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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영화감독이 소수자를 제재로 삼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소재 착취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유혹을 번번이 뿌리치기 어려운 건 무감한 일상을 벗어나 있는 이들이 운명처럼 지니고 있는 긴장과 갈등이 영화적 상상력을 추동하기 때문일까. 그 유혹에 더 취약한 쪽은 데뷔하는 감독들인 듯 하다. 빠듯한 제작 여건으로 극적 긴장감을 담보해야 하고, 감독 개인의 세계관을 탈탈 털어 만들어온 단편과 달리 세상을 보는 성숙한 시선도 담아야 할 것 같은 ‘어른 되기’의 압박감도 느끼기 때문이다. 정치적, 사회적 소재를 발굴해야 한다는 공명의식은 미지의 타자로 시선을 돌리게 하고, 그들을 부지런히 취재하고 이해하려는 태도로 이어진다(나 역시 그렇다). 이러한 연유로 2000년대 초반부터 청년 빈곤과 외국인 노동자, LGBT(성적소수자들을 위한 모임) 등을 다룬 장·단편 독립영화가 끊임없이 만들어졌으니 독립영화에서만큼은 이들은 더이상 소수자가 아니다. 군상을 이룬 소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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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랑의 영화비평] 소수자 영화의 윤리와 <꿈의 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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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하나의 사랑을 공유할 때 ‘연애한다’고 한다. 같은 말을 검정치마의 조휴일은 뭐라고 표현했을까? 새 앨범 《TEAM BABY》의 수록곡 <한시 오분>에서 그는 사랑하는 상대와 자신을 “같은 템포의 다른 노래”라고 표현했다. 음악가다운 음악적 사랑 고백이다.
그의 가사는 공감대가 높으면서도 위트가 있다. 연애가 꽤 진행돼 “사랑한단 말이 맨 정신엔 자꾸 뜸해지는” 시기가 오면 “변했다”며 지적하는 애인에게 이런 후렴구를 반복해 들려주기도 한다. “변하지 않는 건 다이아몬드하고 널 사랑하는 나밖에는 없다고.” 수록곡 <Diamond>의 내용이다. 이번 앨범은 온통 사랑 이야기로 가득하다. 앨범 커버부터 결혼식 사진이다. 앨범 제목 ‘TEAM BABY’도 ‘커플’의 다른 말인지도 모른다. 수록곡 <Love Is All>에선 계속 이렇게 반복한다. “love is all, all is love, love is all, 사랑이 전부인 거야.”
가사
[마감인간의 music] 음악적 사랑 고백 - 검정치마, 《TEAM BA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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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칸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 오른 <악녀>(2017)팀에서 단연 시선을 사로잡은 이는 배우 김서형이었다. 운동으로 다진 탄탄한 복근을 거침없이 드러낸 상의하며 옆 머리칼을 시원하게 쳐올린 쇼트커트 스타일까지. 레드카펫이면 어떤가. 아니 레드카펫이라 더욱더 입고 싶은 대로 입고 멋지게 걸어나가겠다는 투다. 여성배우들의 레드카펫 의상이라고하면 곧바로 떠오르는 드레스들, 그 전형에서 저 멀리 벗어난 선택이었다. 이러한 다른 시도가 ‘할리우드 스타들’에게만 익숙한 그림이고, ‘할리우드’라는 이유로 용인의 문턱이 낮았던 게 사실이다. 어째서 한국 여성배우들에게선 흔한 일이 되지 않아왔던가 반문해보게 되는 게 현실인 만큼. ‘보이시’, ‘메니시’라는 수식도 뻔하다. 그저 배우 김서형이 궁금해 만남을 청했다. <악녀>에서 김서형은 숙희(김옥빈)를 국정원 요원으로 키워 작전에 투입하는 상사 권숙 역을 맡았다. 역할의 비중이나 극중 활용도로 보자면 아쉬운 캐릭터다. 김서형도 잘
[씨네 인터뷰] "본능으로 연기한다" - <악녀> 배우 김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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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건 러키> LOGAN LUCKY
감독 스티브 소더버그 / 출연 채닝 테이텀, 애덤 드라이버, 대니얼 크레이그
변변찮은 신세의 로건 형제(채닝 테이텀, 애덤 드라이버)는 세계 3대 자동차 레이싱인 나스카 상금을 노리고 범죄 계획을 세운다. 두 사람은 수감 중인 범죄자 조 뱅(대니얼 크레이그)을 찾아가 계획에 가담할 것을 청한다. 이번 작품을 위해 금발 염색을 불사한 대니얼 크레이그의 연기 변신을 기대해보자. 레이싱과 전혀 관계없는 배역으로 출연하는 실제 레이싱 스타를 찾는 것도 숨은 재미겠다. 세바스티안 스탄, 캐서린 워터스턴 등 할리우드의 가장 핫한 배우들이 총출동하는 기대작으로 8월 18일 북미 개봉예정.
[WHAT'S UP] 변변찮은 신세의 로건 형제 <로건 러키> LOGAN LUC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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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시나리오 초고를 완성했다. 온갖 스트레스성 병마가 창궐하고 노트북 침수의 변까지 당했지만, 예전보다 두배는 빠른 속도로 ‘끝’을 써냈다. 그래서 걱정이 됐다. 대체 왜 이렇게 빨리 쓴 거지? 중요한 문제를 놓친 걸까? 혹 시작부터 뭔가 잘못된 거 아냐? 근거를 알 수 없는 불안이 엄습하는 와중에 한편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어떻든 내 속에만 품어온 또 다른 이야기를 난생처음 세상 밖에 꺼내놓은 게 아닌가. 또 어떤 격려와 상처를 받게 될지 전혀 알 수 없으면서도, 어쨌든 피하지 않고 당당히 뭔가 주장한 거잖아. 자기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늘 엄청난 용기와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갑자기 의기충천한 나는 다시 생각이 바뀌기 전에 빨리 나를 칭찬해주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내게 아주 맛난 크림빵을 사주었다.
빵을 냠냠 먹으며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들의 폐막식 기자회견 영상을 보고 있으니 오랜만에 좀 행복했다. 여성 심사위원들이 올해 경쟁작들을 보며 느낀 점을 솔직하게 말하는 장면
[윤가은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목소리를 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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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시즌4의 드라마, 두편의 극장판이 나왔지만 <심야식당>의 포맷에는 큰 변화가 없다.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영업한다는 점이 독특하다면 독특한 이 공간에는 얼굴에 원인 모를 흉터가 있는 마스터가 있고, 그의 음식을 먹다 보면 손님들은 자연스레 속에 있는 이야기를 털어놓게 된다. 이렇듯 마스터는 <심야식당> 고유의 정서를 책임지는 핵심이고, 그를 연기한 배우 고바야시 가오루는 1980년 데뷔한 일본의 베테랑 배우다. <비밀> <도쿄타워> 등 많은 작품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 그의 연륜은 별다른 설명 없이도 <심야식당>의 매력을 자연스럽게 설득한다. <심야식당2> 홍보를 위해 한국을 찾은 그와의 짧은 만남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창한 표현 없이도 듣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 대화를 전한다.
-2년 만에 <심야식당>의 두 번째 극장판이 나왔다. 지난 9년간 드라마와 극장판에 모두 출연한 배우로서 달
[people] <심야식당2> 배우 고바야시 가오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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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살 용순은 운동장을 달리고 또 달린다. 군 대항 육상 대회에 나갈 학교 대표 선수를 모집한다는 교내 포스터를 본 용순은 덜컥 육상부에 들어가 달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용순은 육상 대회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저 답답하기에 뛸 뿐이다. 용순은 체육 선생과 연애 중이지만 그에게 새로운 사람이 생긴 것 같아 답답하고 불안하고 화가 난다. 아버지가 자신과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재혼하겠다며 새로운 사람을 집으로 들인 것도 불만이다. 용순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상황의 연속이다. 하지만 용순은 끝장을 볼 생각이다. 자신이 끝까지 지켜내고 싶은 것들에 용을 쓰며 매달리는 용순을 보고 있으면 답답하고 애처롭다. <용순>으로 장편 데뷔를 한 신준 감독을 만났다. 단편에서 장편으로 발전시킨 작품인 만큼 감독에게도 <용순>은 끝까지 매달려보고 싶은 그 무엇이었던 모양이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대명컬처웨이브상을 수상했다.
-단편 <용순, 열 여덟 번째 여름>(2
[people] <용순> 신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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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웃음)” 한국영화에서 쉽게 도전하지 않았던 타임루프를 소재로 한 영화가 등장했다. 조선호 감독의 <하루>는 반복되는 하루에 갇힌 남자들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영화다. 주어진 시간 안에 실수를 되돌리지 못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사건을 마주해야 한다. 마치 게임처럼 속도감 넘치는 90분의 짧은 러닝타임 동안 관객을 끌고 가야 하니, 상당히 정교한 계산과 과감한 연출이 중요했을 것이다. 관객의 취향에 따라 평가가 극명하게 나뉠 것 같다고 걱정하는 조선호 감독을 첫 언론 시사회가 끝난 직후 만나, 데뷔작을 내놓은 소회와 아이디어의 출발점에 대해 물었다.
-반복되는 하루에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2012년, 조감독 생활을 정리하고 데뷔를 준비하면서 오래전에 써놨던 메모를 뒤적이다 “끝나지 않는 하루, 지옥 같은 하루가 반복된다”는 문구를 보고 이야기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타임루프를 소재
[people] <하루> 조선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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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모뉴먼트 밸리로
착시를 이용한 게임 <모뉴먼트 밸리>의 후속작이 애플 앱스토어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엄마와 딸이 주인공이다. 둘이 함께 차근차근 모험하다가 건물의 이음매가 무너지면서 떨어질 때, 가슴 철렁하는 기분이 되는 것은 <모뉴먼트 밸리>를 플레이해본 사람이라면 익히 알고 있을 슬픔과 불안일 터. 6월 6일 출시되자마자 앱스토어에서 1위를 차지했다.
카르티에가 ‘하이라이트’친 작품은?
카르티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하이라이트>가 5월 30일부터 8월 15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다. 카르티에재단 아시아 투어의 시작을 알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론 뮤익, 사라 지 등 대표 소장품을 포함해 100여점의 작품이 관객을 기다린다. 카르티에 재단에서 한국인 최초로 개인전을 가진 작가 이불의 <천자>도 공개되며, 박찬욱 감독과 박찬경 작가의 프로젝트 그룹 파킹찬스(PARKing CHANce)는 <공동경비구역 J
[culture highway] <너의 이름은.> 또 보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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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버호벤의 필모그래피는 롤러코스터의 궤적을 그려왔다. <로보캅>(1987)과 <토탈 리콜>(1990)로 할리우드 최정상에 섰다가, <쇼걸>(1995)과 <할로우맨>(2000)이 연달아 실패하자 고향 네덜란드로 돌아간다. 신작 <엘르>는 그의 전성기를 떠올리게 할 만한 작품이다.
비디오게임 회사 대표인 미셸(이자벨 위페르)은 자신의 집에 침입한 정체불명의 괴한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다. 미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강간당할 때 입었던 옷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바닥에 깨진 접시를 치운다. 친구들은 그에게 경찰에 신고하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미셸은 평소처럼 어머니를 찾아가고, 이혼한 전남편을 만나며, 하나뿐인 아들에게 집세를 지원해주기로 한다. 어느 날 이상한 문자 메시지와 자신의 얼굴을 합성한 영상을 받고, 미셸은 범인을 추적하기로 결심한다.
<엘르>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쫓고 쫓기면서 서스펜스가 구축되고, 피해자가
미셸의 집에 어느 날,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이 침입한다 <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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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새를 따라가려는 뱁새, 아니 참새의 이야기다. 고아로 태어난 참새 리차드(김서영)는 황새 오로라의 아들로 입양된다. 새 가족의 품에서 형 맥스와 둘도 없는 형제로 자란 리차드는 자신도 언젠가 커다란 황새가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형과의 차이는 선명해지고, 리차드의 작은 덩치는 물고기를 사냥하기에도 역부족이다.
하지만 황새인 형 맥스조차 따라잡을 수 없는 리차드의 주특기가 있으니, 뛰어난 비행 실력이다. 리차드는 황새 무리가 곧 아프리카로 이동할 거란 계획을 듣는다. 그러나 마음이 들뜬 것도 잠시, 황새들은 리차드가 오랜 비행을 버티지 못할 것이란 이유로 여정에서 빠지길 권한다. 가족마저 자신을 두고 떠나자 상심한 리차드는 혼자서라도 아프리카에 가겠노라 결심한다. 그의 여정에 합류하는 것은 괴짜 같은 올빼미 올가(구민선)와 가수를 꿈꾸는 앵무새 키키(변영희)다. 덩치가 크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한 올가와 평생 새장에 갇힌 채 주인의 횡포에 못 이겨
황새를 따라가려는 뱁새, 아니 참새의 이야기 <꼬마참새 리차드: 아프리카 원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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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돼지 베이브(악셀 프랄)는 내일이 되기만을 기다린다. 내일이면 자신의 생일 파티가 열려 케이크를 먹을 수 있기 때문. 농장의 동물 친구들은 베이브가 파티를 열기도 전에 케이크를 먹을까봐 케이크를 헛간에 넣어둔다. 그러나 이들의 진짜 적은 호시탐탐 마을 식량을 노리는 멧돼지 갱단이다.
갱단은 숲에서 자전거를 타던 베이브와 수탉 빌리(미카엘 케스러), 생쥐 미키(조니 마우저) 앞에 나타나 다리를 다쳤다는 핑계로 농장까지 잠입한다. 가족들의 환심을 산 이 일당은 자전거에 풍선을 매달아 베이브 삼총사를 먼 곳으로 보내버린다. 색색의 풍선이 가득 달린 자전거에 올라 비바람을 헤쳐가는 장면은 비슷한 설정의 애니메이션 <업>(2009)을 떠올리게 한다.
<업>에서 주인공의 집이 변신 로봇 내지 만능 카라면, 이들에겐 자전거가 그런 역할을 한다. 삼총사는 자전거를 타고 폭포를 건너 농장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서 만난 비버 베니와 방앗간 주인 버니는 맷돼지 갱단이 집
어른과 아이 모두가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작품 <꼬마돼지 베이브의 대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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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자격>은 2009년부터 4년여 동안 KBS에서 방영된 도전형 예능 프로그램이다. 종영한 지 4년이 훌쩍 지났지만 합창단 등 몇개의 굵직한 프로젝트는 대중의 뇌리에 남아 있다. ‘남격 합창단’의 성공에 힘입어 평균 나이 60살 이상의 ‘청춘 합창단’이 안착했다. 이제 청춘 합창단의 노래는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모여서 노래한다. 이들이 노래하는 이유는 추억을 잊지 못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목표 때문이다. 유엔 초청 공연에 이어 젊은 세대와 함께하는 예술의전당 공연이 이들에게 주어진 도전 과제다. 이를 위해 누군가는 매주 김해, 완주 등지에서 과천까지 오간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고된 여정을 감수하도록 만든 것일까.
청춘 합창단의 탄생 그 이후를 보여주는 이 다큐멘터리는 연습 장면, 합창단원들의 삶, 인터뷰, 공연 실황, 배우 안성기의 내레이션 등으로 구성된다. 다큐멘터리의 힘은 무엇보다 노래, 특히 합창에 있다. 굳이 ‘청춘’이
평균 나이 60살 이상 <청춘 합창단: 또 하나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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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쇠락한 시골 마을에 자리잡은 중독 노래방. 손님이 없어 월세도 못 내던 성욱(이문식)은 고민 끝에 ‘도우미’를 고용하기로 한다. 그렇게 말수 없고 우울한 표정의 하숙(배소은)이 노래방을 찾지만 그녀의 무뚝뚝한 태도 때문에 손님들은 오히려 화를 내며 노래방을 떠나기 일쑤다. 성욱의 고민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어느 날 자칭 ‘프로 도우미’인 나주(김나미)가 노래방에서 일하겠다며 불쑥 찾아와 하숙과 갈등을 일으키고, 언젠가부터 노래방에는 라면이나 담배, 소주가 야금야금 사라지기 시작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마을에 연쇄살인범이 나타났다는 소문까지 돌자 성욱의 근심은 갈수록 깊어진다.
<복면달호>(2007)의 김상찬 감독이 연출한 <중독 노래방>은 아픈 사연을 간직한 주인공들이 우연히 한 공간에서 만나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준다는 줄거리의 이야기다. 하루 종일 노래방을 지키다 포르노를 보며 잠드는 게 유일한 낙인 성욱이나 온라인 게임에 중독된 하숙, 그리고
어느 쇠락한 시골 마을에 자리잡은 <중독 노래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