인 덕목인 춤과 노래 두 종목 모두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서다. 할리우드에서 뮤지컬이 장르로 발전할 때, 다른 뮤지컬 스타들은 대개 춤 하나에 뛰어난 솜씨를 보였다. 이를테면 진저 로저스, 시드 채리스 등이 그렇다. 그런데 갈런드는 춤도 잘 췄고, 특히 노래를 아주 잘 불렀다. 뮤지컬의 보석이자 할리우드영화의 보석으로 남아 있는 <오즈의 마법사>(1939)가 발표될 때, 갈런드는 불과 17살이었는데, 이런 행운이 결코 우연히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이미 춤과 노래에서 숨길 수 없는 재능을 드러냈다. 그때부터 갈런드의 실제 삶은 뮤지컬을 닮아갔고, 뮤지컬 경력의 끝은 결국 자신의 삶을 뮤지컬에 반영한 것이었다. <스타 탄생>(1954)을 통해서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노란 벽돌 길’을 걷던 소녀
<오즈의 마법사>는 판타지 뮤지컬의 대표작이다. 도로시(주디
[한창호의 오! 마돈나] 뮤지컬 같은 삶, 삶 같은 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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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캐처> Foxcatcher
감독 베넷 밀러 / 출연 채닝 테이텀, 스티브 카렐, 마크 러팔로, 시에나 밀러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 출품작으로 <머니볼> <카포티>의 감독 베넷 밀러가 연출했다. 영화는 미국 레슬링협회의 후원자로 알려진 억만장자 존 듀폰이 1984년 LA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인 데이비드 슐츠를 살해한 실화에 바탕한다. 존 듀폰 역은 스티브 카렐이, 데이비드 슐츠는 마크 러팔로가, 데이비드의 아내 낸시는 시에나 밀러가 연기한다. 채닝 테이텀은 데이비드의 동생 역이다. 11월 북미 개봉예정.
[WHAT'S UP] <폭스캐처> Foxcat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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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트랜센던스> 세상의 모든 비밀과 정보
[정훈이 만화] <트랜센던스> 세상의 모든 비밀과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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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위는 천당이래. 거기와 비교하면 인간 세상은 지옥이고. 하지만 난 당신과 함께 이 지옥에서 살 거야.” <후예>는 멜로드라마다. 중국 신화에서 신궁으로 알려진 예의 이야기를 중국 소설가 예자오옌이 다시 상상해 풀어냈다. 12살 때 나이 많은 이국남자의 일곱 번째 아내로 살게 된 항아는 배의 통증이 조롱박을 안고 있으면 가라앉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어느 날 조롱박이 갈라지며 사내아이가 태어나는데, 발육이 빠른 그 아이를 항아는 예라고 이름 붙이고 돌본다. 예는 활을 기막히게 쏘는 재능을 발견한다. 나라에 오랜 가뭄이 들어 근심이 깊어지자 사람들은 그 원인이 하늘에 동시에 등장한 열개의 태양임을 알게 되고 예는 그중 아홉을 쏘아 떨어뜨린다. 그사이에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벌어진다. 아이의 정신세계를 갖고 있는 것 같던 예가 항아와 육체적 관계를 맺고 남자로 다시 태어난다(이 표현이 몹시 구리게 들리긴 하지만 정말 그렇게 된다). 그리고 먹기만 하면 불멸의 신이 될 수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신에서 인간으로, 인간에서 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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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생애 마지막 작품. <이것이 인간인가>를 집필한 지 38년 만에 쓴 책으로, 아우슈비츠 경험을 바탕으로 나치의 폭력성과 수용소 현상을 분석한 에세이다. 특히 레비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한해 전에 쓰고, 생환자로서 그의 삶의 핵심 주제였던 아우슈비츠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유서와도 같다. 레비는 이 책에서 강제수용소 안에서 벌어졌던 현상들을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 가라앉은 자(죽은 자)와 구조된 자(살아남은 자)를 가로지르는 기억과 고통을 이야기한다.
[도서] 나치의 폭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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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로 나이든다는 일의 구구절절함을 마스다 미리처럼 소박하고 귀엽게 그려낼 줄 아는 작가는 많지 않다. <여전히 두근거리는 중>은 그녀의 에세이집이지만 곳곳에 만화가 등장해 ‘여전히 두근거리는’ 일상을 중계한다. 무슨 일만 생기면 “이게 마지막일지도 몰라!”라며 눈을 고쳐뜨는 대목을 읽고 있자면, 불과 며칠 전 친구들과 나눈 신세한탄과 어쩜 이렇게 똑같은 말을 하고 있나 놀랄 따름이다.
[도서] “이게 마지막일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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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그린 시대와 작품 공정에 대해 풀어낸 논픽션.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대성당의 돔이 어떻게 지어졌는지에 대한 <브루넬레스키의 돔>이 그랬듯 타임머신을 탄 듯 당대의 문화와 인물들을 되살려낸다. 이 책 후반부에는 <다빈치 코드>에 나온 주장들(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아내였고 둘 사이에 아이가 있었다)에 대한 반박도 꽤 긴 분량으로 실려 있다.
[도서] <최후의 만찬> 탄생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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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folk라는 영어 단어는 본디 친척을 일컫는 데 주로 쓰였으나 이 단어 역시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 정의되어야 할 운명인 모양이다. ‘작은 모임을 위한 가이드’(a guide for small gathering)라는 부제에 걸맞게, 매거진 <킨포크>는 가까운 사람들과 소박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방식에 대한 글과 사진을 담았다. 피가 섞이지 않았지만 가까운 사람들, 나아가 ‘때때로 가까운’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에 대한 제안서인 셈. 이번에 7권의 번역판 <킨포크>가 한꺼번에 선을 보였는데 이전에 <킨포크 테이블>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던 두권의 책을 기억하는 이라면 그 세계의 확장판이라고 여기면 되겠다.
그래서 대체 뭐에 대한 매거진이냐. 목차는 ‘홀로’, ‘둘이서’, ‘그리고 여럿이’로 나뉘며, 그 항목들 아래에는 제각기 다른 작가들이 쓴 글과 찍은 사진이 소개된다. 고독에서 위안을 찾는 사람에 대한 글, 직접 키운 닭이 낳은 달걀을 수확하는 사
[도서] 소박한 삶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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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직업이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다, 사장. 나한테 직업을 물어보면 기자라고 했지 (퇴사 두달 전에 졸라서 간신히 달았던) 과장이라고 하지는 않았으니까(참고로 과장됐다고 월급이 오르지는 않았다. 대체 무엇을 위한 과장이었던가). 하지만 우리 회사 사장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사람의 직업은 사장이다, 그리고 사장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태어나는 것이다. 세상의 빛을 보는 순간 이미 사장이 될 운명이었던 그는 사장의 아들이었다.
모든 직업엔 업무가 따르는 법이다. 우리 회사 사장 A씨도 하루를 바쁘게 보낸다. 아침에 나오면 비서가 내린 커피를 마시며 서너종의 신문을 읽고, 밖에서 법인카드로 누군가와 점심을 먹고, 한두 시간 낮잠을 잔 다음, 목청 좋게 통화를 하며 술 마실 약속을 잡고, 헬스클럽에 가서 두 시간 운동을 하면, 어느덧 퇴근시간. 하루가 짧기도 하지. 틈틈이 밖에서 사기꾼을 데려오거나 사기꾼이 하는 말을 듣고 와서 혼란을 야기하여 직원들의 근무시간을 늘리는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아니라고, 당신 싫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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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옴니버스 <신촌좀비만화>를 통틀어 제일 깊은 공간은, <피크닉>의 소녀가 뒤집어쓴 이불 속이다. 아픈 동생을 보살펴야 하는 의무를 작은 어깨에 짊어진 수민(김수안)이 순정만화를 읽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짓는 우주가 그 안에 들어 있다. <피크닉>은 인물의 상황을 공간감으로 옮겨놓아 감흥을 준다. 수민이네가 사는 좁고 깊은 집의 구조, 작은 아이의 몸집과 대비되는 너른 바다와 호젓한 숲길의 광활함이 기술의 도움으로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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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so serious? <다크 나이트>의 조커(히스 레저) 소환이나 그룹 샤이니의 노래 얘기가 아니다. 이것은 영화 <10분>의 주인공인 6개월 인턴사원 호찬(백종환)에게 정규직원들이 제일 자주 던지는 물음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시청각 지원’을 하자면, “뭘 그렇게 진지하고 난리야? 응?”으로 해석되는 말에 찡긋하는 눈짓과 어깨 툭 치기가 동반되는 그림을 상상하면 된다. 호찬은 초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세대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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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영화제 심사를 맡은 소감과 포부를 말해달라.
=제인 캠피온_무거운 책임감이 어깨를 짓누르는 걸 느낀다. 하지만 세계를 보는 감독들의 비전에 대해 이해하고 느끼는 것은 늘 매혹적인 일이다. 나는 이번 영화제를 찾은 작품들에 대한 예상조차 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모든 영화는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작품은 야만적이고, 어떤 작품은 폭력적이며 또 어떤 작품은 재미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놀라움과 새로운 감정을 담고 있을 것이다.
전도연_많이 걱정되고 떨리긴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다른 심사위원들과 함께 소통하며 하나하나 차분히, 성실히 임하겠다.
지아장커_칸영화제의 일부가 된다는 건 사랑에 빠지는 것과 같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편의 영화들과 사랑에 빠지게 될 거다.
니콜라스 윈딩 레픈_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는 특별한 계획이 없다. 어젯밤 제인(캠피온)의 말을 그대로 옮기겠다. 언론과 말하지 말라, 대신 영화를 보고, 느끼고, 계획을 세우라!
-제인 캠피온에게
[현지보고] 보고 느끼고 결정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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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회 칸국제영화제의 막이 올랐다. 올해도 변치 않은 칸의 특징은 세계영화의 거장들이 대거 한자리에 모였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또 하나의 특징은 올해도 역시 최종 명단을 두고 설왕설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지의 유력 일간지 <르몽드>의 경우에는 일단 거장들을 포함하고 젊은 신예들까지 포괄한 이번 프로그램이 낙점받을 만하다는 반응이다. “85살의 장 뤽 고다르에서부터 25살 자비에 돌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나이대의 감독들이 포진했다”며 긍정적으로 쓰고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유력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황금종려상을 둘러싼 경쟁부문은 언제나처럼 정규 멤버들로만 구성되어 있다”면서 따끔한 비판을 잊지 않았다.
집행위원장 티에리 프레모는 비판에 응수하고 나서며 “칸의 선택은 언제나 거장과 신예를 함께 껴안는 것이며 올해는 오히려 새로운 감독들을 편애한 면까지도 있다”며 <누벨 옵세바퇴르>를 통해 반박성 인터뷰를 했다. 아마도 티에리 프레모가 새로운
[현지보고] 영화와 사랑에 빠진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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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계층의 삶을 꾸준히 영화화해온 영국 감독 켄 로치 특별전이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5월20일부터 6월1일까지 열린다.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켄 로치 대표작 중 10편이 상영된다. 이번에 상영되는 작품은 <케스>(1969)를 제외하고 1990년대부터 2007년까지 작품들로 선정되었다. 이 시기 켄 로치는 <랜드 앤 프리덤>(1995),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 등의 작품을 연출하여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이번에 상영되는 10편은 켄 로치의 세계를 압축하는 작품들로 그의 영화 세계에 입문하는 관객부터 시네필까지 두루 만족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올해 개관 12주년을 맞이한 서울아트시네마는 서울에 있는 유일한 비영리 극장이자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이다. 서울아트시네마 외에 비상업적 목적의 극장은 한국영상자료원에 3개관이 있을 뿐이다. 지난 5월10일 서울아트시네마는 개관기념영화제 대신 관객
[영화제] ‘블루칼라의 시인’이 그리는 인간다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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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영화들은 몇번을 다시 보아도 매번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당연한 말이지만 요즘처럼 많은 영화들이 정신없이 흘러가는 시기에 한번쯤 곱씹어보아야 할 말인 것 같다. 이에 고맙게도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는 5월20일부터 6월5일까지 12편의 나루세 미키오 영화를 35mm필름으로 상영하는 ‘앙코르! 나루세 미키오’전을 진행할 예정이다. 초기작에 속하는 <아내여 장미처럼>에서부터 유작인 <흐트러진 구름>에 이르기까지, 나루세 미키오가 활동했던 거의 대부분의 시기에 걸친 대표작 12편을 상영한다.
나루세 미키오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그가 보여주었던 ‘여성’들의 삶에 대한 관심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나카노 미노루의 원작 소설 <두 아내>를 바탕으로, 어머니와 새로 들어온 아버지의 첩, 그리고 이런 ‘두 아내’를 거느리고 사는 아버지의 모습을 딸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여성으로서 가족과 사랑의 의미를 깨닫는 과정을 그린 <아내여 장미처럼&
[영화제] 나루세의 여성들과 재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