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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놈: 인류의 시작>은 500만원 저예산의 황당무계 병맛 SF <숫호구>에 이은 백승기 감독의 두 번째 무모한 도전의 결과다. 백 감독의 아바타라 할 만한 배우 손이용이 주인공으로 나섰다. 순제작비 1천만원으로 네팔 해외 로케까지 섭렵한 대담함에 감탄케 된다. 전작에 비해 상당한 내적 진화를 이루어낸 작품성에도 허를 찔린다.
최초의 신인류 ‘놈’이 등장해 삶의 기쁨과 슬픔, 열정과 쾌락, 생사의 이치를 체득해가는 과정은 대사 하나 없이 진행된다. 선사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언어 이전 감각과 본능의 세계를 다룬다. 그렇기에 영화는 대사보다는 몸짓, 움직임에 주목한다. 싸구려 발음의 황당한 영어 내레이션으로 진행되는 서사에는 사실 특별한 면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표정과 신체의 활용, 유머에 대한 명민한 직관을 통해 강력한 흡인력을 발휘한다. 슬랩스틱 코미디를 연상시키는 형식은 가장 조악한 조합을 통해 기이하게도 무성영화적인 노스탤직한 아
인류가 시작된 건 다 너 때문이다, 시발(始發)놈아! <시발, 놈: 인류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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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뉴욕의 사교계, 음악을 사랑하는 상속녀 플로렌스 포스터 제킨스(메릴 스트립)가 자신이 설립한 베르디 클럽에서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오페라의 오랜 팬이자 자신에게 음악적 재능이 있다고 믿고 있는 그녀는 훌륭한 오페라 가수를 꿈꾼다. 하지만 그녀는 심각한 수준의 음치다. 매니저이자 남편인 싱클레어 베이필드(휴 그랜트)를 중심으로 주변의 인사들은 이 사실을 철저하게 숨긴 채 그녀가 자신의 꿈을 향해 최선을 다하도록 배려한다. 새로 선발한 젊은 피아니스트 코스메(사이먼 헬버그)와의 연습이 이어지던 어느 날, 플로렌스가 돌연 카네기홀에서 공연하고 싶다고 선언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 공연은 플로렌스에게 인생 최대의 도전이 되지만 싱클레어에게도 그 점은 마찬가지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플로렌스>의 이야기는 이미 한 차례 각색된 적이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참신함을 잃은 소재인지 모른다. 하지만 실화와의 거리로 보자면 이번 영화는 2015년작 <마가렛트
1%의 재능과 99%의 자신감 <플로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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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미용실에서 야메 성형시술을 해오던 미경에겐 서울에서 사시공부에 매진 중인 아들이 유일한 보람이다. 어느 날 아들 집 수도요금이 120만원이나 나오자 그녀는 특유의 촉이 발동해 신림동으로 상경한다. 찌든 고시생들이 모여 사는 허름한 아파트, 한달전 이곳에서 뭔가 수상한 일이 일어났음이 틀림없다. 음습한 관리실과 미심쩍은 이웃집을 활개치고 다니며 미경은 조금씩 사건의 윤곽을 그려나간다. 이렇게 호기심 많은 아줌마 탐정의 <그것이 알고 싶다> ‘수도요금의 비밀’ 편이라 할 만한 생활밀착 스릴러영화가 전개된다.
남다른 촉과 특유의 뻔뻔함을 지녔지만 왠지 모르게 정이 가는 엄마 역에는 배우 박지영이 나섰다. 사건조사를 핑계로 희망을 저당잡힌 청춘들의 사연을 들어주는 오지랖 넓은 왕엄마 스타일에 꽤나 잘 어울린다. 새빨간 하이힐에 화려한 원피스 차림은 미경이 품은 촌스러우나 섹시함을 잃지 않은 아줌마 카리스마를 제대로 살려냈다. 영화는 굳게 닫힌 현관문 안에 고립된 채 30
여자의 직감, 아줌마 파워, 남다른 '촉'이 발동한다! <범죄의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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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도에 자리잡은 한진중공업 조선소. 그곳 노동자들의 투쟁사를 기억할 것이다. 2003년 사쪽의 대량 해고에 맞서 김주익 노조위원장이 크레인에 올랐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동료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봐야 했던 노동자 곽재규 역시 세상을 등졌다. 2010년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또다시 크레인 위에 올랐다. 그는 309일이 지나고서야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지금도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투쟁은 현재진행형이다. 김정근 감독의 두 번째 다큐멘터리 <그림자들의 섬>은 이 길고 험한 투쟁의 역사를 몸으로 기억하는 이들의 구술사에 가깝다. 카메라 앞에 앉은 김진숙 지도위원과 한진중공업 노조원들은 그들 각자가 기억하는 한진중공업을 육성으로 전한다. 1980년대 중·후반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는 노동조합의 현황이 전해진다. 그 사적 기억과 맞물리며 영화는 한진중공업 노동조합 운동과 관련된 사진과 기사들을 정리해나간다. 시기별 중요쟁점들이
섬처럼 살아온 이들이 주체로서 말하고 외치는 98분의 시간 <그림자들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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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재선 선거운동이 한창일 무렵, 미국 <CBS>의 시사프로그램 <60분>의 프로듀서 메리(케이트 블란쳇)는 부시가 베트남전 징집을 피하기 위해 주 방위군에 ‘청탁’으로 입대하고, 복무 기간 동안 여러 특혜를 받았다는 제보를 받는다. 진위를 파헤치기 위해 메리는 팀원, 그리고 <CBS>의 간판 앵커 댄(로버트 레드퍼드)과 함께 증거들을 찾아나서고, 결정적인 증거와 함께 특종을 터뜨리며 주목받는다. 하지만 곧 그 증거가 거짓이라는 주장이 인터넷을 달구기 시작하고, 메리가 좌파 편향의 오보를 한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벼랑 끝에 몰린 메리와 팀원은 결국 진상위원회 조사까지 받게 된다.
<트루스>는 베테랑 프로듀서 메리 메이프스의 회고록 <진실과 의무: 언론, 대통령, 그리고 권력의 특권>을 바탕으로 그녀가 겪었던 실화를 다룬 영화이다.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의 가장 큰 단점은 ‘스포일러’가
위대한 뉴스를 위하여 <트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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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신인감독’ 프랑수아 트뤼포는 할리우드의 거장 앨프리드 히치콕에게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편지를 쓴다. 히치콕은 흔쾌히 승낙하고 트뤼포는 미국으로 건너가 일주일간 이어질 인터뷰를 시작한다. 이날은 히치콕의 생일이기도 한 1962년 8월13일이었고, 그로부터 4년이 지난 뒤 두 사람의 대화는 <히치콕/트뤼포>라는 책으로 출간된다(한국 제목은 <히치콕과의 대화>). 이 책이 히치콕과 트뤼포의 팬은 물론 수많은 시네필과 영화감독들, 나아가 영화비평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약 50년의 시간이 흐른 뒤, 영화평론가이자 뉴욕영화제 등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해온 켄트 존스 감독은 <카이에 뒤 시네마>의 전 편집장이자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총감독이었던 세르주 투비아나와 함께 <히치콕/트뤼포>를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를 만든다. 이 영화를 구성하는 요소는 크게 세 가지다. 히치콕과 트뤼포가 나눈 대화의 녹음 음성, 이들
그들이 남긴 위대한 이야기 <히치콕 트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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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아카데미(이하 아카데미, 현 원장 유영식)가 설립된 지 올해로 33년. 봉준호, 김태용, 최동훈 등 수많은 감독들이 아카데미를 거쳐갔다. 2007년부터는 정규과정에 더해 장편영화제작연구과정(이하 장편과정)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2010), 조성희 감독의 <짐승의 끝>(2010), 홍석재 감독의 <소셜포비아>(2014) 등이 장편과정을 통해 제작된 영화들이다. 장편과정 10주년을 맞아 올해 아카데미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과정 10주년: KAFA 十歲傳’을 준비했다(9월1일부터 4일까지 롯데시네마 월드타워,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KOFA에서). ‘KAFA 십세전’이 열리기 앞서, 장편과정을 통해 주목받은 젊은 감독들에게 만남을 청했다. 모두 이번에 상영되는 작품들의 감독들로 <장례식의 멤버>(2008)의 백승빈 감독, <짐승의 끝>의 조성희 감독, <이쁜 것들이 되어라>(2013)의 한
[스페셜] 젊은 감독들이 이야기하는 한국영화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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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EBS국제다큐영화제(이하 EIDF)가 8월22일(월)부터 28일(일)까지 일주일간 영화관과 EBS TV채널, 온라인-모바일 서비스 등 다양한 포맷을 통해 관객과 만난다. 경쟁부문인 ‘페스티벌 초이스’는 영화제의 핵심 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개별 작품에 관한 자세한 소개는 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올해는 여성감독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진 가운데 젠더 문제를 포함해 정상성과 편견에 맞서는 작품들이 포진해 있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다.
여기에서 다룰 작품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감독들의 낯선 영화들이다. 세계영화제에 소개된 화제작을 국내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월드 쇼케이스’ 부문과 ‘아시아의 오늘’ 부문에 낯익은 이름이 눈에 띈다. 우선 베르너 헤어초크다. <그리즐리 맨> <잊혀진 꿈의 동굴>의 베르너 헤어초크 감독은 지금도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주로 잊히거나 기억에서 밀쳐진 것들을 재발견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온 그의
[영화제] 제13회 EBS국제다큐영화제 추천작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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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파리, 니스, 생 에티엔 뒤 루브레, 독일의 안스바흐와 뮌헨…. 현재 유럽은 일주일이 멀다 하고 벌어지는 경악스러운 테러로 불안과 함께 어두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프랑스의 여러 도시에서는 매년, 바캉스를 떠나지 못한 시민들을 위해 야외 영화 상영 행사를 열었다. 하지만 니스 테러 이후 야외 영화 상영회는 안전상의 이유로 취소되거나 실내 행사로 대체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7월23일과 24일에 열릴 예정이었던 길거리 농구 대회도, 8월7일 예정되었던 샹젤리제의 차 없는 거리 행사도 취소되었다. 파리의 여름을 알리는 ‘파리 비치’(여름휴가 기간 센 강변에 개장하는 인공해변)는 삼엄한 경비 속에 가까스로 문을 열었다. 한편 지난해의 <샤를리 에브도> 총격 사건 직후, 이슬람 무장세력 집단에 잠입하는 프랑스 기자의 이야기를 다룬 니콜라 부기예프 감독의 <메이드 인 프랑스>(2015) 극장 개봉이 취소된 전례가 있는데, 올해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니스 테
[파리] 테러 이후 연달아 취소되는 문화 행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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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에는 두 부류의 동물이 살고 있다. 하나는 두발로 걷는 동물, 다른 하나는 네발로 걷는 동물이다. 전자는 인간을 닮고자 하고 후자는 실제 동물에 다가가 있다. 이러한 구분을 난감하게 하는 작품도 있다. 미키마우스와 플루토의 관계가 대표적이다. 초기의 미키마우스와는 달리 시간이 지나면서 미키는 점차 ‘사람-소년’으로 진화해왔다. 바지에 윗옷을 걸치고, 장갑을 끼고, 밤에는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 자고, 마침내 반려견으로 플루토를 거느리기에 이른다. 주인인 미키는 사람의 말로 명령을 내리고, 반려견 플루토는 멍멍거리며 따른다.
디즈니가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1937)에 이어, 두 번째로 준비한 장편애니메이션은 <밤비>(1942)였다. 라이브 액션의 배우처럼 인간 백설공주를 다루었듯이, 이제 <밤비>에서 동물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애석하게도 <밤비>는 중간에 치고 들어온 <피노키오>와 <판타지아
[나호원의 영화비평] 애니메이션에서 즐거움의 원천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마이펫의 이중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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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16 <올레>
2014 <빅매치>
2014 <순수의 시대>
2012 <런닝맨>
2012 <도둑들>
2011 <고지전>
2010 <페스티발>
2010 <퀴즈왕>
2008 <박쥐>
2008 <카페 느와르>
2007 <아들>
2007 <더 게임>
2006 <예의없는 것들>
2005 <웰컴 투 동막골>
2005 <친절한 금자씨>
2005 <박수칠 때 떠나라>
2004 <우리형>
2003 <지구를 지켜라!>
2003 <화성으로 간 사나이>
2002 <서프라이즈>
2002 <묻지마 패밀리>
2001 <복수는 나의 것>
2001 <킬러들의 수다>
2000 <반칙왕>
2000 <공동경비구역 JSA>
1999 <간첩 리철
[액터/액트리스] 능숙한 듯 서툴게 - <올레> 신하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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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로셀리니는 안나 마냐니에게 호기 있게 약속을 하나 했다. “다음 영화는 너의 경력에서 분수령이 될 거야.” 마냐니와 함께 <사랑>(1948)을 찍은 뒤였다. 그는 다음 영화가 화산섬에서 촬영될 거라는 아이디어만 밝혔다. 황무지에 가까운 척박한 땅, 외지인에 대한 폭력적 배타주의, 문명과 먼 원시적인 일상 등이 화산섬의 특성인데, 로셀리니는 바로 그것이 전후 패전국 이탈리아의 현실이라고 봤다. 마냐니는 그 섬을 배경으로 배타주의의 폭력에 저항하는 주인공을 맡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 역은 마냐니에게 가지 못했다. 알다시피 잉그리드 버그먼이 로셀리니에게 보낸 ‘유명한 편지’ 때문이다. 로셀리니는 자신과 영화를 함께 만들고 싶다는 할리우드 스타의 편지를 받자마자 미국으로 갔다. 그리고 그 역은 버그먼에게 돌아갔다. 로셀리니와 버그먼이 찍기로 한 화산섬이 바로 스트롬볼리이고, 걸작 <스트롬볼리>(1950)는 그렇게 탄생했다.
로셀리니와 버그먼, 스트롬볼리에
[한창호의 트립 투 이탈리아] 무명의 화산섬들, ‘영화의 섬’으로 변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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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환기 파리의 좋았던 시절을 뜻하는 ‘벨 에포크’는 JTBC 드라마 <청춘시대>의 연남동 셰어하우스 이름이기도 하다. ‘소심이’ 유은재(박혜수), ‘생계형 철의 여인’ 윤진명(한예리), ‘외모 센터’ 강이나(류화영), ‘연애 호구’ 정예은(한승연), ‘여자 신동엽’ 송지원 (박은빈) 등 홈페이지의 유형화된 캐릭터 소개는 우아한 건물주 할머니(문숙)의 여흥을 위해 구색을 맞춘 멤버처럼 보였으나, 우려와 달리 할머니는 자기 인생을 즐기는 데 여념이 없고 다섯명의 하우스메이트들은 첫인상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들은 인간관계에서 자발적으로 쓰는 가면과 거짓말을 통해 서로 보고 보여주는 면모가 인간의 전체가 아니라는 것을 거듭 확인한다. 또한 자기 삶의 궤도와 다른 궤적을 그리는 타인과 일시적으로 같은 시기, 한 공간에 있으면서 서로 비교하거나 선망하고 낮은 자존감 때문에 상대의 상을 일그러뜨리기도 하며, 때로 서로 자존심을 채워주는 역할을 알면서 주
[유선주의 TVIEW] JTBC 드라마 <청춘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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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허> Ben-Hur
감독 티무어 베크맘베토프 / 출연 잭 휴스턴, 토비 켑벨, 모건 프리먼, 로드리고 산토로 / 수입·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 개봉 9월 예정
영화 역사상 손꼽히는 대작이 다시 돌아온다. 이미 세 차례 영화화되었던 <벤허>의 세 번째 리메이크영화가 개봉한다. 줄기는 전작들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네 번째 <벤허>는 루 월리스의 동명 원작 소설을 가장 충실하게 각색했다. 서기 26년의 로마제국, 유대인 벤허(잭 휴스턴)는 예루살렘의 귀족이다. 어느 날 친구 메살라(토비 켑벨)가 예루살렘의 주둔 사령관으로 부임해오고, 메살라의 배신으로 벤허는 가족과 헤어져 5년간 노예로 참혹한 생활을 한다. 운좋게 노예 신분에서 해방된 벤허는 가족의 행방을 찾아나선다. 가장 관심이 높을 전차 경주 장면은 6개월간 고도의 훈련을 받은 90여 마리의 말을 데리고 촬영했다고 한다. 전작들과 비교해 얼마나 더 정교하고 화려한 전투 신을 보여주게 될지가
[Coming Soon] 용서와 화해의 서사시 <벤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