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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는 부지영 감독의 첫 번째 상업영화이자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이후 두 번째 장편영화다. 이랜드 홈에버 파업, 홍익대 청소노동자 파업 등을 모티브 삼은 <카트>는 마트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이 회사의 부당해고에 맞서 제 목소리를 내는 과정을 담는다. 인터뷰 중 부지영 감독이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를 더 또랑또랑하게 만들어 답한 순간이 있었다. 정규직으로서 어떻게든 자기 자리만 보전하려는 최 과장(이승준)이나 자신들의 불편함이 먼저인 마트의 고객이 참 나쁜 사람들이라고 얘기했을 때였다. 부지영 감독은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잘 몰라서 그렇다. 그들은 내 돈으로 마트에서 소비하는 거니 응당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돈을 중심으로 사고하면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마트 직원들이 왜 파업을 하는지까지는 생각하지 못하는 거다.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조금만 마음을 열고 눈을 뜨면 그들에게 공감
[부지영] 마음을 열고 눈을 뜨면 들리는 내 주변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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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반듯한 청년. 스튜디오에 들어선 도경수를 보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이었다.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한 피부와 큼지막한 눈이 만들어내는 묘한 신뢰감.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촬영 내내 별말 없이 차분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모습이 왠지 듬직해 보인달까. 그건 반듯함과는 또 다른 신중함처럼 보였다. 그러면서도 도경수는 예의 해사한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건 또 제 주변의 분위기를 따뜻하게 데울 줄 아는 능력 같아 보였다. 그런 도경수가 자신의 첫 번째 영화 <카트>에서 불만 가득한 얼굴로 엄마를 대하는 아들, 여동생에게 살가운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 쌀쌀맞은 오빠로 변했다. 차분하고 예의 바른 도경수가 보여주는 방황 혹은 반항이란 어떤 걸까. 지켜보고 싶었다.
<카트>에서 도경수가 연기한 고등학생 태영은 시종일관 까칠하고 무뚝뚝하다. 이유는 있다. 마트 일로 만날 바쁜 엄마(염정아)가 깜빡 잊고 급식비를 미납해 속상해서이기도 하고 친구들과 달리 자신만 구
[도경수] 마음속 어둠을 열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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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쭉하고 가냘픈 몸의 곡선을 그대로 살려 도도하고 까칠하며 새침한 캐릭터를 두루 걸쳐온 여배우. 염정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다. 그런 염정아에게 <카트>의 한선희는 지금까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던 분위기의 캐릭터다. 이번만큼은 염정아의 큰 키가 더없이 껑충해 보이고, 호리호리한 몸은 있던 특징도 없애버린다는 유니폼 속에 흔적도 없이 파묻혀버린다. 그녀가 구부정한 어깨로 주변의 눈치를 보며 이리 뛰고 저리 뛸 때면 금방이라도 고꾸라질 것 같아 위태롭다. “모니터 보면서 알았다. 내 큰 키, 그게 되게 안쓰러워 보이더라.” 그렇게 염정아와 마주앉아 염정아와 한선희를 견줘보다가 문득 염정아는 한선희를 온몸으로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더 마트’의 비정규직 사원 한선희는 정규직 전환을 눈앞에 두고 있다. 5년 동안 단 1점의 벌점도 받지 않았고 갖은 연장 근무도 군소리 없이 해왔으니 이번만큼은 희망을 걸어본다. “선희는 우리 엄마처럼 희생적이고
[염정아] 소박함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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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거 있니?” 사진 촬영이 시작되자 선배 염정아가 후배 도경수를 살뜰히 챙긴다. <카트>에서 엄마 선희와 아들 태영으로 호흡을 맞출 때도 그랬을까. “선배 앞에서 눈치 보고 연기하면 절대 안 된다”, “떨지 말고 너 하던 대로 편하게 해라”. 염정아는 엄마 같은 마음으로 연기를 처음 하는 도경수를 편안한 분위기로 이끌었다. 그렇게 엄마와 아들로 만난 두 사람은 <카트>를 통해 각자의 도전을 시도했다. 도도할 것만 같던 염정아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선희가 됐고 큰소리 한번 내지 않고 살아왔다는 도경수는 반항기 가득한 소년 태영이 되었다. 영화 개봉(11월13일)에 앞서 두 사람을 만났다. <카트>가 두 사람에게 남긴 진한 흔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카트] 노동자 엄마 반항아 아들의 세상을 향한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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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뜻 아이의 사랑을 확인하는 질문
속뜻 이혼하겠다는 부모의 통보
주석 이 질문이야말로 아이에게 닥친 최초의 시련이자 시험이다. 이것은 성인이 될 때까지 무수히 치르게 될 수학능력시험의 전조이며, 아무리 풀어도 또 풀어야 하는 무한루프다. 사실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당연히 엄마가 좋다. 나를 품고 기르고 먹이고 입히는 이가 엄마니까. 구글 번역기로 ‘엄마’를 검색하면 이런 소리가 난다. 마(영어, 아이슬란드어, 힌디어, 스와힐리어), 마마(독일어, 러시아, 네덜란드어 등등), 머마(그리스어), 모므(라틴어), 모음(스웨덴어), 모뮈(아랍어), 마르(카탈로니아어), 맘마(타밀어), 마마(일본어), 안야(헝가리어), 마마(중국어), 매(타이어)… 어디나 비슷하다. 아기가 입을 떼고 발음하는 최초의 소리, 아이의 발성기관이 낼 수 있는 맨 처음 소리는 어디나 비슷하다. 처음 아기의 말을 듣고 그 말이 자신을 부르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엄마이기 때문에, 저 소리는 엄마
[권혁웅의 일상어 사전]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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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감독 인터뷰의 고전이 된 <히치콕과의 대화>에서 저자인 프랑수아 트뤼포는 여성의 성적 매력을 놓고 앨프리드 히치콕과 말다툼 같은 실랑이를 벌인다. 서스펜스 드라마의 거장답게 히치콕은 성적 매력에도 ‘서스펜스’가 있어야 한다며, 요조숙녀처럼 보이는 여성이 더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반면 마릴린 먼로나 소피아 로렌처럼 성적 매력이 너무 직접적이면, 호기심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자 트뤼포는 먼로나 로렌이 관객으로부터 사랑받는 이유는 육감적인 스타일 덕분이라며 히치콕의 의견에 반박한다. 히치콕도 가만있지 않는다. “마치 학교 선생처럼 보이는 여성이 함께 택시를 탔을 때, 놀랍게도 당신 바지의 지퍼를 여는 것”이 성적 매력의 서스펜스라고 대꾸한다. 대사의 앞뒤 문맥을 보면 그 여성이 그레이스 켈리다. 두 감독은 <이창>(1954)에 대해 한참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히치콕이 말한 ‘성적 매력의 서스펜스’
히치콕 감독이 금발 미녀를 좋아한다는 건 잘 알려
[한창호의 오! 마돈나] 히치콕 ‘금발 계보’의 정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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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피> Chappie
감독 닐 블롬캠프 / 출연 휴 잭맨, 샬토 코플리, 시고니 위버
남아프리카공화국 슬럼가의 순찰로봇 채피가 2인조 도둑에게 납치됐다. 채피가 끌려간 곳은 모든 게 비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이상한 가정집. 그곳에서 채피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디스트릭트 9>의 닐 블롬캠프 감독의 신작 SF 코미디물이다. 내년 3월6일 북미 개봉한다.
[WHAT'S UP] <채피> Chapp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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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즐거운 신혼생활
[정훈이 만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즐거운 신혼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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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경찰물이라고 하면, 가장 쉽게 예로 들 수 있는 것은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진 <춤추는 대수사선>이지 싶다. 대체로 캐리어와 논캐리어의 대립을 그리는 경우가 많은데, 캐리어는 한국식으로 설명하면 고시를 합격한 소수의 엘리트를, 논캐리어는 일선에서 뛰는 경찰을 말한다. 정치적으로 행동하는 캐리어와 당장의 사건 해결을 위해 애쓰는 논캐리어의 대립이 거대한 사건과 맞물리는 식의 이야기는 그 변주도 많아서 요코야마 히데오는 14년 전 미제로 끝난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경찰들의 이야기를 <64>라는 작품으로 풀어냈다. 어쨌거나 그런 면에서 <교장>의 특이한 점은 경찰물이지만 사건의 현장이 아니라 경찰학교의 교장이 무대라는 데 있다. 주인공들은 바로 그곳의 학생들과 백발의 교관 가자마. 그러므로 당연히 학원물의 성격을 띠게 된다. 학생들은 낙오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이곳에서는 낙오가 드문 일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경찰이 된다는 일의 묵직함이, 에피소드마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경찰학교, 여기가 바로 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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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수도원 네곳의 이야기인 동시에 모든 종교의 수도 공동체에 해당할 만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립된 장소에 집단을 이루어 사는 생활 때문에 제기된 숱한 오해와 편견에 대해서 퍼머는 용감하게 묻고 또 답을 듣는다. 세속의 사랑, 즉 욕정에 대해, 또 동성애에 대해서도 바로 질문을 던진다. “대개 수도자들이란 고된 노동과 끊임없이 밀어닥치는 영적 의무들 때문에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팍팍한 사람들이라 유혹의 속삭임 따위는 들을 새도 없이 몇 개월씩을 보낸다”는 예상 못한 답을 듣기도 한다.
[도서] 수도원에서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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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쓴 파스칼 메르시어의 본명이 페터 비에리이고, 그는 독일에서 활동 중인 철학자다. 그가 이번에는 삶의 형태로서 다양한 존엄성을 종합적이고 포괄적으로 제시하려는 시도로 <삶의 격>을 썼다. 서양 고전문학과 영화, 그 등장인물간 가상의 대화 및 논쟁을 예시로 들면서 줄거리나 배경을 자세히 설명해준다. 연인 또는 배우자와의 관계를 포함한 모든 인간관계, 직장생활 등 공적인 삶과 상처받기 쉬운 자아의 내적인 삶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도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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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로 페미나상을 받은 미셸 슈나이더가 쓴 슈만과 그의 음악. 그의 삶과 음악이 왜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우리를 울리는지 들려준다. 슈만을 연주할 때 우리는 쇼팽이나 브람스의 경우와는 대조적으로 거의 기쁨을 느낄 수 없다. 마치 그런 고통 속으로 들어가게 될까봐, 그로부터 나올 수 없을까봐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다. 이런 음악은 상처 입은 살갗, 일상의 균열, 완만한 고통의 점령, 돌연 민낯을 드러낸 삶이나 다름없다.”
[도서] 지금도 우리를 울리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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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강력한 지배는 사람들에게 여행과 독서를 금지하거나 접근하기 어렵게 하는 것이다. <정희진처럼 읽기>의 프롤로그에 쓰인 말이다. 이제 현대사회는 여행을 돈만 있으면 구매 가능한 물성을 지닌 것으로 바꾸었고, 독서에 대해서라면… 우습게도 금지할 필요 없이 다른 놀이기구들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여성학자 정희진은 <정희진처럼 읽기>에서 도통 한권 떼기도 어려울 책들을 줄줄이 소개한다. 그나마 소설이 많이 소개된 1장과 5장이 나은가 싶기도 하지만 천만의 말씀. 영화 <밀양>의 원작인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에 대한 글에서는 이런 문장이 있다. “영화의 내용은 약간 다른데 제목처럼(secret sunshine) 다소 밝다.” 영화 <밀양>이 밝다니, 그럼 <벌레 이야기>를 읽으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외치고 싶은 사람이 적지 않으리라. 하지만 그런 불평은 책에 대한 정희진의 글(마치 말을 듣는 것처럼 읽히는)을
[도서] 통증의 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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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픽쳐스 김주성 대표는 광고(제일기획), 방송(CJ미디어 대표(2009∼2012년)), 영화(삼성영상사업단(1995년), CJ엔터테인먼트 대표(2005∼2009년)), IPTV 플랫폼(KT미디어허브 대표(2012년)) 등 콘텐츠 산업의 다양한 분야를 두루 거친 전문 경영인이다. 올해 초, KT 황창규 신임 회장 체제에서 유임이 확정됐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회사를 나와 투자배급사 와우픽쳐스를 설립해 새로운 도전을 했다. CJ엔터테인먼트 대표 시절, 해외 공동제작의 중요성을 유독 강조했던 그는 “최종적으로 한국 시장에서 사업을 잘해보려는 건 아니다. 아시아와 전세계에 통하는 영화나 드라마 같은 콘텐츠를 제작하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회사 설립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이 없을 것 같다.
=새로운 업무가 아니니 정신이 없진 않다. 기존에 해왔던 것을 하는 건 의미가 없는 듯하고,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고 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황창규 신임 회장 체
[flash on] 천천히, 단단히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