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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에서 살아가는 두 여자가 있다. 종종 발작을 일으키는 자영(박명신)은 가족들이 이민을 떠나기 전에 한번이라도 아들을 만나고 싶어 하고, 자살을 시도한 적 있는 초희(류혜린)는 얼마 전 임신 사실을 확인한다. 어떻게든 병원에서 나가고 싶었던 두 사람은 우여곡절 끝에 탈출에 성공한 뒤 잠시나마 서로 힘을 합치기로 한다. 자영과 초희는 일단 자영의 남편이 일하는 ‘부곡 하와이’로 향하지만 이들의 여행에는 예상치 못한 일들이 발생하고, 병원장은 두 사람을 잡기 위해 해결사까지 고용한다.
하강훈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부곡 하와이>는 조금 특별한 사연을 가진 두 여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로드무비로,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는 설정과 전개를 가진 영화다. 서로 다른 성격의 두 주인공이 처음에는 싸우다가 몇몇 사건을 계기로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 이야기가 그렇고,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때로는 도움을 받고 때로는 고통을 받는 에피소드들이 그렇다. 즉, <부곡 하와이>
특별한 사연을 가진 두 여자의 병원 탈출기 <부곡 하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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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앞두고 있는 주희(하나경)에게 친구 선미(구지성)는 진정한 만족을 느낄 수 있다며 ‘핑크터치’라는 마사지숍을 소개해준다. 마사지로 성적 쾌감에 눈뜬 주희는 예비신랑 민우(황찬우)에게 끓어오르는 성욕을 표출하기 시작한다. 주희의 성욕에 점점 피폐해지는 민우는 선배 준석(이재혁)의 조언을 받으며 그녀를 만족시켜주기 위해 노력한다. 한편, 주희의 아버지 또한 섹스 고수를 만나 아내에게 잡혀 사는 삶을 청산하려 애쓴다. 미약하게 존재하는 서사는 영화라는 형식을 위한 핑계일 뿐. <터치 바이 터치>는 보여주기 위한 신만 있는 섹스영화다. ‘핑크터치’라는 마사지숍의 비밀에 호기심이 일지만, 기실 그 소품은 여주인공의 성욕을 증폭시켜준다는 것만으로 모든 역할을 완료해버린다. 구실이 생겼으니 이제 보여줄 때다. 시도 때도 장소도 가리지 않는 섹스 신이 이어지고, 포르노에 가까운 앵글과 접사, 한 화면에서 동시에 여러 각도로 보여지는 분할된 컷들은 최선을 다해 영화의 목적에 매진한
보여주기 위한 섹스영화 <터치 바이 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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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개구리 빌리(엄상현)는 청개구리들 사이에서 외톨이로 지낸다. 빌리는 점프도 수영도 심지어 벌레를 잡는 것도 무서워하는 ‘개구리답지 못한’ 개구리다. 유일한 친구는 날다람쥐 샌디(조현정)뿐이다. 열등감에 휩싸인 빌리는 자신이 사실 저주에 걸린 왕자일 거라는 엉터리 주술사 박쥐의 말을 듣고 공주와 키스를 하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
같은 제목의 세 번째 시리즈로 오인되지만 <빌리와 용감한 녀석들3>는 <빌리와 용감한 녀석들 3D>(2010), <빌리와 용감한 녀석들2>(2012)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빌리와 용감한 녀석들 3D>는 주인공의 이름이 빌리였고, 당시 유행하던 개그 크루의 이름을 따와 한국 제목을 만들었다. <빌리와 용감한 녀석들2>도 내용은 전편(?)과 전혀 관련이 없지만 같은 개그 크루가 더빙에 참여했기에 마케팅 편의상 제목을 똑같이 지은 것으로 보인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이 저연령층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
단순하지만 교훈이 있는 애니메이션 <빌리와 용감한 녀석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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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인 엄마의 통제에도 불구하고 어니(우정신)는 틈만 나면 보드를 타고 동네를 질주한다. 여동생 줄리아(이재현)는 그의 뒤를 쫓아 증거를 남겨 엄마에게 일러바친다. 친구 맥스의 집에 놀러간 어니는 발명가인 맥스 아빠의 작업실에서 몰래 따라온 줄리아와 실랑이를 벌이다 타임캡슐을 잘못 건드려 1억년 전 공룡시대에 도착한다. 티라노사우루스 타이라는 이들을 새끼 공룡으로 여기고 성심껏 보듬는다.
<다이노 타임>은 국산 애니메이션으로서 미국 공중파 방송 시청률 1위에 오른 <큐빅스> 시리즈를 제작한 토이온 스튜디오가 새롭게 내놓은 작품이다. 애초부터 세계 시장을 겨냥해 만든 <다이노 타임>에는 한국적인 요소가 거의 없다. 어니가 친구 맥스와 함께 공룡 박물관에 잠입해서 말썽을 피우는 영화 초반에서, 어니는 공룡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꽤 전문적인 지식을 늘어놓는다. ‘전국과학교사협회 추천’이라는 수식을 붙일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다만 학습적인
타임캡슐 타고 공룡시대를 탐험하다 <다이노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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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이 온 유럽을 호령하던 시대, 시저 황제는 행복하게 살고 있던 골족의 숲에 신들의 전당이라 불리는 주거단지를 지어 세를 넓히려 한다. 골족 전사인 아스테릭스와 오벨릭스는 건설을 방해하지만 결국 신들의 전당은 완공되고 로마인들은 이주한다. 시저 황제는 이 기회에 골족을 뿌리뽑으려 군대를 보내고, 마법의 물약마저 빼앗긴 그들은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1961년 발매 후 현재까지 3억여권이 넘는 판매 부수를 기록하고 수차례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프랑스의 국민 만화 <아스테릭스>가 원작. 여전히 유쾌하고 풍자적인 3D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했다. 유행에 민감한 로마인들은 분양권을 따기 위해 줄을 서고, 저항하던 골족은 상권이 활성화되자 물건값을 올리고 급기야 로마 복식을 하고 신들의 전당에 입주하기에 이른다. 고대를 배경으로 했지만 현재와 치환해도 무리가 없는 광경이다. 그러나 시저의 군대에 맞서 다시 뭉친 골족이 숲을 탈환해낸다는 점이 현실과는 다른
유쾌하고 풍자적인 3D애니메이션 <아스테릭스: 신들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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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자마자 지하철역 10번 보관함에 버려진 아이. 이름도 1과 0에서 따와 일영(김고은)이다. 배고픔에 시달리던 아이는 낯선 세계 차이나타운에 들어선다. 그곳에는 정체를 알 길 없는 여인이 있다.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엄마’(김혜수)라고 부른다. 엄마가 이끄는 차이나타운은 매정하다. 이주노동자들의 밀입국을 도와 돈을 벌고, 돈을 갚지 않는 채무자는 장기 적출 ‘수술’까지 해서라도 돈을 받아낸다. 엄마의 원칙은 단 하나. 돈을 버는 데 쓸모 있는 인간만 식구로 거둬들인다. 일영은 그런 엄마의 세계를 보고 자란 아이다.
한준희 감독의 데뷔작 <차이나타운>은 한국형 범죄 누아르물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던 강렬한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다. 기존 영화에서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져온 돈과 권력의 파워 게임의 주체는 엄마로 대체됐다. 차이나타운의 실세인 엄마는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한 꺼풀 덜 보여주고 감정을 한번 식히고 들어가는 엄마 캐릭터는 극의 베이스 톤이
강렬한 여성 캐릭터를 앞세운 범죄 느와르 <차이나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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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상견례>(2011)에서 전라도와 경상도로 찢어졌던 로미오와 줄리엣이 다른 앙숙 집안에서 되살아났다. 강력반 형사 아버지 만춘(김응수)이 이끄는 경찰 집안의 막내딸 영희(진세연)와 악명 높은 대도 집안의 외아들 철수(홍종현)가 그 주인공들이다. 경찰 집안에선 과학수사 팀원인 큰언니 영미(박은혜)와 형사인 둘째언니 영숙(김도연)이 만춘과 함께 영희를 지킨다. 철수는 부모인 전문털이범 달식(신정근)과 위조전문가 강자(전수경)로부터 벗어나 영희 옆에 당당히 서고자 경찰이 되려 한다. 달식과 강자는 대도의 명예(?)에 먹칠하려는 철수의 앞길을 막고, 도둑 집안 출신의 예비사위가 마음에 들지 않는 영희네 식구들까지 그들 계획에 가세해 철수와 영희 사이를 갈라놓으려 한다.
전편에선 ‘지역감정’이라는 소재를 코믹하게 굴리며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펼쳐 보였다. 하지만 <위험한 상견례2>는 매력적인 배우들을 데려다놓고 판타지 가득한 순정만화를 그려내는 데 대부분의 러
로미오와 줄리엣급 앙숙 집안이 되살아났다 <위험한 상견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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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0살의 앨리스(줄리언 무어)는 세 자녀의 어머니이자 대학에서 언어학을 연구하는 교수이다.누가 보아도 부러울 것 없는 삶이지만 앨리스는 최근 건망증이 부쩍 심해졌다는 것을 느끼고 병원을 찾은 뒤 자신이 조발성 알츠하이머 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는 가족과 슬픔을 나누며 자신이 자신으로 남을 수 있는 삶을 최대한 기억하려 하지만 어느새 자기가 병에 걸렸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 놓이고, 그만큼 앨리스의 시간은 짧아져간다.
리사 제노바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워시 웨스트모어랜드와 올해 3월 루게릭으로 세상을 떠난 리처드 글랫저 부부가 공동으로 연출한 <스틸 앨리스>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환자의 ‘평범한’ 일상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영화이다. <아이리스>(감독 리처드 에어, 2001) 등 알츠하이머병을 소재로 한 다른 영화가 먼저 떠오르기도 하지만 두 감독은 이 작품에서 주인공의 극적인 상황을 강조하는 대신 차분한 호흡으
단순한 이야기에 우아한 무늬를 새겨넣다 <스틸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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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시카고 역사에 대한 책을 쓰려던 존 말루프는 우연히 동네 경매장에서 15만장의 네거티브필름이 담겨 있는 박스를 구입한다. 그런데 그가 별생각 없이 구입한 이 박스에는 20세기의 거리 풍경이 담긴 매혹적인 사진들이 담겨 있었다. 직업은 사진작가, 이름은 비비안 마이어. 15만장의 필름을 남긴 이 사람은 누구이며, 그녀는 왜 자신이 기록한 이 수많은 사진들을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았을까.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는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을 처음으로 발견한 존 말루프 감독이 <볼링 포 콜럼바인>(2003)의 프로듀서 찰리 시스켈과 함께 그녀의 흔적을 뒤쫓는 영화다. 역사작가이자 벼룩시장에서 예상치 못한 물건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자주 누려왔던 존 말루프 감독은, 수집가적인 기질을 살려 비비안 마이어에 대한 단서를 사려 깊게 채집해나간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건 비비안 마이어라는 인물의 미스터리한 면모다. 당대 여성들과 달리 남자들이 입을 만한 셔츠를
우연한 발견의 즐거움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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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Spy
감독 폴 페이그 / 출연 멜리사 매카시, 주드 로, 제이슨 스타뎀 / 개봉 5월21일
CIA에 최대의 위기가 닥쳐온다. 핵무기 밀거래를 추진하던 마피아들에게 요원들의 신분이 모두 노출된 것. CIA는 마피아들이 미처 알지 못하는 내근 요원 수잔(멜리사 매카시)을 현장에 투입해 핵무기 밀거래를 막으려 한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엄청나게 진지한 스파이 액션영화라 짐작하기 쉽지만, 오해는 금물이다. 이건 눈물 쏙 빠지게 웃긴 코미디영화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을 연출한 폴 페이그의 신작이기 때문이다. 영화 평점 사이트 ‘메타크리틱’에서 84점의 높은 점수를 기록한 이 작품은 코미디 배우 멜리사 매카시(<내 여자친구의 결혼식> <행오버3> 등)의 커리어를 통틀어 “가장 웃기고 다재다능한”(<버라이어티>) 연기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드 로가 CIA 최고 요원 브래들리 파인으로, 제이슨 스타뎀이 최고가 되
[Coming Soon] 색다른 스파이가 온다 <스파이> S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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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1차대전의 패배로 식민지를 모두 잃고 거대한 전쟁배상금을 빚져 만신창이가 된 채 대공황 시대를 맞았다. 나치가 급부상한 배경이다. 군사적 전체주의와 순혈주의, 그리고 극우 민족주의는 2류 시대를 지나는 공동체의 풍경이며 열패감의 거울상이었다. 더 우월한 것을 쫓기보다는 더 열등한 것을 찾아 위안받는 쪽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훨씬 편리한 치유방법이기 때문이다. 냉전 이후 네오나치즘이 제1세계의 저소득층과 자본주의의 위력 앞에 급작스럽게 노출된 공산권 국가를 중심으로 떠오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에 등장한 ‘일베’는 변형 나치즘에 가까워 보인다. “여자들이 지나치게 보호받고 있다. 남자가 역차별당하고 있다. 무능한 여자들이 사회의 요직을 가져가려 한다. 여자는 남자의 피를 빨아먹는 기생충일 뿐이다. 이 나라는 우리 남자들의 것이다!” 차별이 공상적 피해의식으로 전화되는 현상은 하나의 공식과도 같다. ‘여자’를 ‘유대인’으로, ‘남자’를 ‘독일인’으로 바꾸면 빼거
[손아람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일베여, 세계로 뻗어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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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일, 주당 최소 133시간 근무에 요리, 언어, 운전, 교육 등 다양한 자격이 필요함. 휴가는 없고 휴일에는 더 많은 업무가 주어짐. 연봉으로 환산하면 3천만원이네, 4천만원이네 하며 가끔씩 언론에서 언급하지만, 사회에서 동등한 노동력으로 인정되기는 아직도 갈 길이 아주 먼, 심신이 고단한 바로 그 직업.
‘격한 공감 엄마 예능’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tvN에서 방송되고 있는 프로그램, <엄마사람>은 바로 그 직업인 ‘엄마’를 다룬다. 세명의 연예인 엄마가 출연한다. ‘투투’의 황혜영, ‘쥬얼리’의 이지현, 그리고 ‘만능MC’였던 현영. 그들은 연예인의 모습을 벗고 화면에서 민낯으로 시청자와 만난다. 하지만 우리와 굳이 눈을 마주치려고 하지도, 감정을 공유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들의 아이들과 함께하는 극히 평범한 삶의 순간을 우리와 공유한다. 아이를 재우고, 씻기고, 유치원 보내고, 짬짬이 식은 국에 만 밥을 입에 옮기고, 가끔은 과도하게 행복한 표정으
[김호상의 TVIEW] 엄마들이여 여기로 모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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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 조발성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스틸 앨리스>의 앨리스에게서 사라지고 있는 건 몸이 아닌 기억이다. 기억을 잃는다는 건 곧 지나온 시간의 상실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녀에겐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그저 자신이 쌓아온 시간이 무너져내리는 걸 허망하게 바라볼 뿐. 앨리스는 유능한 언어학자로서 누구보다 언어의 조탁에 관심을 기울여왔고, 남편과 세 아이를 둔 엄마로서도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불행은 앨리스를 비껴가지 않았고 되레 그녀 안으로 깊숙이 침투해 들어간다. 처음에는 저녁 약속을 깜빡하는 수준이었지만, 이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가늠하지 못하게 됐고, 마침내 가족과 자신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누구인지도, 무엇을 더 잃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는 앨리스는 이 말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잘 안다. 하지만 머지않아 앨리스는 자신이 이런 말을 했다는 사실조차 잊게 될 것이다. 기억의 삭제, 자아의 상실이란 얼마나 비극적인
[줄리언 무어] <스틸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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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15 <앨리스: 원더랜드에서 온 소년> <위험한 상견례2>
2011 <정글피쉬2: 극장판>
2010 <귀>
2009 <바다 쪽으로 한 뼘 더>
2008 <쌍화점> <연인들> <헤이, 톰>
드라마
2014 <마마> <드라마 스페셜-내가 결혼하는 이유> <여자만화 구두>
2013 <연애조작단: 시라노>
2012 <전우치> <난폭한 로맨스> <친애하는 당신에게>
2011 <드라마 스페셜 연작 시리즈-화이트 크리스마스> <뱀파이어 아이돌> <무사 백동수>
2010 <정글피쉬2> <오! 마이 레이디>
2009 <맨땅에 헤딩>
말수는 적은 편이지만 한마디 할 때마다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게 만드는 사람. 긴장한 건지 무뚝뚝한 건지 표정에도 말투에도 크게 감정
[who are you] 홍종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