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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너무 많다. 일주일에 십수편의 영화가 개봉하는 지금, 우리는 어떤 영화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영화를 더욱 깊이 있게 보기 위하여 우리는 어떤 영화들을 알아야 할까. 갈피를 잡기 어렵다면 <씨네샹떼>로 먼저 방향을 잡아볼 것을 권한다. <씨네샹떼>는 강신주 철학자와 이상용 영화평론가가 25주간 CGV아트하우스와 진행한 시네토크의 일부와 그들이 각자 ‘철학자의 눈’, ‘비평가의 눈’이라는 주제로 쓴 영화글들을 한데 모으고 정리해 펴낸 책이다. 영화사의 걸작 스물다섯편을 철학자로서, 비평가로서 두 가지 시선에서 들여다본다. 무엇보다 <씨네샹떼>는 영화를 잘 모르는 사람도 읽기에 편한 영화글이다. 인용된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수록된 시놉시스와 작가에 관한 설명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상용 영화평론가는 이 책에 정리한 영화의 기준을 “동시대 영화”라고 보았다. 지금 만들어진 영화라고 해서 모두 “동시대 영화”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씨네21 추천 도서 <씨네샹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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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 대해 몇 가지 항목을 점검해보자. 지금까지 해본 적 없는 경험을 할 때 쉽게 불안을 느끼는 편이다. 양육자로부터 상처받은 적이 자주 있으며 그들로부터 생활을 간섭받고 싶지 않다. 자신은 다른 사람에게 그다지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로 발전하는 것을 기피한다. 전부 그렇다고 답했다면 당신은 어쩌면 ‘회피형 인간’일지도 모른다. 정신의학과 뇌과학에 정통한 오카다 다카시 박사가 저술한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는 최근 그 수가 급증하고 있는 ‘회피형 인간’의 정의를 밝히고 이러한 유형의 인간들이 자신의 약점을 어떻게 보완하면 좋을지를 알려준다. 물론 회피형 애착 성향을 ‘문제’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더 나아가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는 이러한 유형의 사람들이 가진 장점을 어떻게 활용해야 더 즐거운 인생을 살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첨언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물들인 헤르만 헤세, 미야자키 하
씨네21 추천 도서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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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이 없다. 너무나 커다란 고통 앞에 차마 무어라 할 말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속엔 너무 많은 말이 뒤엉켜 있는지도 모른다. 비단 누구 한 사람만의 경험이 아닐 것이다. 2014년 4월16일 진도 앞바다에서 발생한 세월호 침몰사고는 우리 모두에게 거대한 트라우마를 남겼다. 거리의 의사 정혜신 박사는 9월11일 안산시 와동에 ‘이웃’이라는 이름의 치유공간을 마련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가다 넘어지면 약 바르고, 허기지면 함께 밥술 뜨고, 지치면 쉬었다 가고, 외로우면 함께 울고, 아이들 얘기하다 웃을 수 있는” 공간이다. 진은영 시인은 ‘이웃’을 방문해 정혜신 박사에게 세월호 참사가 안긴 사회적 트라우마에 대해 질문했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는 여러 달에 걸친 이들의 대담 내용을 엮은 책이다. 심리학적인 관점에서의 상세한 보고서이자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위안할 것을 천명하는 제언이다.
사회 전체를 짓누르고 있는 트라우마가 극복되기 위해서는 무엇보
씨네21 추천 도서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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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과 비밀. 어느 것이 인간을 무너뜨리는가. <허즈번드 시크릿>은 비밀을 지키지 못한 남편과 호기심을 참아내지 못한 아내가 그 대가로 지옥을 경험하는 이야기다. 나비의 날갯짓이 폭풍을 불러온 것처럼, 얄팍한 편지 한통이 가족의 일상을 순식간에 바꾸어놓는다. 밀폐용기 타파웨어를 판매하는 세실리아는 든든한 남편 존 폴과 귀여운 세딸을 얻은 행복한 주부다. 어느 날 세실리아는 다락에서 존 폴이 오래전에 써둔 편지 한통을 발견한다. 봉투엔 ‘내가 죽은 뒤에 열어보라’는 문구가 써 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한 세실리아는 출장간 존 폴에게 전화를 건다. 존 폴은 침통한 목소리로 편지를 읽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고 일정을 앞당겨서까지 무리하게 집으로 돌아온다. 존 폴의 괴이한 태도에 더욱 이상함을 느낀 세실리아는 결국 편지 봉투를 뜯고 만다. 편지엔 그의 끔찍한 과오가 적혀 있다.
사촌과 사랑에 빠진 남편에게 충격을 받은 테스, 어린 딸 자니를 비명에 보낸 레이첼까지 그 편지로 인해
씨네21 추천 도서 <허즈번드 시크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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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경영서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경영이란 사업이기도 하지만 네트워킹이기도 하다. 경영서는 비즈니스 개론서를 넘어 인간을 관리하고, 관계를 맺는 비책을 서술한 처세 기본서이기도 한 것이다. 잘 쓰인 경영서는 이를테면 <채근담>이나 <손자병법>과도 같다. 우리가 향해야 할 곳을 제대로 알려준다. 존 브룩스의 <경영의 모험>은 그가 살았던 1960년대에 발생한 금융 및 경제 관련 이슈를 심층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이 입을 모아 최고의 경영서라고 극찬한 그 책이다. 빌 게이츠는 <경영의 모험>을 다시 펴내기 위해 저작권을 갖고 있는 존 브룩스 아들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그 덕에 <경영의 모험>은 43년 만에 다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존 브룩스는 뛰어난 금융 저널리스트였고, 10권 이상의 경제 관련 논픽션을 저술한 작가였다. 저널리스트로 일하는 동안 취재한 내용, 인터뷰, 방대한 자료
씨네21 추천 도서 <경영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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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팍한 아저씨가 등장했다. 가게에 들어와 아이패드가 든 상자를 붕붕 휘두르며 컴퓨터를 사러왔거늘 자판조차 없는 이 납작한 것이 컴퓨터가 맞냐고 성질을 부리는 이상한 아저씨가. 남자의 이름은 오베. 자신 외의 모든 사람들은 규칙이라고는 모르는 한심하고 나태한 작자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오베는 매일 새벽 마을 이곳저곳을 “시찰”하며 잔소리를 일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오베는 아저씨, 아줌마, 동네 청년들은 물론이요 임신부, 어린아이, 심지어 길고양이에게까지 까칠한 태도로 일관한다. 하지만 그런 오베도 아내에게만큼은 자못 다정하다. 오베가 “흑백으로 이루어진 남자”라면, 아내는 “색깔”이다. “그녀는 그가 가진 색깔의 전부”다.
그런 아내가 반년 전 죽었다. 자신의 삶을 색색으로 물들여주던 아내가 떠난 후, 오베의 삶은 다시금 무채색으로 변했다. 오베는 아내의 뒤를 따르기로 마음먹고 매일같이 자살을 준비한다. 하지만 오베의 시도는 성가시고 바보 같은 이웃 때문에 매번 실패한
씨네21 추천 도서 <오베라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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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수영이 ‘시의 궁극적인 목적은 침묵이다’라고 말했죠. 여기서의 침묵은 말이 필요 없는 교감 상태를 이릅니다. (중략) 인문학에서의 침묵이란 ‘삶에서의 확신’을 의미합니다.” 강신주 철학자는 <씨네샹떼>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밀리언달러 베이비>에 관해 위와 같이 말했다. 그렇다면 침묵하자. 우리는 자신과 더욱 친밀하게 교감할 필요가 있다. 여기 소개하는 각기 다른 여섯권의 책이 우리의 침묵을 도울 것이다.
두권의 소설, <오베라는 남자>와 <허즈번드 시크릿>은 각기 다른 관점에서 죽음을 다룬다. <오베라는 남자>에서 괴팍한 남자 오베는 아내의 죽음에 깊은 상실감을 느낀다. 오베의 가슴속 텅 빈 구멍은 오베 못지않게 괴상한 오베의 이웃들이 채운다. 오베는 날마다 죽음을 되풀이하지만 그를 둘러싼 이웃들로 인해 매번 다시 살아난다. 그의 가슴이 뜨끈한 마음들로 가득 채워질 때쯤 오베는 비로소 완전한 끝을 맞이한다. <
우리 자신과의 친밀한 교감을 도울 여섯권의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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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은 부조리한 내 모습이었다.” 강원도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가는 정철(박정범)을 중심으로, <산다>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조카 하나(신햇빛)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 갑갑했던 유년기의 자신을, 부모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정신장애를 앓는 누나는 친구를 잃고 공황장애를 겪었던 청년 시절 자신의 방황을 모티브로 삼았다. 박정범 감독은 어느 하나 관계를 끊으면 설명할 수 없는 하나로 연결된 캐릭터를 통해 자신을 표현했다고 말한다.
-정철에게는 정신이 온전치 못한 누나 수연(이승연)이 ‘짐’이자, 또 보호해야 할 ‘집’이다. 그 존재감이 절대적이다. 트리트먼트에서는 형이었던 캐릭터가 여성으로 바뀌었다.
=죽음에 대한 내 공포가 누나의 캐릭터를 만들었다. 실제 모델은 자살자들 모임에서 대상을 찾아서 수차례 인터뷰를 했다. 수원에 살고 있는 여성이었는데, 우울증 때문에 자살 시도를 일삼고(영화에서는 자신을 채찍으로 벌하는 모습으로 구현된다),
“이미 내 안에 있어서, 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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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범 감독이 장편 <산다>로 돌아왔다. 장편 데뷔작 <무산일기>(2010)에 쏟아진 관심 이후 4년 만의 신작이다. <산다>는 절박한 영화다. 절친한 친구의 죽음을 경험한 감독이 그 고통을 담아낸 작품이라서 절박하고, 첫 작품과 마찬가지로 시스템에 편입되는 대신 독립제작방식하에서 어렵게 찍어 절박했다. 165분이라는 장대한 서사나 제작방식 모두, 어떤 타협도 거부한 채 밀어붙인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산다>는 온전히 박정범의 영화다. 강원도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가는 정철(박정범)을 중심으로 ‘비정상적인’ 가족 관계 안에서, 그는 노동과 자본, 인간성 회복이라는 주제를 꺼내놓는다. 간결하고 묵직했던 전작에 비해 할 말이 많아졌고, 한결 따뜻해진 시선이 인상적이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 디지털 삼인삼색 2014 프로젝트로 이 작품의 탄생을 지켜본 장병원 프로그래머의 비평과 이화정 기자가 만난 박정범 감독의 인터뷰를 수록한다.
공전
현실의 무게를 견디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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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最古)의 독립영화 축제인 ‘인디포럼2015’가 개최된다. 지난 1996년 시작된 인디포럼은 한국 독립영화인들이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동시에 자율적 참여로 조직된 독립영화인들의 재생산 가능한 다양한 활로를 모색해왔다. 꽃다운 20살, 청춘의 시간을 맞이한 인디포럼에서는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는 특별전도 마련했다. 올해 영화제에는 총 850편이 출품되어 그중 단편 65편과 장편 10편이 신작전으로 소개되며, 초청작 23편을 포함해 총 98편이 상영된다. 인디포럼2015는 5월21~28일 총 8일간 종로의 롯데시네마 피카디리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개막작으로는 <어디가도 잘살 사람>(권항)과 <연희>(백해선) 두 작품이 선정되었다. <어디가도 잘살 사람>은 취업난과 불황에 굴하지 않는 능청스러운 청춘의 당차지만 조금은 서글픈 현실 적응기를 다룬다. <연희>는 배우 윤금선아의 활약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창작의 윤리를 고
독립영화 진화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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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8일 종로에 위치한 국일관에서 ‘인디포럼 심야식당’이 문을 열었다. 인디포럼 작가회의팀(김곡 감독, 장리우 배우), 부산국제영화제팀(남동철 프로그래머), 김창환을 비롯한 배우팀, 정동진독립영화제팀(박광수 프로그래머), <씨네21>팀(윤혜지, 정지혜 기자)이 참여했다.
시작 전부터, 참가자들 사이에서 SNS와 페이스북을 통해 불꽃 튀는 신경전이 펼쳐졌던 장안의 화제, ‘인디포럼 심야식당’이 마침내 그 실체를 드러냈다. 이번 행사는 5월21일부터 진행되는 인디포럼영화제의 전야제 격으로 일반 관객과 독립영화인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축제다. 올해의 테마는 ‘요리등급심사’로 음식 맛을 본 손님들이 직접 전체 시식가, 10세 초딩맛, 19세 성인맛, 제한 시식가를 판별한다.
부산국제영화제의 남동철(왼쪽) 프로그래머가 만면에 온화한 웃음을 머금고 명란젓 파스타 조리에 매진 중이다. 남 프로그래머는 다년간 해외 영화제를 순회하며 세계의 맛들을 두루 경험해본 미식가로 알려져 있
이 요리의 등급은 제한 시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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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_1996년 인디포럼 작가회의에 기반해 시작된 인디포럼영화제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독립영화 축제다.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 집행위원장은 인디포럼 초창기 멤버이고, 다른 세분은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현재까지 상임작가로 활동 중이다. 인디포럼의 20주년을 맞는 각자의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이송희일_‘어떻게 하면 하루라도 빨리 여기서 도망칠 수 있을까’ 그 생각만 한다. (웃음) 상임작가 의장으로 9년째인데 너무 오래했다. 사실 영화제를 4년 운영하고 도망가려고 했다. 그다음해 1월까지 잠수를 탔는데 영화제 운영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더라. 어쩔 수 없이 다시 준비해서 2011년 그해만 인디포럼이 5월이 아닌 7월에 열렸다. 내년에도 이 지랄을 할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하다.
조영각_당시 나는 프로그래머였다. 사실 그때는 프로그래머가 하는 일이 상영시간표 짜는 게 전부였다. 출품된 영화 편수도 100편이 안 됐고 두편인가 빼고는 거
독립영화 친정집 잔치는 계속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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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립영화계의 든든한 버팀목인 인디포럼이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인디포럼은 1996년 5월 영화 창작자들이 주축이 돼 작품 연출은 물론이고 상영까지 직접 해보자는 취지로 인디포럼 작가회의를 만든 게 그 시작이었다. 영화 창작자들 스스로가 작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영화 제작 및 상영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유례가 없는 자주적 작가 공동체다. 인디포럼에서 매년 진행하고 있는 인디포럼영화제는 그해 독립영화계의 가장 뜨거운 문제작부터 주목할 만한 신진 감독들이 줄줄이 등장하는 장이 돼왔다. 올해도 5월21일부터 8일간 열린다. 영화제에 앞서 <씨네21>이 좌담이라는 형식을 빌려 인디포럼의 지난 20년을 짧게나마 되돌아봤다. 올해로 9년째 상임작가의 의장으로 인디포럼을 이끌고 있는 이송희일 감독과 독립영화 PD라는 흔치 않은 타이틀을 가지고 독립영화 제작, 배급사인 시네마 달을 운영하는 김일권 PD, 2009년부터 상임작가로 활동하며 자신의 첫 번째 상업영화 <카트>
독립영화의 과거, 현재, 미래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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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외과 의사를 꿈꾸며 의대에 진학한 청년은 시드니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수련의로 근무하며 끊임없이 밀려드는 부상자를 돌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특히 그는 당시 도로 상황이 열악하기 짝이 없었던 퀸즐랜드주에서 빈번히 발생한 교통사고 탓에 끔찍한 부상을 입은 다양한 중상자와 사망자들을 숱하게 목격했고, 그 역시 10대 시절부터 함께하던 친구 셋을 교통사고로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 청년의 이름은 다름아닌 조지 밀러(George Miller). 외과 의사 출신으로 호주에서 가장 성공한 영화감독 중 한명이자 영화사에 숱한 기록을 남긴 액션 프랜차이즈영화 <매드맥스> 3부작의 아버지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청년 조지 밀러의 관심사는 전공으로서의 의학 외에도 어쩌면 그 이상으로 영화에 대한 열정 또한 남달랐다. 1971년 여름, 그는 멜버른대학에서 계절 학기 수업으로 개설한 영화제작 특강을 통해 아마추어 영화 제작자 바이런 케네디를 만나면서 인생의 방향타를 돌려
전설은 어떻게 만들어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