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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란 제목의 회화 작품이 있다. 뭐가 그려져 있냐고? 작품엔 버젓이 파이프가 그려져 있다. 악취미가 아니다. 제목과 제목이 지시하는 대상의 불일치, 그 역설이 주는 당혹감이 작품의 주제다. <샘물>이라는 설치 작품도 있다. 싱그럽고 아름다운 옹달샘을 퍼와서 설치해놨냐고? 아니올시다. 떡하니 변기가 하나 놓여 있는 작품이다. 뭐 역시나 제목과 내용의 불일치로 역설감을 주는, 대표적인 초현실주의/다다이즘 작품이다. 그 시절 음악도 역설을 주제로 한 퍼포먼스가 꽤 있었는데, 존 케이지가 피아노 앞에서 4분33초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퇴장한 퍼포먼스는 유명하다. 침묵이 음악이 되는 역설이라니. 과연 전후 시대의 니힐리즘 아방가르드답다.
역설(혹은 아이러니). 사전적 의미로는 “1. 발화된 언표와 의미하는 언의가 불일치하는 상태. 2. 예상밖의 결과가 빚은 모순이나 부조화”라고 나와 있다. 위 작품들 말고도 역설을 주제로 한, 역설로 이루어진,
[곡사의 아수라장] 모순, 부조리, 불일치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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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 올 나이트> Run all night
감독 자움 콜렛 세라 / 출연 리암 니슨, 제네시스 로드리게스, 조엘 킨나만
리암 니슨은 자식을 위해 총을 든 할리우드 아버지들의 아이콘이 된 것 같다. <테이큰> 시리즈에서 딸을 지켜냈다면, <런 올 나이트>에서는 아들을 위해서다. 오랫동안 청부살인을 해온 지미(리암 니슨) 곁에 남은 것은 30년째 자신을 쫓고 있는 형사와 위스키뿐이다. 지미는 별거 중인 아들이 다음 타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조직을 등진다. 4월17일 북미 개봉예정.
[WHAT'S UP] <런 올 나이트> Run all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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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기술자들> (주)대한민국 기술자들
[정훈이 만화] <기술자들> (주)대한민국 기술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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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 어느 작은 동네에 돈이 필요했지만 나쁜 짓은 하고 싶지 않았던 사람이 살았어요. 고심 끝에 그 사람은 이웃이 키우는 개를 훔치기로 결심했답니다. 뭐, 그것도 일종의 납치이긴 하지만, 옆집 애를 훔치는 것보단 낫잖아요? 그래서 그 사람은 어둠을 틈타 이웃 마당에 잠입하여… 잠깐,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같다고요? 이건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 아니랍니다. 21세기 초엽, 우루과이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라고요.
한국 남자들이 베트남 같은 데 가서 신부를 산다는 이야기를 들은 우루과이 친구가 나를 유혹했다. “너도 우리 동네 와서 신랑을 사라. 너 돈 많잖아. 내 친구가 가난해도 심성은 착하고 키는 작지만 얼굴이 아주 귀여운데 말이야….” “나 돈 없다.” “아냐, 너 부자야. 2천만원만 있으면 화장실이 두개인 집을 살 수 있다고!” 나는 솔깃했다. 그 돈이면 한국에선 화장실 두개 사기도 힘든데! 우루과이에 가서 귀여운 남자와 집을 사고 한국의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너 납치범이야? 나 리암 니슨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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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백 투 더 퓨처>(1985)의 개봉 30주년이자 <백 투 더 퓨처2>(1989)에서 마티(마이클 J. 폭스)가 타임머신을 타고 착륙한 미래다. 작가 봅 게일과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가 그린 2015년 상상도 속 화상통화, 안경형 개인용 정보통신기는 현실화됐지만, 공중부양 스케이트보드는 아직 개발 중이라 한다. 영화 속에서 홀로그램판 <죠스19>를 연출한 스필버그 2세- 1985년생 맥스 스필버그- 는 감독을 직업으로 택하지 않았고, <USA투데이>(사진)가 보도한 ‘퀸 다이애나’는 영국 왕비가 되지 못했다. 마티가 도착한 날짜는 10월21일. 누군가 <백 투 더 퓨처> 3부작을 재개봉할 계획이라면 둘도 없는 길일이다.
12/12
다 이루었도다. 피터 잭슨 감독의 <호빗> 3부작(<뜻밖의 여정> <스마우그의 폐허> <다섯 군대 전투>)이 완결됐다. 빌보(마틴 프리먼)는 차가운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미래로의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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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10회를 맞이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1월15일부터 2월15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2006년부터 총 143명의 친구가 뽑은 240여편의 영화를 상영하며 진한 우정을 나눠온 이 영화제는, 올해도 어김없이 영화를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소중한 추천작을 건네받아 관객과의 만남을 준비 중이다. 2006년 첫발을 디딜 당시 <씨네21>에서 첫 번째 후원릴레이를 했던 박찬욱 감독을 비롯해 감독, 평론가, 영화인 등 18명의 친구들이 선택한 총 23편의 영화가 극장에서 당신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마스터피스로 불릴 만한 작품부터 쉽게 만나기 힘든 희귀작까지, 다양한 보물 중에서 여기에 8편의 영화를 골라 친구들의 각양각색 추천사와 함께 전한다. 함께해서 더 소중한 순간들. 이제 10년, 아직 10년이다. 앞으로도 계속될 영화의 친구들을 위해, 이 겨울 시네마테크가 마련한 선물꾸러미를 펼쳐보자.
그때 그곳에 내가 있었다
정성일 영화평론가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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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우정,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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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망증이라고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던 엄마 레이코(하라다 미에코)의 증상이 점점 심해지자 가족들은 그녀를 데리고 병원을 찾는다. 그리고 그녀가 말기 뇌종양이며 일주일 정도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장남인 코스케(쓰마부키 사토시)는 엄마를 치료해보겠다고 나서지만, 사업 실패 후 사채 빚에 시달리며 무력해진 아버지와 철없는 대학생 남동생 슌페이(이케마쓰 소스케), 속내를 털어놓기 어렵게 차갑기만 한 아내까지, 그가 맞닥뜨려야 할 현실은 막막하기만 하다.
<이별까지 7일>은 <행복한 사전>(2013)을 연출했던 이시이 유야 감독의 신작으로, 하야미 가즈마사의 동명의 자전적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이별까지 7일’이라는 한글 제목이 죽음을 앞둔 엄마와 그녀를 보내야 하는 가족의 슬픈 헤어짐을 주목하게 만들지만, 막상 영화는 원제인 ‘우리 가족’이 말해주듯 엄마의 시한부 선고가 어떻게 가족들을 변화시키는지에 더 주목한다. 그래서 공을 들여 담는
엄마의 죽음이 아니라면 꺼내놓지 않았을 가족들의 진심 <이별까지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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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가 인간이 지닌 위대한 가능성의 절정이라 칭한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가 보존되어 있는 바티칸 박물관은 500여년의 역사 속에 종교와 예술을 아우른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다. 24개 미술관, 1400실의 방에 깃든 종교 미술의 긴 역사를 한 시간 남짓의 다큐멘터리 안에 담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때문에 영화는 40여점을 선별해 관람 체험을 극대화하는 방식을 택한다. 감독 루카 드 마타는 1997년 3년의 제작기간을 거쳐 7시간에 달하는 바티칸 박물관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바 있는데, <바티칸 뮤지엄>은 이 작업의 압축판이자 3D 효과를 입힌 또 다른 작업이다. 3D 화면에 더해 조명의 사용, 느린 카메라 워크, 웅장한 음악 등을 통해 박물관을 방문한다 해도 결코 볼 수 없는 이미지를 구현한다.
내레이션이 동행하는 <바티칸 뮤지엄>의 관람 방식은 도슨트와 함께하는 관람 경험과 흡사하다. 관객은 걷는 대신 자리에 앉아 카메라가
방문한다 해도 결코 볼 수 없는 이미지 <바티칸 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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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전 참전 미군 사이에서 레전드라 불렸던 크리스 카일의 에세이를 영화화한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왜 이 시대의 거장이라 불리는지 확인시켜주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미군 네이비실 최고의 저격수였던 크리스 카일은 수많은 적군의 목숨을 빼앗았고, 그만큼 아군의 목숨을 지켰다. <아메리칸 스나이퍼>에서 사실적으로 그려낸 시가전 장면은 거장의 손길이 고스란히 느껴지는데, 모래 태풍이 화면을 가득 채운 채 벌어지는 총격전은 숨막힐 정도로 압도적이다.
하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이 작품에서 보여주려는 것은 크리스 카일의 활약상도, 이라크전의 이데올로기적 합리화도 아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전쟁터는 옳고 그름이 사라지고, 삶과 죽음만 남겨진 세계다.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이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유령처럼 서성인다. 전쟁을 큰 비중으로 다룸에도 불구하고 전쟁 장면보다는 그 이후의 삶이 더 강한 잔상을 남기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아메리칸
크리스 카일의 삶 속에 담긴 질문들 <아메리칸 스나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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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마다 살아 움직이던 뉴욕 자연사박물관의 전시물들에 큰 위기가 닥친다.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줬던 아크멘라(레미 맬렉)의 황금 석판이 부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박물관의 전시물들은 이상행동을 보이거나 돌처럼 굳어가고, 래리(벤 스틸러)는 석판의 비밀을 풀기 위해 대영박물관으로 여정을 떠난다.
<박물관이 살아있다: 비밀의 무덤>은 시리즈를 통틀어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촬영한 첫 영화다.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하는 만큼 박물관 내부의 모습뿐만 아니라 트라팔가 스퀘어, 웨스트 엔드 등 런던의 명소를 배경으로 극이 진행된다는 것이 3편의 차별화된 지점일 것이다. 영국의 역사적 아이콘인 란셀롯(댄 스티븐스)이 백마를 타고 트라팔가 스퀘어를 질주하는 장면이나 장편영화 사상 최초로 촬영을 허가했다는 대영박물관 전시실에서 살아 움직이는 유물들과 한판 대결을 벌이는 장면 등은 이번 영화의 중요한 볼거리다.
하지만 이 시리즈의 관건은 등장인물들의 코미디 연기를 지켜보는 것이다. 미국
멋진 퇴장의 순간 <박물관이 살아있다: 비밀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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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17일 여행자 최미라는 무작정 인천발 제주행 배에 오른다. 배는 400여명의 승객과 3만5천여권의 책을 싣고 제주도 강정마을로 향했다. ‘강정 책마을 십만대권 프로젝트’를 기획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이었다. 미라는 궁금했다. 왜 이 많은 사람들이 강정으로 향하는지, 강정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미라클 여행기>는 해군기지 건설로 고통받고 있는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과 강정 평화도서관에 책을 기증해 강정의 평화를 염원하려는 시민들의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강정은 정부가 절대보존지구인 그곳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겠다고 나서면서 정부와 주민들이 수년째 치열하게 갈등 중인 고통의 땅이다. 특히 정부가 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으면서 주민들간의 갈등의 골은 더없이 깊어졌다. 영화는 세상 돌아가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미라가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강정의 현실을 인식해가는 과정을 좇는다. 주민들의 생생한 육성은 “대대손손 공동체를 일구
강정 책마을 십만대권 프로젝트 <미라클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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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포켓몬> 시리즈가 더 출시되지 않는 세상을 상상하는 일은 새로운 사물이 더 등장하지 않는 세상을 상상하는 것만큼 어렵다. 익숙한 것의 새로운 조합의 무한증식은 포켓몬스터식 진화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DP, 베스트위시를 거쳐 XY 시리즈가 극장판으로는 처음으로 공개된다. XY는 생명과 파괴를 상징하는 전설의 포켓몬 제르네아스(X)와 아벨타르(Y)의 상반된 두 가지 힘을 암시한다. 두 힘을 이어줄 첫 번째 주자는 다이아몬드 광산국의 공주 디안시다. 광산국은 다이아몬드가 빛을 잃어가면서 멸망 위기에 처했다. 이에 디안시는 제르네아스의 도움을 얻기 위해 먼 길을 떠난다.
영화는 디안시를 중심으로 모험과 귀환을 바탕으로 한 성장 서사를 이어간다. 광산국을 살려야 하는 극중 임무 외에 관객의 이목을 사로잡아야 하는 이중의 임무를 띤 채 등장한 디안시는 예의 바르고 수줍은 가운데 백치미를 한껏 발산한다. 후반은 선과 악의 대결이 주가 되는데 이때 악의 속성을 분열적으로 그
영원한 우정을 찾는 여정 <극장판 포켓몬스터 XY: 파괴의 포켓몬과 디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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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여 헤어짐의 뒤에야 우리는 비로소 그 사랑을 깨닫는다.” 기 드 모파상의 말로 <아이 킬드 마이 마더>는 시작한다. 후베르트(자비에 돌란)는 예술적 감성과 삶의 비밀과 과잉된 분노 등으로 점철된 10대 소년이다. 그의 어머니(안느 도발)는 그를 홀로 키우고 있다. 후베르트의 눈에 엄마는 좀 칠칠맞고 둔감하며 폐쇄적인 사람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싸우지 않는 날이 거의 없다. 그들은 차 안에서, 집에서 혹은 언제 어디서든 서로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사이처럼 보인다. 하지만 두 사람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그리고 그것이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를 다룰 때 돌란이 역점을 두는 방식이기도 하다. 거친 대립, 하지만 마음에 품고 있는 뜨거운 사랑. 후베르트가 시골의 기숙사 학교로 전학을 가던 날, 그는 어머니에게 따지듯이 묻는다. “만약 오늘 내가 죽으면 어떻게 할 거야?” 냉정하게 침묵하며 돌아선 듯했지만, 어머니는 아
자비에 돌란의 장편 데뷔작 <아이 킬드 마이 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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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만 했다 하면 백일도 못 가 차이고 마는 초등학교 교사 준수(이승기)와 잘나가는 기상 캐스터 현우(문채원)는 둘도 없는 18년지기 친구다. 준수의 집을 제 집처럼 들락거리며 술만 마셨다 하면 거침없는 욕설을 쏟아내는 현우이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비밀스런 사랑에 마음 아파하는 그녀를 가장 잘 이해해주는 것도 준수뿐이다. ‘가슴이 떨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준수와 사랑도 우정도 아닌 아슬아슬한 관계를 유지해오던 현우 앞에 어느 날 사진작가 효봉(정준영)이 나타나고, 이들의 우정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오늘의 연애>는 <너는 내 운명> <내 사랑 내 곁에> <그놈 목소리> 등으로 우리에게 이름을 알린 박진표 감독의 신작이다. 하지만 흔치 않은 노년의 사랑을 용감하게 그린 <죽어도 좋아>로 데뷔한 후,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순애보적 사랑을 그린 두편의 영화 <너는 내 운명>과 <내 사랑 내 곁에>
‘썸’이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 <오늘의 연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