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도 잘 안 풀리고(얼마 전엔 드디어 영화가 하나 더 고꾸라졌다, 도합 5연타인가… 싸블알), 눈은 추적추적 내리고, 또 비행기는 돌았고 헌법재판소도 돌았으니, 내가 도통 뭐하는 짓인가, 영화 그대는 도대체 누구인가 고민이 많아지는 저녁이다. 물론 정답은 언제나 하나다. 영화는 정서, 느낌, 휠링, 이모션, 눈물이 주르륵주르륵. 그대가 사랑하는 영화를 아무거나 생각해보라, 그리고 그 영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그 장면을 떠올려보라, 바로 그게 정서, 느낌, 휠링, 이모션, 사랑은 창밖에 눈물이 주르륵주르륵. 하지만 정서는 글로 옮기기 힘든 데다가 정서 타령만 하자니 지면이 너무 남을 듯하다. 그래서 준비했다(반말 죄송). 영화 그대는 누구인가에 대한 여섯 가지 대답.
영화라면 반드시 찾아오는 육형제
지금부터 폭로(?)할 영화를 영화답게 만드는 술어 여섯 가지를- 영화 교과서에서 허풍 떠는 것처럼- 내러티브 공식인 것처럼 과장하고 싶진 않다. 미리 말하지만 그런 공식은 없
[곡사의 아수라장] 666
-
[정훈이 만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머나먼 여행
[정훈이 만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머나먼 여행
-
스물한살에 처음 비행기를 탔다. 학교에서 지원금이 나온 제주도 답사 덕분이었는데 가슴이 두근거려 뜬눈으로 밤을 새웠지만 비행기 안에서 한숨도 자지 못했다. 그 시절에도 일찍이 해외여행 갔다온 관록을 과시하던 강남 후배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누나, 비행기 타면 오렌지 주스가 나오는데 자는 사람한테는 안 줘요.” 그래서 나는 졸린 눈을 부릅뜨고 기다렸다가 주스를 받아 마셨다. 주스는 집에도 있지만 이건 비행기 주스니까. 그때는 몰랐다, 음료수는 주스만 있는 것이 아니며 자다 일어나서도 음료수를 받을 수 있고 비행기 안엔 땅콩도 있다는 사실을.
그래, 뉴스를 보다가 왠지 그 땅콩이 먹고 싶었다. 대한항공을 타면 주는 땅콩, 견과류를 싫어하는 나도 꼬박꼬박 받아먹는 꿀 바른 땅콩, 고소하고 달콤한 대한 땅콩. 남들은 불합리한 기업의 소유 구조와 재벌의 행태를 비판하며 분노하는데, 나는 왜 땅콩이 먹고 싶었던 걸까. 30대 중반에 가난 귀신이 내리면서 먹을 것이 있으면 일단은 몽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땅콩이 먹고 싶어졌어
-
*<액트 오브 킬링>과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배우는 알겠는데 캐릭터 이름은 기억나지 않을 수도 있고, 영화제목만 기억날 수도 있다. 관객에게 분량을 아쉬워하게 만들었던, 때로는 배우의 이름을 확인하려고 엔딩 크레딧을 기다리도록 붙잡았던 조연들의 졸업앨범이다. 어느 영화 속 누구인지 열여섯 캐릭터를 빠짐없이 맞힌 독자에게는… 2015년 선택하는 영화 중 최소 8할이 기대 이상인 행운을!
11/28
얼굴에 모닥불을 확 끼얹는 영화가 간혹 있다. <액트 오브 킬링>을 보는 동안 나는 자연스럽게 하라 가즈오 감독의 다큐멘터리 <가자 가자 신군>(1987)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 영화에서는 태평양전쟁으로부터 살아 돌아온 늙은 남자가, 은퇴한 일본의 전쟁 책임자들을 찾아가 추궁하고 멱살을 잡는다. 수십년이 흐른 후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피해자의 분노가 <가자 가자 신군>을 잊을 수 없는 다큐멘터리로 만드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얼굴들
-
-
대중의 의사와 표현을 검열하고 사생활과 프라이버시를 통제하며 궁극적으로 민주적인 여론과 진보적인 정치의 가능성을 폐쇄하려는 조치가 인터넷에 퍼져가는 시기에 읽어볼만한 책. 그런 현상 뒤에 숨은 자본의 욕망과 국가권력의 의지를 살핀다. 저널리즘과 자본주의, 민주주의에 관한 인터넷 시대의 질문. 도주나 망명, 냉소주의가 아닌 현실적 대처법은 무엇일까.
[도서] 저널리즘과 자본주의, 민주주의에 관한 인터넷 시대의 질문
-
“여행은 제품처럼 보여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배우 고현정이 오키나와를 여행하며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을 책으로 묶었다. 여행에 대한 기본정보를 얻는 목적보다는 고현정이 오키나와의 풍경과 하나가 된 사진과 글이 궁금한 독자에게 더 솔깃할 것 같다. 마흔을 넘기고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조용히 집중하려는 여행 이야기가 재미있다.
[도서] 배우 고현정이 오키나와를 여행하며 만난 사람들
-
이 글의 코너 제목이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이지만, 아무리 책을 빠르게, 많이 읽는 나라도 사람에 치여 사는 연말연시만큼은 힘들다. 모임과 모임 사이에 들여다볼 기력을 돋운 책은, 먹는 이야기. 조경규의 만화 <오무라이스 잼잼>과 박용민이 쓴 <맛으로 본 일본>이다. 조경규와 박용민의 공통점이라면 음식 전문가는 아니라는 것. 심지어 <맛으로 본 일본>의 저자는 현직 외교관으로 근무하며 영화 책, 여행 책을 쓰고 이번엔 음식문화 책을 쓴 경우. 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본 여행을 좋아하고 일본 음식을 자주 먹는 독자 입장에서는 편하게 읽히는 책이기는 했다.
<오무라이스 잼잼>은 벌써 5권째다. 자녀양육기 겸 일상음식 이야기인 이 시리즈는 별거 아닌 내용을 담은 듯하지만 묘하게 한컷 한컷 집중해 보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가족의 일상음식 이야기에는 당연히 남녀 어린이와 남녀 성인의 이야기가 포함되며, 배달음식과 외식요리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의 요리철학
-
남수진은 할리우드에서 주로 활동해온 작곡가이자 뮤지션이다. 1999년 개봉한 <엔트랩먼트>의 스코어 코디네이터로 일을 시작해 <스파이더맨2> <스파이더맨3>의 오케스트라 편곡을 담당했고 할리우드 스튜디오영화와 독립영화의 음악 파트에서 두루 활약 중이다. 한국영화 <평행이론>의 작곡가로 <미스터 고>의 스코어 프로듀서로도 참여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재즈, 클래식, 연주, 작곡, 지휘 등 장르와 파트 구분 없이 음악을 공부했다. 연주부터 오케스트라 편곡까지 가능한 작곡가다. 그 내공으로 미국뿐 아니라 한국, 중국영화의 음악 작업을 꾸준히 해나갈 계획임을 밝혔다. 이번에는 지휘자로서 한국을 찾았다.
-12월17일에 열린 소프라노 신영옥의 새 앨범 ≪미스티크≫(Mystique)의 발매 기념 콘서트에 지휘자로 나섰다.
=앨범 프로듀싱과 편곡을 맡은 게 인연이 돼 지휘까지 했다. 학생 때 지휘도 배웠다.
[flash on] 경계는 장애일 뿐
-
안젤리나 졸리는 지금 현재 할리우드에서 모두가 원하는 배우다. 그녀가 “할리우드 영화 관계자들의 눈에 들기 위해 3개월간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피칭’을 하고, 한밤중에 불현듯 깨어나 아이디어를 보드에 붙이는 과정을 되풀이”했다고 말한다. 졸리의 두 번째 장편 극영화 연출작 <언브로큰>은 그만큼 그녀에게 절실하게 다가온 프로젝트였다. 실존인물이었던 루이 잠페리니의 한 많은 삶을 통해 그녀가 보여주려 했던 건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끝내 꺾이지 않았던 한 인간의 강인한 정신이다. 12월2일 뉴욕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서 진행된 감독 안젤리나 졸리와 주연배우 잭 오코넬의 만남을 전한다.
감독이라는 직업을 사랑한다
안젤리나 졸리 인터뷰
-공교롭게도 브래드 피트와 당신 모두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다.
=글쎄, 영화제작을 시작한 건 내가 먼저다. <언브로큰>의 모티브가 된 실존인물인 루이(잠페리니)를 만났으니까. 그리고 아직도
[현지보고] 역사보다 강인했던 한 인간에 관하여
-
영화가 시작되면 필름 질감의 영상이 상영된다. 교복을 입은 세 소녀가 뭔가 중요한 것이 들어 있는 듯 보이는 보물 상자를 두고 대결을 벌인다. 튕겨 들어간 가방을 따라 학교 건물 내부로 이동하면 느닷없이 좀비가 나타나 소녀들을 위협한다. 한눈에도 조악한 스토리와 영상이다. 그러다가 ‘컷’ 되면 이것이 극중극이었음이 드러난다. 이들은 영화 동아리 학생들로 <하이킥 엔젤스>라는 제목의 여고생 액션물을 촬영하기 위해 이곳, 폐교로 왔다. 어렵게 섭외한 전설의 액션 고수, 마키 선배(아오노 가에데)를 기다리던 이들은 그곳에 거액을 숨겨둔 야쿠자 일당과 맞닥뜨린다. 여고생들은 졸지에 실제 액션에 휘말릴 위기에 처한다.
배우들은 긴 훈련기간을 통해 스턴트에 의존하지 않는 실제 액션을 펼친다. 그렇다고는 해도 여고생들이 거친 야쿠자 무리를 당해낸다는 것은 판타지에 가깝다. 영화는 이들의 처절한 실패담을 담으면서 판타지를 희석한다. 대신 영화 속의 영화를 통해 되고 싶은 이상향과 실
미소녀 판타지 액션영화 <하이킥 엔젤스>
-
동양인으로서는 드물게 유럽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오페라 가수 배재철(유지태)은 연이은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승승장구한다. 그의 목소리를 알아본 일본의 오페라 기획자 코지 사와다(이세야 유스케)는 그에게 일본에서의 공연을 제안하고, 이들은 절친한 친구로 발전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재철은 갑상선암 선고를 받게 되고, 수술을 하던 도중 목소리를 잃고 만다. 그러던 어느 날, 코지의 소개로 재철은 성대를 복원하는 수술을 받게 되고, 다시 설 무대를 꿈꾸며 연습을 거듭한다.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는 성악가 배재철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 그의 이야기는 2008년 TV 다큐멘터리로 소개된 바 있다(‘리리코 스핀토’는 서정적인 표현력과 관객을 압도하는 음색 모두를 가진 최고의 테너를 일컫는 말이다). 실화를 극영화로 옮겨오면서 영화는 주인공의 심리적 좌절과 불안을 보여주기 위해 드라마틱한 사건들을 곳곳에 배치한다. 이것이 몇몇 순간들(성대수술 중 재철이 찬송가를
성악가 배재철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
-
태양열판 제조업 회사를 다니던 산드라(마리옹 코티야르)는 우울증으로 오랜 병가를 쓰고 이제 막 복귀하려 한다. 한데 상황이 여의치 않다. 그사이 그녀의 직무는 다른 직원들이 나누어 맡았고, 공장은 줄어든 인력을 다시 충원할 계획이 없다. 게다가 회사는 ‘산드라의 복귀’와 ‘보너스 1천유로’를 안건으로 내걸고 투표까지 진행한다. 회사쪽의 압력으로 첫 번째 투표결과가 ‘보너스’ 쪽으로 기울지만, 일부 직원들의 문제제기로 두 번째 투표가 진행된다. 산드라는 회사 동료인 줄리엣(캐서린 살레)과 남편 마누(파브리지오 롱지온)의 도움을 받아 주말 동안 동료들을 설득해야 한다.
칸영화제 공식 경쟁부문에 초청된 다르덴 형제의 일곱 번째 장편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은 어떤 면에서 <로제타>(1999)의 또 다른 버전처럼 느껴진다. “지난 10년간의 경제 위기 동안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을 다룬다”는 감독의 말처럼, 두 영화의 주제는 매우 흡사하다. 작품의 구상은 2012년
우리에게 아무런 선택지가 없다는 것 <내일을 위한 시간>
-
열살 소녀 지소(이레)는 엄마(강혜정), 동생과 함께 자동차에서 살고 있다. 피자 가게를 하던 아빠가 가게가 망한 다음 집을 나갔기 때문이다. ‘평당 500만원’이라고 적힌 부동산 광고를 보고 그 돈만 있으면 ‘평당’이라는 동네에 집을 구할 수 있다고 믿은 지소는 사례금을 노리고 개를 훔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엄마를 해고한 레스토랑 마르셀의 괴팍한 사장(김혜자)의 개 월리를 납치 대상으로 점찍는다.
바버라 오코너의 원작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구조는 단순하지만 이야기는 진지하고 현실적인 소설이다. 남루하고 눅눅한 삶을 담은 그 소설에는 500만원을 둘러싼 귀여운 착각이나 우아한 갑부 노부인, 하이힐을 신고 일하는 천진난만한 엄마는 없다. 이 정직한 소설을 있는 그대로 영화로 만들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치장을 시작했다. 낡은 공책에 적은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그림책 뺨치게 꾸몄고, 마르셀을 둘러싼 음모와 사장의 비밀이 추가됐다. 가족간의
바버라 오코너의 원작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
맷(맷 존슨)과 오웬(오언 윌리엄스)은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는 절친한 친구 사이다. 하지만 둘의 성격은 매우 다르다. 맷이 자신만만하고 직설적이며 아이디어가 넘치는 반면, 오웬은 내성적이며 수동적인 성향을 지녔다. 그들은 함께 영화수업 과제를 진행한다. 두 사람이 만드는 영화의 제목은 <일진들>로, 세미 코미디 장르의 복수극이다. 평소 그들을 괴롭히던 불량배들을 소재로 삼아 독특하고 재기발랄한 영화를 만들려고 시도한다. 그렇지만 그들의 상반된 성격이 영화를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끌고 간다. 맷이 심각하게 복수극에 심취하면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영화 <고딩감독>은 여러 측면에서 문제적인 데뷔작이다. 핸드헬드 카메라의 불안정한 시선이 기존 영화계의 미학적 자만심을 흐트러뜨리고, 아나키스트적인 사운드의 불완전함은 보는 이의 마음을 뒤흔든다. 대중문화의 곳곳에서 차용한 레퍼런스들이 시네필의 시선을 사로잡기도 한다. 그렇지만 작품에 대한 호불호는 갈릴 것 같다.
케빈 스미스의 마음을 사로잡은 영화 <고딩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