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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가 허문영의 두 번째 영화평론집의 제목은 ‘보이지 않는 영화’다. 가령 메를로퐁티가 원근법이 실재를 드러내기보다 작위적으로 구성된 비전(vision)을 보여주는 허구적 방법에 불과하다 했을 때 화가는 어떠한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내는 것일까. 허문영은 작위적으로 구성된 스펙터클(spectacle)을 넘어 부재를 사유하는 방식에 주목한다.
저자에 의하면 영화의 힘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과의 완결되지 않는 긴장에 있다. 이 책은 죽음과 폭력을 경유하는 영화의 시각 이미지(보이는 것)에 대한 윤리를 물으며, 무능하고 때로는 불필요해 보이기까지 하는 부재(보이지 않는 것)의 이면을 천착한다. 1부에서는 2010년대 초반 한국 사회에서 폭력적 이미지를 과시하며 영화처럼 소비된 사건이 죽음을 표상하는 방식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낸다. 이를 넘어서는 죽음의 시학에 이르면 비평가의 탐색은 번번이 세상을 일그러뜨리며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환기시키는 홍상수의 영화를 길게 응시하게 될
[도서] 어떤 윤리적 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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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원 감독은 혜성처럼 등장한 독립애니메이션계의 기대주다. 대학 2학년 때 만든 첫 단편 <코피루왁>으로 2010년 인디애니페스트 대상을 수상해 주변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그 후 4년, 한지원 감독이 차곡차곡 쌓아올린 성과를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코피루왁>을 시작으로 <학교 가는 길> <럭키 미> <사랑한다 말해> 4편의 단편을 묶은 <생각보다 맑은>이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다. 단편을, 그것도 학창 시절 작업과 졸업작품을 묶어 극장용으로 개봉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그만한 완성도를 지녔다는 의미다. 기존 극장판 애니메이션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었던 신선함과 참신함은 기본이고 청춘의 고민을 솔직하고 깔끔하게 담아 대중성도 충분히 갖춘 수작이다. 어쩌면 한국 독립애니메이션의 내일을 맑게 해줄 한지원 감독에게 첫 극장 개봉까지의 과정을 들었다.
-얼마 전 첫 시사를 마쳤다.
[flash on] 한국 독립애니메이션의 내일을 맑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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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광주에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개관한다. 수도권에 집중된 문화예술 분야의 균형 발전을 위해 10년 이상 추진해온 노력의 결실이다. 아시아문화전당의 콘텐츠를 채울 예술극장은 본격적인 개관에 앞서 1월부터 7월까지 한달에 한번 ‘컨템포러리 토크’를 기획했다. 영화, 연극, 전시 등 동시대 공연예술을 이끌고 있는 여러 예술가를 한자리에 불러 생생한 이야기를 나눠보는 보기 드문 자리다. 아시아 예술극장을 기획총괄하고 있는 김성희 예술감독은 차이밍량,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헬리 미나르티, 프리 라이젠 등 얼핏 조합하기 힘들어 보이는 각국의 아티스트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동시대 아시아 예술의 현재와 공연예술 분야의 비전을 확인할 수 있는 참신한 기획이다. 그간 공연예술 분야에서 경계를 넘나들며 쌓아온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한 김성희 예술감독에게 동시대 아시아 공연예술에 대해 물었다.
-아시아 예술극장이 추구하는 방향은 무엇인가.
=현재 경제, 정치 분야뿐 아니라 문화 영역의 지도도
[flash on] 아시아를 중심으로 사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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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맑은>은 한국 독립애니메이션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한지원 감독의 4편의 단편을 묶은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다. 4편의 성격을 하나로 아우를 수 있는 키워드는 없어 보이지만 4편을 희미하게 관통하며 흐르는 감독의 고민은 ‘현재’이다. 현재의 불안한 소망들을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견뎌내보라고, 영화는 조용히 제안한다.
2편씩 나누어 볼 수도 있다. ‘돈벌이’가 되지 않는 전공에 넉넉지 않은 집안 사정까지 감당해야 하는 대학생이 우연히 신인 여배우와 만나면서 겪는 감정의 변화를 그린 <럭키 미>와 ‘메탈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믿는 열혈 메탈소녀와 부모의 반대로 록밴드를 탈퇴해야 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담은 <코피루왁>이 현재를 살고 있는 청춘들의 ‘꿈과 현실’이라는 흔하지만 끝나지 않을 대당을 다루었다면, <사랑한다 말해>와 <학교 가는 길>은 애니메이션만이 가질 수 있는 상상력에 좀더 무게를 싣고 있다. <사랑한다 말
고마운 작품 <생각보다 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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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영국, 화가 터너(티모시 스폴)는 독특한 화풍과 재능으로 명성을 쌓았지만 여전히 자신이 원하는 풍경을 찾아 유럽을 떠돌아다닌다. 아버지(폴 제슨)가 세상을 떠나자 터너는 집안일을 돌봐주던 한나(도로시 앳킨슨)와의 애매한 관계를 내버려둔 채 여행 중에 만난 소피아(마리온 베일리)와 사랑에 빠진다.
화가들의 이야기는 영화감독들의 끊임없는 매혹의 대상임에 분명하다. <비밀과 거짓말>과 <세상의 모든 계절> 등으로 잘 알려진 감독 마이크 리를 사로잡은 화가는 풍경화가 윌리엄 터너다. <미스터 터너>는 1851년에 세상을 떠난 터너의 마지막 25년을 담고 있다. 빛과 풍경에 각별한 애정을 가진 터너였던 만큼 영화에서 눈에 띄는 것은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화면들이다. 영화의 몇몇 장면들은 터너의 그림을 떼어다 옮겨놓은 듯 황홀하다. 마이크 리는 터너가 화폭에 담아낸 풍경들을 현재에 다시 찾아내어 영화적으로 재현해낸다. 특히 터너가 예인선에 의해 끌려
칸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작 <미스터 터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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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케이트(힐러리 스왱크)는 어느 날 오른손의 경련 증상을 경험한다. 이는 루게릭병의 시초였고, 그로부터 1년 반 뒤 케이트의 손과 발은 마비된다. 그녀는 휠체어에 의지하지 않으면 움직일 수도 없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화장실에 갈 수도, 샤워를 할 수도, 밥을 먹을 수도 없다. 케이트는 남편 에반(조시 더하멜)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력은커녕 제 몸 하나 지켜내기도 버거운 가수지망생 벡(에미 로섬)을 간병인으로 들인다. 예상대로 벡은 첫날부터 실수 연발이다. 벡이 케이트를 돕는 건지 케이트에게 간병인 교육을 받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이런 상황은 두 사람의 관계를 꽤 평등하게 만든다. 어느 날 에반의 외도를 눈치챈 케이트는 벡에게 들어주기 어려운 부탁을 한다.
두 사람의 인생 장르는 대조적이다. 케이트의 삶은 클래식 피아노의 정적인 선율과 어울리고 벡의 삶은 그녀가 즐겨듣는 난잡한 클럽음악 같다. 그러나 두 사람의 대조적인 스타일은 단지 흥미 유발 요소에 머물지 않
눈으로 표출하는 진정성 <유아 낫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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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위의 인터넷 검색 엔진 ‘블루북’의 프로그래머 칼렙(돔놀 글리슨)은 우연히 행운의 주인공으로 뽑힌다. 비밀에 싸인 블루북의 회장 네이든(오스카 아이작)과 일주일간 함께 지낼 기회를 얻은 것이다. 기대에 찬 칼렙은 자연 속에 고립된 네이든의 저택을 찾고, 곧 이 이벤트의 진정한 목적을 듣는다. 바로 네이든이 개발한 인공지능 로봇 ‘에이바’(알리시아 비칸데르)의 성능을 테스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에이바와 대면한 칼렙은 슬픈 눈빛을 가진 ‘그녀’에게 어느새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28주 후> <네버 렛미고> 등의 각본에 참여했던 알렉스 갈랜드의 연출 데뷔작 <엑스 마키나>는 인공지능이라는 소재에 접근하는 진지한 태도가 돋보이는 SF드라마다. 지금까지 만들어진 유사한 종류의 영화들에서 겪었던 바, <엑스 마키나> 역시 눈을 현혹시키는 별난 볼거리와 ‘충격적’인 반전에 기댄 영화 중 하나라 짐작할지 모른다. 그러나 감독은 그에
여전히 흥미로운 문제 <엑스 마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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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소년 히로(라이언 포터)는 불법 로봇 격투대회에 나가는 걸 즐기며 재능을 낭비한다. 이를 안타까워한 형 테디(대니얼 헤니)는 천재 공학도들이 모인 자신의 대학에 히로가 입학하길 기대한다. 히로가 마음을 고쳐먹고 깜짝 놀랄 만한 로봇을 개발하고 입학 허가를 받는 찰나 학교에 불이 나고, 교수를 구하러 뛰어들어간 형이 세상을 뜨고 만다. 실의에 빠져 지내던 히로는 형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형이 개발한 건강관리 로봇 베이맥스와 함께 조사에 나선다.
일본 애니메이션 <철인28호>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소년과 로봇의 우정이라는 테마는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브래드 버드의 <아이언 자이언트>(1999)를 비롯해 <빅 히어로>처럼 로봇 격투대회가 등장했던 영화 <리얼 스틸>(2011)도 있다. <빅 히어로> 또한 그 연장선인 셈인데, 눈에 띄는 것은 <인크레더블>(2004)을 연상시키는 슈퍼히어로물과의 조우라는 점이다.
디즈니와 마블의 장점이 효율적으로 결합한 애니메이션 <빅 히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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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킬러 존 윅(키아누 리브스)은 사랑하는 아내를 병으로 잃었다. 하지만 그녀가 남긴 애완견 데이지가 있어 마음을 안정하고 간신히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차를 탐낸 러시아 마피아의 일원 요세프가 존 윅을 폭행하고 애완견 데이지마저 죽여버리는 일이 벌어진다. 그런데 요세프는 과거 존 윅을 고용한 적 있는 러시아 마피아 보스 비고(마이클 닉비스트)의 아들이다. 마지막 남은 애완견마저 잃은 존 윅은 이제 그만의 방식으로 복수를 시작한다. <존 윅>은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스턴트’와 ‘격투’ 크레딧을 가득 채운 수많은 ‘선수’들이 품앗이하듯 만든 영화다. 대규모 예산영화는 아니지만 아날로그 격투와 총격 신 등 진짜 땀 냄새가 진동하는 영화랄까. 드디어 연출의 꿈을 이룬, 사실상 단독 감독이라 봐도 무방한 채드 스타헬스키는 과거 <크로우>(1994)의 브랜던 리 대역, <매트릭스> 시리즈에서 네오(키아누 리브스) 대역 등 스턴트 업계에서는
'선수'들이 만든 영화 <존 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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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걷는가. 26살의 여성 셰릴(리즈 워더스푼)은 고통을 마주하기 위해 발걸음을 뗀다. <와일드>는 야생적인 자연을 횡단하는 94일의 여정을 따라가는 영화다. 그녀가 정작 이곳에서 맞서야 할 것은 자연의 황량함이 아니라 내면의 황량함이다. 가난과 가정폭력을 겪고 성장해 자신의 온 존재의 근원이었던 어머니의 죽음까지 경험한 셰릴 스트레이트는 자신을 방기한 채 외도와 약물에 탐닉하다 결국 이혼에 이르고 만다. 인생의 밑바닥에서 한없이 낮아진 자존감에 직면한 그녀는 거처할 곳도, 살아야 할 방법도 없는 상태에서 문득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PCT는 남미에서 북미를 가로질러 미국 서부를 종단하는 약 4300km의 악명 높은 도보여행 코스다. 거친 등산로, 눈 덮인 산맥, 사막과 화산지대까지 극한의 자연환경이 이곳에 펼쳐져 있다. 자신의 몸무게를 능가하는 짐을 꾸려 멘 셰릴은 첫날부터 녹록지 않은 여정에서 ‘몸이 그댈 거부하면 몸을 초월하라
자연을 횡단하는 94일의 여정 <와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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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1970>을 가장 명료하게 설명하는 표현은 이른바 유하 감독의 ‘거리 3부작 완결판’이라는 말이다. 1978년 강남의 한 고등학교(영화에서는 ‘정문고’로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유하 감독이 졸업한 ‘상문고’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를 무대로 삼은 <말죽거리 잔혹사>(2004), 조직의 보스와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 틈에서 제대로 된 기회 한번 잡지 못하는 삼류 건달 병두(조인성)의 이야기인 <비열한 거리>(2006)를 마무리 짓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물론 이 세 영화는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3부작은 아니다. <말죽거리 잔혹사>의 풍경과 <비열한 거리>의 욕망이 만난 영화라 할 수 있다.
종대(이민호)와 용기(김래원)는 고아로 자라 넝마주이 생활을 하며 친형제처럼 지낸다. 두 사람은 조폭이 개입된 야당 전당대회 훼방 작전에 얽히게 되고 그 와중에 서로를 잃어버린다. 이후 종대는 손을 씻고 조직에서 나온 길수(정진영)를 아버
유하 감독의 '거리 3부작 완결판' <강남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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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 살인사건>
감독 나카무라 요시히로 / 출연 이노우에 마오, 아야노 고 / 수입 제인&유•컨텐츠1986 / 배급 씨네룩스 / 개봉 2월12일
<백설공주 살인사건>의 주인공 유지(아야노 고)는 고민한다. 무엇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을 수 있을까. 사건 사고를 주로 다루는 TV프로그램 조연출이 할 만한 고민이다. 어느 날 유지는 일명 백설공주라는 이름의 비누회사 여직원이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에 주목한다. 그러던 중 미키(이노우에 마오)라는 여직원이 갑자기 사라졌고 그녀가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유지는 정황과 주변인의 증언을 근거로 미키를 범인으로 추정하는 방송을 내보낸다. 마침내 그의 프로그램이 세간의 관심을 끌게 된다. 하지만 이내 한통의 편지가 날아들고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당신의 방송은 모두 거짓말이다.” 사건은 다시 미궁에 빠져버린다. 현재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젊은 스타 이노우에 마오, 아야노 고가
[Coming Soon] 당신의 방송은 모두 거짓말이다 <백설공주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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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은 그 무엇도 자신의 상대성이론에 위배될 수 없다고 믿었다. 빛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는 없다. 정보는 물론 존재와 탄생 같은 ‘사실’조차 빛보다 빠를 수는 없다. 그래서 순간이동은 불가능하다. 과학자로서 자신의 전성기에 태동한 양자역학을 아인슈타인이 수용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양자역학적 효과는 아인슈타인 이론으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적으로 얽혀 있는 두 입자가 만약 존재한다면, 빛보다 빠른 이동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스스로 발견했다. 아인슈타인이 내린 결론은 무엇이었을까?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그 무엇도 빛보다 빠를 수 없으므로 양자역학은 틀렸다’였다.
오늘날 ‘EPR 실험’으로 불리는 아인슈타인의 역설로 양자역학이 방증되었다고 생각하는 과학자는 없다. 오히려 과학자들은 그로부터 순간이동을 구현할 기술적 힌트를 얻었다. 1990년대에는 아인슈타인의 역설에 기반한 원자 규모의 순간이동이 실험적으로 성공했고, 조만간 눈에 보이는 크기의 물질
[손아람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불가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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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동생 집에 갔다가- 내 입장에서는- 신기한 물건을 보았다. 구글의 크롬캐스트. 태블릿의 앱과 와이파이로 연동되어 앱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TV에 띄워 볼 수 있었다. 토요일 오후 6시5분에 맞춰 TV 앞에 앉을 필요 없는 세상은 이미 나도 나름대로 누려왔지만, 크롬캐스트나 애플TV는 또 다른 문제다. 그리고 앞으로 지상파 방송국이 어떻게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아가야 할지는 항상 고민인 과제이기 때문에 뭔가 새로운 플랫폼이 발견되면 본능적인 호기심이 발동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싹한 감정도 동반된다.
오늘 이야기하려는 이 프로그램, <작정하고 본방사수>는 KBS2에서 2015년을 맞아 새롭게 선보인 프로그램이다. 일단 예능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다큐멘터리 3일>의 DNA를 살짝살짝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아무래도 ‘닥본사’(<개그콘서트>의 코너 ‘닥치고 본방사수’)를 떠올리게 된다. 이 프로그램의 본방을 사수하라는 프로젝트인가 하는
[김호상의 TVIEW] 본방사수라는 어려운 목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