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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죽놀이 같은 영화만 있고, 쥐불놀이 같은 영화가 없네요 요즘.” 유해진은 <럭키>를 폭죽놀이처럼 화려하지 않은, 소박한 쥐불놀이 같은 영화라고 한다. <럭키>는 목욕탕에서 넘어져 기억상실증에 걸린 킬러 형욱(유해진)이 죽기를 결심한 무명배우 재성(이준)의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다. 아주 오랜만에 도착한 소소한 코믹 드라마의 반가움을 이끈 세 배우를 만났다. ‘유해진이라는 배우의 종합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연기를 선보인 유해진을, 색다른 연기 변신을 꾀한 이준, 조윤희가 탄탄하게 뒷받침한다. 마치 대학 영화 동아리처럼 서로 의논하면서 작업했다는 말처럼, 세 배우는 스튜디오에서도 그 끈끈함을 기분좋게 이어나가고 있었다.
[커버스타] 웃음의 힘 - <럭키> 유해진, 이준, 조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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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가 ‘최근 한국영화의 풍경’이란 이름으로 유의미한 도전을 보여준 한국영화와의 만남을 시도했다. 10월4일부터 마련된 기획전에서 관객과의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영화 다섯편은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 이요섭 감독의 <범죄의 여왕>, 김종관 감독의 <최악의 하루>, 김정근 감독의 <그림자들의 섬>, 연상호 감독의 <서울역>이다.
그리고 아직 개봉 전인 <우리 손자 베스트>도 상영된다. <우리 손자 베스트>는 <귀여워>(2004)와 <창피해>(2010)를 만든 김수현 감독의 신작으로 이번 기획전 중 ‘김수현 감독 특별전’으로 상영되는 작품이다. 김수현 감독의 중편 <연소, 석방, 폭발, 대적할 이가 없는>(2012)도 이번 기획전에서 볼 수 있다. 10월15일 오후 6시30분엔 <우리 손자 베스트> 상영 후 김수현 감독과 김성욱 프로그램 디렉터의
[인디나우] ‘최근 한국영화의 풍경’ 기획전 10월1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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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이 머레츠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신작에 캐스팅됐다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서스페리아>(1977)의 리메이크 작품이다. 틸다 스윈튼, 다코타 존슨, 미아 고스도 출연한다.
-디즈니가 <라이온 킹>을 실사화한다
=라이브액션 <정글북>의 존 파브로 감독이 연출을 맡는다. 기존 <라이온 킹>의 O.S.T도 활용될 예정이다. 개봉일은 미정.
-<인사이드 아웃>의 각본을 쓴 메그 르포브가 <자이언틱> 감독으로 데뷔한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자이언틱>은 동화 <잭과 콩나무>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으로, 거인족 소녀와 소년이 친구가 되는 이야기가 될 예정이다.
[댓글뉴스] 클로이 모레츠,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신작 캐스팅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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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벤허> 경주는 시작일 뿐이다!
[정훈이 만화] <벤허> 경주는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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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배운 것으로 졸업도 하지 못했지만, 이후 대학에 재학한 시간의 3배를 사회생활에 쓰면서 종종, 어쩜 이렇게 대학 때 배운 걸 써먹을 데가 없을까 생각하곤 한다. 그러다 문득 프랑스 요리점에서 주문할 때 서버를 놀래킬 수 있는 프랑스어다운 발음을 구사할 수 있다든가, <르몽드>의 트위터 계정을 팔로할 수 있다는 장점이 떠올랐고, 나아가 그 5년을 기점으로 취향의 축이 이동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내 세계를 구성한 소설과 음악의 성분은 영미권의 그것에 러시아의 풍미를 살짝 더한 정도였다. 대학에서의 시간은 주재료(영미권)를 바꾸지는 않았지만 프랑스적인 어떤 것을 확실하게 착
향시키는 데 성공한 것 같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몇 작가와 작곡가는 프랑스 사람이고, 그 것은 너무나 결정적이어서 내가 앞으로 100번 이사를 더 다닌다고 해도 버리지 않을 책과 음반들의 컬렉션 중심을 잡는다. 그중 하나만 예로 들면 발자크다. 작가로서의 발자크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상상 속에서 누리는 쾌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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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의 <자백>은 국가정보원의 간첩조작사건을 다루는 다큐다. 소셜 펀딩과 40개월에 가까운 취재 과정을 통해 완성되었다. 보통 이렇게 정치적 소재를 다루는 다큐를 볼 때면 조금 더 긴장한다. 소재의 민감성 때문이 아니다. 내가 편들고 싶어 하는 이야기라 해서 은연중에 영화의 함량에 대해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지는 않을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때보다 좀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보게 된다.
정치적 입장과 진영에 따라 영화를 보기도 전에 이를 지지해줄 준비가 되어 있는 팬덤 관객이 예정된 작품들이 존재한다. 책임감 있는 연출가라면 그런 경우일수록 작품의 함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분투할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렇지 않은 사례가 많았다. 어떤 소재를 다루어냈다는 용맹함과 연출가의 영웅심리만 남을 뿐 본질을 향한 사유는 정작 낡거나 얇고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 더 많았던 것이다. 이게 다 마이클 무어 탓이다. 선정성과 어긋난 비아냥만 가지고 다큐를 이끌어가는 잘
[허지웅의 경사기도권] 간첩조작사건 다룬 <자백>이 좋은 다큐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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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과격한 언행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었고, 그렇게 해서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에게 분노와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잘난 체하고 절제를 모르며,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페르소나를 가졌다.”
<광학적 미디어: 1999년 베를린 강의 예술, 기술, 전쟁>(이하 <광학적 미디어>)이라는 책의 서문 앞에는 미국의 미디어 역사학자 존 더럼 피터스가 쓴 ‘해제: 프리드리히 키틀러가 선사하는 빛의 향연’이라는 글이 실려 있다. 존경과 찬사로 채워지기 마련인 해제와 달리, 존 더럼 피터스는 프리드리히 키틀러가 얼마나 유별난 캐릭터를 지닌 학자였는지 거침없이 묘사한다. 그것은 흡사 키틀러의 본격적인 글을 읽다보면 종종 발견하게 되는 독설과 비아냥을 닮아 있다. 그러나 곧 눈치채게 될 것이다. 아마도 꽤나 키틀러와 절친해 보이는 존 더럼 피터스는 키틀러의 분노와 짜증을 유발하는 언변과 행동을 지적하면서도 다음의 말을 잊지 않는다. “우리는 이런
[스페셜] ‘시간을 공간화’ 할 수 있게 된 영화의 도전 - <기록시스템 1800·1900>, <광학적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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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영화 우화>(2001/2011), <이미지의 운명>(2003/2014), <영화의 간극>(2011, 국내 번역본 미출간) 등 여러 저작에서 영화를 논의했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그의 논의는 어떤 의미에서는 반영화적이다. 랑시에르의 주장은 영화가 여타 예술들과 엄밀히 구별되는 자율적 예술이고 영화의 자율성은 영화에만 고유한 물질적, 기술적, 미학적 본성에서 비롯된다는 통념에 도전하기 때문에 반영화적이다. 영화 이론의 역사는 바로 이러한 통념을 정립하기 위한 시도였다. 1920년대 프랑스 아방가르드 영화 담론은 영화의 본질을 카메라의 기계적 역량으로,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과 지가 베르토프는 몽타주로, 그리고 앙드레 바쟁과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는 물리적 현실을 구원하거나 보존하는 사진적 본성으로 정립하고자 했다.
보다 넓은 측면에서 이 주장들은 서구의 미적 모더니즘을 규정짓는 ‘매체 특정성 테제’(medium specificit
[스페셜] 이질성과 긴장의 비평적 지도 - <해방된 관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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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큐브릭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성공 이후 음모론자들은 이것이 TV를 통해 방영된 하나의 영화라고 보았다. 그리고 이 가설을 진지하게 밀어붙인 사람들은 그 영화의 연출자로 큐브릭을 지목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짐작하건대 현실의 것이 아닌 이미지를 그렇게 실감나게 연출할 수 있는 감독으로 큐브릭보다 더 나은 사람을 떠올리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에피소드에서 사람들이 큐브릭이라는 감독에 대해 갖고 있던 어떤 이미지를 추정해볼 수 있다. 큐브릭은 영상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세계를 실제처럼 보이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또는 그런 완벽한 이미지의 세계를 추구한 감독이었다.
하지만 <큐브릭: 그로테스크의 미학>(2007)을 쓴 제임스 네어모어는 큐브릭의 이런 대중적인 이미지가 큐브릭에 대한 어떤 오해를 발생시킨다고 말한다. 큐브릭이 지나치게 차갑고 냉정하며, 기계적 엄밀함만을 강박적으로 추구
[스페셜] 그가 영화를 통해 사회에 뿌린 불안의 씨앗 - <큐브릭: 그로테스크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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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중·후반, 한국에서 영화 비평이 영화 감상에 있어서 큰 비중을 차지한 시절이 있었다. 이전보다 훨씬 다양한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고, 한국영화의 질적 향상이 비약적으로 이뤄지던 그 시기, ‘문화’라는 화두가 사회 전면에 대두되던 그 시기에,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영화들에 대한 일종의 설명, 혹은 가이드가 필요했고 영화 비평은 그 어느 때보다 광범위한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20여년이 흐른 현재, 누구나 SNS를 통해 영화에 대해 말하고 쓰는 이 시대에는 영화 비평에 대한 무용론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예전에는 보다 전문적인 영역에서만 통용되어왔던 정보는 넘쳐나고, 공적인 지면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1인 미디어가 일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평의 영역, 혹은 그 효용은 과연 어디에서 그 존재 근거를 찾을 수 있을까. 노엘 캐럴의 저서 <비평 철학>은 정보의 홍수, 비평의 홍수 속에서 역설적으로 예술 비평의 중요성을
[스페셜] 비평, 어떻게 할 것인가 - <비평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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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오몽은 아마도 프랑스의 영화학자들 중 한국 관객과 가장 친숙한 인물일 것이다. 아마도 <영화 속의 얼굴>(2006. 마음산책 펴냄)을 많이 읽었겠지만, 그의 대표 저서 중 하나인 <영화미학>(2003, 동문선 펴냄)을 비롯해 <이마주>(2006, 동문선 펴냄), <영화와 모더니티>(2010, 열화당 펴냄), <영화감독들의 영화이론>(2005, 동문선 펴냄) 등 적잖은 책들이 번역되었다. 그중 가장 처음 선보인 저작은 <영화 분석의 패러다임>(1999. 현대미학사 펴냄)이었고, 17년 만에 <영화작품 분석>(2016. 아카넷 펴냄)이라는 제목으로 새 번역과 함께 재출간되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영화 분석의 방법론과 1934~88년 서구 학계에서 이뤄졌던 분석의 흐름을 살핀다. 혹시 자크 오몽이라는 대가의 이름과 책 제목에 현혹되어, “이 책 한권만 제대로 읽으면 영화 분석의 마스터가 될 수 있다”라
[스페셜] 장기전을 요하는 학습서 - <영화작품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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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네장의 사진 이미지로부터 시작되었다. 1944년 아우슈비츠 내, 비르케나우 5호 소각장의 존더코만도 멤버 중 알렉스라는 별칭으로 불리던 남자가 찍은 사진이 있다. 사진은 찍을 당시의 긴박함과 위험성을 알려주듯 초점이 정확하지 않은 먼 풍경의 이미지였다. 그러나 그 사진 속 저편에는 분명 가스실에서 쏟아져 나온 시체 더미와 소각장의 자욱한 연기, 발가벗은 채 죽음을 기다리는 여성들이 서 있었다(알렉스라고 알려진 이는 알베르토 에레라라는 남자로 추정된다. 그는 그리스 레지스탕스 당원으로 활동하다 붙들려 수감되었으며, 이후 벌어진 아우슈비츠 봉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지난해, 서구 비평계에서 가장 격렬한 찬반 논쟁을 자극한 영화 <사울의 아들>(2015)의 감독 라슬로 네메시는 여러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이 2001년 저널, ‘쇼아의 역사’가 발간한 특별호 <재에 묻힌 목소리>와 그 네장의 사진들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또 다
[스페셜] ‘극화’가 수반하는 재현의 윤리 - <어둠에서 벗어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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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영화를 보기엔 우리 삶이 너무 짧다.” 영화 사이트 뮤비(Mubi)가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론칭하면서 내건 자극적인 슬로건이다. 이 사이트가 제공하려는 영화들은 이른바 좋은 영화들, 말하자면 ‘에센셜 시네마’들이다. 일종의 정전(canon)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그 목록은 어떻게 결정될 수 있을까? 이미 우리는 다양한 비평가들의 목록들을 봤었다. 제임스 아제, 마니 파베르, 앙드레 바쟁, 폴린 카엘, 피터 보그다노비치, 앤드루 새리스, 로저 에버트, 조너선 로젠봄, 하스미 시게히코 등 유수의 비평가들의 목록들이 인터넷을 돌아다닌다. 영국영화협회(BFI), 미국영화협회(AFI), 프랑스 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 영국 잡지 <사이트 앤드 사운드>, <필름 코멘트> 등의 영화기관, 잡지가 선정한 조금 더 공식적인 목록들도 있다. 한국영상자료원이 꼽은 100편의 한국영화, 부산국제영화제가 꼽은 100편의 아시아영화들도 있다. 이는 최고의 영화
[스페셜] 어떻게 영화산업이 우리들의 목록을 제한하고 있는가? - <에센셜 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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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스미 시게히코의 <영화의 맨살>은 읽었고 지금도 읽고 있다. 아니, 대체로 읽었지만 어떤 것들은 전혀 모르겠고 어떤 것들은 인상 깊었으며 어떤 것들은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에 언제고 다시 읽으려고 연구실 책상에 책을 놓아두고 있다. 갑자기 읽고 싶으면 책을 들어 무작위로 읽다가 지치면 다시 놓아둔다. 때론 오후 내내 읽을 때도 있고 아니면 금방 피곤해져서 책을 덮을 때도 있다. 요컨대 이런 것이다. 하스미 시게히코가 특정 작품의 표면을 맹렬하게 훑으면서 풀어내는 생각지도 못했던 통찰에 압도당하기도 하지만, 도무지 끝날 줄 모르고 한없이 이어지는 문장을 읽다가 흐름을 놓쳐서 다시 앞으로 되돌아가 읽어도 알 듯 모를 듯 곤란해지는가 하면, 자기만의 영화론이 있는 사람 특유의 태도로 감독들을 위계적으로 평가하는 대목에서는 별로 동의하고 싶지 않아서 책읽기를 멈추는 식이다.
하스미 시게히코의 만신전에 들어갈 수 있는 감독들이나 작품의 수는 제한 돼 있다. 장 뤽 고다르는 되
[스페셜] 그의 문장에 새삼 반하다 - <영화의 맨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