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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는 오늘도 달린다. 문소리는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2000)에서 순수한 첫사랑의 얼굴로 데뷔한 이래 15년간 영화에 대한 사랑을 한번도 방기한 적이 없다. <오아시스>(2002)의 지체장애인 공주부터 <바람난 가족>(2003)의 대담한 유부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의 핸드볼 선수, <스파이>(2013)의 발랄한 아내, <만신>(2014)의 무당 김금화, <자유의 언덕>(2014)의 카페 주인까지. 누군가의 연인, 아내에 그치지 않고 운동선수, 무당 등 여성 주연 영화에서 극을 오롯이 이끌기도 하며 여러 장르 속 다양한 역할을 섭렵해온 그녀다. 영화에 대한 사랑은 연출에의 시도로 이어졌다. 첫 단편 <여배우>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등 많은 영화제들에 초청되어 호평을 받았고, 세 번째 단편 <최고의 감독>은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단편 쇼케
[문소리]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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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도 없고, 울림도 없는/ 방이었다/ 이곳에 단 하나의 백자가 있다는 것을/ 비로소 나는 알았다(…).” 현란한 미래파 시들이 범람했던 시기인 2000년대의 끝에서 가장 정적이고 미니멀한 시가 등장했다. ‘백자’처럼 고요한 빛을 내뿜던 그가 발견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2010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으로 등단한 황인찬 시인은 등단 2년 만에 최연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자가 됐고, 첫 시집 <구관조 씻기기>를 출간하여 “언어에게 옷을 입히는 방식이 아니라 언어를 씻기는 방식을 통해 새로운 시적 경험을 제공한다”는 문단의 찬사를 받았다. 3년이 채 지나지 않은 2015년 가을, 황인찬 시인은 두 번째 시집 <희지의 세계>를 출간했다. <희지의 세계>는 시집으로는 이례적으로 초판을 출간하자마자 3쇄까지 매진되며 증쇄를 거듭하는 중이다. 관조의 포즈를 취하던 시인은 두 번째 시집에서는 관계를 맺기 위한 손을 내민다. 뜻하는 언어에 도달하기 위해 오래
[trans × cross] 관계를 맺기 위해 내미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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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복이 터졌다. 보통 한두편 작업했던 예년과 달리 올해 탕웨이의 필모그래피는 무려 다섯편이다. 두기봉 감독의 뮤지컬영화 <화려한 샐러리맨>을 비롯해 유청운과 함께 연기한 시대극 <세 도시 이야기>(감독 메이블 청), 애니메이션 <몬스터 헌트>(감독 라맨 허), 로맨스영화 <온리 유>(감독 장하오), 마이클 만 감독과 처음 만난 할리우드영화 <블랙코드>가 그것이다. 흥미로운 건 이 다섯편 모두 장르도, 출연 비중도 제각각이라 특정한 카테고리로 묶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화려한 샐러리맨>에서 그녀는 주윤발, 장애가 같은 선배 배우들 사이에 끼어 밤샘 근무를 밥 먹듯이 하는 현대 직장인 소피라는 작은 역할을 맡았다. 반면, <세 도시 이야기>에서는 사랑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내걸 수 있는 강인한 여성을 맡아 유청운과 함께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어간다. <온리 유>에서 그녀가 연기한 팡유안은 운명의
[탕웨이]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음악 유전자가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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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랜더2> Zoolander2
감독 벤 스틸러 / 출연 벤 스틸러, 오언 윌슨, 올리비아 문, 페넬로페 크루즈
전설의 코미디가 돌아온다. 패션계를 평정한 엽기 모델들의 이야기를 다룬 코미디 <쥬랜더>의 속편이 15년 만에 제작된다. 회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패션업계로 복귀하려는 쥬랜더(벤 스틸러)와 헨젤(오언 윌슨)이 유럽 패션위크에서 벌이는 좌충우돌 코믹극을 담았다. <락 오브 에이지> <아이언맨2>의 작가 저스틴 서룩스가 시나리오를 맡았다. 페넬로페 크루즈, 올리비아 문, 프레드 아미센, 카일 무니, 저스틴 비버까지 화려한 캐스팅으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2016년 2월12일 개봉예정.
[WHAT'S UP] 전설의 코미디가 돌아온다 <쥬랜더2> Zoolander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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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로 오랜만에 음악가를 만났다. 지소울(G.Soul•김지현)이다. 언론과 대중이 붙인 그를 수식하는 단어는 ‘JYP 엔터테인먼트 15년 연습생 출신’이라는 별명(?) 아닌 별명이다. 과연 데뷔는 하는 건가, 싶었던 지소울이 드디어 올해 1월 데뷔 미니음반 《커밍 홈》(Coming Home)을 내고, 지금까지 세장의 싱글음반을 냈으니 꽤 부지런히 작업물을 선보인 셈이다. 지난 9월10일 공개한 세 번째 미니음반 제목은 《더티》(Dirty)다. 장르로 음악을 가를 때 사람들은 그를 알앤비(R&B) 안에 가두려고 하는데, 요즘 젊은 음악가들이 그러하듯이 지소울도 하나의 음악 장르에 종속할 마음은 없어 보인다. 지금껏 선보인 곡 중 가장 빠른 비트를 배경에 깐 《더티》의 곡들도 그렇다. 직접 쓴 가사들은 사랑을 이야기한다. 《더티》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음반 이름과 같은 <더티>(Dirty)다. 요즘 이 음반을 자주 듣기도 했지만, 사실 원고를 써야겠다고 결심한
[마감인간의 music] 본격 추천하고 싶은 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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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별일이 다 있어요.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참 좋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가장 좋은 말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그 어떤 말보다도, 이 말은 가장 어른스럽게 세상을 포용하고자 하는 태도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별일이’까지는 그것 참 내 기준에서는 도무지 용납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며 고개를 가로젓는 듯하지만, 이내 ‘다 있어요’라며 어찌됐든 앞의 말을 껴안아 어루만지며 화해하려 애쓰는 것 말이다.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다. 그렇다고 내가 경험해보지 않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곧 비정상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살다보면
별일이 다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이 참 좋은 말이 가장 아름답게 쓰인 영화 가운데 하나를 골라보았다.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2007)다. 라이언 고슬링이 주연을 맡지 않았다면 훨씬 현실적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 속의 라이언 고슬링은 대단히 망가져 있으니 대충 용납해보기로 하자.
[허지웅의 경사기도권] 별일이 다 있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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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마션> 삼시세끼 - 화성편
[정훈이 만화] <마션> 삼시세끼 - 화성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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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는 감각보다 이성을 작동시키는 질문이다. 동기나 결과가 이성보다 감각에 호소하는 것일 때, 왜라는 질문은 설 자리를 잃는다. <맨 온 와이어>(2008)에서 세계무역센터 건물 위를 외줄로 건너는 일에 대해 제기된 ‘왜’라는 질문은 무력하다. 곡예사 필리프 프티는 ‘이유는 없다’는 말로 일단 자신의 행위를 보고, 느낄 것을 호소한다. <맨 온 와이어>는 한계와 아이디어, 기술이 만나 예술이 된 경우다. 한계에 도전하는 것은 인간의 감각적 본성이다. 한계가 곧 도전의 이유다. <에베레스트>(2015)에서도 이와 비슷한 문답이 등장한다. ‘왜 산에 가느냐’는 누군가의 물음에 등반가들은 ‘산이 거기 있으니까’라고 답한다. <맨 온 와이어>는 주인공의 노력과 줄타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면서 왜 그의 행위에 이유가 필요 없는지를 납득시킨다. 그러나 <에베레스트>는 질문이 빠진 자리에 마땅히 보여줘야 할 것들을 보여주지 않는다.
상황
[김소희의 영화비평] 영웅도 없이, 스펙터클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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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효과(VFX) 하면 떠오르는 영화들이 있다. 사람들의 뇌리에 특수효과는 아직 <쥬라기 공원>(1993)의 충격과 <아바타>(2009)의 경이로움으로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산업은 찍는 영화에서 그리는 영화로 넘어간 지 오래다. CG는 그간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걸 보여주는 차원을 넘어 현실을 좀더 정교하고 경제적으로 구현하는 유용한 도구로 자리잡았다. 세계적인 시각효과 감독 중 한 사람인 토머스 호튼이 부산국제영화제와 미국영화협회(Motion Picture Association, 이하 MPA)가 공동 주최하는 제4회 BIFF-MPA 필름 워크숍의 강연과 멘토링을 위해 부산을 찾았다. MPA는 해마다 여러 전문가를 초빙해 영화학도에게 교육의 기회를, 실무진에겐 교류의 장을 제공하고 있다. 올해 초청자 중 한 사람인 토머스 호튼은 <킹스 스피치>(2010)의 시각효과를 담당했고 TV드라마 <다빈치 디몬스>로 왕립텔레비전협회상
[people] 현실을 더욱 현실답게 보여주는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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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을 말할 때 <식스 센스>(1999)는 빠지지 않고 따라온다. 샤말란 감독은 이후 <언브레이커블>(2000), <싸인>(2002), <레이디 인 더 워터>(2006), <해프닝>(2008) 등의 미스터리 호러 장르를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산하에서 꾸준하게 만들어왔고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두었다. <라스트 에어벤더>(2010)와 <애프터 어스>(2013) 이전까지는. 이 두편으로 아마 가능한 혹평이란 혹평은 모두 들었을 샤말란이 다시 그가 가장 자신있어하는 장르로 돌아온다. 2015년 샤말란 감독이 내놓은 두편의 영화 중 한편인 <더 비지트>다. 감독의 이름을 제외하면 익숙한 스타의 이름은 찾아보기 힘든 이 영화는 생전 처음 조부모를 찾아간 남매가 조부모의 집에서 겪는 이상한 일들을 그려낸 영화로, 9월 중순 미국에서 개봉해 조용히 호응을 이끌
[people] “이 영화의 장르는 파운드 푸티지 장르의 사촌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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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영은 이미 <우리 선희>(2013)에서 선희(정유미)의 상대역 재학으로 홍상수 감독과 한 차례 인연을 맺었다. 그때 문수(이선균), 최 교수(김상중)와 함께 ‘선희의 남자’들 중 한명으로 등장한 것과 달리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에서는 영화감독 함춘수로 분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역할은 달라졌지만, 늘어진 청바지도 그대로고 스타일링이라고는 모르는 부스스한 머리도 그때나 진배없이 익숙하다. 정재영은 홍상수 감독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많은 남자, 영화감독들 중 하나지만 연기의 톤은 조금 다르다. 김상경, 유준상, 이선균이 뻔뻔하거나 엉뚱한 속성으로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웃음을 주었다면, 그는 ‘이렇다 할’ 무언가로 특징지워지지 않는데, 웃음기를 제거한 그 사실적인 모습이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새롭게 관객의 집중을 요구하는 지점이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1부와 2부가 ‘틀린그림찾기’의 A, B컷처럼 연속 구성되는 독특한 이야기다.
액션/리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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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1980년 미국, 어느 작은 마을의 경찰서에 사건 신고가 들어온다. 안젤라(에마 왓슨)가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이다. 브루스 형사(에단 호크)는 즉시 용의자를 조사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자신의 행동을 기억조차 못한다. 이에 브루스는 ‘퇴행(리그레션) 최면’ 요법을 시도하는데, 그 결과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진다. 이 사건이 악마 숭배자들에 의한 조직 범죄일 가능성이 드러난 것이다.
<디 아더스>(2001), <씨 인사이드>(2004) 등을 연출했던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신작 <리그레션>은 악마 숭배와 최면이란 소재를 다루는 스릴러영화다. 둘 다 매우 자극적인 소재이지만 감독은 단순히 사건을 선정적으로 묘사하기보다 80년대 미국 사회의 우울한 그림자를 드러내는 데 더 큰 비중을 둔다. 즉 악의 끔찍함을 직접적으로 그리기보다는 ‘악마’를 부를 수밖에 없었던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내면을 포착하는
악마는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리그레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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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사진작가 데니스(로버트 패틴슨)는 아직 ‘스타’가 되기 전의 제임스 딘(데인 드한)이 가진 독특한 매력을 먼저 알아본다. 흔한 홍보 사진에 지쳐 있던 데니스는 제임스 딘을 찾아가 특별한 사진을 찍어보자고 제안하고, 두 사람은 즉흥적으로 짧은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이 여행에서 우리가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 제임스 딘의 어떤 이미지들이 만들어진다.
<모스트 원티드 맨>(2014)을 연출했던 안톤 코르빈 감독의 <라이프>는 제임스 딘의 인생 중 아주 짧은 시기에 집중한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제임스 딘의 화려한 인기나 갑작스러운 죽음과 같은 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그의 비교적 덜 알려진 평범한 모습을 그린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영화는 조카와 책을 읽거나 술에 취해 잠든 모습과 같은 소박한 일상에 주목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제임스 딘의 평범하고 다양한 모습과 그 아래 숨은 내면을 능동적으로 상상하게 한다.
또한 감독은 데니스와 제임스 딘과의 관계에도 주목하며
제임스 딘의 평범하고 다양한 모습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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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불사는 인간의 욕망 가운데 가장 보편적이고 절실한 것 중 하나다. 이왕이면 영원한 젊음까지 곁들여. 그 욕망의 가장 성(聖)스러운 차원에서 종교가, 속(俗)스러운 차원에서 뱀파이어와 그 후손들이 자리잡고 있다. ‘영원한 젊음’의 변주로 생산되는 판타지들의 연속선상에 있는 <아델라인: 멈춰진 시간>은 보부아르의 <인간은 모두가 죽는다>의 여성판 하이틴로맨스 버전 정도인 듯하다. 남편을 잃은 뒤 딸과 함께 살아가던 아델라인(블레이크 라이블리)은 어떤 ‘전기적 충격’으로 인해 29살이라는 생물학적 나이에 갇히게 된다. 굳이 ‘갇혔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그녀가 그 젊음을 축복이 아닌 재앙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딸이 친구처럼 보이게 되는 시점부터 그녀는 자신의 정체를 감춰야만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고, 결국 10년을 주기로 신분을 바꿔가며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살아가게 된다.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으면 안 되는 본인의 상황 때문에 ‘연애’는 언감생심이다. 하지만
영원한 젊음에서 포착해낸 서사 <아델라인: 멈춰진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