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훈이 만화] <사도> 비운의 왕세자
[정훈이 만화] <사도> 비운의 왕세자
-
머나먼 남도에서 상경하여 박봉으로 소문난 업계에서도 평균을 밑도는 월급을 받으면서 어찌된 일인지 서울 시내 다가구 주택 소유주가 된 동료가 있었다. 서울 생활 20년, 그에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절대 지갑을 열지 않아 ‘이 첨지’(첨지라고 하면 왠지 얄밉게 들려서 이 첨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던 출판사 디자이너 이씨는 열살 어린 부하 직원이 커피를 사러 가면 어떻게 알았는지 컵을 들고 따라가 절반을 갈취했고, 평일엔 구내식당에서, 주말엔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했으며 부족한 단백질은 법인카드를 쓰는 야근 저녁이나 회식에서 3인분을 한꺼번에 먹으면서 보충했다.
그는 일도 열심히 했다. 월급이란 어차피 노는 이에게나 일하는 이에게나 공평한 것, 그러니 회사 일은 대충 하거나 부하 직원에게 떠넘겼고, 그렇게 남는 시간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늦게까지 회사에 남아 법인카드로 저녁을 먹곤 했다. 그러다가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고 놀러 나가기 전에 옷 갈아입으러 돌아온 사장에게 들키면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성실한 나라의 리처드’ 이야기
-
※<사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870년 콜로라도로 배경이 명시돼 있긴 하지만, <슬로우 웨스트>의 서부는 시공을 초월한 이민자들의 혹성처럼 보인다. 스코틀랜드에서 사랑과 희망을 찾아 콜로라도까지 온 열여섯 소년 제이(코디 스밋 맥피)는 아일랜드 혈통의 현상금 사냥꾼, 프랑스어로 노래하는 아프리카인, 북구에서 온 굶주린 가족, 독일계 지식인과 차례로 조우한다. 이들 대부분은 생존 이외 삶의 의미를 잊은 지 오래다. 한편 이 영화의 실제 로케이션은 뉴질랜드-중간계다. 낯선 별에 떨어진 순진한 영혼은 실망을 견디며 순례를 계속한다. 광각으로 집채만 하게 찍힌 버섯에 다가가는 소년을 올려다보는 숏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삽화 같다. 이 희한한 서부극이 자연스레 환상성을 끌어들이는 순간 중 하나다.
09/09
<사도>는 스스로 택한 역사적 소재의 어떤 부분이 호소력을 발휘하는지 상세히 살펴 착실하게 극화했다. 흔히 사극의 필수 구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부자상혐지사
-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으로 일대 군상극을 벌인 마블 스튜디오는 또 다른 어벤져스 멤버들을 소개하며 전열을 재정비한다. <앤트맨>(2015)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세계에 간만에 등장한 단독 히어로영화다. 코믹스 원작에서의 앤트맨은 어벤져스 초창기 멤버이자 과학자로 울트론을 창조할 만큼 비중 있는 캐릭터였으니 도리어 영화화가 늦은 편이지만, 영화 버전으로 새롭게 각색된 <앤트맨>은 점차 매너리즘의 징후를 보이는 마블 슈퍼히어로영화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는 데 성공했다. 회장 케빈 파이기의 지휘 아래 마블이 2019년까지의 장기적인 마스터플랜을 공개한 가운데, <앤트맨>은 앞으로 있을 마블 슈퍼히어로영화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점검할 수 있는 척도가 될 것이다.
혼성(hybrid) 장르영화로서의 <앤트맨>
첨단의 테크놀로지를 활용하는 미래형 활극이지만 공교롭게도 <앤트맨>의 바탕에
[조재휘의 영화비평] 끝없이 확장되는 마블의 퍼즐
-
-
올해의 기묘한 영화를 한편 꼽으라면 두말할 것 없이 <무서운 집>이다. 양병간 감독의 <무서운 집>은 지난 7월30일 단관 개봉 이후 온라인을 시작으로 컬트 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뉴타입 호러’를 표방한 이 영화를 두고 조롱과 찬사를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반응들이 쏟아진다. <클레멘타인> 등 역대 망작과 비교하며 ‘나만 당할 수 없다’는 심정으로 평점 9점을 주는 사람도 있고, 전복적인 상상력과 만듦새에 진심으로 찬사를 보내며 호응하는 이들도 있다. 평단의 호의적인 반응이나 블로거들의 심도 깊은 해석도 간간이 들려온다. 이 무시할 수 없는 목소리들의 근원이 장르 전복이건 꼴찌에 대한 위안이건 일탈에 대한 동경이건 사실 상관없다. 분명한 것은 <무서운 집>이 만들어낸 모종의 영화적 에너지가 사람들에게 어떤 감흥을 준다는 사실이다. 다양성, 진정성, 전복적인 화법 등 그것을 뭐라 부르건 간에 <무서운 집>이 퍼트리는 오묘한
[people] 호러를 찍었는데 코미디였다
-
국내최초 영화잡지 ‘씨네21’이 공연계로 사업을 확장하며, 그 첫 작품을 가족뮤지컬 “지구푸르미 코리요”로 확정했다. 이 작품은 지난 2008년 경기도 화성시 전곡항에서 대한민국 최초로 발견된 뿔공룡 화석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를 모델로 한 애니메이션 “꾸러기케라톱스 코리요”를 원작으로 한다. 이 애니메이션은 지난 2014년 KBS 2TV에서 방영하여 인기를 모은 바 있다.
가족뮤지컬 “지구푸르미 코리요”에는 개그듀오 “컬투”로 유명한 개그맨 정찬우가 연출로 참여한다. 다수의 TV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동시에 라디오 DJ로 활동하는 한편 다년간 콘서트 형식의 공연 “컬투쇼”를 이끌고 있는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가족뮤지컬로 활동영역을 넓히게 된다.
공연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5 캐릭터연계콘텐츠 제작지원 사업”을 통한 제작지원으로 만들어진다. 이 사업은 캐릭터를 활용한 게임, 뮤지컬, 연극, 영화, 드라마, 출판, 모바일콘텐츠 등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오는 11월,
씨네21, 컬투, 한국콘텐츠진흥원이 함께하는 가족뮤지컬 "지구푸르미 코리요"
-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영화는 항상 다층적인 세계를 품고 있었다. 환상과 현실, 과거와 현재, 몽상과 무의식이 평면적인 화면 위에 동시적으로 펼쳐진다. 그래서 어쩌면 위라세타쿤의 영화적 미로는 연극과 공연에서 좀더 쉽고 직관적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위라세타쿤 감독은 이번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이하 예술극장) 개관 페스티벌에 <찬란함의 무덤>과 <열병의 방> 2편의 공연을 올렸다. 9월5일 예술극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은 짧게나마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세계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관객이 무대쪽에서 관람석을 바라볼 수 있도록 위치를 바꿨다.
=무대 뒤편 낯선 공간에서 바라보는 객석의 느낌이 좋았다. 어딘지 불편한 느낌이랄까. 처음 예술극장에 왔을 땐 객석이 비어 있는데도 압박감이 느껴졌다. 공연내용이 혼란의 감정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그 느낌을 공유하고 싶었다.
-공연의 3분의 2가량은 2개의 스크린 막에서 영상을 보여준다. 이제껏
“영화관은 현대의 동굴이다”
-
차이밍량은 <서유>(2014)를 끝으로 당분간 영화 연출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차이밍량의 영화가 끝난 게 아니라 극장에서의 영화 작업을 잠시 쉴 뿐이다. 지금도 차이밍량의 시간은 극장이란 공간 너머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펼쳐지고 있다. <행자>(2012), <서유>의 시간을 스크린 너머로 펼쳐낸 <당나라 승려>도 그 중 하나다.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이하 예술극장)에서 삼장법사의 느린 걸음을 마무리 중인 차이밍량 감독을 만났다. 당신에게 영화란, 시간이란, 극장이란 무엇인가요.
-어제 <당나라 승려>의 한국 첫 공연을 마쳤다. 어땠나.
=빈 페스티벌, 브뤼셀의 쿤스텐 페스티벌, 대만 아트페스티벌에 이어 네 번째 공연이지만 새로운 공간인 만큼 처음이나 다름없었다. <당나라 승려>는 종이와 목탄만 있으면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관객을 집중시키는 형식의 공연이다. 쿤스텐 공연 때는 이강생의 목이 많이
“창작의 개념을 고민한다”
-
2004년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을 위한 밑그림이 그려지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무려 1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2015년 9월4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드디어 개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광주문화수도육성’의 핵심시설이었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광주시 동구 금남로 옛 전남도청 부지에 둥지를 틀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의 거점이 ‘세계를 향한 아시아 문화의 창’을 기치로 내걸고 동시대 아시아 문화예술 교류의 허브로 재탄생한 것이다.
전체 면적 16만㎡에 달하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국내 최대 규모의 문화예술복합단지다. 단일 면적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13만7천㎡)과 예술의전당(12만8천㎡)을 압도한다. 단순히 규모만 큰 건 아니다. 기존 문화예술 공연의 경직된 형태와 관람 패턴을 벗어나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민주평화교류원, 문화정보원, 어린이문화원, 문화창조원, 예술극장 5개원으로 조성된 시설은 전시, 공연, 연구
아시아 문화예술 교류의 허브
-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이하 예술극장)이 문을 열었다. 개관 페스티벌을 위해 준비된 33편의 작품 중 반가운 이름들을 발견하고 이들의 작품을 만나러 광주로 갔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열병의 방>과 차이밍량의 <당나라 승려>, 두 작품의 감상기와 함께 감독들의 인터뷰를 전한다. 예술극장의 이모저모도 짧게 알아봤다. 영화가 무엇인지, 나아가 예술이 무엇인지 새삼 질문을 던질 수 있었던 시간, 동시대 아시아 작가들의 현주소를 만나고 싶다면 광주로 가자.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침묵하라.” 말은 유리와 같아 다룰수록 조심스럽다. 조금만 소홀히 해도 금이 가고, 깨진 후엔 날카로운 파편에 다치기 쉽다. 비트겐슈타인이 <논리철학논고>의 말미에 언급한 이 유명한 명제는 세계와 실제로 대응하지 않는 언어의 한계를 짚어낸다. 체험하지 않으면 온전히 전달할 수 없는 것이 있음에도 막연히 추상화시켜 규정하는 사이 의미가 손상되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동시대 작가를 만나자, 광주로 가자!
-
왜 우주재난영화는 늘 비장하고 어두운 것일까. 리들리 스콧 감독의 <마션>은 이와 같은 반문에서 출발하는 작품이다. 아레스 탐사대는 화성에 도착한 지 6일째 되는 날 거대한 모래 폭풍을 만난다. 폭풍 때문에 팀원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가 실종되고 회오리바람에 우주선이 기울어지면서 자칫하면 지구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닥친다. 팀장 멜리사 루이스(제시카 채스테인)는 다른 대원들의 목숨까지 위험해지는 상황이 되자 마크를 찾는 일을 포기하고 화성을 떠난다. 하지만 마크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았고 아무도 이 사실을 알지 못하며 지구로 돌아갈 방법도 없다. 여기까지는 여느 재난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은 전개다.
하지만 감독은 마크의 절망적인 상황을 묘사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대신 그가 생존 방법을 터득하는 과정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그리는 데 집중한다. 가령 영화는 그가 수소와 산소를 결합해 물을 만들고 식물을 재배하는 장면에 많은 비중을 할애한다. 더불어 스스로를 “우주에서 재
화성에서 살아남는 법 <마션>
-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The Sound of Silence>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리옹역에서 기차가 출발한다. 기차에는 청각장애인인 꼬마 테오(루카스 펠리시에)가 잠들어 있다. 테오는 할머니(안나 갈리에나)의 손에 이끌려 누나인 레아(클로에 주아네)와 형인 아드리앙(휴고 데시우)과 함께 할아버지 집이 있는 프로방스 마을로 향하는 중이다. 그런데 잠에서 깨서 보니 레아와 아드리앙의 불만이 극에 달했다. 예고 없이 갑자기 시골에서 여름바캉스를 보내야 하는 데다 가족 사이의 문제 때문에 17년 만에 처음 만나는 할아버지 폴(장 르노)이 그들을 무뚝뚝하고 거칠게 대하기 때문이다. 시작부터 불편하기만 한 프로방스에서의 바캉스는 아이들에게 최악의 여름을 예고한다. 하지만 지중해 연안 코트다쥐르 지방의 따스한 햇살은 그들을 위해 여러 가지 이벤트를 마련해두고 있다. 그곳에서 레아는 첫사랑에 빠지고, 여름이 지나면 가족의 새로운 가장이 되어야 하는 아드리앙은 젊은 시절 히피였던 할아버
지친 삶을 위로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 <러브 인 프로방스>
-
9•11 사태 이후 14년이 지났지만 미국은 여전히 테러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보안담당요원 케이트 애벗(밀라 요보비치)은 미국 비자 신청자 중 위험인물을 파악해 테러를 예방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미국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케이트는 런던에 있는 미 대사관으로 파견된다. 한편 유럽에서 활동 중인 테러리스트 내쉬(피어스 브로스넌)와 조력자 밸런 박사(로저 리스)는 새해 첫날 뉴욕에서 테러를 감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케이트가 밸런 박사의 비자 발급을 보류하면서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내쉬는 케이트와 팀원들이 예약한 식당에 폭발물을 설치해 그녀를 제거하려 한다. 식당을 찾았던 보안팀원은 폭발 사고로 모두 즉사하지만 케이트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다. 상황을 지켜보던 내쉬는 사고 현장을 빠져나가는 케이트를 뒤쫓고, 미 대사관 역시 유일한 생존자인 케이트를 용의자로 지목한 뒤 그녀의 뒤를 쫓는다.
캐스팅만 보면 <서바이버>는 <레지던트 이블> 시리
홀로 테러범에 맞서는 여주인공 <서바이버>
-
최근 윤리와 법을 무시하는 재벌에 응징을 가하는 영화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물론 오래전부터 반복되어온 고전적인 테마이지만 이러한 영화들의 귀환은 오늘날 한국 사회가 기득권에 대해 갖고 있는 불신과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게 하는 하나의 척도이기도 할 것이다. 올해 개봉한 <베테랑> <치외법권>에 이어 허종호 감독의 <성난 변호사> 또한 이러한 카테고리에 속하는 영화다.
영화는 유명 로펌의 변호사 변호성(이선균)이 카리스마 있는 변론으로 법정을 압도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재판에서 승소한 제약회사 회장(장현성)은 변호성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 회사 직원이 용의자로 지목된 살인사건의 변호를 부탁한다. 용의자는 피해자와 연인 사이였다고 말하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지만 변호성의 후배이기도 한 담당 검사 진선민(김고은)은 피해자가 스토킹을 당했다고 반박한다. 목격자만 있고 사건의 결정적인 증거인 시체는 사라진 상황. 첫 공판 당시 변호성이 유려한 변론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사건 <성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