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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직도 기억한다. <스타워즈>(시리즈 중 최고라고 장담할 수 있는 <제다이의 귀환>!!!)를 보러, 울 아버지의 손을 잡고 허리우드극장 앞에 줄을 서던 그때를. 정말이지 기다리는 줄은 내장처럼 비비 꼬여서 구불구불 끝없이 이어져 있었고, 그렇게 2시간을 부득부득 기다려서 본 <스타워즈 에피소드6: 제다이의 귀환>(1983)! 아아아아아. 거대 내장의 2시간짜리 융털을 견뎌낸 가치는 충분했다. 그것은 내가 꿈꾸던 꿈 그 자체였다. 그리고 영화에 등장하는 각종 우주선과 로봇들이 조립식 제품으로 시판되기만 하면 구해다가 만들고 또 직접 모랫바닥에서 시연도 해보면서 (스케일이야 내가 허리를 굽히고 눈을 가까이 대면 얼추 맞출 수 있다) 그렇게 놀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젠 멀티플렉스의 시대이고, 디지털의 시대다. 더이상 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더이상 로봇들도 조립식으로 시판되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는- 거대 화면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곡사의 아수라장] 춤추는 고질라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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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손 상태가 심각해 복원 뒤에도 흰색에 가까워진 <이국정원>의 화면은 배우들의 생생한 목소리 연기, 즉석에서 만들어내는 온갖 효과음, 라 벤타나가 라이브로 연주하는 삽입곡들로 치장한 덕에 어떤 뮤지컬영화보다 풍성해졌다.
전계수 감독의 모든 영화에 출연한 배우 박영수가 이번엔 폴리 아티스트로 변신했다. 무대 아래 구석에서 음향효과를 담당하느라 커튼콜 때만 무대에 오르지만 사실 이번 공연의 진짜 주인공은 그다.
다섯명의 뮤지컬 배우 박형규, 수안, 손현정, 서현우, 최미용이 1950년대로 되돌아갔다. 주인공 김수평(김진규)과 방음(우민)이 서로를 바라보며 세레나데를 주고받는 장면은 로맨틱한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하는 영화의 클라이맥스다.
공연 직전 무대 아래에 늘어놓은 밥통과 문짝, 반쯤 비운 술병의 정체는? 폴리를 맡은 배우 박영수가 쓸 음향효과 소도구들이다. “KBS 폴리팀의 안익수 폴리 슈퍼바이저에게 자문을 구해 준비한” 밥통은 자동차 문닫는 소리를 만들 때 쓰
[씨네스코프] 복원 마친 <이국정원> 라이브 더빙쇼 최종 리허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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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터너> Mr. Turner
감독 마이크 리 출연 티모시 스펄, 폴 제슨, 도로시 앳킨슨, 러스 신, 레슬리 맨빌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으로 영화제 기간 내내 평단의 관심을 한몸에 받은 작품. 올해로 데뷔 40주년을 맞은 영국의 거장 마이크 리 감독이 2010년 <세상의 모든 계절> 이후 오랜만에 내놓은 장편영화다. 19세기 영국의 풍경화가인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의 말년을 그렸으며, 티모시 스펄이 터너 역을 맡았다. 거친 듯, 투박한 듯한 화풍으로 유명한 화가 터너의 삶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10월 영국 개봉예정.
[WHAT'S UP] <미스터 터너> Mr. Tur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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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인간중독> 금단현상
[정훈이 만화] <인간중독> 금단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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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러스트 앤 본>의 결말 부분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인간은 후각 자극보다 시각 자극에 10배 이상 예민하다. 눈으로 보이는 것이 무엇인지는 물어볼 수 있지만, 냄새의 정체를 질문하기란 쉽지 않다. “저게 뭐야?”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어볼 수 있지만 “이 미묘한 냄새의 정체가 뭐야?”라고 묻기 힘들다. “무슨 냄새 말하는 거야? 말로 설명해봐”라고 되묻기라도 하면, 도대체 뭐라고 대답하나. ‘여기 이 냄새 말이야, 사하라사막의 흙냄새를 닮은 듯하고, 아마존 밀림의 나무 아래에서 나는 풀 냄새 같기도 한, 바로 이 냄새 말이야’ 같은 헛소리를 할 수밖에 없다(어쩐지 사기꾼의 말투 같다). 시각을 언어화하는 건 비교적 간단한 일이지만, 후각을 언어화하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과 미세한 형용사가 필요하다. 언어화한다고 해도 제대로 전달되기 힘들다.
인간은 시각 자극에 민감하기 때문에 속이기도 쉽다. 프랑스 보르도대학교에서 와인 양조학과 학생에게 시각과 후
[김중혁의 바디무비] 예술은 진통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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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일이라는 이름의 사내가 있다. 인생에서 단 한번도 승리를 맛 본 적이 없는 서른여섯살의 패배자. 멜론 같은 머리통, 축축한 빵 같은 거대한 살덩어리, 괴상한 선반처럼 툭 튀어나온 흉측하고 거대한 턱이 이 남자의 외모에 대한 묘사다. 어린 나이부터 턱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틈만 나면 손으로 턱을 가리는 버릇이 생겼다. 태도도 야망도 능력도, 사실상 모든 것이 실패. 아버지로부터 ‘볼품없는 녀석’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주눅들어 있던 그는 자동판매기용 사탕 배달원, 편의점 철야 판매원을 거쳐 삼류 신문사 기자가 된다.
쿼일의 실패에 사랑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어찌된 일인지 페틀 베어라는 ‘가냘프고 촉촉하고 뜨거운 여자’를 만나 바로 결혼에 골인하지만, 신혼의 단꿈은 한달뿐, 페틀은 끊임없이 다른 남자들을 만난다. 대놓고 외도를 일삼던 그녀는 결국 쿼일과의 사이에 낳은 두딸을 7천달러에 팔아먹고 다른 남자와 도망가다가 교통사고로 처참하게 죽는다. 이제 우리의 주인공
[금태섭의 서재에서 잠들다] 치유가 필요한 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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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산업이 불황에 휩싸이면서 ‘톱100’의 힘은 더 막강해졌다. 클래식도 마찬가지다. <경향신문> 문학수 기자의 <더 클래식 하나>는 바흐에서 베토벤까지를 다루며, 클래식 걸작 34곡을 소개하고 추천음반 100여장을 꼽는다. 클래식을 오래 가까이해온 사람에게는 리스트나 글 내용이나 새로울 건 없을지 모르지만, 입문자들에게는 더없이 사려 깊은 선물이 될 만하다. 음악에 대해 쓴 편지, 혹은 음악에 바치는 러브레터.
[도서] 음악에 바치는 러브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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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사위 폴 라파르그의 책으로, <게으를 수 있는 권리>와 궤를 같이한다. 자본주의가 사실은 종교라는 통찰을, 성경의 형식을 빌려 풍자했다. 시대에 앞선 통찰에 감탄하게 될 뿐 아니라, 자본의 종교적 속성이 강화되고 폭력적으로 드러나는 현대사회의 필독서가 아닐까. 옮긴이 서문에서부터 번뜩이는 풍자에 주목하시라. 이쪽도 저쪽도 아닌 아나키즘의 강렬한 상상력을 만날 수 있다.
[도서] 아나키즘의 강렬한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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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필수교양이 된 시대. 이런 때일수록 기본에 충실한 영화 지식을 갖추는 게 필요한 법. 영화를 따라 국경을 넘고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다니듯 쓰인 책답게 재미있게 읽힌다. 영화의 과거사에 대해서 꼼꼼하게 알려줄 때는 섬세함이, 21세기 영화판 트렌드를 짚어줄 때는 통찰력이 돋보인다. 장르나 시대를 불문한, 영화에 대한 궁극적인 ‘아는 척 매뉴얼’. 주성철 기자가 쓴 홍콩영화에 대한 책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번 책을 통해 더 넓은 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도서] 영화에 대한 ‘아는 척 매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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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류지향>을 쓴 우치다 다쓰루와 사회비평가 오카다 도시오의 대담집. 두 사람이 대안이 될 만한 ‘공동체’를 구상하고 실현에 옮긴 사례를 배울 수 있어서 좋은 책이지만(직원들이 돈을 ‘내고’ 다니는 회사를 설립한다는 발상이 등장한다), 20대는 이전 세대와 어떻게 다른가를 분석하는 초반부가 특히 읽을 만하다. 오카다는 현대 일본인을 정어리에 비유한다. “정어리는 작은 물고기라서 보통은 거대한 무리를 지어 헤엄치죠. 어디에도 중심이 없지만 잘 살아가요. 지금 일본인이 이렇지 않은가요? 정어리처럼 시스템 전체가 어떻게든 잘 굴러가는 덕분에 질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돌발적으로 무슨 일이 생기면 금방 흩어져버립니다. 그런 시대에 주류 미디어가 조금씩 존재감을 잃어갑니다. 정어리 무리를 컨트롤할 수 없지요.” 그렇다고 구심점을 만들어 컨트롤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가 아니다. 그 누구도 막다른 골목에 놓이지 않도록, 교육은 학생을 기다려줄 줄 알아야 하고, 가족이나 성공에 대한 신
[도서] 약자들의 생존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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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을린 사랑>으로 단숨에 전세계 평단을 사로잡은 캐나다 출신 감독 드니 빌뇌브의 신작 <에너미>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작품이다.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도플갱어>가 원작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하듯, 영화는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고 인간의 잠재의식 속을 헤집고 들어간다. 똑같이 생긴, 그러나 어딘가 많이 다른 역사학 교수 아담과 배우 앤서니가 도플갱어로 만나는 미스터리 심리극이다. “내 작품 중 가장 사적인 영화”라고 감독 스스로가 말할 정도로 <에너미>는 그가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여온 인간의 정체성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과연 인간은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그의 궁금증이 만들어낸 ‘에너미’의 실체가 궁금해졌다.
-원작 소설의 어떤 점에 강하게 이끌렸나.
=주제 사라마구는 인간의 나약함과 문명의 취약성에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접근하고 풀어가는 작가다. 나는 그의 환상적인 유머 감각과 뛰어난 지성에 감탄한다.
[flash on] “신경증에 걸린 첩보영화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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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메신저>(이하 <고메>)는 그간 국내 창작 애니메이션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제작됐다. 내가 보고 싶은 애니메이션을 내 손으로 만들겠다는 열정과 이를 열렬히 응원해준 팬덤의 힘으로 완성된 이 독특한 프로젝트는 국내 시장에서는 드물게 OVA(Original Video Animation) 용으로 먼저 제작되어 팬들과 직접 만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의 척박한 환경에 비춰볼 때 실로 과감한 시도였고 비록 만족할 만큼은 아니지만 의미 있는 성과를 남겼다. 2010년 1화가 만들어진 이후 수많은 ‘고메’ 팬들을 양산했던 <고메>가 무려 4년 만에 2화를 들고 다시 팬들에게 돌아왔다. 아는 사람만 아는 작품에서 나아가 이제 일반 관객에게도 한 걸음 다가가기 위해 극장판으로 찾아온 <고메>. 이 색다르고 고집스런 프로젝트 뒤에는 스튜디오 애니멀이라는 뚝심 있는 제작사가 있다. 총 6화 완결을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 언제
[flash on] 대책 없는 ‘으리’보다 이유 있는 ‘신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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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한국필림보관소”란 이름으로 시작한 한국영상자료원이 창립 4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다. 그리고 매년 이맘때쯤 항상 관객을 설레게 했던 고전과 복원을 테마로 한 정기 기획전이 어느 때보다 특별한 상영작들과 함께 찾아온다. 총 8개 섹션, 50편이 넘는 영화들로 알차게 꾸린 이번 프로그램 중 가장 눈길을 끄는 섹션은 ‘극장전(劇場傳), 어둠 속에 빛이 비출 때’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섹션에서는 ‘극장’과 ‘영화’를 소재로 삼은 영화들을 상영한다. 극장을 배경으로 한 총 17편의 영화에 대한 영화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 작품들 중에서도 비교적 낯선 작품들에 먼저 관심이 간다. 이를테면 아르헨티나의 주목할 만한 감독 리산드로 알론소의 <판타스마>(2006)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작은 극장을 배경으로 한 영화이다. 몇명의 사람들이 작은 극장을 찾아 영화를 보는 것이 이야기의 전부이고 대사보다는 일상적인 소음이 더 도드라지는 이 60분짜리 영화는 극장이란 공간
[영화제] 극장에서 극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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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는 캐치프레이즈의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16회를 맞았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역사와 동시대의 첨예한 이슈를 다루고 차이와 감성의 영역을 개척하는 총 30개국 99편의 초청작이 상영된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신촌 메가박스에서 5월29일부터 6월5일까지 진행된다.
개막작 <그녀들을 위하여>(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보스니아 내전에서 자행된 폭력의 역사를 고발한 <그르바비차>(2006)로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받았던 야즈밀라 즈바니치의 성찰적 로드무비다. 보스니아 내전 당시 학살이 자행되던 곳은 이제 이국적인 풍경을 전시하는 관광지가 되어 외국인들을 불러들인다. 호주의 연극배우 킴은 동유럽의 유적과 풍광을 관조하며 주민들의 선량한 환대 속에서 보스니아를 여행하지만 이상한 불면증에 시달린다. 그녀는 자신이 관광객의 시선으로 경유하던 곳이 보스니아 내전 당시 강간이 자행됐던 호텔과 학살이 자행됐던 유적지였음을 이후 알게 되고 깊은
[영화제] 제16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