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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등산객 무리를 이탈해 산속 깊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자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그의 뒤를 쫓는다. 울주서밋 2016 작품 <미행>은 산을 배경으로 한 추격물인 것처럼 보이지만, 전개될수록 이면에 담긴 사회적 맥락이 드러나는 중단편영화다. 국가권력 피해자의 유족이 산으로 숨어들어가자 말단 경찰이 그를 쫓는 내용은 최근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일들이 고스란히 떠오르는 이야기다. 나무에 걸린 노란 리본들, 그리고 아들을 가슴에 묻은 이정옥(조민수) 캐릭터는 세월호에 대한 강력한 은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준비할 때, 세월호 소재들의 영화가 많이 나오던 시기였다. 모두 바다로들 가니, 나는 ‘산으로 가는 세월호’를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산악영화라는 주제에 현 사회문제를 접목시킨 이송희일 감독의 말이다.
이송희일 감독은 “인간에게 산이란 어떤 공간인지”를 고민했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영화에서는 산이 사적인 치유의 공간으로 등장한다. 하지
[스페셜] 울주서밋 2016 작품 <미행> 이송희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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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렉>은 폴란드의 산악인 예지 쿠쿠치카의 삶을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가난한 사회주의국가의 노동계급 출신 산악인인 쿠쿠치카는 라인홀트 메스너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인물로, 1989년 로체 등반 중 산에서 최후를 맞이한 전설적인 산악인이다. 어린 시절 자신의 영웅이었던 쿠쿠치카를 스크린에 재현한 폴란드 출신인 파벨 비소크잔스키 감독은 성실하고 열의 넘치는 인터뷰이였다. 며칠 지나지 않아, 낭보가 들렸다. 인터뷰를 진행했던 파벨 비소크잔스키 감독의 <유렉>이 국제경쟁부문 대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었다. 수상에 축하를 보내며, 그와 울주에서 나누었던 대화를 지면에 싣는다.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 대한 인상은 어떤가.
=서울엔 전작 다큐멘터리 <언젠간 행복할 거야>로 EBS국제다큐영화제(EIDF)에 초청받아 왔었고, <유렉>에 나오는 산악인 허영호를 인터뷰하러 오기도 했었는데, 울주는 처음이다. 영화제에 대한 인상은
[스페셜] 울주세계산악영화제 국제경쟁부문 대상 수상한 <유렉> 파벨 비소크잔스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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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에 산악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 떴다. 고향인 이탈리아 볼차노에 메스너 산악 박물관이 설립될 정도로 저명한 산악인인 라인홀트 메스너는 1978년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무산소로 등정한 후, 낭가파르바트 단독 등정, 1986년 로체 등정에 성공함으로써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한 인물이다. 또한 그는 <검은 고독 흰 고독> <벌거벗은 산>을 비롯한 60여권이 넘는 저서를 쓴 작가이자, 영화 <운명의 산: 낭가파르밧>(2010)의 실화 속 주인공이기도 하다. 첫 내한해 제1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를 방문한 라인홀트 메스너를 만났다.
-어떻게 그 수많은 기록을 세울 수 있었나.
=나는 정말 평범한 사람이다. (웃음) 하지만 나는 계속 시도했고,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며 무릎을 꿇어야 했을 때도 또다시 일어났다. 물론 운도 따랐다. 산악인들 중 나보다 실력이 좋은데도 불구하고 산에서 죽음을 맞이한 분들이 많다. 최고의 산악가 중 60
[스페셜] 울주세계산악영화제 방문한 ‘산악계의 살아 있는 전설’ 라인홀트 메스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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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에서 국내 최초의 국제산악영화제인 제1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가 열렸다. 산악영화제라는 개념은 다소 생소해 보이지만, 여느 국가보다 아웃도어 시장이 넓고 등산을 사랑하는 이들이 많은 한국이라면 그 미래는 꽤 낙관적이지 않을까?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제1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엔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은 관객이 문전성시를 이뤘고, 산악계의 거성 라인홀트 메스너가 등장할 때마다 아이돌급의 환호성이 뒤따랐다. 물론,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의 발걸음도 이어져 23회차 상영 중 13회차의 매진을 기록했다. 전시, 도서전, 공연, 에코마켓 등 다양한 이벤트도 영화제의 활기찬 분위기에 한몫했다. 그중 산악 액티비티를 체험할 수 있는 트리클라이밍은 기자가 직접 체험에 나섰다. 다양한 관객층과 이벤트만큼이나 게스트 라인업도 흥미로웠다. 영화제 탐방기와 함께, 산악영화감독으로 제2의 인생을 준비 중인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 국제경쟁부문 대상을 수상한 <유렉>의 파벨 비소크잔스키 감독, 국내
[스페셜] 제1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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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에 대해 좀더 이야기하고 싶었다. 지금껏 나온 여러 비평과 반응들을 보면서 어딘가 미진한 지점이 있다고 느꼈고, 그를 해소해줄 적임자가 오승욱 감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수라>의 김성수 감독이 지난해 5월 오승욱 감독의 <무뢰한> 개봉 당시 인터뷰어로 나서준 적 있기에(<씨네21> 1006호, 김성수 감독이 <무뢰한>의 오승욱 감독을 만나다), 그 자리를 바꿔 만나는 것도 무척 흥미로울 것 같았다. 당시 김성수 감독은 “오승욱 감독 영화에는 상처받고 외로운 인물들이 비슷한 처지의 인물을 만나 더 큰 실패담을 만들어낸다”며 “인물들을 그렇게 끝까지 몰아붙여서, 그래서 과연 행복한지?” 하고 물었다. 1년의 세월이 흘러 이번에는 오승욱 감독이 김성수 감독에게 <아수라>에 대해 꼼꼼하게 물었다. 대담을 준비하며 시나리오를 다시 읽고 이전 편집본까지 챙겨본 오승욱 감독은 <아수라>에 대해 “이건 김성수
[스페셜] <아수라>에 대해 김성수 감독과 오승욱 감독이 긴 대화를 나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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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시작해보자. 당신은 지금 150여명의 승객을 태우고 이륙한 항공기의 기장이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사고로 동력을 잃는 바람에 한번도 경험한 적 없는 비상착륙을 해야 한다. 관제탑에서는 회항을 권유하지만, 40년 비행 경력의 당신은 ‘직관’을 발휘해 비상착수를 시도하고 기적적으로 승객 모두를 살리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당신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155명을 살린 ‘영웅’이 되었다. 그날 밤, 당신은 악몽에 시달린다.
설리가 느낀 두려움의 본질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이하 <설리>)은 이 질문에 대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대답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이 악몽은 보는 이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꿈속에서 설리(톰 행크스)는 (실제와는 다르게) 회항을 시도한다. 하지만 충분한 고도를 확보하지 못한 비행기는 건물을 들이받고 폭파된다. 이 악몽은 약 15분 후, 인터뷰를 기다리던 설리가 뉴욕의 빌딩 숲에서 보게 되는, 건물로 돌진하는 비행기의 추락 환영으로 다시
[우혜경의 영화비평] <설리:허드슨강의 기적>, ‘영웅주의 논쟁’에 대한 이스트우드의 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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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절 논란부터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논란까지, 언젠가부터 한국 현대사는 우리 사회에 분란을 일으키는 애물단지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그러는 와중에 정작 중요한 ‘우리가 살아온 이야기’로서의 현대사마저 밀쳐두고 있는 건 아닐까?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우리의 할아버지·할머니·아버지·어머니·삼촌·이모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더듬으며 지금까지 우리가 알아왔던 한국 현대사에 대한 편견을 깨보자. 바로 요즈음 각광받는 역사 읽기의 신조류 ‘한국현대생활문화사’를 소개한다.
‘위험한 아이들’의 시대
1970년대는 흔히 통기타와 고고춤,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즐긴 낭만적인 청년의 시대로 기억된다. 그러나 당대의 소위 사회 지도층은 청년들을 그리 곱게 바라보지 않았다. 언론은 ‘조국 근대화’의 과업을 수행하지 않는 청년 세대를 혹독하게 비판했다. 대학생은 ‘퇴폐업소 숲’에서 사치와 낭비풍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여름철 피서지의 10대 남녀들은 “통금시간이 지나면 남
[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한국현대 생활문화사: 197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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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를 찍은 정정훈 촬영감독이 베네딕트 컴버배치, 니콜라스 홀트, 마이클 쉐넌이 주연을 맡은 할리우드 영화 <커런트 워>(The Current War)를 촬영한다. 알폰소 고메즈 레존 감독이 연출하는 이 영화는 토머스 에디슨(베네딕트 컴버배치)과 조지 웨스팅하우스(마이클 쉐넌)가 전기를 개발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이야기다. 정정훈 촬영감독은 알폰소 고메즈 레존 감독과 함께 <나와 친구, 그리고 죽어가는 소녀>(2015)를 만든 인연으로, 합류하게 됐다. <커런트 워>는 <스토커>(2013) <블러바드>(2014) <나와 친구, 그리고 죽어가는 소녀>(2015) <잇>(2017)에 이은 정정훈 촬영감독의 할리우드 영화 5번째 촬영작이다.
정정훈 촬영감독, 베네딕트 컴버배치 신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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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했던 태풍 ‘차바’를 무사히 넘기고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10월6일 개막했다. 영화제 정관 개정 이후 열린 첫 영화제인 만큼 영화의전당에서 진행된 개막식은 시종 차분했다. 임권택, 곽경택, <그물>의 김기덕, <밝음>의 술레이만 시세, <분노>의 이상일 감독과 배우 안성기, 한예리, 박소담, 와타나베 켄 등이 레드카펫을 밟았다. 개막식 사회는 배우 설경구와 한효주가 맡았다. 설경구는 1999년 <박하사탕>이, 한효주는 2011년 <오직 그대만>이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돼 개막식 무대에 오른 바 있다. 두 사람은 “영화제에 부산 시민들과 영화인들의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다”며 인사말을 전했다. 한국영화를 해외에 알리는 데 기여한 이에게 수여하는 한국영화공로상은 프랑스의 포럼 데 이마주의 로랑스 에스베르그 대표에게 돌아갔다.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의 주인공은 7월에 타계한 고(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다. 그의 아들 아흐마드
[국내뉴스] 도약을 준비하는 BIFF 개막식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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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프로그램과는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최근에 본(이미 유튜브 조회수 100만회를 훌쩍 넘길 정도이니 나만 재미있게 본 영상은 아닌 듯하다) 영상이 있다. 안정환을 모델로 기용한 캐논 광고. 대부분 30초 안팎의 듀레이션을 가지는 상업광고와 달리 이 광고의 풀 버전은 4분38초. 스낵콘텐츠로 충분히 기능한다는 뜻이다.
축구하는 아이들을 흐뭇하게, 하지만 근엄하게 바라보는 안정환의 독백이 첫 신이다. ‘치열했던 나의 경기는 끝났다. 이제는 여유를 즐기는 법을 배울 차례다.’ 카메라 광고답게 시선을 분할하고 줌인과 줌아웃이 부드럽게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어지는 다음 신은, 도둑을 쫓는 경찰.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려고 도둑을 향해 발사한 안정환의 캐논포는 경찰을 맞히고, 그는 경찰에 연행된다. 화면 아래에는 #공무집행방해 #패닝샷 #콩밥 등의 해시태그가 흐른다. 자연사진을 촬영하는 안정환의 앞에 항상 나타나는 곰, 그리고 정글 속의 군대에서 다시 만난 곰. 되풀이되는 병맛 코드는 안정
[김호상의 TVIEW] <캐논 광고 영상> 병맛, B급, 아재 감성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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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진 시간
제작 바른손이앤에이 / 감독 엄태화 / 출연 강동원, 신은수, 이효제, 김희원, 권해효 / 배급 쇼박스 / 개봉 11월 예정
장르에 구속되지 않는 연기. 강동원은 그 자유로운 연기로 지난해 <검은 사제들>(2015)과 연이은 <검사외전>(2015)을 통해 흥행 배우로서도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판타지물을 표방한 <가려진 시간>은 규정하기 힘든 강동원의 매력이 한층 신비롭게 구축된 작품이다. 영화는 화노도에서 일어난 의문의 실종사건 후 며칠 만에 어른이 되어 나타난 ‘성민’의 이야기다. 단 며칠 만에 갑자기 어른이 되어 나타난 소년이 겪는 고통의 시간, 몸은 어른이 되었지만 어린 그가 담고 있는 잃어버린 시간의 정체는 무엇일까. 영화는 그렇게 갑자기 세상에서 동떨어진 그를 믿어주는 유일한 소녀 수린(신은수)과의 관계를 통해, 그 비밀의 시간을 파헤치려 한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제작연구과정을 통해 만든 개성 넘치는 데뷔작 <잉
[Coming Soon] 세상은 몰랐던 그 둘만의 특별한 이야기 <가려진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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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희가 변했다. 어느덧 데뷔 16년차. 이토록 꾸준하고 기복 없는 배우도 드물 거다. 변화가 감지된 건 최근부터다. 언제 봐도 편안하고 기분 좋은 조윤희의 차분한 인상에 쾌활함이 더해졌다. 드라마 속 캐릭터 바깥으로는 잘 나오지 않고 오로지 연기만 하며 지내는 듯 보이는 조윤희가 캐릭터가 아닌 조윤희라는 사람 자체로 대중을 만나기 시작한 이후다. 조우는 뜻밖에도 예능 프로그램 <더 바디쇼3: 마이 보디가드>의 MC로서 이뤄졌다. “배우는 최대한 노출을 적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실제로 대중에 친근한 사람이 되는 게 내가 갖고 있는 이미지에 더 어울리는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말도 많이 하고 사람도 많이 만나고 싶어졌다.” 한 발짝 연기 밖으로 나온 조윤희는 지난 5월부터 라디오 <조윤희의 볼륨을 높여요>를 진행하며 대중과 더 가까이 만나고 있다.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잘한단 말을 듣는다. (웃음) 디제이로선 성장하는 중이라
[커버스타] 한 발짝 밖으로 - 조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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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과 함께 작업한 사람들의 공통된 발언은 그가 욕심 많고 치열하게 준비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준의 대답이 의외다. “승부욕? 없다. 욕심? 적당한 편이다. 내가 독종이란 얘기? 글쎄 난 잘 모르겠다.” 오히려 본인은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라면서 “카메라 울렁증” 얘기까지 꺼낸다. “자신감이 많이 부족해서 카메라 앞에서 곧잘 얼어버린다. 유해진 선배님을 보면서 그런 자신감이 부러웠다. 드라마에 함께 출연 중인 최지우 선배님과도 그런 얘기를 나눈 적 있다. ‘모든 사람이 널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 짜릿하지 않니?’라고 물으시기에 ‘아니요, 전 부담스럽습니다’ 하고 답했다. (웃음) 내면에서 나오는 자신감을 나도 갖고 싶다.” 이준은 엄격하게 스스로를 단련해온 사람 특유의 겸손함이 몸에 밴 사람 같았다.
나약하고 우유부단하고 대책 없고 무모한 <럭키>의 재성은 짐작 가능하듯 이준과는 정반대되는 성정의 캐릭터다. 인기도, 돈도, 의욕도 없어 급기야 죽기로 결심한 무명배우
[커버스타] 정공법으로 돌파하기 - 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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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여러 번 유해진의 웃음의 정체를 파보자 했던 것 같다. 그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는데, 사석에서 그는 다소 평범했다. 이를테면 <타짜>(2006)에서 우리를 충격에 빠뜨렸던 타짜 고광렬의 모습 같은 것이 평소의 그에게는 온전히 배제되어 있었다. “고광렬입니다” 하고 고니(조승우)의 가족에게 찾아가 너스레를 떨 때, 쇳소리 섞인 하이톤의 목소리로 웃다가 표정을 싹 바꾸어버리는 타짜 고광렬이나 <해적: 바다로 간 산적>(2014)에서 ‘음파~ 음파~’ 하며 산적단에 바다 수영법 강의를 하는 해적 철봉이 선사하는 기가 막힌 웃음. 영화에서 그의 표현은 화려했고 능수능란했으며, 다채로웠고 디테일이 많았다. 또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릴 틈을 주지 않으려는 듯 빨랐다. 그러니 느리고 조용하고 조금은 어눌해 보이는 유해진의 모습을 접하면서, 화면 속 그 장면들이 신기루같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달까.
그런 면에서 <럭키>는 극화된 유해진보다는 평소의 유해진을 유추
[커버스타] 전환의 연기 - 유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