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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를 빌려준다? 딱 봐도 한심해 보이는 백수 아빠 채태만을 참다 못한 딸이 세상에 던진 당돌하고 발칙한 제안이다. 사람은 좋은데 변변한 일자리 하나 없는 태만을 답답해하는 건 아내 지수도 뒤지지 않는다. 홀로 가정을 이끌어가는 지수의 눈엔 “쓸모없는” 남편이 매사 걸리적거릴 뿐이다. 그런데 웬걸. 불량 아빠, 빵점 남편 태만을 빌려달라는 수상한 전화가 여기저기서 쏟아지기 시작한다. <아빠를 빌려드립니다>에서 코믹하고 어수룩한 태만이 된 김상경과 온 힘으로 가족을 보듬는 지수를 연기한 문정희를 만나 물었다. ‘아빠 렌털’이라니요? 황당한 상황 속에서 이 가족은 대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빠를 빌려드립니다] 집에서 놀지만 말고 뭐라도 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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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뜻 알고 지내는 사이
속뜻 깊이 사귀는 사이
주석 여자 연예인들이 남자친구와 있는 장면을 들키면 그런다. “그냥 아는 교회 오빠예요.” 여기서 ‘그냥’과 ‘아는’과 ‘교회’는 모두 같은 뜻이다. 진지하거나 심각하지 않고 ‘그냥’ ‘알고 지내는’ 사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왜 꼭 교회가 등장할까? 절 오빠나 성당 오빠, 모슬렘 오빠나 만신 오빠가 등장하는 건 본 적이 없다.
파파라치의 시선을 먼저 따라가보자. 그러면 <처용가>의 21세기 판본이 펼쳐진다. 서울 밝은 달 아래 밤늦도록 노니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아는 교회 오빠로구나. 둘은 내 것인데 둘은 누구 것인가? 아, 그냥 교회 오빠 거라니까! 본디 내 것도 아니고 뺏긴 것도 아니라니까! 뒷부분이 예전의 <처용가>와는 다르지만, 이해하지 못할 얘기는 아니다. 처용의 시선이 아니라 아내의 시선으로 본다면 불륜의 현장을 들킨 것도 아니니 신경질이 날 만도 하다. 왜 저런 난감한 자리에 교회 오빠가 출
[권혁웅의 일상어 사전] 교회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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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폭력적인 한해> A Most Violent Year
감독 J. C. 챈더 / 출연 오스카 아이삭, 제시카 채스테인, 데이비드 오예로워
1981년 겨울, 뉴욕은 어느 때보다 높은 범죄율을 기록한다. 미국으로 이민 온 뒤 사업을 확장해나가던 모랄레스 가족도 부패와 폭력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위기에 빠진다. 건조하고 냉혹한 드라마로 주목받아온 J. C. 챈더 감독의 세 번째 작품이다. <인사이드 르윈>의 오스카 아이삭과 <인터스텔라>의 제시카 채스테인이 주연을 맡았다. 12월31일 북미 개봉.
[WHAT'S UP] <가장 폭력적인 한해> A Most Violent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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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나를 찾아줘> 아내가 사라졌다
[정훈이 만화] <나를 찾아줘> 아내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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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설에 혀를 담그고 있으면 나를 취하게 만들고 뼈를 덥혀준다. 그런데 자신이 소설을 쓴다는 것은, 마치 성가시기 짝이 없는 자위 행위 같은 것 아닐까 나는 생각했었다. 그러니 나는 문학청년들에 대해 엄청난 편견을 지녀왔던 것이다.” 이 바로 앞대목에서는 이런 문장도 나온다. “인간은 도약하지 못할 때 쓰는 것이리라.”
이야기꾼이 되기, 거짓말을 만들기, 환상 속에 살기, 꿈을 현실로 만들기. 구라하시 유미코의 <성소녀>는 이야기를 둘러싼 남녀의 괴이쩍은 체험담이다. 미키라는 젊은 여자가 교통사고를 내고 기억을 잃어버리는데, 그녀의 어머니는 그 사고로 인해 사망. 기억을 잃은 그녀가 약혼자인 ‘나’에게 건넨 글에는 ‘파파’라고 부르던 엄마의 옛 연인과 애인으로 꽤 오랜 시간을 보냈음을 낱낱이 고백하는 내용이 있다. 그런가 하면 ‘나’쪽도 별로 도덕적으로 깨끗한 인간은 아닌데, 친구들과 어울려 여학생을 집단강간한 일이 있다. <성소녀>는 ‘파파’라는 남자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진짜 외설은 가까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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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의 직계로 인정받는 캐나다 작가 루이즈 페니의 작품으로, <냉혹한 이야기>와 이어 읽으면 좋다. 스리 파인스라는 고즈넉한 마을에서 이상적인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사람들의 평화로운 일상이 깨지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환경을 바탕으로 선한 듯 선하지 않고 악한 듯 악하지 않은, 결국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저자는 사람들의 이중성을 다루고 싶었다고 말한다. 가장 끔찍한 효과를 주기 위해 범죄는 평화로운 곳에서 일어나야 했다는 것이다.
[도서] 평화로운 곳에서 일어난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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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박이 2013년 11월부터 2014년 8월까지 창비 문학블로그 ‘창문’에 연재한 만화 모음으로, 선거철이면 화살처럼 쏟아지는 “경상도, 도대체 왜 그러냐?”라는 질문에 대한 경상도 토박이 김수박 작가의 대답이다. 유머감각으로 버무려낸 작가의 1980년대 유년 시절, 먹고살기에 바빴던 경상도의 풍경을 감상하다보면 오랜 반목의 뿌리를 더듬어낼 수 있다. 작가는 지역감정을 부인하지도 과장하지도 않는다. 다만 개인의 역사를 통해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만큼을 독자에게 전달하려 할 뿐이다.
[도서] “경상도, 도대체 왜 그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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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파트리크 모디아노의 청년 시절을 그린 자전적 소설. 파트리크 모디아노는 이 작품에서 15년, 혹은 20년, 아니 그 이상이거나 그 이하이거나에 상관없이 ‘시간이 멸해버린 나보다 더 많은 나를’ 찾아 나서고 있다. 비록 이제는 사라져버렸지만 화자와 등장인물들의 추억 속에 생생히 남아 있는 발베르 학교를 배경으로 지나간 세월을 이야기한다.
[도서] 작가의 청년 시절을 그린 자전적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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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끝별 시인의 말에 따르면 “돈이 자본주의의 꽃이라면, 시는 인간 정신 혹은 인간 언어의 꽃이다”. <경향신문>에 연재했던 글을 묶은 <돈 詩>는 같이 피는 법이 별로 많지 않아 보이는 두 꽃을 나란히 꽂아두고 완상하는 글모음이다. 문정희 시인의 <성공시대>는 이렇게 흐른다. “어떻게 하지? 나 그만 부자가 되고 말았네/ 대형냉장고에 가득한 음식/ 옷장에 걸린 수십 벌의 상표들/사방에 행복은 흔하기도 하지. (후략)” 약간의 돈으로 맛볼 수 있는 행복의 감정. 시인은 성공하고 말았다 웃으며 덧붙인다. “이제 시만 폐업하면 불행 끝.” 뭐든 손닿는 데 있는 세상에서 돈이 되지 않는 어떤 것을 사랑하여 겪는 어려움. 시뿐 아니라 글을 쓰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문제이겠으나 천양희 시인은 시가 저축이라며 운을 뗀다. “시를 쓰니 세상에 빚 갚는 것이고/ 의지할 시를 자식처럼 키우니 저축 아닌가.”
고은 시인의 <재회>라는 시는 돈의 근본적 성
[도서] 돈도 쓰고 시도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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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부터 제한상영가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김선 감독의 <자가당착: 시대정신과 현실참여>(이하 <자가당착>)가 7월10일 대법원으로부터 제한상영가 최종 취소 판정을 받았다. <자가당착>은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로부터 두 차례(2011년 6월14일, 2012년 9월22일)나 제한상영가를 받았고 여기에 불복한 감독은 행정소송을 제기해 승소(2013년 5월10일)한 바 있다. 그 뒤 영등위는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고등법원에 이어 대법원 상고까지 이어갔으나 결국 패소했다. 김선 감독은 <자가당착>의 제한상영가 등급은 취소됐을지 몰라도 제한상영가를 둘러싼 싸움은 계속될 것이라고 거듭 말했다.
-최종 승소한 소감부터 물어야겠다.
=기분이 좋으면서도 씁쓸하다. 대법원 판결 이유도 고등법원과 같은데 당연한 싸움을 2년간 끌었다. 영등위에 분노가 치민다. 영등위가 대법원 상고까지 하는 걸 보면서 상영 금지하려는 의지가 강하고 정치 풍자를 두려
[flash on] 이겼지만 계속 싸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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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용 감독은 꾸준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왔다. 독립장편영화 <고갈>(2008) 조감독과 <똥파리>(2008) 제작부를 거친 뒤 단편 <얼어붙은 땅>(2010)으로 칸국제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에 초청됐던 그는 이후 <밤벌레>(2012), <도시의 밤>(2012) 등을 만들며 ‘아이들’에 대한 관심을 이어왔다. 그의 첫 번째 장편 <거인>은 바로 그 지난 시간들을 결산하는 듯한 느낌의 영화다. 힘겨운 시간을 보내던 아이들은 이제 드디어 치유의 시간을 갖고자 한다.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탕웨이의 남편’이기도 한 김태용 감독과 동명이인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시민평론가상과 올해의 배우상(최우식)을 수상하며 작품 그 자체로 더 각인된 것은 물론이다.
-<거인>은 거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알고 있다.
=나 역시 그룹홈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그때 겪었던 일들이 주요한 모티브가 됐다. 처음에는 그를 둘러
[flash on] 눈높이 낮추고 책임감 생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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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4년째 ‘1일 1초’ 비디오를 찍고 있다. 휴대전화기로 매일 찍은 동영상 중에서 오늘을 가장 잘 보여주는 ‘1초’를 선정한 다음 그걸 이어 붙이는 방식이다. 별것 아닌 영상들이다. 사람을 찍을 때도 있고, 하늘을 찍을 때도 있고, 바람이나 빗줄기를 찍을 때도 있다. 별거 아닌 영상들이지만 1년이 365초로 간략하게 압축된다. 10년쯤 찍은 다음 3650초를 한꺼번에 이어서 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사정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겐 지루한 예술영화일 뿐이지만 나에게는 10년이라는 시간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동영상 일기장 같을 것이다.
1일 1초 프로젝트는 독창적인 기획은 아니다. 누가 제일 먼저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고, 나 역시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알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에 1초씩 찍고 있었다. (그들도 나처럼 계속 찍고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1초로 영상을 만드니까 나는 0.5초로 해볼까 아니면 좀더 길게 2초로 해볼까’ 처음엔 고민을 했는데, 결론은 역
[김중혁의 바디무비] 순간에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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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소년’ 대니얼 래드클리프는 세상이 해리 포터군을 잊을 때까지 앉아서 기다리느니, ‘머글’스러운 근면성으로 다양한 작품과 인물에 투신하는 편을 선택했다. 그간의 부지런한 여정이 있었기에 <킬 유어 달링>의 1940년대 컬럼비아 대학의 풍경이 환기하는 호그와트의 추억은, 관객에게 실소 대신 감회 어린 미소를 자아낸다. 아이비리그풍으로 차려입고 뿔테 안경을 쓴 래드클리프, 고풍스런 기숙사, 도서관의 금서 구역에 잠입하기 위한 소동, 그리고 무엇보다 동성애와 문학적 이상이라는 마법으로 이루어진 비밀스런 세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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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댄스영화제에서 공개된 이후 <보이후드>가 일으킨 선풍이 영화 자체의 특별함보다 제작 방식의 희소성에 기대고 있다는 불평은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보이후드>가 ‘태도 점수’를 빼면 남는 게 없는 평이한 드라마라는 감상에는 동조하기 어렵다. 가령 메이슨(엘라 콜트레인) 역에 연령대가 다른 여러 명의 배우를 캐스팅해 통상의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처음은 체험, 두 번째는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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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노 시온의 이전 영화들과 가깝고도 먼 묘한 매력의 영화다. 야쿠자 보스 무토(구니무라 준)는 출소가 다가온 아내를 위해 딸 미츠코(니카이도 후미)를 영화에 데뷔시키려 한다. 하지만 제멋대로에다 연기력도 엉망인 딸로 인해 촬영은 번번이 무산되고, 무토는 직접 영화 제작에 나서려 한다. 그리고 우연히 알게 된 만년 감독 지망생 코지(호시노 겐)가 이끄는 ‘퍽 보머스’에 연출을 맡긴다. 그들에게 인위적인 연출이란 없다. 그렇게 무토파와 그들의 라이벌 이케가미파의 결전을 실시간으로 담는 액션영화 촬영이 시작된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킬 빌>(2003)을 시작하며 ‘후카사쿠 긴지 감독에게 바친다’고 했다. <지옥이 뭐가 나빠> 또한 그를 ‘계승’하는 것 같다. 영화 제목이 뜰 때 흘러나오는 오프닝 음악도 바로 후카사쿠 긴지의 <의리 없는 전쟁>(1973) 테마곡이며, 영화에 등장하는 파출소의 이름도 무려 ‘후카사쿠 파출소’다. 한편으로 <지옥이 뭐가
소노 시온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 <지옥이 뭐가 나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