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보다 이게 더 코미디 같은데?” <서부전선>의 제작과정을 회상하던 세 사람은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의 현장이, 오늘의 대담이 얼마나 코미디였는지. 이건 결코 욕이 아니다. 천성일 감독의 말처럼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사는 게 다 코미디”니까. 그리고 우리에겐 웃을 일이 더 많이 필요하니까. <서부전선>은 드라마 <추노>(2010)의 각본가이자 영화 <7급 공무원>(2009),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하 <해적>, 2014) 등의 시나리오작가로 유명한 ‘이야기꾼’ 천성일의 감독 데뷔작이다. 한국전쟁 종전을 3일 앞둔 1953년, 남한의 늙은 병사 남복(설경구)과 북한의 소년 병사 영광(여진구)의 이야기인 <서부전선>은 코미디를 경유해 전쟁의 비극에 다다르는 작품. 멋부리지 않았으나 멋있는 대사,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두 배우의 연기 케미스트리, 몸개그부터 엇박의 상황 코미디까지 관객의
그 탱크 좀 짠하더라
-
권총집과 아기 포대기를 동시에 둘러멘 남자들. <탐정: 더 비기닝>의 주인공 남자들은 가사노동에 지친 아내를 위해 그리고 친구의 우정과 자아실현 등을 위해 가사와 수사를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우는 아기 달래랴, 도망치는 살인자 뒤쫓으랴, 잘하는 거 하나만 집중해도 어려울 텐데, <쩨쩨한 로맨스>(2010)로 데뷔한 김정훈 감독은 코미디와 스릴러를 접목시킨 독특한 분위기의 버디무비를 들고 돌아왔다. 물론 섣부른 선입견은 금물. 제작자인 정종훈 대표도 “로맨틱 코미디 쓰던 김 감독이 이렇게 잘 쓸지 몰랐다”며 입술이 닳도록 칭찬 중이다. 살인 누명을 쓴 친구를 위해 사건 수사에 뛰어든 탐정 강대만(권상우)과 베테랑 형사 노태수(성동일)가 서로의 이득을 위해 잠시 동맹을 맺는데 개성 강한 캐릭터의 부조화가 웃음을 유발한다. 공교롭게도 모두 의젓한 가장이 되어 만난 배우 성동일과 권상우는 스타로서의 매력에 꼭 맞는 탐정과 형사 캐릭터를 함께 만났다. 길고 긴 시리즈도
알차게 찍고, 알차게 먹고, 또 뭉치자!
-
<사도>는 사도가 뒤주에 갇힌 8일과 과거 플래시백을 정교하게 교차시키며 정치 이전 부자관계로 엮인 영조와 사도의 관계를 조명한다. 이미 익숙한 소재지만 이 과정을 통해 다른 시각과 관점을 제공해준다. 치열한 영화 뒤에는 더 치열한 고민과 노력들이 있었다. 이준익 감독과 오랫동안 함께해온 제작자 및 작가 3인의 땀과 눈물, 그리고 술은 <사도>를 탄생하게 해준 일등 공신이다. 사료들을 뒤지고 잠도 없이 난상토론을 벌이며 <사도>를 견인해낸 주인공은 이준익 감독과 15년의 세월을 함께해온 타이거픽쳐스의 오승현 대표, 같은 제작사의 전 대표였던 조철현 작가, 그리고 <사도>로 ‘이준익 사단’에 새로이 합류한 이송원 작가다. <황산벌>(2003)로 기존 사극의 전형을 깨뜨리고 <왕의 남자>(2005)의 천만 관객 신드롬을 일으켰지만,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2010)과 <평양성>으로 흥행의 고배를 맛보
벼랑에서 떨어졌다 함께 지옥불로 뛰어들자
-
모처럼 쌍천만영화를 흥행시킨 2015년 여름 극장가의 열기도 어느새 가을바람에 식어가는 중이다. 바로 이어서 또 한번 전국 극장가에 기운을 불어넣을 추석 시즌이 다가오는 가운데, 여름 극장가 열기를 뛰어넘기 위해 준비 중인 영화들이 베일을 벗었다. 바로 3편의 한국영화, <사도> <탐정: 더 비기닝> <서부전선>이 그것이다. 이들 영화는 장르와 소재는 제각각이지만 모두 탄탄한 연기력과 티켓 파워를 지닌 남자배우 투톱 체제의 영화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꼼꼼한 역사 고증을 거쳐 전 국민이 아는 시대의 비극을 영화화한 이준익 감독과 시리즈로 만들어도 손색없을 만큼 탄탄한 캐릭터 콤비를 탄생시킨 김정훈 감독, 각본가 출신으로서 자신의 첫 연출작임에도 다소 진중한 전쟁을 소재로 영화화한 천성일 감독까지 누구 하나 뻔한 답안이 보이는 쉬운 길을 걸어가려 하지 않았다. 과연 올해 추석 관객은 어떤 영화의 열정에 먼저 화답하게 될까? 영화만큼이나 전혀 다른 색깔을
추석영화 대격돌!
-
-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Straight Outta Compton, 이하 <SOC>)의 기세가 놀랍다. 1980년대 중•후반에 등장해 파란을 일으키며 시대를 뒤흔든 힙합 그룹 N.W.A의 실화를 다룬 이 영화는 현재 3주 연속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 중이다. 영화에 대한 평 역시 좋은 편이다. ‘로튼토마토’의 신선함 지수가 90%라면 참고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호평 뒤에는 ‘드라마’의 힘이 있다. <SOC>는 정공법으로 충실하게 밀어붙인 영화다. N.W.A 멤버 각자의 배경으로부터 시작해 그들이 모이게 되는 과정, 그룹 내에서의 역할 분담, 성공의 요인, 명곡의 탄생 동기, 갈등과 위기, 끝내 무산된 재결합까지 사실에 근거해 밀도 높게 담아냈다. 힙합을 모르거나 심지어 싫어하더라도 매력적으로 느끼게끔.
물론 어쩔 수 없이 ‘미화’ 논란도 있기는 하다. 닥터 드레가 1991년에 여성 힙합 저널리스트 디반즈를 폭행한 사실, 또 닥터 드
“우리는 컴턴에서 왔다”
-
<씨네21>_<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을 두고 도끼는 “힙합 그 자체”란 평도 했는데, 다른 힙합영화와 비교했을 때 어떤 점이 재밌었나.
더 콰이엇_영화적으로 짜임새가 좋은 것 같다. 초반에 복선도 잘 깔아두었고. 음악영화로서 스케일이 큰 것도 강점이 되는 것 같다. 영화를 좋아해서 많이 보는 편인데, 지금껏 본 힙합영화 중에서 공연 장면을 가장 스펙터클하게 보여주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김봉현_부귀영화도 좋아하시고. (웃음)
더 콰이엇_부귀영화 좋아한다.
도끼_영천영화도 좋아하고.
더 콰이엇_자주 가는 고깃집 이름이다. 이래저래 영화 마니아다.
도끼_처음 영화 봤을 때 울컥한 장면이 있었는데, DJ 일을 하고 50달러를 벌어온 닥터 드레한테 엄마가 그런 푼돈 벌어서 어떻게 살 거냐며 잔소리를 한다. 나도 어릴 때 비슷한 얘길 들었다. 드렁큰 타이거 음악에 참여해서 70만원을 벌어왔는데, 엄마가 70만원을 크게 생각 안 하셨다. 그래서 그
진짜 힙합은 진짜 힙합대로 흘러간다
-
이지-E, 닥터 드레, 아이스 큐브를 주축 멤버로 한 N.W.A(Niggaz With Attitude). 1986년에 결성돼 1991년에 해체된 올드스쿨 힙합 그룹 N.W.A의 이야기를 그린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의 미국 내 흥행 성적이 의미심장하다(3주째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힙합은 이제 더이상 미국 게토 흑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거대하고 강력한 문화로서 대중에게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국의 대중문화에도 힙합이 깊숙이 침투했다. 대중음악평론가 김봉현은 말한다. “도끼의 음악은 멜로디컬하지도 않고 ‘뽕끼’도 없다. 어떤 음악은 처음부터 끝까지 랩으로 채워져 있다. 그런데 멜론에서 1위를 한다. 먹방이 콘텐츠가 된 시대, 이제 대중은 래퍼들의 자기자랑도 하나의 콘텐츠로 받아들이는 포용력을 보여준다.” 젊은 세대가 힙합에 열광하는 이유에 대한 분석도 흥미롭다. “‘헬조선’이란 표현도 생겨났듯, 그 어느 때보다도 젊은 세대가 힘든 시대다. 그런
THIS IS REAL!
-
영화
<오피스>(2015) 각본, 제작
<소녀>(2013) 각본, 제작
<돈 크라이 마미>(2012) 투자진행
<용의자X>(2012) 제작책임
<나는 왕이로소이다>(2012) 제작책임
<무서운 이야기>(2012) 투자책임
<마당을 나온 암탉>(2011) 제작실장
<파주>(2009) 부제작투자
<눈부신 날에>(2007) 제작회계
<전설의 고향>(2006) 제작부장
<사랑해, 말순씨>(2005) 투자회계
<여섯 개의 시선>(2003) 제작팀
“실제 내가 사회생활에서 겪은 인물들을 바탕으로 했다.” <오피스>의 각본을 쓰고 제작한 최윤진 대표의 말이다. 그녀는 청어람, 명필름, 케이앤엔터테인먼트, 데이지엔터테인먼트 등을 거쳐 영화사 꽃을 설립했고, 그간 조직생활에서 본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포착하여 <오피스>에 녹여냈다. “청어람
[STAFF 37.5] 이야기를 하는 동시에 만드는 사람
-
아현동의 6차선 마포대로를 지난다면 유심히 한번 살펴보자. 양쪽 인도에 통유리로 된 문이 나 있고 ‘뮤지스땅스’(Musistance)라는 문패가 걸려 있다. 지하도의 초입인가 싶지만 계단을 따라 내려가보면 깔끔하고 너른 음악 연습실과 녹음실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곳에 가면, 가수 최백호를 만날 수 있다. 독립 음악인들의 창작을 지원할 계획으로 문을 연 뮤지스땅스의 소장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희끗거리는 머리칼을 한 60대 중반의 나이가 무색하게도 청바지에 가벼운 스니커즈 차림으로 나타나 격의 없이 손님을 맞는다. 그런 그가 내년이면 가수로 데뷔한 지 40년이 된다. 차곡차곡 쌓아온 그간의 앨범들 속 노래들을 추려내 기념 앨범을 준비 중이다. 물론 8년째 이어져오고 있는 SBS 라디오 러브FM <최백호의 낭만시대>의 인기도 여전하다. 그를 만나 그의 음악 인생, 그 낭만에 대하여 들어봤다.
-도심 한복판 지하에 이렇게 크고 깔끔한 음악 창작 공간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
[trans × cross] 그의 음악 인생, 그 낭만에 대하여
-
“아들 같지는 않다.” 여진구와의 인터뷰 자리에 동행한 설경구가 말한다. 우연하게도 여진구는 설경구의 딸과 같은 나이에 생일도 비슷하다. 그런데도 설경구는 여진구가 절대 아들 같지는 않아 보인다고 힘주어 말하는 것이다. “진구는 ‘배우’다. 진짜 배우. 현장에서 진구가 연기하는 모습을 보며 한번도 진구의 나이가 어리다는 걸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일례로 <서부전선> 현장에서의 어떤 하루. 설경구는 “온 힘을 다해 뛰어야 하는 장면”을 찍고 있었다고 한다. 그가 촬영을 마친 다음이 여진구 차례였다. “순식간에 사라지더라니까. 얼마나 빨리 뛰는지 카메라가 미처 못 담을 정도였다. 진구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잘해내고자 하는 욕심이 대단한 친구라는 걸 느꼈다.” 기라성 같은 선배 배우를 긴장시키는 후배. <서부전선> 촬영현장에서의 여진구는 그런 존재였다고 설경구는 말한다.
열아홉살 배우 여진구가 현재 한국영화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독특하다. 그는 아직 풋풋한
[여진구] 영화를 삼킨 소년
-
바지 주머니에 두손을 푹 찔러 넣고, 둥그스름하게 앞으로 만 어깨를 설렁설렁 흔들며 설경구가 스튜디오로 걸어들어온다. 통이 넉넉한 바지에 슬리퍼 차림까지, 아주 익숙한 폼이다. 바로 엊저녁 동네 슈퍼에서 만났을 법한 장삼이사의 모습. <서부전선>의 장남복이 장씨의 몇째 아들인지는 모르겠으나 “남한 소시민을 대표”하는 캐릭터인 것은 분명하다. 소속사의 시나리오 검토 부서에서 장남복 캐릭터를 두고 “설경구와 싱크로율이 매우 높음”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니 사람들 보는 눈은 비슷한가보다. “사실 뭐, 다른 책(시나리오)을 봐도 희한하게 그 안에 내가 다 들어 있다. 내가 올곧게만 사는 사람은 아니라서. 그런데 내가 (장남복처럼) 그렇게 어리바리한가? 내가 그런가? (웃음)”
한국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던 1953년 7월, 나이 마흔줄에 서부전선으로 끌려간 남복은 “힘도 없고, 백도 없고, 국가도 모르고, 민족도 모르고, 그저 빨리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게 목표”
[설경구] 비장미 싹 걷어내고
-
“가장 장난스럽게 웃고 가장 슬프게 울 수 있는 배우.” <서부전선>의 두 주연배우를 찾는 과정에서 천성일 감독은 이런 배우를 원했다고 한다. 그 대답이 바로 설경구와 여진구다. <서부전선>에서 그들은 자기도 모르게 어느새 한국전쟁의 한복판에 놓인 남한군 병사 남복(설경구)과 북한군 병사 영광(여진구)을 연기한다. 당장의 임무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어떻게든 살아남아 사랑하는 가족, 연인과 재회하는 것이라고 믿는 ‘보통 사람’의 감정을 이들보다 더 깊이 있게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얼마나 될까. 더불어 <서부전선>은 각자의 자리에서 인상적인 연기 궤적을 선보이고 있는 두 남자배우의 콤비 플레이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인터뷰 장소에 발을 내딛자마자 “진구는?”이라고 묻는 설경구와 하늘 같은 선배를 보자마자 애정어린 미소로 꾸벅 인사를 올리는 여진구의 모습을 통해 현장에서 이들이 나눴을 교감의 깊이를 짐작해보았다.
[설경구, 여진구] 연기전선 이상 없다
-
-사도세자 이야기를 풀되 영조, 사도, 정조 삼대의 이야기로 영화화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가 궁금하다.
=많이 알려진 이야기라 처음에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조철현 작가가 묻더라. ‘정조가 영화, 문화, 학계에서 재론될 때마다 사도는 늘 정조를 이야기하기 위한 대상으로서만 말해왔다. 온전히 사도를 주체로 그린 적이 있었나.’ 그 말을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인간은 개인의 내면만이 아니라 다른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증명돼야 한다. 아버지 영조로 인해 생긴 원인과 결과,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에게 사도와 영조가 어떤 존재인지까지 설명해보고 싶었다. 헤겔의 변증법적 정반합(正反合)을 적용시키려는 의지도 있었다. 영조로부터 시작됐으니 그가 정, 그 반작용인 사도가 반, 정조가 합이다. 영조가 업을 쌓았으니 사도가 덕을 베풀고 정조가 그 복을 받는 거다.
-사도를 주체적으로 바라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건 왜인가.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는 인
“<사도>가 텍스트로 온전하게 전달되기를”
-
<사도>(개봉 9월16일)를 들고 이준익 감독이 돌아왔다. 아버지 영조와 아들 사도세자의 갈등, 이어지는 사도의 죽음, 그리고 왕이 된 사도의 아들 정조까지. 무려 삼대에 걸친 30여년의 시간을 125분의 러닝타임 안으로 운반해왔다. 언어로 유희하며 역사의 이면을 들춰냈던 <황산벌>(2003)과 <평양성>(2010), 신명나는 마당극에 광대를 뛰놀게 했던 <왕의 남자>(2005)와 비교해봐도 <사도>는 이준익 감독의 전작들 가운데서도 가장 묵직한 대설(大設)이다. 유희적 인간에 대한 탐구를 줄기차게 해오던 감독이 구중궁궐 왕족의 세계로, 그중에서도 아버지가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게 만든 비극의 역사로 시선을 옮긴 것이다. 그러니 이준익 감독의 <사도>가 궁금해질 수밖에. 감독과 그의 오래된 영화적 동지들인 <사도>의 시나리오작가 조철현, 이송원, 오승현의 말을 빌려 <사도>에 대한 짧은 글을 전한다
이유를 따지는 대신 정서를 공유하는 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