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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의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의 책. 스마트폰이 없던 2006년에 집필된 책이기 때문에 지금 다시 쓰인다면 몇몇 항목은 교체가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읽다보면 급변하는 세상에서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들에 대해 묻는 책임을 알 수 있다. 부부가 헤어지면서 친구로 남는다는 것, 언제나 연락 가능한 상태인 것, 낙관주의와 비관주의, 그리고 블로그 등. 몇몇 대목에서는 작가의 생각에 딴죽을 걸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도서]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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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서울 지하철에 원자력의 안전함과 이로움에 대한 광고가 잔뜩 실리던 때가 있었다. 일본도 마찬가지였는데,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그 광고들은 사라졌다. <원자력 프로파간다>는 왜 그리고 어떻게 대다수 일본 국민이 원자력을 안전하다고 믿게 되었는지를 실증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실제로 게재됐거나 방송된 광고 250편을 통해 감성적으로 제작된 원자력에 대한 광고가 어떻게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었는지 살핀다.
[도서] 원자력에 대한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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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시마 다케히코는 시코쿠의 유명한 순례길 헨로를 걷고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설마, 지금까지 잘못 살아온 건 아니겠지?>를 그렸다. 헨로를 걷는 데 필요한 장비에 대한 정보 같은 것은 어디까지나 덤이다. 왜 걷는가 하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애쓰지만 성공에 대한 욕망, 제대로 맺지 못한 일, 먼저 성공한 동료에 대한 질투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은 걷기 여행에 대한 환상을 제법 단호하게 걷어내준다.
[도서] 걷기 여행에 대한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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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년 동안 대기업 투자배급사의 수직 계열화 논란이 일 때마다 함께 언급되던 판결이 있었다. 파라마운트 판결이다. 원고 미국 정부가 5대 메이저 스튜디오(파라마운트, 로우스(MGM), RKO, 이십세기 폭스, 워너브러더스)와 3대 마이너 스튜디오(컬럼비아, 유니버설, UA(United Artists)) 등 할리우드 8개 스튜디오들을 피고로 하여 셔먼법 위반 의심 행위에 대한 금지 청구 소송을 제기하면서 파라마운트 소송이 시작됐다. 당시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극장을 사들여 수직 통합을 구축했고, 대량의 영화를 제작해 자체 배급망을 통해 전국 상영관에 배급함으로써 안정적인 수익을 챙겼다. 그 과정에서 스튜디오들은 불공정한 관행을 주도해 시장 경쟁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데 일조했다. 1938년 시작된 소송은 1950년대 초반에 이르러서야 스튜디오의 불공정한 행위가 경쟁법을 위반한 것으로 인정됐다.
<할리우드 독점전쟁>은 우리가 왜 파라마운트 판결을 제대로 알고 얘기해야 하
[도서] 왜 파라마운트 판결을 알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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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조선고급학교(이하 오사카조고) 럭비부를 통해 재일동포사회를 조명한 박사유, 박돈사 감독의 다큐멘터리 <60만번의 트라이>가 9월18일 국내 개봉했다. 개봉일에 맞춰 영화에 출연한 럭비부원 황상현(오른쪽)과 럭비부 매니저 김옥희(왼쪽)가 한국을 찾았다. 영화에서 장난기 가득하던 까불이 상현은 여전히 개구져보였고 해맑게 웃던 옥희는 어느새 여성미가 철철 넘치는 대학교 4학년생이 됐다. 92년 동갑내기 두 친구는 인터뷰 내내 “하하호호” 웃으며 톰과 제리처럼 티격태격이다. 그러다가도 재일동포 사회에 대해서 물으면 서툰 한국어 실력이지만 각자의 생각을 차분히 말로 옮겼다. 오사카조고에서 보낸 그들의 유년기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것이 곧 <60만번의 트라이>가 아니겠나 싶었다.
-한국은 첫 방문인가.
=상현_그렇다. 정말 미인이 많더라. (인터뷰 장소에 놓인 TV에서 ‘태티서’가 나오자) 티파니가 좋다.
옥희_나는 세 번째다. 유학 중인 친구를 만나러 온 적이
[flash on] 꿈과 희망의 트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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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만 자면 꼭 꿈을 꾼다. 밤잠을 잘 때에도 꿈을 꾸겠지만, 유독 낮잠 속의 꿈만 선명하게 기억난다. 낮에는 머리가 좋아지나? 실은, 꿈꾸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꿈꾸지 않기 위해 낮잠에 들고 싶지 않은데, 낮잠은 언제나 슬며시 허리를 붙들고 나를 주저앉힌다. 낮잠 속의 꿈은, 나를 깊은 곳으로 데려가지 않고 낮은 곳에서, 이를테면 무릎까지만 잠기는 냇가에서만 어슬렁거린다. 꿈은 여기저기 낯선 곳으로 나를 끌고 다니다 마지막엔 싫증났다는 듯 내팽개친다. 나는 불현듯 꿈에서 깨어난다. 꿈꾸는 걸 싫어한다기보다 꿈에서 깨어날 때의 이상한 감촉이 싫은 것이다. 다른 세상에서 현실로 불시착했을 때의 어리둥절함이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팔은 저리지, 목은 마르지, 여기는 어디인지 잘 모르겠지, 내가 지금 살아 있는 것이 맞는지도 가물가물하지, 아무튼 꿈으로 가고 싶지 않다.
이런 적도 있었다. 20살 즈음의 일요일 오후, 집 거실에 드러누워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쌀쌀한
[김중혁의 바디무비] 자꾸 이야기하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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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렛 도넛>의 루디(앨런 커밍)는 1970년대 말 LA의 게이 가수다. 루디와 애인 폴(개릿 딜라헌트)은 친모에게 방치된 다운증후군 소년을 거둬 돌본다. 하지만 제도화된 호모포비아가 세 사람의 가정을 파괴하려든다. 앨런 커밍(<엑스맨2>의 나이트크롤러)의 연기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자레드 레토도 그 앞에서는 빛을 잃을 만큼 화사하고 생생하다. 루디는 자신과 남을 천연덕스럽게 실컷 사랑한다. 누가 뭐래도, 이것이야말로 신이 뜻한 바대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8/28
(8월22일 일기에서 계속) 2014년에도 재난영화는 성업 중이다. 이 장르 역사를 통틀어 제일 인기 있고 유서 깊은 단골 소재인 구약의 대홍수와 베수비오 화산폭발이 <노아>와 <폼페이: 최후의 날>로 최신판을 갱신했고 괴수 재앙물 <고질라>가 리부트되었으며 <인투 더 스톰>이 여름 시즌 끝자락을 잡고 오늘 개봉했다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여름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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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레쉬맨, 마스크맨, 바이오맨. 이 익숙한 이름들은 1975년부터 반다이에서 제작한 슈퍼전대 시리즈에 나오는 인물 중 일부다. ‘전대물’이라고 칭하는 이 시리즈는 특별한 힘을 지닌 다섯 히어로가 악을 물리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데 38번째 전사들이 대를 잇고 있는 인기작이다. <파워레인저 다이노포스 vs 고버스터즈 공룡 대결전! 안녕, 영원한 친구여>는 극장판으로 제작되는 vs 시리즈, 전 세대와 현 세대 레인저를 잇는 크로스오버가 취지인데, 이번에는 ‘공룡’을 힘의 매개로 하는 선배 레인저들까지 출연해서 외계 세력에 맞선다.
우주대공룡 보르도스는 예전 레인저에게 처치된 악당들의 원한을 모아 지구 침략을 모색하고 있다. 다이노 썬더가 물리친 가일톤, 다이노 레인저와 싸운 그리포자를 포함해 현재 활약하는 고버스터즈의 적, 데보스 군까지 가담했다. 설상가상으로 티라노사우루스의 힘을 받는 선배 레인저들까지 이들에게 조종당하는 형국. 37대 파워레인저 다이노포스는 보르도스
전 세대와 현 세대 레인저를 잇는 크로스오버 <극장판 파워레인저 다이노포스 vs 고버스터즈 공룡 대결전! 안녕, 영원한 친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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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미국, 게이 커플인 루디(앨런 커밍)와 폴(개릿 딜라헌트)은 루디의 옆집에 사는 15살 소년 마르코(이삭 레이바)를 입양하려 한다. 다운증후군 환자인 마르코는 제대로 된 보살핌이 필요하지만 유일한 보호자였던 엄마가 마약으로 감옥에 갔기 때문이다. 결국 두 사람은 자신들의 ‘정체’를 솔직하게 드러낸 채 마르코의 양육권을 얻기 위한 재판을 시작하고, 세상의 편견과 힘든 싸움을 벌인다.
실제 인물에 영감을 받아 만든 트래비스 파인 감독의 <초콜렛 도넛>은 단순하지만 힘 있는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드라마다. 동성애에 대한 차별은 없어져야 하며, 이를 위해 제도적 개선은 물론 인식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너무 단순해 보이는 이 주제는 영화의 극적인 사건들과 만나며 설득력을 얻는다. 이를테면 홀로 거리를 헤매는 마르코의 안쓰러운 뒷모습과 법정에서 모욕적인 질문에 답해야 하는 루디의 처지 등은 즉각적으로 강렬한 정서적 파장을 빚는다. 그리고 영화는
동성애에 대한 차별은 없어져야 한다 <초콜렛 도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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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의심(Reasonable Doubt).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히 품을 만한 의심을 뜻하는 법률 용어다. 동명의 제목을 가진 <리저너블 다우트>는 순간의 실수로 인해 일생일대의 곤경에 처한 검사의 이야기를 다룬 스릴러다. 재판마다 승승장구하는 검사 미치(도미닉 쿠퍼)의 삶은 완벽하다. 직장에서는 유능한 검사, 가정에서는 든든한 가장인 그는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차로 귀가하던 어느 날 실수로 사람을 친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미치는 고통스러워하는 피해자를 두고 달아난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그는 뺑소니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잡혔다는 뉴스를 본다. 검찰은 미치가 낸 사고의 가해자로 몰린 데이비스(새뮤얼 L. 잭슨)를 1급 살인죄로 기소하려 하고, 재판을 맡게 된 미치는 혼란에 빠진다.
한순간의 실수로 사람을 죽인 뒤 잘못을 감추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남자와 그런 그를 위협하는 정체불명의 목격자. <리저너블 다우트>는
한 순간의 실수 <리저너블 다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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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조선의 선장 마르코(뱅상 랭동)는 험악한 사건에 맞닥뜨린 여동생 상드라(줄리 바타이)를 돕기 위해 급하게 고국으로 돌아온다. 여동생이 겪은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조카 쥐스틴(롤라 크레통)이 강간당한 후 파리 시내를 알몸으로 배회하다 정신병원에 감금되고, 마르코의 해군사관학교 동기이자 여동생의 남편인 자크가 자살을 택하였던 것이다. 이에 마르코는 동생의 가정을 망친 놈들에게 복수하기로 마음먹는다. 한달 뒤, 파리 시내의 고급 주택가에 거처를 마련한 후 그는 행동에 나선다. 마르코의 집 아래에는 파렴치한 사업가 에두아르(미셸 쉬보르)가 젊은 부인 라파엘(키아라 마스트로이안니)과 살고 있다. 마르코는 의도적으로 라파엘에게 접근하는데, 라파엘과 친밀해지며 마르코는 자신이 알던 사건과 실제의 사건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돌이킬 수 없는>은 2009년작 <백인의 것> 이후 한동안 작업을 쉬었던 클레어 드니가 오랜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그녀의 필모그
공포와 복수, 성욕과 비열함 <돌이킬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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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속의 ‘숲’이 주는 매력이 있다. 독특한 모양으로 자라난 알록달록한 초목들과 귀여운 동물들이 넘쳐난다. <유고와 라라: 신비의 숲 어드벤처>에도 이런 ‘숲’의 매력이 살아 있다. 유고(소연)는 망상에 빠져 산다고 타박받는 모험심 강한 소녀다. 하지만 꼬마 사자 라라(박지윤)와 함께 신비의 숲을 탐험했던 유고에게 모험은 망상이 아니다. 어느 날 유고가 가진 고래피리가 신비한 빛을 내뿜기 시작하고 창밖 어딘가로 날아가버린다. 그 피리를 따라간 유고는 ‘하늘을 나는 고래’를 만나, 그토록 돌아가고 싶었던 신비의 숲으로 다시 떠난다.
2012년에 제작한 <유고와 라라>의 첫편이 개봉하지 않은 까닭에 유고가 ‘다시’ 숲으로 돌아간다는 도입부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유고는 신비한 고래피리를 어떻게 얻었으며, 유고와 라라가 무슨 인연으로 서로를 반가워하는지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이런 불편한 시작이 모험을 받아들이는 데 크게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신
신비의 숲으로 다시 떠나다 <유고와 라라: 신비의 숲 어드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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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동물들이 함께 살아가는 정글 속의 한 마을. 갑자기 쳐들어온 한 무리의 인간들이 정글의 평화를 깨려 한다. 유전자 합성을 통한 ‘슈퍼 치킨’을 만들기 위해 닥치는 대로 동물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코아티(너구릿과의 동물) 마누(심규혁)는 로코 박사에게 잡혀간 여자친구 사차를 구하고 마을을 지키기 위해 위험한 모험을 시작한다.
<파이스토리: 악당상어 소탕작전>(2012) 등을 만들었던 박태동 감독이 공동연출한 <정글히어로>는 다양한 동물을 비롯한 여러 등장인물들의 시끌벅적한 소동이 인상적인 애니메이션이다. 주인공을 한명만 꼽으라면 마누를 선택해야 하겠지만, 사실 쿵후 원숭이 츄이, 외눈 사냥꾼 험즈, 신비한 독수리 커섬바 등 다양한 인물의 활약이 워낙 도드라지기 때문에 오히려 주인공의 활약이 묻힐 정도이다. 즉 <정글히어로>의 가장 큰 재미는 적절한 만화적 과장을 더한 개성 넘치는 인물들의 조합에서 나온다. 하지만 이 영화의 아쉬운
정글의 평화를 지켜라 <정글히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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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를 ‘슬로우 비디오’를 보듯 포착해내는 놀라운 동체시력을 가진 ‘환자’, 여장부(차태현)는 이 기이한 능력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따돌림을 받으며 자란다. 가족 이외에 친구 한명 없이 성장한 장부는 경찰 CCTV통제센터에서 일을 하기로 결심하고, 하루 종일 CCTV 속 사람들의 삶을 지켜보며 즐거워한다. 그러던 어느 날, 화면 속에서 우연히 소년 시절 첫사랑과 똑 닮은 수미(남상미)를 발견하고 주체할 수 없는 기쁨에 그녀에게 점점 다가간다. 불쑥불쑥 찾아와 이해 못할 드라마 속 대사들을 던져대는 투박한 장부가 수미도 싫지만은 않다.
<헬로우 고스트>로 성공을 거두었던 ‘김영탁(감독)+차태현(배우)’ 콤비의 야심 찬 두 번째 작품이지만, 그 시너지가 충분한지는 다소 의문이다. 게다가 흥행 사례를 오해해 학습한 탓일까? 무엇으로 웃기고, 어떻게 의외의 사건들을 배치하며, 어디에서 감동을 주어야 할 것인가의 선택이 누구나의 생각범위 안에 고스란히 놓여 있다
김영탁+차태현 콤비의 두번째 작품 <슬로우 비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