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상에 멎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 가운데에 데이비드 보위의 창작력도 반드시 포함될 것이다. 보위의 69살 생일에 맞춰 발매된 스물여덟 번째 앨범 《Blackstar》를 들어보아도 이런 짐작은 힘을 얻는다. 나이 든 음악가의 원숙함은 물론 미지의 영역으로 기꺼이 모험을 감행하는 패기까지 만날 수 있는 앨범이다. 그의 오랜 벗 토니 비스콘티가 변함없이 프로듀싱을 맡았고, 최근 싱글들에서 연을 맺은 도니 매캐슬린, 제임스 머피 등이 세션으로 참여했다.
콘서트 하면 이문세
‘독창회’, ‘붉은 노을’, ‘대.한.민.국 이문세’ 시리즈로 한국에서 브랜드 콘서트가 가능하다는 걸 증명해온 이문세. 그는 2015년, 극장이라는 공간을 이용한 연출이 돋보이는 <씨어터 이문세>로 총 17개 도시에서 전회 매진을 기록해 다시 한번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 현장을 즐기지 못했던 이들은 아직 아쉬워하기엔 이르다. 2월20일 대전을 시작으로 2월26일 전주, 3월4일 용인, 3월18
[culture highway] 빨간 머리 드라큘라와의 재회
-
※<헤이트풀8>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헤이트풀8>의 오프닝이 존 카펜터 감독의 1982년작 <괴물>(The Thing)을 연상시키는 이유는 세 가지다. 광활한 설원의 스코프와 배우 커트 러셀 그리고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 서부극보다는 호러의 배음처럼 들리는 이번 음악은 지금까지 팝송 컴필레이션만으로 사운드트랙을 엮어온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 최초의 오리지널 스코어이기도 하다. 기억이 희미해 다시 꺼내본 <괴물>은 짐작보다 더 깊이 타란티노의 의식에 촉수를 뻗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눈보라 속에 고립돼 서로의 정체를 의심하는 인물들, 느긋한 듯 긴장된 공동휴게실 풍경, 간헐적인 하드 고어와 마지막 장면의 톤까지 <헤이트풀8>는 <괴물>과 은근슬쩍 평행선을 그린다.
01/03
‘타란티노 감독 여덟 번째 작품.’ <헤이트풀8>의 웅장한 오프닝에 폼나게 박힌 자막을 보고 흠칫했다. 겨우 여덟편? 열댓편은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도중(途中)의 집
-
“부모와 같은 집을 가질 수 있을까?” <청년, 난민 되다>가 던지는 질문이다. 대만, 홍콩, 일본, 한국의 젊은이들이 부모 집에서 살기를 포기하는 순간 어떤 일을 헤쳐나가야 하는지 취재를 통해 살핀 책이다. 그중 최악인 곳은 단연 홍콩이다. 평균 주택 매매 가격은 홍콩이 381만달러로, 런던의 10배, 샌프란시스코의 7배다. 주거 지옥 홍콩. 꼭대기로 올라갈수록 비싸지는 집. 홍콩은 면적이 고작 서울의 1.8배이기 때문에, 대학생들은 자취보다는 집에서 통학하거나 기숙사를 택한다. 일본의 젊은이들도 상황은 비슷한데, 25~29살 독신자 중 부모 집에 머무는 비율은 40%를 넘어섰다. 일할 수 없고 (일을 한다 하더라도) 자립할 수 없다. 그렇게 넷카페 붐이 일었다. 샤워실, 양말, 티셔츠, 맥주… 주거 난민들은 한국으로 치면 PC방이라고 할 수 있는 넷카페를 전전한다. 젊은이만 있는 건 아니다. 50대 이상이 넷카페족의 23%(2007년)를 차지했다. 상황이 바뀌리라고 낙
[도서] 부모와 같은 집을 가질 수 있을까?
-
내가 사는 집은 방은 두개지만 몹시 좁고, 한겨울 보일러 문제로 속을 썩인 적이 있는 노후 주택이다. 지금의 집에 불만이 거의 없는 이유는 교통이 편하고 대체로 한국에서 좋다고 하는 집들이 별로 욕심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간 살았거나 방문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런 집이라면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곳은 ‘실외지만 집 안인 공간’이 있는 집이다. 앞마당이나 뒤뜰, 중정이 있는 게 좋다. 한때 살았던 집처럼 욕실에 난 창문으로 무성한 숲의 꼭대기가 보이고 그 창을 통해 낮에는 불을 켜지 않아도 될 정도의 빛이 드는 정도도 좋겠다. 야마시타 카즈미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갔다. ‘다도실이 달린 전통가옥’을 직접 짓기로 결심했다. 야마시타 카즈미로 말하자면 <천재 유교수의 생활> <불가사의한 소년>을 연재하는 만화가. 그는 어느 날 망년회에서 알게 된, 전통가옥에 관심 있는 건축가와 의기투합해서 집을 짓기로 한다. 베스트셀러를 거느린 장기 연재 만화의 작가다운 호쾌함이다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돈 잘 버는 사람도 가난해지는 마법
-
-
-마블 코믹스의 일원이 된 소감이 어떤가.
=제대로 마블 코믹스 영화에 참여한 적이 없다. 솔직히 이번이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데드풀> 프로젝트에는 수년간 관여하고 있었다. 스튜디오가 이 캐릭터를 영화화하는 데 조심스러워한 탓에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블 로고가 뜨는 영화치고 제작비가 말도 안 되게 적게 들었지만, 만들어낸 게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데드풀 캐릭터를 연기한 건 <엑스맨 탄생: 울버린>에 이어 두 번째다. 두 영화 속 데드풀의 모습이 크게 다를 것 같다.
=맞다. 하지만 캐릭터의 본질은 같다. 쉴 새 없이 말하는 ‘모터 마우스’를 가졌고, 주변 사람들을 정말 짜증나게 한다는 것. <엑스맨 탄생: 울버린> 속 데드풀은 이 특징 외에 무언가를 포착하지 못한 경우다. 당시 원작 코믹스 팬들에게 무척 미움을 받았었다. 촬영 당시 시나리오작가들이 파업을 선언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세트장에 갔는데 대본에 이렇
[현지보고] 라이언 레이놀즈, “데드풀은 10년이나 기다려서 연기한 캐릭터”
-
<엑스맨 탄생: 울버린>(2009)에서 입이 봉인된 모습으로 등장했던 그 캐릭터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2월18일 한국 관객과 만날 마블의 새로운 캐릭터, ‘데드풀’은 전형적인 슈퍼히어로와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안티 히어로다. 온몸에 퍼진 암세포를 제거하기 위해 ‘웨폰 X 프로그램’에 자원한 웨이드 윌슨(라이언 레이놀즈)은 울버린처럼 지속적으로 신체 조직이 재생되는 힐링팩터 능력을 갖게 되지만, 이와 더불어 흉측한 외모와 불안정한 정신 상태도 함께 지니게 된다. 아직 <데드풀>의 예고편을 보지 못한 독자라면 <데드풀> 레드밴드 트레일러(Red Band Trailer, 19금 버전으로 편집한 트레일러)를 검색해보길. 이래도 되나 싶은 잔인한 액션 장면과 차진 욕, 그리고 농담이 양념처럼 버무려져 있다. 이처럼 <데드풀>은 PG13등급(13살 이상 관람가)을 추구하는 대개의 슈퍼히어로영화들과 달리 R등급(청소년 관람불가)을 지향하는 어른용
[현지보고] 어른용 슈퍼히어로, <데드풀> 2월 개봉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인간이 신의 피조물이라면, 반대로 인간은 신의 형상을 만들어왔다. <이웃집에 신이 산다>(2015)는 신을 인간에 가까운 존재로 그리는 정도가 아니라 동등한 존재로 끌어내린다. 그런데 그 수단이 첨단의 장비(컴퓨터)를 신에게 선사하면서 이뤄졌다는 점이 흥미롭다. 영화에서는 장비는 업그레이드됐지만 위엄은 다운그레이드되는 난감한 상황이 펼쳐진다. 베냐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사물을 가장 가까이 끌어오려는 대중의 욕망이, 거리감을 전제하는 아우라와 대치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는데 <이웃집에 신이 산다>는 그에 대한 하나의 증거물이다. 수많은 재현물에서 인간으로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신비화된 신의 창조과정을, 자코 반 도마엘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간단하게 누설해버린다.
감각의 언어를 긍정하다
<이웃집에 신이 산다>의 신에 대한 재현방식 자체는 따지고 보면 그리 도발적인 것은 아니다. 리처드 도킨
[김소희의 영화비평] 디지털 유토피아의 가능성과 한계
-
<거미의 땅>(2012)은 폐허가 된 기지촌, 그 공간이 간직하고 있는 역사성을 붙잡기 위해 세명의 기지촌 여성들의 이야기를 차례로 이어간다. 그런데 각각의 여성이 관객에게 말을 거는 방식이 저마다 다르다. 첫 번째 여성은 카메라 앞에 앉아 자신의 과거사를 덤덤히 들려준다. 두 번째 여성은 카메라와의 직접적인 대화가 아니라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을 통해 미국에 있는 자식들에게 편지를 보낸다. 세 번째 여성은 자신의 과거 속 기억을 끄집어내 본인이 직접 재연까지 해 보이며 환상적인 장면 연출의 주인공이 된다. 극화된 장치 없이 대상을 담는 다큐멘터리의 화법과 비교해보면, 대상에 접근해가는 <거미의 땅>의 방식은 생경하다. 영화를 둘러싼 논쟁이 있다면 바로 이 지점에서 비롯될 것이다. 물론 이 영화를 눈에 띄게 하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기지촌 여성들의 문제를 꾸준히 주목해온 김동령, 박경태 감독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다큐멘터리에서의 형식적 실험이 어떤 의
[people] “상처를 보듬는 각자의 방식을 하나의 필름에 담았다”
-
한국에선 애니메이터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총체적 단어로 인식되지만, 분업이 확실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애니메이터는 캐릭터의 감정 연기와 액션 연기를 담당하는 이들을 말한다. 한국에서 의사로 일하다 2006년 픽사에 입사한 김재형 애니메이터는 <업>(2009), <토이 스토리3>(2010), <메리다와 마법의 숲>(2012), <인사이드 아웃>(2015) 등에 애니메이터로 참여했다. <굿 다이노>에선 알로와 스팟 캐릭터의 연기를 맡았다. 알로와 스팟이 베리 열매를 따기 위해 끊어진 절벽을 건너는 장면은 그의 아이디어가 빛을 발한 대표적 신이다. 김재형 애니메이터는 이 장면이 어떤 공정을 거쳐 완성되었는지 보여주기 위해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직접 만들어왔다. 백문이 불여일견이었다.
-알로는 코끼리의 움직임을, 스팟은 강아지의 움직임을 참고했다고 들었다. 두 캐릭터의 특성을 어떻게 파악하고 작업했나.
=움직임도 움직
[people] “디테일의 힘으로 캐릭터를 살린다”
-
<굿 다이노>(2015)를 연출한 피터 손 감독은 디즈니•픽사 최초의 동양인 감독이다. 2000년에 픽사 스튜디오에 입사해 <니모를 찾아서>(2003)와 <인크레더블>(2004)의 아트, 스토리, 애니메이션에 참여했고, <라따뚜이>(2007)와 <몬스터 대학교>(2013)에선 목소리 연기를 맡았으며, <월•Ⓔ>(2008)의 스토리 아티스트로 활약했다. <업>(2009)의 오프닝 단편 <구름 조금>도 연출했는데, 참고로 <업>의 러셀 캐릭터의 모델이 피터 손 감독이다(실제로 꽤 닮았다). 꼬마 공룡 알로와 야생 소년 스팟의 모험으로 뭉클한 가족애와 성장담을 전한 피터 손 감독이 내한했다. 함께 온 드니스 림 프로듀서는 “픽사의 경영진이 굳게 신뢰하는, 재능 많은 젊은 감독”이라고 그를 거듭 칭찬했다.
-<굿 다이노>는 애초에 밥 피터슨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가 하차하면서 중단된
[people] “사랑으로 두려움을 버텨내는 이야기”
-
한때 마피아 보스 실바(로버트 드니로)의 오른팔이던 과거를 청산하고 그가 운영하는 카지노에서 일하는 본(제프리 딘 모건)은 아픈 딸의 수술비가 절박하다. 실바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했다가 거절당한 본은 콕스(데이브 바티스타)와 함께 카지노를 털 계획을 세운다. 카지노에서 돈을 털어 나오던 본 일행은 실바 부하들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657번 버스를 잡아탄다. 버스 승객들을 인질로 잡은 그들은 경찰들의 추격을 받게 되고, 본은 경찰 크리스(지나 카라노)와 접선하며 폭력적인 콕스가 인질들을 해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숨가쁜 추격전 끝에 본은 경찰들의 추격을 따돌리며 실바와 대면하게 된다.
추격전에 신파와 인도주의가 붙었다. 이 불편한 동거는 러닝타임 내내 착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추격전의 스릴을 약화시키고, 영화를 작위적인 동화로 만든다. 영화는 인질 추격전을 시작한 가해자인 주인공에게 아픈 딸을 살려야 한다는 면죄부를 부여하고, 폭력적인 동료를 대비적으로 배치해
악인과 아버지를 오가는 로버트 드니로 <버스657>
-
미국 서부 개척 시대 전설적인 모피 사냥꾼 휴 글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글래스는 탐험 도중 회색곰의 습격으로 죽음에 직면한다. 하지만 돈에 눈이 먼 동료 존 피츠제럴드(톰 하디)는 저항하는 글래스의 아들을 죽이고 그를 버린 채 달아난다. 글래스는 이미 그때 죽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후 배신자 피츠제럴드를 쫓아 300km가 넘는 광활하고 거친 야생에 서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글래스는 오로지 복수만을 위해 내달리는, 죽음에서 돌아온 망령(revenant)에 가깝다.
상실과 불행, 극복의 문제는 <21그램> <바벨> <비우티풀> 등의 작품을 통해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가 견지해온 관심사였다. 이냐리투가 이를 현재 인물들의 내면이 아닌 19세기 초 미국의 광활한 자연으로 가져가는 건 도전이었는데, 전작 <버드맨>으로 호흡을 같이한 촬영감독 에마누엘 루베스키와의 협업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장엄한 배
골든글로브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수상작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
바닷가 등대에 살고 있는 소년 벤(데이비드 라울). 그의 어머니는 여동생 시얼샤를 낳고 사라진다. 벤은 태어난 지 수년이 지났지만 말을 하지 못하는 동생을 괜히 미워한다. 시얼샤는 어머니가 남긴 코트를 입고 나팔고둥을 불고 바다로 들어가 바다표범과 신비한 밤을 보낸다. 물가에서 쓰러져 있는 시얼샤를 본 아버지(브렌던 글리슨)는 남매를 도시에 사는 할머니에게 보내지만, 벤과 시얼샤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몰래 길을 나선다. 벤은 시얼샤가 셀키요정임을 알게 되고, 부엉이마녀 마카(피오눌라 플래너건) 역시 시얼샤의 정체를 알고 납치해간다.
아일랜드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카툰 살롱을 이끄는 톰 무어 감독의 <바다의 노래: 벤과 셀키요정의 비밀>(이하 <바다의 노래>)은, 아일랜드 국보 ‘켈스의 서’가 만들어진 배경 설화를 그린 전작 <켈스의 비밀>(2009)에 이어 다시 모국의 옛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남매가 고향 집으로 돌아가는 신비하고 위험
바다표범과 인간을 오가는 셀키요정 <바다의 노래: 벤과 셀키요정의 비밀>
-
하루하루 무의미하게 살아가던 쿠미코(기쿠치 린코)는 29살 인생에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게 해줄 영화 <파고>(1996)를 만난다. 그녀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자막으로 시작하는 영화 <파고> 자체를 실화라고 오해해서 받아들이게 된다. 노트를 펼쳐 영화의 모든 신을 복기하면서 콘티를 그리고 대사를 받아 적으며 영화 한편을 달달 외우다시피한 쿠미코는 <파고>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칼이 파묻는 돈 가방을 찾아나서겠다면서 맨몸으로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쿠미코는 말도 제대로 안 통하는 미국 노스다코타주에 도착해 무조건 ‘파고’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도 예의도 따지지 않고 아무에게나 도움을 요청하는 그녀는 신기하게도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조금씩 목적지에 다다르게 된다. 쿠미코가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겪어가며 ‘파고’라는 지명의 장소까지 도착하는 과정은 사실적이면서도 그 자체로 낭만적인 한편의 동화 같다. 유약한 여성이 홀로 공권력의
잔혹한 현실을 망각할 수 없는 환상여행 <쿠미코, 더 트레져 헌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