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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사는 누군가가 문득 생각했다. 모든 생물의 미래를 지켜야 한다고.
다시 봐도 너무 근사한 첫 문장이 아닌가. 변형되거나 강화된 신체 이야기를 유독 좋아했던 청소년 시절. <기생수>는 언제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만화 가운데 하나였다. <암스>나 <가이버>도 좋지만 <기생수>에 견주기에는 너무 길고 장황했다. <기생수>만큼 스스로 제기한 화두로부터 시종일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굵고 명확하게 이야기를 맺는 작품은 드물었다. 사실 <기생수>의 첫인상은 당시로서도 새롭지 않았다. <신체강탈자의 침입>과 같은 고전이나 <악마의 손> <이블 데드>, 특히 존 카펜터의 <괴물>의 잔상이 겹쳤다. 그럼에도 달랐다. <기생수>는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인간, 임을 상기하게 만드는 동시에 “그렇다면 인간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거대한 질문 속으로 몰아넣었다(그렇게 우리는 중2
[허지웅의 경사기도권] 모두의 미래가 지켜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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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클론즈>는 레트로봇의 전작 <또봇>에 이어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적인 애니메이션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을 보여준다. 부모가 행방불명된 후 가계부채에 쫓기며 생활하던 오씨네 5남매는 요금미납으로 끊긴 전기를 공짜로 얻어보려는 동기로 얼결에 지구방위대가 된다. 영웅의 의미 같은 것은 임무를 거듭하며 각기 성격에 맞는 경로로 찾아간다. 바쁘게 일하고 소소하게 행복한 5남매의 이야기는, 고전 만화 <비둘기 합창>이나 일하는 소년 소녀를 그린 이원수의 동화를 추억하게 만든다. 예쁠 것도 못날 것도 없이 그저 생생한 한국적 공간과 생활 문화의 묘사는 소박한 인류학의 경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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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우>(It Follows)의 데이비드 로버트 미첼 감독은 10대 후반이라는 인생의 특정 시기를 특정한 무드로 표현하기 위해 장르를 유용하고 호러의 장치를 횡령한다. 이를테면 <팔로우>의 소녀들은 과거 호러의 여배우들만큼 헐벗고 돌아다니지만 노출로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실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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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제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 출간되었다. 이번 수상자는 정지돈, 이장욱, 윤이형, 최은미, 김금희, 손보미, 백수린으로, 대상 수상작은 정지돈의 <건축이냐 혁명이냐>다. <건축이냐 혁명이냐>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세손이자 근대건축가였던 이구라는 실존 인물의 일화를 모아 전달한다.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면서 허구의 이야기가 갖는 생명력을 불어넣는 데 성공한 소설.
[도서] 2015 제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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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리학예상, 고단샤출판문화상 수상자이자 <생물과 무생물 사이>의 후쿠오카 신이치 교수가 <사람이라는 딱한 생물>을 통해 생명현상을 함부로 조절하려는 인간의 오만을 고발한다. 유전자조작, 수명연장 같은 SF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 가장 각광받는 산업분야로도 주목받는 유전자과학에 대해 일침을 가한다. 수명이라는 거시적인 현상이 특정 유전자를 조작하는 것으로 가능하다는 발상을 지적한다.
[도서] 인간의 오만을 고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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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셜포비아>(2014)를 보면 사건이 음모로 발전하는 순간을 볼 수 있다. 온라인상에서 논란을 일으키던 레나라는 유저가 자살한 채 발견된다. 시체를 가장 먼저 목격한 남자들(레나와 직접 만나러 가는 과정을 생중계하고 있던)은 곧 레나가 당했듯 신상이 털리는데, 그들은 레나가 자살이 아니라 살해당했을 가능성에 주목한다. 이유를 모르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나아가 진실 규명과 무관하게 이야기의 중심에서 스토리텔러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 그들을 추동한다.
인간이 이야기를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기에는 자기표현, 자기실현의 욕구가 녹아 있으며, 때로 그 욕망은 범죄자의 욕망과 아주 미세한 차이를 지닌 공통유전자가 있다는 게 <오쓰카 에이지: 순문학의 죽음•오타쿠•스토리텔링을 말하다>의 저자 오쓰카 에이지의 생각이다. 오쓰카 에이지는 1989년 일본을 뒤흔든 연속 소녀 유괴 살인사건(일명 ‘미야자키 쓰토무 사건’)의 변호인단의 일원으로 재판에 관련된 경험이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소설의 흐름, 사회의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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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먼드 파이크가 생활에 지칠 대로 지친, 애 셋을 둔 엄마 아비 역으로 돌아왔다. <해피 홀리데이>에서 그녀가 맡은 아비는 천방지축인 세 아이와 씨름하고 철부지 남편과는 이혼 소송 중에 있는 인물이다. 아비는 남편과의 불화를 애써 숨긴 채 시아버지의 생신에 맞춰 스코틀랜드에 있는 가족을 찾아가게 되고 그곳에서 비로소 가족들과 조금 더 가까워지게 된다. 등장인물이 많은 가족극이라 출연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로저먼드 파이크는 코믹물에서조차 자신만의 기운과 강단 있는 얼굴을 보여주는 데 성공한다. 로저먼드 파이크에게 서면으로 그녀가 생각하는 <해피 홀리데이>의 미덕과 아비에 대해 물어봤다.
-가족 드라마 <해피 홀리데이>의 어떤 매력에 끌려 출연을 결심하게 된 건가.
=단순한 코미디물 이상의 참신하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다. 영화를 보면 중반에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큼 엄청난 사건이 벌어진다. 그 일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배울 점이
[flash on] 강하면서도 서툰 세상의 모든 엄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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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간 한결같이 영화계 변방을 지켜온 이가 있다. 1985년 만들어진 작은영화워크숍 시절부터 쭉 독립영화 공동체의 자생에 힘써온 현독립영화협의회 낭희섭 대표다. 초창기, 오점균 감독(1기), 류승완 감독(3기), 강혜정 외유내강 대표(5기), 임필성 감독(6기), 이송희일 감독(10기) 등이 독립영화워크숍의 기반을 다졌고 마침내 지난 4월6일 독립영화워크숍은 창립 30주년을 맞이했다. 30주년을 기념하고자 낭희섭 대표는 영화공동체 윤중목 대표와 함께 그간의 역사를 간략히 정리한 <독립영화워크숍, 그 30년을 말하다>를 출간했다. 윤중목 대표는 현재 영화공동체와 문화그룹 목선재 대표를 겸임하며 영화공동체 정기상영 프로그램인 독립영화발표회를 매주 열고 있다. 뒤늦게나마 문화그룹 목선재 사무실을 찾아가 변방에서 분투 중인 두 영화인을 만났다.
-독립영화협의회의 독립영화워크숍을 30년간 홀로 운영해왔다. 이야깃거리는 많았을 텐데 출간이 의외로 늦었다.
=낭희섭_요즘 책
[flash on] 함께 배우고 만드는 과정의 소중함을 지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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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도시와 문화에 초점을 맞춰 지역 특정적인 단편들을 조명하는 유럽단편영화제가 5월15일(금)부터 25일(월)까지 서울 성북구 아리랑시네센터, KU시네마트랩에서 열린다. 제3회를 맞는 행사의 주제는 ‘유럽, 50개의 시선’이다. 유럽의 29개국, 48개 도시에서 온 50편의 단편영화가 상영된다. 프로그램은 사랑, 청춘, 가족 등 소재별 총 8개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개막작은 이탈리아 볼로냐 지역의 <마틸드>다. 소녀 마틸드는 선생님의 강의에 집중하려 애쓰지만 산만한 분위기 때문에 집중이 쉽지 않다. 친구들이 어울리는 쉬는 시간이나 하굣길에도 그녀는 늘 혼자서 무언가에 열중한다. 그녀가 한 행동의 의미는 뒤늦게 드러난다. 영화가 품고 있는 작은 반전은 누군가의 상황을 이해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하는 깨달음을 준다. ‘삶을 꿈꾸다’ 섹션의 <파란 교복>은 터키의 한 초등학교 교실을 찾아간다. 교실에서는 연대에 관한 수업이 한창인데 알리는 창밖만 바라본다
[영화제] 낯선 배경의 낯익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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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리우에서 쓰레기를 뒤지며 살아가던 열네살 소년 라파엘(릭슨 테베즈)과 가르도(에두아르도 루이스)는 쓰레기 더미에서 지갑 하나를 발견한다. 기쁨도 잠시, 거물 정치인의 비리를 밝혀낼 단서가 들어 있는 지갑을 찾고자 경찰들이 들이닥치고 소년들은 지갑의 비밀을 직접 풀기로 결심한다.
앤디 멀리건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하는 <트래쉬>는 옳은 일을 당연하게 해나가는 영화다. 나 혼자 발버둥친다고 달라질 게 없음을 이미 뼈저리게 절감할 때, 우리는 침묵하는 법부터 배운다. 스티븐 달드리 감독은 이 점이 답답했나 보다. <빌리 엘리어트>(2000), <디 아워스>(2002),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2008) 등 전작에서 그는 단 한번도 섣불리 판단하거나 결정지은 적이 없다. 오히려 딜레마를 불러올 상황으로 인물을 몰아넣고 그 흔들림을 관찰하는 쪽에 가까웠다. 하지만 <트래쉬>의 스티븐 달드리는 다른 사람이라도 된
옳은 일을 당연하게 해나가는 긍정과 희망의 동화 <트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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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뭇타와 동생 히비토의 어린 시절 꿈은 우주비행사였다. 뭇타는 일본에서 ‘도하의 비극’으로 기억되던 1993년 10월28일에 태어났다. 1994년 미국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두고 열린 아시아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일본이 이라크에 경기 종료 직전 동점골을 허용하면서 월드컵 진출이 좌절된 날이다. 나라가 탄식에 빠진 날에 태어난 탓에 “늘 불운이 따른다”고 믿으며 자란 뭇타. 그로부터 3년이 지난 뒤인 1996년 9월17일. 야구선수 노모 히데오가 메이저리그에서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영광의 날”에 태어나 늘 여유롭고 자신감이 넘치던 히비토. 세월이 흘러 29살이 된 히비토는 미항공우주국(NASA) 소속 우주비행사가 됐다. 31살 뭇타는 지방으로 좌천된 자동차 회사 직원이 되었다.
<우주형제 #0>는 만화 <우주형제>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이다. 고단샤의 만화 잡지 <모닝>에서 2008년부터 연재 중이다. TV애니메이션은 2012년 4월부터 201
꿈과 용기를 잃지 않는 두 형제의 감동 애니메이션 <우주형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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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엔터테인먼트>에서 방송된 시트콤 중에 <우리집 아이들>(Outnumbered)이라는 작품이 있다. 부모보다 아이들의 수가 많다는 의미에서 ‘아웃넘버드’라는 원제를 가지고 있는 이 시트콤은 천방지축 3남매와 부모의 일상을 다루고 있다. 독특한 점은 아역배우들에게 할당된 대사의 상당 부분이 그들 각자의 애드리브에 의존했다는 것인데, 이 시트콤을 보고 나면 어른 작가들이 차마 발견하지 못한 일상의 편린들을 어린이들이 얼마나 재치 있게 포착해내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해피 홀리데이>는 시트콤 <우리집 아이들>의 크리에이터 앤디 해밀턴과 가이 젠킨이 연출과 시나리오를 맡은 가족 드라마다. 시트콤을 통해 다뤘던 소소한 가족의 일상을 보다 긴 드라마로 확장하고 싶었던 두 작가는 <우리집 아이들>이 그렇듯 짜임새 있는 시나리오와 재기 넘치는 애드리브를 섞어 <해피 홀리데이>를 만들었다.
위기의 부부, 아비(로저먼드 파이
위기의 부부와 3남매의 좌충우돌 휴가 <해피 홀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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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 노아 바움백 감독은 뉴욕에 사는 사람들의 속성을 꼬집는 데는 일등이다. 이혼한 중년 부부의 모순이 고스란히 드러난 <오징어와 고래>(2005)의 현실 밀착형 코미디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프란시스 하>(2012)에서 집을 찾는 20대 여성의 독특한 유머 코드가 낯설지 않았다. <위아영>에서는 20대와 40대라는 두 전작의 인물들을 한자리에 등장시킨 것 같은데, 각각 독립된 영화에서 등장할 때보다 이렇게 둘을 모아놓고 보니 모순과 단점이 확연하게 드러나 그 충격 효과가 꽤 크다.
40대 부부의 직업은 영화인이다. 다큐멘터리 감독 조쉬(벤 스틸러)와 그의 아내이자 제작자인 코넬리아(나오미 와츠). 명성과, 부, 문화적 소양을 갖춘 이들에게 없는 건 아이와 지지부진하게 늘어지는 신작 소식이다. 20대 커플 제이미(애덤 드라이버)와 다비(아만다 사이프리드)는 힙스터다. 브루클린을 중심으로 힙한 패션을 소화하고, 힙한 모임을 즐겨하며, 자유로운 영혼
격세지감의 씁쓸한 블랙코미디 <위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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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전국의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일명 일제고사) 시험이 치러졌다. 일부 교사들은 이런 시험이 아직 어린 학생들에게 과도한 성적 경쟁을 부추기는 것이 아닌가 회의를 품는다. 교사들은 이러한 문제점을 학생들과 나누고 응시를 원치 않는 학생은 대체수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그 결과 학생 중 일부는 대체수업을 선택한다. 교육부는 일제고사를 치르지 않을 수 있게 한 교사에게 파면, 해임 등의 중징계를 내린다. 해직교사들은 교육부의 지침에 따라 아이들과의 작별인사 기회마저 박탈당한 채 학교에서 내쫓기는 신세로 전락한다.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은 석달 후 있을 아이들의 졸업식을 지켜보지 못할 것이 마음 아프다.
<죽은 시인의 사회>(1989)의 키팅 선생은 26년이 지난 지금도 참스승의 표본으로 세간에 각인되어 있다. 키팅 선생은 학교의 방침보다 학생들을 위한 교육이
21세기 한국 사회의 키팅 선생들의 이야기 <명령불복종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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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리는 (일본) 도호쿠 지방의 작은 마을입니다”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리틀 포레스트> 시리즈는 고모리에 사는 이치코(하시모토 아이)의 사계절 자급자족 생활을 담고 있다.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원작 만화를 충실히 영화로 옮긴 <리틀 포레스트2: 겨울과 봄>은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2014)의 속편. 계절별로 한편의 드라마가 완성되고, 두 계절의 이야기는 하나로 묶인다. 시리즈를 관통하는 서사는 ‘내 손으로 농사지은 작물로 나만의 레시피를 완성해간다’이다. 거기에, 이치코에게 말도 없이 집을 떠난 이치코 어머니의 이야기가 끼어들고, 도시의 삶에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온 이치코의 이야기가 또 양념처럼 더해진다. 겨울편의 첫 번째 요리인 생크림 크리스마스 케이크엔 엄마의 레시피와는 다른 ‘이치코만의 레시피’가 완성되어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 얼린 무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선 “날씨가 춥지 않으면 만들 수 없는 것도 있다”는 계절의 고마움을 들
나만의 레시피가 완성되어가는 과정 <리틀 포레스트2: 겨울과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