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관과 간호사>로 멋진 메이저 상업영화 데뷔를 꿈꾸는 한 에로비디오 감독이 있다. 하지만 그가 몸담고 있는 프로덕션 대표는 어차피 영화화가 힘들어 보이니 시나리오라도 팔라고 유혹하고, 유학파 감독을 더 선호하는 투자배급사는 그의 오랜 경력을 하찮게 생각한다. 심지어 옛 학교 선배는 그의 시나리오를 갈취해 멋지게 입봉한 상태. 그렇게 메인스트림과 인디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생계를 위해 일단 에로비디오 시장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던 <레드카펫>의 에로비디오 감독 정우의 이야기는 실제 박범수 감독의 삶에서 왔다. ‘재미’와 ‘진정성’ 사이에서 행복한 결합을 꿈꾼 박범수 감독을 만나, 에로비디오 시장의 황제에서 상업영화 시장의 새내기 감독이 되기까지 그 오랜 이야기를 들었다.
<공공의 젖>과 <해준대>, 그리고 <타이탕닉>과 <싸보이지만 괜찮아>. <레드카펫>에는 극장가의 ‘천만영화’와 작가영화를 가리지
방송국 담당자님, 명절에 제 영화 틀어주세요~
-
제작부터 상영까지 모든 단계에서 외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이 영화는 결국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와 언론인 이상호의 진심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이종인 대표가 워낙 여론의 난타를 당했고, 나 역시 이른바 영리에 눈멀어 팽목항을 찾은 업자의 소개자가 된 형국이었기에 사람들이 온전히 우리의 마음을 알아줄까 하는 걱정이 컸다.” 그들의 진정성은 영화 속 두 남자의 눈물이 잘 말해준다. 한편으로 이상호 감독은 “영화 제작을 방해받았다는 사실보다도 가치가 전도되는 상황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사실과 진실을 찾아 헤매는 일이 업이라 소설과 영화는 잘 보게 되지 않는다던 이상호 감독은 생각보다 더 뜨거운 가슴을 지닌 기자였다.
-팽목항에 있을 당시 뇌경색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몸 상태는 좀 어떤가.
=화병이다. 인터넷 매체(<GO발뉴스>) 하면서 잠 못 자고 1인 다역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뇌가 정지하더라. 지난해 11월에 처
“세월호 얘기 그만하라는 사람이야말로 영화 꼭 봐달라”
-
세월호 참사는 ‘몰락’하고 있는 우리의 현재를 보여준 사건이다. 사건 이후 단 한명도 구조하지 못한 ‘국가’와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방해하는 ‘권력’이 그려낸 또렷한 사실은 이 ‘몰락’이 단지 4월16일에만 멈춰 있지 않은 현재진행형 ‘악몽’임을 또한 확인시킨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반복되어오던 불안한 질문의 끝이 결국 이런 파국으로 실현되다니, 이 공동체에 대한 깊은 절망에 한동안 ‘세월’이라는 단어도 쉽게 꺼내지 못했다. 하지만 누구든 이 ‘악몽’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서는 절망의 실체에 대해 질문하지 않으면 안 됐다. 특히나 기울어진 배가 바닷속으로 거칠게 빨려들어가고 결국 애절하게 떠 있던 배의 끝부분까지 허망하게 사라지는 모습을 실시간 HD 방송으로 목도한 사람들의 충격은 저 차가운 TV화면과는 다른 영상, 즉 ‘진실’에 근접한 ‘다큐멘터리’에 대한 절실한 기대로 이어졌다. <다이빙벨>은 그렇게 ‘악몽’과도 같은 격한 현실이 빚어낸 ‘세월호
더 오래, 더 깊이 기억하기 위해
-
<다이빙벨>은 세월호 참사 발생 후 보름 동안 있었던, ‘다이빙벨’ 투입과 관련된 구체적인 정황과 논란을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는 <GO발뉴스>의 이상호 기자와 알파잠수기술공사의 이종인 대표가 ‘다이빙벨’ 투입을 실현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과 넘을 수 없는 벽 앞에서 좌절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그 과정을 철저하게 두 당사자(이상호 기자와 이종인 대표)의 시선과 입장에서 재구성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영화는 굳이 중립적이거나 객관적인 척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영화가 취하고 있는 태도와 수사는 지극히 논쟁적이다. 그것을 주관적이거나 일방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지나치게 감정적인 것이고, 이성적이지 못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주관성과 감정은 당시 현장에서 어떤 넘을 수 없는 벽과 마주하여 절망하고 분노했던 사람들의 그것이고, 지금까지 세월호 유가족들이 느끼고 있을 수밖에 없는 그것이다.
말해지지 않은 것들을 고함
-
-
지난 4월16일부터 분노심과 수치심과 죄책감으로 온갖 통각이 날을 세워 편안한 날이 없었다. 하지만 어느샌가 더러 편안한 날이 찾아왔고 더러 친구들과 낄낄대며 가벼운 수다를 떠는 날이 찾아왔다. 더러 4월16일을 잊게 되었다.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느냐는 진심도, 반드시 기억하리란 각오도, 시간이 약이 된다는 진리에 무릎을 꿇어갔고 이에 대해 굴욕감이 찾아왔다. 그런 때에 <다이빙벨>을 보았다. 통각이 다시 날을 세워, 분노와 수치와 죄책을 회복할 수 있기를 다만 기대했다. 영화가 끝나자 박수조차 시원하게 칠 수 없었다. 통각이 일제히 다시 솟구쳐올랐고 더 세차게 어금니를 깨물었다. 눈물이 쏟아졌다. 박수는 뜨겁지 않았지만 눈물은 뜨거웠다. 통각이 서서히 사라지고 망각이 서서히 찾아오기 시작하는 이 시점에 이런 영화가 우리 앞에 나타나주어서, 고마웠다.
영화의 의도일 리는 없겠지만,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규명되는 길이 얼마나 험난할지를 다시 한번 깨달아야 했다. 해경과
슬픔으로 분노하라
-
세월호 참사를 담은 첫 번째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이 10월23일 개봉했다. 세월호가 침몰한 뒤 인명 구조를 위한 다이빙벨 투입 과정을 둘러싼 보름간의 기록이다. 어찌 보면 <다이빙벨>은 세월호에 대한 단편적이고 또 지극히 일부분의 기록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영화를 발판삼아 세월호 침몰을 둘러싼 진실에 한 발짝이라도 다가서길 진심으로 바라며 짧은 기획을 준비했다. 김소연 시인, 변성찬 영화평론가, 태준식 다큐멘터리 감독에게 <다이빙벨>에 관한 글을 부탁했다. 팽목항 현장에서 누구보다 먼저 세월호를 기록해온 이상호 기자의 인터뷰도 덧붙였다. 세월호가 여전히 바다 속에 있는 한 세월호에 관한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돼야 한다.
그 바다에서 벌어진 참사 이후의 참사
-
1.
동시대의 많은 영화인들이 무한한 존경을 보여왔다 해도, 켄 로치는 후대의 영화사에서 많은 페이지를 차지하진 않을 것이다. 그의 인물들은 투박하고 친밀하고 때로 아름다웠지만 그들의 육체성은 대개 증언자 역할 뒤로 물러났고, 화면에는 간혹 아득한 생기가 번져나왔지만 사건의 강도를 넘어서지 못했으며, 명료하고 선형적인 이야기는 종종 멜로드라마적 관습에 의존했다. 켄 로치가 원한 것도 그것이었을 것이다. 로치는 자신의 영화가 하나의 예술품이 아니라, 증언의 영화, 교육의 영화, 개입의 영화가 되기를 원했다. 이 강고한 사회주의자는 이른바 ‘문화에로의 전환’(cultural turn)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고 쾌락의 선이나 숭고의 미 대신 해방의 정치를 믿었으며 자신의 영화가 미학적 소우주가 아니라 하나의 정치적 사건이기를 그리고 해방의 칼이기를 소망했다.
그렇다 해도 오늘의 유럽 지식인 일반이 이 불굴의 노(老)전사에게 지닌 부채감이나 콤플렉스만이 그에 대한 비평적 존중을 낳은
[신 전영객잔] 정념의 심연 앞에서
-
<천하장사 마돈나>와 <김씨 표류기>, 그리고 <나의 독재자>. 이해준 감독이 만든 모든 영화의오프닝 크레딧에선 ‘반짝반짝영화사’라는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2000년대 초, 충무로의 주목받는 여성 프로듀서와 재능 있는 시나리오작가로 인연을 맺은 반짝반짝영화사의 김무령 대표와 이해준 감독은 오랜 영화적 동지다. <살인의 추억>을 함께 작업한 봉준호 감독이 ‘철의 여인’이라 부를 정도인 김무령 대표의 철두철미한 성격과 이해준 감독 특유의 독특한 감성이 시너지 효과를 냈기 때문일까. 그들의 영화는 최근 충무로에서 보기 드문 소재와 디테일함으로 평단의 주목을 받아왔다. 10월30일 개봉하는 <나의 독재자>는 두 사람의 세 번째 합작품이다.
-<나의 독재자>는 <천하장사 마돈나> <김씨 표류기>에 이어 두 사람이 함께 만든 세 번째 작품이다. 개봉을 앞두고 요즘 어떤 얘기를 나누나.
=김무령_별 말
[이해준, 김무령] 아버지께 꼭 보여드리고 싶었다
-
‘나의 마지막 청춘.’ 박해일은 <나의 독재자>의 태식을 그렇게 표현했다. “삼십대에 연기하는 마지막 인물이지 않을까 싶어 나에겐 청춘으로서 마지막 캐릭터라는 느낌도 있다. 화면도 최대한 뽀얗게 해달라고 했다! (웃음) 결핍이 많은 태식은 어른이 돼도 내면은 성장하지 못한 채 여전히 철없는 마음으로 아버지를 바라본다. 영화가 드러내고자 하는 코믹한 톤이 있지만 태식의 내면까지 밝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렇다면 태식이 가진 어둠이 순간순간 보일 타점들은 어디일까. 무겁게 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런 태식의 과거들을 오래 생각해볼 필요는 있었다.”
사고친 아버지의 일을 수습하느라 고등학교 연합고사를 볼 수 없었던 소년 태식은 자라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다단계로 건강보조기구를 판매하고 있는 태식은 빚더미를 타고 앉았어도 강남에 살며 외제차를 모는 인물이다. 박해일이 연기하는 성인 태식은 기운찬 목소리로 “돈은 목숨!”이라고 외치며 영화의 2막을 연다. 배우가 되기 전의 청년
[박해일] 어쩐지 낯설지 않더라
-
“잡티 가리는 게 싫다. 사람 같지 않아 보여서.” 설경구만큼 얼굴 꾸미는 데 인색한 배우가 또 있을까. 분장도 5분이면 끝이고 거울도 웬만해선 안 본다. 오죽하면 <실미도> <소원> 때는 맨 얼굴로 촬영했을까. 그러고 보면 설경구는 인위적으로 무엇을 덧대 이미지를 만들기보다는 극 안으로 저벅저벅 걸어들어가 아예 그 인물이 돼버리는 식으로 연기에 색을 입혀왔다. 그런 그가 이번엔 장장 5시간이나 분장을 했다. 그것도 새벽 1시부터 얼굴에 본드와 파우더를 겹겹이 칠하는 특수분장이었다. “밤을 새워가며 분장하고 촬영을 했더니 나중에는 (어지러워) 땅이 올라오더라. 분장 때문에 두드러기는 나지, 밥은 맘대로 못 먹지. 나중엔 약까지 오르더라.” ‘불편한 일은 안 하면 된다’(<씨네21> 921호)던 설경구를 끝내 거울 앞으로 이끈 건 <나의 독재자>의 김성근이었다.
김성근, 그는 누구인가. 극단 허드렛일 전담에 맡는 역할마다 지나가는 행인이
[설경구] 끝없이 달릴 뿐
-
“해일이요? 어유, 쟤는 늙지도 않아. (웃음) 엉뚱할 것 같잖아요. 오히려 내가 걱정이었죠. 과연 나를 아버지로 볼까?” 얼핏 봐서는 듬직한 큰 형님과 철없는 막내 동생처럼 보이는 설경구와 박해일이 <나의 독재자>에서 아버지와 아들로 연을 맺었다. 자신을 김일성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못 말리는 아버지 김성근과 그런 아버지 때문에 속이 부글부글 끓는 아들 김태식이라니. 다소 황당하고 엉뚱한 설정 속에서 두 베테랑 배우는 어떤 조합을 만들어냈을까. 게다가 두 사람이 한 작품에서 호흡을 맞추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니 궁금증이 더 커진다. 지난봄부터 여름의 초입을 함께 나며 부자지간으로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었을 두 사람을 영화의 개봉(10월30일)에 앞서 만나 물었다. 도대체 김씨 부자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
[나의 독재자] 呼兄呼弟 呼父呼兄(호형호제 혹은 호부호형)
-
겉뜻 잠시 휴식하자는 말
속뜻 여기서 살자는 말
주석 회식은 무섭다. 여기저기서 폭탄이 터지기 때문이다. 소주와 맥주와 양주를 섞어서 만든 폭탄은 메가톤급이어서 방금 먹은 저녁까지 도시락폭탄으로 만든다. 까딱 잘못하면 화장실에 가기도 전에 터져서 부장님 구두를 양변기로 만든다. 밑이 막힌 양변기가 방문 앞에 나란히 늘어서 있다. 먹일 때에는 “술이 들어간다, 쭈욱 쭉 쭉 쭉” 합창을 하더니, 언제까지나 어깨춤을 출 것 같더니, 지금 그녀는 팽개쳐진 부대다. 일차가 끝나고 이차가 끝나고 노래방이 끝날 때까지 그녀는 한구석에서 조용하다. 그래도 감자에 싹이 나고 잎이 나서… 주먹과 가위와 보자기가 흩어질 때는 언젠가 온다.
비밀 연애의 약점은 저런 때 말리지 못한다는 것. 지금 그녀를 업고 가는 그는 잡채를 생각하는 중이다. 그녀의 긴 머리는 당면 가닥 같다. 길고 매끄럽고 윤기가 난다. 쇠고기 조각이 조금, 양파 조각이 조금 묻어 있다. 아까 폭탄의 흔적이다. 머리카락 사이로
[권혁웅의 일상어 사전] 잠깐 쉬었다 가자
-
한때 너무 궁금했다. 우린 개새끼 소새끼 입에 달고 살지만, 정말 사람과 개새끼의 차이는 무엇일까. 개새끼도 먹고 싸고 교미하는 것처럼, 사람도 먹고 싸고 교미하는데. 심지어 개새끼도 아파하고 사랑한다. 사람도 아파하고 사랑한다. 지금까지 내린 결론 중 하나는, 사람은 웃는데, 개새끼는 못 웃는다는 것이다(물론 개죽이 열외). 하지만 질문은 계속된다. 그러면 왜 사람은 웃을까? 왜 사람만 웃을까? 아직 이 질문에 근본적인 해답은 얻질 못했지만, 어느 정도 근사치에 가까운 깨달음들은 있었노니. 웃음의 핵심은 실수에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개새끼에겐 그럴듯한 실수가 없다. 개새끼가 지랄하고 넘어지는 건, 엄격한 실수는 아니다. 그건 그냥 개짓이다. 하지만 사람이 지랄하고 넘어지면 그건 실수다. 왜냐하면 그건 개나 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나. 개에게는 해야 할 짓과 하지 말아야 할 짓이 따로 없기에, 엄격한 의미에서 실수가 없다. 그러나 인간에겐 따라야 할 규칙체계/
[곡사의 아수라장] 시스템 오류
-
<우먼 인 블랙: 엔젤 오브 데스> The Woman in Black: Angel of Death
감독 톰 하퍼 / 출연 헬렌 매크로리, 제레미 어바인, 네드 데네히
‘일 마쉬’의 공포가 재현되는 걸까. 2012년 제작된 <우먼 인 블랙>의 속편이다. 전편에서 40년이 지난 시간을 배경으로 한다. 2차 세계대전의 공포를 피해 한 무리의 아이들이 런던에 있는 대저택 ‘일 마쉬’로 오면서 그곳에 잠들어 있던 저주받은 여인을 깨운다는 내용의 스릴러물이다. <워 호스>의 제레미 어바인이 주인공을 맡았다. 내년 1월2일 북미 개봉.
[WHAT'S UP] <우먼 인 블랙: 엔젤 오브 데스> The Woman in Black: Angel of Dea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