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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먼드 파이크가 생활에 지칠 대로 지친, 애 셋을 둔 엄마 아비 역으로 돌아왔다. <해피 홀리데이>에서 그녀가 맡은 아비는 천방지축인 세 아이와 씨름하고 철부지 남편과는 이혼 소송 중에 있는 인물이다. 아비는 남편과의 불화를 애써 숨긴 채 시아버지의 생신에 맞춰 스코틀랜드에 있는 가족을 찾아가게 되고 그곳에서 비로소 가족들과 조금 더 가까워지게 된다. 등장인물이 많은 가족극이라 출연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로저먼드 파이크는 코믹물에서조차 자신만의 기운과 강단 있는 얼굴을 보여주는 데 성공한다. 로저먼드 파이크에게 서면으로 그녀가 생각하는 <해피 홀리데이>의 미덕과 아비에 대해 물어봤다.
-가족 드라마 <해피 홀리데이>의 어떤 매력에 끌려 출연을 결심하게 된 건가.
=단순한 코미디물 이상의 참신하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다. 영화를 보면 중반에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큼 엄청난 사건이 벌어진다. 그 일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배울 점이
[flash on] 강하면서도 서툰 세상의 모든 엄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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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간 한결같이 영화계 변방을 지켜온 이가 있다. 1985년 만들어진 작은영화워크숍 시절부터 쭉 독립영화 공동체의 자생에 힘써온 현독립영화협의회 낭희섭 대표다. 초창기, 오점균 감독(1기), 류승완 감독(3기), 강혜정 외유내강 대표(5기), 임필성 감독(6기), 이송희일 감독(10기) 등이 독립영화워크숍의 기반을 다졌고 마침내 지난 4월6일 독립영화워크숍은 창립 30주년을 맞이했다. 30주년을 기념하고자 낭희섭 대표는 영화공동체 윤중목 대표와 함께 그간의 역사를 간략히 정리한 <독립영화워크숍, 그 30년을 말하다>를 출간했다. 윤중목 대표는 현재 영화공동체와 문화그룹 목선재 대표를 겸임하며 영화공동체 정기상영 프로그램인 독립영화발표회를 매주 열고 있다. 뒤늦게나마 문화그룹 목선재 사무실을 찾아가 변방에서 분투 중인 두 영화인을 만났다.
-독립영화협의회의 독립영화워크숍을 30년간 홀로 운영해왔다. 이야깃거리는 많았을 텐데 출간이 의외로 늦었다.
=낭희섭_요즘 책
[flash on] 함께 배우고 만드는 과정의 소중함을 지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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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도시와 문화에 초점을 맞춰 지역 특정적인 단편들을 조명하는 유럽단편영화제가 5월15일(금)부터 25일(월)까지 서울 성북구 아리랑시네센터, KU시네마트랩에서 열린다. 제3회를 맞는 행사의 주제는 ‘유럽, 50개의 시선’이다. 유럽의 29개국, 48개 도시에서 온 50편의 단편영화가 상영된다. 프로그램은 사랑, 청춘, 가족 등 소재별 총 8개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개막작은 이탈리아 볼로냐 지역의 <마틸드>다. 소녀 마틸드는 선생님의 강의에 집중하려 애쓰지만 산만한 분위기 때문에 집중이 쉽지 않다. 친구들이 어울리는 쉬는 시간이나 하굣길에도 그녀는 늘 혼자서 무언가에 열중한다. 그녀가 한 행동의 의미는 뒤늦게 드러난다. 영화가 품고 있는 작은 반전은 누군가의 상황을 이해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하는 깨달음을 준다. ‘삶을 꿈꾸다’ 섹션의 <파란 교복>은 터키의 한 초등학교 교실을 찾아간다. 교실에서는 연대에 관한 수업이 한창인데 알리는 창밖만 바라본다
[영화제] 낯선 배경의 낯익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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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리우에서 쓰레기를 뒤지며 살아가던 열네살 소년 라파엘(릭슨 테베즈)과 가르도(에두아르도 루이스)는 쓰레기 더미에서 지갑 하나를 발견한다. 기쁨도 잠시, 거물 정치인의 비리를 밝혀낼 단서가 들어 있는 지갑을 찾고자 경찰들이 들이닥치고 소년들은 지갑의 비밀을 직접 풀기로 결심한다.
앤디 멀리건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하는 <트래쉬>는 옳은 일을 당연하게 해나가는 영화다. 나 혼자 발버둥친다고 달라질 게 없음을 이미 뼈저리게 절감할 때, 우리는 침묵하는 법부터 배운다. 스티븐 달드리 감독은 이 점이 답답했나 보다. <빌리 엘리어트>(2000), <디 아워스>(2002),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2008) 등 전작에서 그는 단 한번도 섣불리 판단하거나 결정지은 적이 없다. 오히려 딜레마를 불러올 상황으로 인물을 몰아넣고 그 흔들림을 관찰하는 쪽에 가까웠다. 하지만 <트래쉬>의 스티븐 달드리는 다른 사람이라도 된
옳은 일을 당연하게 해나가는 긍정과 희망의 동화 <트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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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뭇타와 동생 히비토의 어린 시절 꿈은 우주비행사였다. 뭇타는 일본에서 ‘도하의 비극’으로 기억되던 1993년 10월28일에 태어났다. 1994년 미국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두고 열린 아시아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일본이 이라크에 경기 종료 직전 동점골을 허용하면서 월드컵 진출이 좌절된 날이다. 나라가 탄식에 빠진 날에 태어난 탓에 “늘 불운이 따른다”고 믿으며 자란 뭇타. 그로부터 3년이 지난 뒤인 1996년 9월17일. 야구선수 노모 히데오가 메이저리그에서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영광의 날”에 태어나 늘 여유롭고 자신감이 넘치던 히비토. 세월이 흘러 29살이 된 히비토는 미항공우주국(NASA) 소속 우주비행사가 됐다. 31살 뭇타는 지방으로 좌천된 자동차 회사 직원이 되었다.
<우주형제 #0>는 만화 <우주형제>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이다. 고단샤의 만화 잡지 <모닝>에서 2008년부터 연재 중이다. TV애니메이션은 2012년 4월부터 201
꿈과 용기를 잃지 않는 두 형제의 감동 애니메이션 <우주형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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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엔터테인먼트>에서 방송된 시트콤 중에 <우리집 아이들>(Outnumbered)이라는 작품이 있다. 부모보다 아이들의 수가 많다는 의미에서 ‘아웃넘버드’라는 원제를 가지고 있는 이 시트콤은 천방지축 3남매와 부모의 일상을 다루고 있다. 독특한 점은 아역배우들에게 할당된 대사의 상당 부분이 그들 각자의 애드리브에 의존했다는 것인데, 이 시트콤을 보고 나면 어른 작가들이 차마 발견하지 못한 일상의 편린들을 어린이들이 얼마나 재치 있게 포착해내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해피 홀리데이>는 시트콤 <우리집 아이들>의 크리에이터 앤디 해밀턴과 가이 젠킨이 연출과 시나리오를 맡은 가족 드라마다. 시트콤을 통해 다뤘던 소소한 가족의 일상을 보다 긴 드라마로 확장하고 싶었던 두 작가는 <우리집 아이들>이 그렇듯 짜임새 있는 시나리오와 재기 넘치는 애드리브를 섞어 <해피 홀리데이>를 만들었다.
위기의 부부, 아비(로저먼드 파이
위기의 부부와 3남매의 좌충우돌 휴가 <해피 홀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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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 노아 바움백 감독은 뉴욕에 사는 사람들의 속성을 꼬집는 데는 일등이다. 이혼한 중년 부부의 모순이 고스란히 드러난 <오징어와 고래>(2005)의 현실 밀착형 코미디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프란시스 하>(2012)에서 집을 찾는 20대 여성의 독특한 유머 코드가 낯설지 않았다. <위아영>에서는 20대와 40대라는 두 전작의 인물들을 한자리에 등장시킨 것 같은데, 각각 독립된 영화에서 등장할 때보다 이렇게 둘을 모아놓고 보니 모순과 단점이 확연하게 드러나 그 충격 효과가 꽤 크다.
40대 부부의 직업은 영화인이다. 다큐멘터리 감독 조쉬(벤 스틸러)와 그의 아내이자 제작자인 코넬리아(나오미 와츠). 명성과, 부, 문화적 소양을 갖춘 이들에게 없는 건 아이와 지지부진하게 늘어지는 신작 소식이다. 20대 커플 제이미(애덤 드라이버)와 다비(아만다 사이프리드)는 힙스터다. 브루클린을 중심으로 힙한 패션을 소화하고, 힙한 모임을 즐겨하며, 자유로운 영혼
격세지감의 씁쓸한 블랙코미디 <위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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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전국의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일명 일제고사) 시험이 치러졌다. 일부 교사들은 이런 시험이 아직 어린 학생들에게 과도한 성적 경쟁을 부추기는 것이 아닌가 회의를 품는다. 교사들은 이러한 문제점을 학생들과 나누고 응시를 원치 않는 학생은 대체수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그 결과 학생 중 일부는 대체수업을 선택한다. 교육부는 일제고사를 치르지 않을 수 있게 한 교사에게 파면, 해임 등의 중징계를 내린다. 해직교사들은 교육부의 지침에 따라 아이들과의 작별인사 기회마저 박탈당한 채 학교에서 내쫓기는 신세로 전락한다.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은 석달 후 있을 아이들의 졸업식을 지켜보지 못할 것이 마음 아프다.
<죽은 시인의 사회>(1989)의 키팅 선생은 26년이 지난 지금도 참스승의 표본으로 세간에 각인되어 있다. 키팅 선생은 학교의 방침보다 학생들을 위한 교육이
21세기 한국 사회의 키팅 선생들의 이야기 <명령불복종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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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리는 (일본) 도호쿠 지방의 작은 마을입니다”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리틀 포레스트> 시리즈는 고모리에 사는 이치코(하시모토 아이)의 사계절 자급자족 생활을 담고 있다.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원작 만화를 충실히 영화로 옮긴 <리틀 포레스트2: 겨울과 봄>은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2014)의 속편. 계절별로 한편의 드라마가 완성되고, 두 계절의 이야기는 하나로 묶인다. 시리즈를 관통하는 서사는 ‘내 손으로 농사지은 작물로 나만의 레시피를 완성해간다’이다. 거기에, 이치코에게 말도 없이 집을 떠난 이치코 어머니의 이야기가 끼어들고, 도시의 삶에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온 이치코의 이야기가 또 양념처럼 더해진다. 겨울편의 첫 번째 요리인 생크림 크리스마스 케이크엔 엄마의 레시피와는 다른 ‘이치코만의 레시피’가 완성되어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 얼린 무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선 “날씨가 춥지 않으면 만들 수 없는 것도 있다”는 계절의 고마움을 들
나만의 레시피가 완성되어가는 과정 <리틀 포레스트2: 겨울과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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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식(손현주)은 승승장구하는 강력반 반장이다. 그는 성공을 위해서라면 때로는 뒷돈을 받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곧 특급 승진을 앞둔 그는 회식 직후 홀로 집으로 돌아가던 택시 안에서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잠에서 깬다. 깨어났을 때는 이미 택시는 그가 전혀 모르는 길로 접어든 뒤다. 택시기사는 갑자기 강도로 돌변해 택시를 내달린다. 택시를 세우기 위해 창식과 괴한이 승강이를 벌인 끝에 택시가 외딴길에 멈춰 선다. 창식은 자신을 죽이려는 의문의 남자를 상대로 몸싸움을 벌이던 중 괴한이 자신에게 겨눴던 칼로 괴한을 찔러 살해한다. 창식은 승진을 위해 사건을 은폐하기로 하고 모든 증거를 지운 뒤 그곳에서 도망친다. 다음날 창식은 근처 공사현장에 설치된 고공 크레인 위에 매달린 괴한의 시체를 본다. 이로 인해 경찰청은 발칵 뒤집히고 사건의 범인을 체포하는 데 인력이 총동원된다. 최 반장은 수사망을 좁혀오는 동료들의 움직임을 불안한 시선으로 지켜보는 한편, 범인의 정체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악이 악을 낳는 악의 대물림 <악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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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인 블랙: 죽음의 천사> The Woman in Black2: Angel of Death
감독 톰 하퍼 / 출연 피비 폭스, 헬렌 매크로이, 제레미 어바인, 오클리 팬더가스트 / 수입 드림웨스트픽쳐스 / 배급 영화사 오원 / 공동배급 브리즈픽처스 / 개봉 5월28일
역대 영국 공포영화 흥행 1위 기록을 세운 <우먼 인 블랙>(2012)의 속편 <우먼 인 블랙: 죽음의 천사>는 1편의 주인공 아서 킵스의 이야기에서 40년을 건너뛴다. 의문의 사건이 벌어지는 공간은 다시금 버려진 저택 ‘일 마시 하우스’. 1941년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런던. 이브(피비 폭스)와 아이들은 전쟁의 공습을 피해 버려진 저택으로 몸을 숨긴다. 하지만 어둠이 내리면 검은 그림자가 아이들을 홀린다. 이브는 사라진 아이들을 찾기 위해 저택을 헤매고, 전쟁보다 더한 공포가 안개처럼 엄습해온다. <가디언>이 선정한 세계 5대 공포소설 중 하나인 수잔 힐의 동
[Coming Soon] 세계 5대 공포소설 원작 <우먼 인 블랙: 죽음의 천사> The Woman in Black2: Angel of De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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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한국 TV를 본 어느 유럽에서 온 외국인이 ‘한국은 게이 인권이 많이 보장된 국가 같다’고 말했다. 농담이 아니라 진담으로. 수많은 남성 예능들, 게이 패션으로 치장한 남성 아이돌의 떼군무가 구라파 파란 눈에 그리 보일 수도 있겠지 싶었다.
10년도 넘었다, 남성 예능들이 공중파를 장악한 게. 하긴 예능뿐이랴. 영화, 드라마에서 여배우 중심의 서사는 드물어졌을 뿐만 아니라 여배우가 원톱으로 나오는 영화들은 졸지에 천연기념물 신세가 됐다.
IMF 직후 집중 조명된 아버지들의 ‘눈물’은 남성 대서사시의 서문 격이었다. 이후 TV와 영화, 잡지 등 한국의 거의 모든 매체들은 경쟁적으로 남성의 서사를 재구축해왔다. 남성들이 아기를 돌보고, 함께 여행을 하고, 요리를 하고, 남자의 자격증을 따고, 연애와 결혼에 대해 훈수를 두고, 자아를 찾는 이 기나긴 서사의 여정은 지난 한반도 역사에는 남성이 아예 없었다는 듯 마치 한풀이처럼 계속 이어져왔다.
서사시의 역사가 그렇듯, 한
[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혐오와 억압으로 쓴 남성 대서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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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시절, 아니 고등학생 시절까지 연결되는 추억 중에 일명 ‘책차’가 있다. 자그마한 크기의 빛바랜 베이지색 차에는 책이 가득 실려 있었고, 그 책들은 주로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와 같은 베스트셀러이거나, 만화이거나, 세계문학 전집류가 아니라면 무협지였다. 중간고사가 끝나면 내가 받게 되는 선물이 밤을 새워 무협지를 읽을 수 있다는 거였다. 김용 작가의 <대륙의 별>(원제 <천룡팔부>), <아! 만리성>(원제 <소오강호>) 같은 작품들을 이부자리 옆에 쌓아놓고, 한권씩 격파해나갔다. 그 책들의 종이 냄새와 새벽 3시10분을 가리키는 탁상시계의 바늘이, 지금도 또렷이 생각난다. 난 그때 무언가로부터, 초인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tvN에서 매주 금요일 단 1회씩 방송되는 <초인시대>. <SNL 코리아>의 ‘극한직업’ 코너를 통해 청춘의 대변자로 자리매김한 유병재가 각본을 쓰고, 직접 주연까지 맡은
[김호상의 TVIEW] 아픈 청춘의 적나라한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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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오미 와츠의 필모그래피는 과감한 선택의 연속들로 채워져 있다. 한두편은 우연이라 할 수도 있고 배우의 짧은 변덕이라 여길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나오미 와츠는 그런 단계를 넘어섰다. 특히 2011년의 <J. 에드가>(감독 클린트 이스트 우드)를 시작으로 <더 임파서블>(감독 J. A. 바요나), <투 마더스>(감독 앤 폰테인), <다이애나>(감독 올리버 히르비겔), <버드맨>(감독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세인트 빈센트>(감독 테오도어 멜피), <위아영>(감독 노아 바움백)으로 이어지는 그녀의 도전들은 자신만의 뚜렷한 색깔을 스스로에게 부여한다. 여기에 <멀홀랜드 드라이브> <21그램> <킹콩> <이스턴 프라미스> <퍼니 게임> 등 이전 대표작까지 포함하면 그녀를 할리우드에서 가장 인상적인 필모그래피를 가진 40대 여배우로 꼽아도 무리가 없을
[나오미 와츠] <위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