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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예사롭지 않던 소년은 어느새 남자의 모습으로 성큼 다가와 있었다. 데뷔작 <화이트 크리스마스>(2011)와 <신사의 품격>(2012), <학교 2013>(2012), <상속자들>(2013) 등 일련의 TV드라마에서 김우빈은 방황하는 소년이었다. 상처를 어떻게 보듬어야 할지 몰라 과격하게 부딪치기만 하는 어린 짐승 같았다. 김우빈의 영화 데뷔작은 곽경택 감독의 <친구2>(2013)다. 10여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은 김우빈은 순식간에 스물여덟의 어른 남자가 되어 나타났고, <친구2>를 딛고서야 비로소 성인 배우로 안착했다. 포마드왁스로 깔끔하게 올린 헤어, 매끈한 몸에 딱 맞는 슬림슈트, 그리고 여유만만한 미소로 완성되는 “까리함”이 이젠 김우빈의 트레이드마크로 새겨졌다. 광고주들은 그의 매력을 앞다퉈 찍고 싶어 했다. “당신 남자친구는 나보다 멋있어질 수 있어. 데리고 와.” 모 뷰티브랜드 광고에서 그가 건네는 멘
[김우빈] 근사함 넘어 믿음직스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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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뜻 모든 조건을 갖춘 완벽한 사람
속뜻 머리 나쁜 사람
주석 엄친아는 ‘엄마 친구 아들’의 줄임말이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외모도 훌륭하고…. 한마디로 좋은 건 다 갖춘 사람이란 뜻이다. 이 이름의 유래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자식에게 훈수 두는 엄마가 범인인데, 대개는 그 자신이 공부를 안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엄마 자신의 체험과 비교할 수 없어서 만들어낸 인조인간이 엄친아다. 그러니 못하는 게 없을 수밖에. 요즘은 사회가 머리 나쁜 엄마 노릇을 한다. 요즘 엄친아는 잘생긴 재벌 아들, 공부도 잘하는 연예인, 과 수석을 놓치지 않는 운동선수다. 타고난 재산, 집안, 머리, 육체를 가진 사람의 엄마가 왜 우리 엄마와 친하겠는가? 반칙도 이런 반칙이 없다.
엄친아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후보가 여럿 있다. 엄친딸(엄마 친구 딸)은 비슷한 말이니 제외하자. 아친아(아빠 친구 아들)? 이 말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 엄마만 공부를 안 해서가 아니라, 아빠는
[권혁웅의 일상어 사전] 엄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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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이 본색을 드러내고 말았다. 서민을 가장 잘 챙기는, 그리고 누구보다 인권과 행복추구권을 지키려는 정치인으로 정평이 나 있던 그가 성소수자 차별금지 조항이 포함된 인권헌장을 거부해버린 것이다. 이에 격분한 성소수자들과 인권단체들이 시청을 점거하고 나섰는데, 박원순 시장은 이들의 시위에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전혀 응답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박원순 지지자들은 특히 놀랐을 것이다. 결국 그도 시민들의 인권보다는 개인적인 출세를 노리는 전형적인 정치인이었다는 것에 놀랐다기보다는, 그런 뻔한 패턴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던 자기 자신에게 놀랐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일 거다. 여당이 새누리당, 야당이 새정치민주연합인 대한민국에서 성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해줄 정치인이 누가 있냔 말이다. 깨시민들이여, 제발 정신 좀 차리자. 야당이 새정치민주연합이다.
60년대, 언더그라운드에서 태동한 젠더영화
알다시피, 섹스와 젠더는 다르다. 섹스는 선천적으로 태어난 성이고 젠더는 후천적으
[곡사의 아수라장] 원순씨와 젠더영화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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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아웃> Inside Out
감독 피트 닥터 / 목소리 출연 민디 캘링, 빌 헤이더, 에이미 포엘러
픽사 애니메이션이 2년 만에 돌아온다. <업>과 <몬스터 주식회사>의 피트 닥터 감독이 이번에는 <인사이드 아웃>에서 11살 소녀 라일리의 마음속을 들여다본다. 라일리의 머릿속에 사는 의인화된 다섯가지 감정들이 주인공이다. 톡톡 튀는 형광색의 외모만큼이나 개성이 강한 다섯 캐릭터는 라일리가 전학을 가는 과정에서 사사건건 충돌한다. 2015년 6월19일 북미 개봉예정.
[WHAT'S UP] <인사이드 아웃> Inside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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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꾸뻬씨의 행복여행> 갑질도 억수르 힘들다
[정훈이 만화] <꾸뻬씨의 행복여행> 갑질도 억수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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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12월25일에 친구가 결혼했다. 자식, 여전하구나, 여전히 이기적이야. 전날의 숙취로 벌게진 눈을 하고 간신히 기어나온 우리는 자기 생일(12월23일이다)에다가 크리스마스와 결혼기념일까지 한방에 해결한 운 좋은 놈을 욕하면서 갈비탕을 먹었다. 그리고 곧바로 쓰린 속을 부여잡고 집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그 자식, 뒤풀이 비용도 아꼈어.
1년이 지났다. 단체 문자가 왔다. 딸을 낳았다는 친구의 문자였다. 아니, 이 녀석이, 크리스마스이브에! 제왕절개라도 한 건가! 축하한다, 이제 네 인생에 기념일이란 크리스마스와 마누라 생일뿐이겠구나. 네 딸은 산타 할아버지를 생일 선물 주는 사람으로 알고 자라겠지, 너 같은 놈이 선물을 두개 준비할 리는 없을 테니까(근데 너 돌잔치는 어떻게 한 거니. 설마 또 크리스마스에…. 초대해주지 않아 고맙다). 그리하여 경기도 부천에는 크리스마스를 영영 잃어버린 어느 꼬마에 관한 슬픈 전설이 전해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지금 크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산타는 고뇌한다, 침대에 퍼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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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셉션>과 <다크 나이트> 시리즈, <인터스텔라>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을 본 관객이 후련하지 않은 이유는, 리들리 스콧 감독이 얄미우리만큼 중도를 고집하기 때문이다. 스콧은 신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잘라 말하지 않는다. 히브리 편도 이집트 편도 들지 않으며, 모세(크리스천 베일)의 주적이자 잔혹한 군주인데도 파라오 람세스(조엘 에저턴)를 끝까지 ‘형제’로 묘사한다. 그중에서도 이집트의 모든 가정이 첫아이를 잃는 재앙 장면이 관객의 감정에 혼란을 일으킨다. 부왕에게 못 받은 사랑을 배로 쏟았던 어린 아들을 잃고 망연자실한 람세스는 악당이라기보다 희생자로 보인다. 그림은 로렌스 앨마-타데마의 <장남의 죽음을 맞은 파라오>(1872).
11/10
(983호 11월3일 일기에서 이어집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영화는 구조 설계에 강하고 반대급부로 인물 조형에 취약하다. 개중 <다크 나이트>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행복의 사보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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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 전상진이 쓴 책으로, 음모론 전성시대를 맞은 한국 사회를 살핀다. 음모론은 현대 정치의 중요한 전략이자 자원이 됐다. 지지자 동원에 효과적이고 정적 공격에 유용하며 자신에 대한 비판을 무력화하는 데 쓸모를 지니기 때문이다. 음모론의 정치적 쓸모는 특정 정파나 권력의 위치에 제한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음모론은 ‘민주적’이다. 좌우를 막론하고 또 지배하는 자나 지배당하는 자 모두에게 쓸모가 있다.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는 왜 이렇게 음모론이 날뛸까.
[도서] 음모론 전성시대를 맞은 한국 사회를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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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된 뒤 정가의 몇배나 되는 가격에 거래된 미야모토 데루의 <환상의 빛>이 재출간됐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환상의 빛>의 원작이 된 중편소설이 표제작인 중단편집. 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남편이 어느 날 알 수 없는 이유로 자살한 뒤, 다른 남자와 재혼해 낯선 도시로 떠난다. 그리고 삶에의 의지가 없던 시간이 흘러가고, 새로운 생활에도 적응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가도 남편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 도리가 없다. 읽지 않고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쓸쓸한 풍경과 그 속에 숨은 어렴풋한 의지의 빛이 이 소설을 아주 오랫동안 기억하게 만든다.
[도서] 읽지 않고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쓸쓸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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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는 뜻의 삼포세대라는 말이 이미 유행하고 있지만, 취직하기 어렵고 언제 잘릴지 모르는(혹은 언제 회사가 망할지 모르는), 그리고 재취업이라는 단어는 하늘의 별따기와 동의어가 된 지 오래인 지금의 세상에서 희로애락의 무대이자 대상으로 등장하는 것은 바로 ‘일’이다. 밥벌이 문제로 밀당하느라 애초에 연애고 결혼이고 출산이고 여력이 없다. 지금을 견뎌서 될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영영 나아지는 일 같은 건 없으리라는 근심이 더해지고 나면 선택의 여지는 영영 없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머리를 맞댄다. 전통적인 방식의 취직, 그렇게 생긴 직업, 그렇게 하게 된 일, 그렇게 보장받는 미래가 아니라, 지금까지 배운 적 없는 방식으로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내기. 제현주의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이하 <안내서>)는 그런 고민의 답이다.
하나의 답일 수 있다. 정답이 아니다. 정답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이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행복하게 일하기 위한 새로운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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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용근 감독이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그들의 손에 총 대신 꽃을>을 펴냈다. 그는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한 옴니버스 인권영화 <어떤 시선>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에 관한 이야기로 단편 <얼음강>을 만들었다. 그때 미처 못다 한 이야기가 이번 책으로 묶였다. 서문에서도 밝혔듯, 이 책은 평소 인권과 평화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두지는 않았던 감독 자신이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을 만나면서 겪게 된 생각의 변화를 기록한 것이다. 전세계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로 인한 수감자 중 한국인의 비중이 92.5%로 가장 높은 상황에서, 병역이야말로 가장 민감한 이슈인 한국 사회에서 그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양심적 병역 거부라는 주제로 영화에 이어 책까지 냈다.
=<얼음강>이 개봉한 뒤 출판사에서 먼저 제안을 해왔다. 나도 40분짜리 단편영화에 채 담지 못한 내용들이 있어서 아쉬웠던 터라 수락했다. 올해 3월부
[flash on] 사회가 개인의 삶의 기준을 존중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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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드리 시에는 강아지와 고양이뿐 아니라 까마귀, 너구리, 말, 판다 등이 사람들과 어울려산다. 동물원을 떠올리게 하는 마을답게 아름드리 시장은 최고의 반려동물을 뽑는 콘테스트를 연다. 그런데 행사가 끝난 뒤 콘테스트에서 상을 받은 동물들이 밤마다 한 마리씩 실종되기 시작한다. 숲속에 사는 야생동물들도 덩달아 사라진다. 유전학자인 할아버지가 발명한 쥬로링 콤팩트를 통해 동물로 변하는 능력을 가진 다섯명의 친구들, 키키, 루루, 건이, 밍밍, 미누는 동물탐정팀을 결성한 뒤 실종사건을 수사한다.
<쥬로링 동물탐정>은 2010년부터 2011년까지 KBS에서 총 50부작으로 방영했던 동명의 애니메이션을 다룬 첫 번째 극장용 작품이다. 영화 초반에 실종된 동물들을 조사하면서 사건의 윤곽이 드러나는 과정은 <명탐정 코난>과 같은 추리물을 떠올리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쥬로링 동물탐정>은 범인을 밝혀내는 데 집중하는 정통 추리만화라기보다는 실종사건을 중심으
좌충우돌 신나는 동물탐정 이야기 <쥬로링 동물탐정 극장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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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우주로봇 씨어>의 배경은 아홉개의 행성으로 이뤄진 로고 은하계다. 어느 날, 팬텀 행성을 지배하던 성령 엘프 마일스와 아들 몬타가 우주해적의 공격을 받는다. 해적의 속셈은 성령 엘프의 힘을 조종해 은하계를 정복하는 것. 마일스는 해적에게 납치되고 몬타는 마일스가 남긴 수정 목걸이 덕분에 행성을 빠져나온다. 수정의 힘에 이끌려 몬타가 도달한 곳은 우주선 씨어호. 이곳의 우주로봇들은 엘프 마스터컵 대회를 열어 각자 보유한 엘프의 힘을 겨루기에 바쁘다. 때마침 나타난 몬타의 활약으로 결승에 오른 우주로봇 조이는 친구들과 함께 몬타의 아빠 마일스를 구하러 떠난다.
중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게임 원작 애니메이션 <씨어> 시리즈는 <미래전사 씨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도 방영된 적이 있다. 극장판 <우주로봇 씨어>에서는 환상적인 성운의 자태, 각양각색의 외계식물, 빗발치는 운석 등을 제법 실감나게 표현한 장면들이 눈에 띈다. 스펙터클한 배
중국의 게임 원작 애니메이션 <우주로봇 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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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말로야 스네이크>에서 동성의 상사인 헬레나를 유혹하여 권력을 획득하고 무참히 차버리는 시그리드 역으로 데뷔하여 주목을 받아온 배우 마리아 앤더스(줄리엣 비노쉬)는 20년 뒤 신예 연출가로부터 리메이크작 출연 제의를 받는다. 이제는 헬레나가 되어야 하는 마리아에게 비서 발렌틴(크리스틴 스튜어트)은 출연을 설득한다. 여전히 시그리드와 젊음에 집착하는 마리아는 현실적인 조언을 하는 발렌틴과 미묘한 신경전을 벌인다. 여기에 새로운 시그리드로 캐스팅된 할리우드의 악동 조앤(크로 모레츠)까지 가세해 상황은 꼬여간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페트라 폰 칸트의 비통한 눈물>을 올리비에 아사야스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듯한 작품이다. 시그리드가 마리아를 일약 스타로 만든 것처럼 어떤 허구는 사실보다 더 강하게 삶으로 침투한다. 마리아는 20대의 빛나던 자아로부터 쉽사리 분리되지 못하고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을 ‘걔들 세계’라고 쉽게 폄훼한다. 연극 속 시그리드와
어디까지 허구이고 어디까지가 실제 욕망인가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