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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은 들꽃이다. 군함도에 끌려온 여인들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말년은 잔인한 군홧발에 이리저리 채이면서도 강인한 뿌리로 땅을 부여잡고 제 색을 잃지 않는다. 이정현도 들꽃이다. 가냘픈 체구에 얼핏 한없이 여린 듯 보이지만 형형한 눈빛 안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에너지가 들끓고 있다. <명량>(2014)의 정씨부인이 한 맺힌 몸짓으로 치맛자락을 펄럭이는 단 한 장면만으로 온전히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군함도>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낸다. 말년이란 캐릭터의 슬픔인지, 이정현이란 배우의 위력인지 구분할 필요는 없다. 이정현은 애초에 두 가지를 나눌 필요 없는 영역에서 숨 쉬는 배우다.
-민감한 소재이고 어려운 이야기다. 출연을 고민하진 않았는지.
=캐스팅 제안을 받고 시나리오를 읽은 지 한 시간 만에 바로 출연을 결심했다. 아니 사실 출연 제안을 받은 순간부터 하고 싶었다. 주차장에서 <군함도>라는 이야기를 듣고 좋아서 고함을 질렀으니까.
<군함도> 이정현 - 지지 않는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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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한몸 건사하기 힘든 <군함도> 촬영현장에서 황정민은 1인2역을 했다. 그가 연기한 반도호텔 악단장 이강옥은 식민지 조선의 사교계를 들썩거리게 하다가 딸 소희(김수안)와 함께 쫓기듯 현해탄을 건너면서 새 출발을 꿈꿨지만, 강제징용된 다른 조선인들과 마찬가지로 꼼짝없이 군함도에 갇혀 석탄을 캐는 신세가 됐다. 매일 체중 감량하랴, 클라리넷 연주하랴 힘들었을 법도 한데, 수백여명에 이르는 보조 출연자들의 사기 진작도 황정민의 몫이었다. 그런 그를 류승완 감독은 “주연배우 이상의 파트너”였다고 말했다.
-류승완 감독이 이강옥을 “평소 황(정민) 선배가 탭댄스를 추고 악기 연주하는 걸 보고 만든 캐릭터”라고 얘기해주었다.
=<군함도>를 오랫동안 함께 작업해왔고, 그만큼 나를 잘 아니까 어떤 식으로 활용하면 좋을지 생각했을 거다.
-<부당거래>(2010), <베테랑>(2015)을 연달아 작업하면서 쌓은 신뢰감도 작용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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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황정민 - 이만한 에너지의 중심에 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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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신랑 들어옵니다. 다들 박수!” 황정민의 흥겨운 외침에 송중기를 향한 축하가 쏟아진다. 표지 촬영 전날 결혼 소식을 전했다는 중압감 때문인지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들어오던 송중기의 얼굴도 이내 환하게 밝아진다. 쑥스러워하면서도 기쁨을 감출 수 없는 미소를 띤 채 여기저기 인사하는 송중기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동료들. <군함도>의 현장 분위기가 어땠을지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순간이다. 육체적으로 쉽지 않았을 도전이었고 아픈 역사를 마주한다는 무게도 짊어져야 했다. 이를 즐겁게 소화할 수 있었던 건 해야 할 이야기를 한다는 책임감, 그리고 한마음 한뜻이 되어 서로를 지탱한 현장의 일체감 덕분이었을 것이다. 힘들었지만 그래서 더 행복했다는 <군함도> 현장. 이야기를 할수록 배우들의 눈빛에 생기가 되살아난다.
<군함도> 황정민·이정현·소지섭·송중기 - 완벽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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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 컴스 앳 나이트> It Comes at Night
감독 트레이 에드워드 슐츠 / 출연 조엘 에저턴, 라일리 코프, 크리스토퍼 애봇
의문의 위협으로부터 가족을 지키기 위해 폴은 외딴 숲에 안식처를 지어 자신만의 규칙으로 가족을 돌보며 고립된 생활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 가족이 폴의 집에 찾아오고 그때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이한 일들이 발생한다. <크리샤>(2015)로 전미비평가협회 신인 감독상 등을 수상한 트레이 에드워드 슐츠 감독의 공포영화다. 조엘 에저턴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분투 하지만 심연의 공포에 잠식되어가는 남자 폴을 연기해 호평받았다.
[해외 박스오피스] 영국 2017.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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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차기작 <더 15:17 투 파리스>가 촬영에 들어갔다.
2015년 8월 파리행 기차에서 벌어질 뻔한 IS 테러를 저지한 3명의 미국 젊은이들에 관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실제 사건의 주인공들이 캐스팅되어 자신들의 활약을 직접 연기할 예정이다.
-배리 젠킨스 감독의 차기작 <이프 빌 스트리트 쿠드 토크>가 10월경 크랭크인한다.
제임스 볼드윈의 소설을 원작으로 1970년대 뉴욕 할렘가의 젊은 여성이 남편의 무죄를 입증해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파비앙 콩스탕트 감독의 로맨틱 드라마 <베스트 데이 오브 마이 라이프>에 르네 젤위거가 캐스팅됐다.
뉴욕의 재즈 보컬리스트가 월드 투어를 앞두고 치명적인 병을 진단받은 하루를 따라가는 내용이다. 사라 제시카 파커가 재즈 가수 비비안 역을 맡았고 이사벨라 로셀리니, 사이먼 베이커가 출연한다.
배리 젠킨스 감독 차기작 <이프 빌 스트리트 쿠드 토크>, 10월경 크랭크인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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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리얼> 뭐? 해리성 정체감 장애라고?
[정훈이 만화] <리얼> 뭐? 해리성 정체감 장애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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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을 기다렸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는 보석상자와도 같은, 한권으로 읽는 크리스티 공략집. 100권에 달하는 책 모두를 분석한 점이 큰 장점이다. 인기작이 아닌 다른 작품들도 요즘 출간되는 책들과 비교해 읽을 만한가? (신간이라면, 크리스티를 집어들 것인가?) 일본의 미스터리 평론가 시모쓰키 아오이는 크리스티의 책을 읽은 뒤 별점을 매기고, 줄거리를 소개하고, 작품을 분석한다. 스포일러는 본문에 적는 대신 권말노트로 넣었다. 나는 크리스티의 팬으로서 이 책을 읽으면서 적잖이 웃으며 시간을 보냈다. 저자가 크리스티의 팬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냉담자의 태도로 소설들을 읽고 있다는 것도 은근히 흥미로운 대목이다. 미스터리 평론가답게, 해당 소설과 닮은 현대 범죄소설을 곁들여 설명하는 대목도 좋다. ‘공략완료’라는 마지막 장은 절대로 놓치지 말 것.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애거사 크리스티 완전 공략>, 한권으로 읽는 크리스티 공략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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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일에 대해서 외부자들이 알면 가장 놀랄 만한 것은 무엇입니까?”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는 탐사전문기자이자 논픽션 작가인 요리스 라위언데이크는 영국 런던의 금융지구인 시티를 취재하며 이 질문을 여러 번 던졌다. <가디언>의 편집인이었던 앨런 러스브리저가 그에게 요청한 것은, 일종의 초보자를 위한 금융산업 가이드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시티 역시 휩쓸고 지나갔다. 1930년대 이래 최악의 금융패닉이 일어나고 3년여가 지난 2011년에 이 취재가 시작될 때까지도, 금융산업을 구제하기 위해 수십억 단위의 돈이 들어갔지만 감옥에 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라위언데이크는 시티 사람들을 취재하기 시작했지만 만나주겠다는 사람 찾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도움이 될 만한 취재는 내부고발일 수밖에 없는 상황. 철저한 비밀보장을 약속하고 녹음도 남기지 않으면서 취재 내용을 올린 블로그 게시글이 늘자 반응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침묵의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상어와 헤엄치기>, 아무도 모르는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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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에 대한 상찬은 이미 넉넉해서 굳이 내가 보탤 게 없다. 해석의 탁월함도 있겠지만 이를 수용하는 <옥자>의 넉넉한 층위에 새삼 놀랐다. <옥자>는 보고 발견한 것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지는, 실로 영리한 영화다. 조형미로 꽉 채워진 화면과 간곡한 메시지 사이의 결합이 빈틈없이 딱 떨어진다. 그런데 바로 이 모자람 없이 들어찬 의미, 조합, 배치의 정교함이 어딘지 기계적으로 다가왔다. 내가 굳이 덧붙이고자하는 건 그간 봉준호 영화에서 접하지 못했던(정확히는 <설국열차>부터 느껴졌던) 거리감에 대한 사소한 질문이다.
첫 번째 질문. 이 영화는 해피엔딩인가. 미자는 옥자를 구했다. 애초에 미자가 원했던 건 슈퍼돼지를 생산, 소비하는 시스템을 박살내는 게 아니다. 그건 동물해방전선(ALF)의 목표였고 잠시 이해가 일치한 적은 있지만 미자가 끝내 다른 길을 걷는 건 타당하고 합리적인 선택이다. 어쨌든 미자는 목표를 달성했다. 툇마루에 미
<옥자>의 정체성에 대한 짧은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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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 시작되었다. 동시에 ‘오인’의 서사도 작동되기 시작하였다.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봉준호의 영화적 세계가 다시금 시작된 것이다. 영화 <옥자>는 ‘착한 자본주의’로 위장한 육가공 업체 미란도의 화려한 기업 설명회로 시작된다. 흡사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팝아트를 연상시키는 듯한 경쾌하고 빠른 편집의 이 시퀀스에서 미란도의 새 CEO 루시는 선대의 사악하고 착취적인 메뉴팩처링 생산 방식을 비난하며 자신은 자연과 과학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새로운 돼지 축산산업을 시작할 것임을 선언한다. 동물복지와 생태주의와의 결합. 그러나 아름다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날 슈퍼돼지에 대해 그녀가 덧붙이는 마지막 말 한마디. “맛도 끝내주지요.” 틸다 스윈튼의 클로즈업이 빚어내는 이 순간의 거짓과 그로테스크함이야말로 <옥자>의 기이한 풍자와 해학을 압축하는 이미지이다.
‘추적’을 모티브로 하는 봉준호 감독의 모든 영화들에서 오인의 코드는 서사의 중요한 분기점 혹은 동력이 되어왔다.
<옥자>에서 발견한 봉준호 감독 특유의 활력과 기이한 감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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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의 <옥자>는 내게 이전까지 몰랐던 그의 작가적 관심사를 새로 알게 해주었다. 그가 현실의 어둡고 부패한 구석에 예민한 비평적 안테나를 들이대는 것만큼이나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조용히 킬킬거리며 즐기는 명랑만화의 세계 비슷한 것을 즐기는 취향이 있다는 것을 추측하게 된다. <옥자>는 양립하기 힘든 두 세계를 양립시킨다. 자연친화적이고 목가적이며 결핍을 결핍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세계와 자본주의적이고 탐욕적이며 소비 지상주의로 치닫는 육식주의 세계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영화는 비극적 페이소스를 끌어내며 전자의 세계로 안전하게 퇴각하는 결론을 담고 있다. 전자의 세계는 판타지에 가까우며 지금 존재하지 않는 세계의 우화처럼 보이는데도 지극한 위로를 준다. 후자의 세계는 현실에 가깝지만 전형적이며 정치적 올바름의 잣대에 짓눌려 과도하게 희화화된다. 봉준호는 전자의 세계를 그리기 위해 후자의 세계를 끌어들인 것 같은데, 영화를 보는 동안 전자의 세계를 보는 즐거움
봉준호의 탈현실적 판타지 <옥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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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8일, 파리 근교의 몽트뢰이 시립극장 멜리에스에서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옥자>의 극장 상영이 있었다. ‘소필름 페스티벌’(Sofilm Festival)의 일환으로, 특별상영 형식으로 예정되어 있던 파리지역 상영이 막판에 전격 취소되면서 수도권에서는 <옥자>를 영화관에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상영이었다.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부근의 막스 린더, 샤틀레에 위치한 포럼 데 이마주 모두 이 무료 상영을 보이콧하자는 ‘특정 배급사들의 분노’에 따른 압박에 못 이겨 취소 결정을 내렸다.
상영이 성사되기까지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 시작 전부터 언론이 주목했던 ‘넷플릭스 영화’인 만큼, 좌우로 성향이 완전히 다른 <피가로>와 <리베라시옹> 모두 <옥자>의 파리 상영 취소를 흥미진진하게 보도했다. “<옥자>를 작은 화면으로 보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올해 칸영화제에 출품된 영화 중 가장 뛰어난 수작이다”라는 현지
보이콧과 지지 사이, <옥자> 프랑스 개봉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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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의 파리 상영에 이어, 노르망디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는 다리우스 콘지 감독과 전화로 길고 긴 이야기를 나눴다. 수화기 너머에서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를 기억하는 그가 다정하고 섬세하게, <옥자>에 대해서는 물론, 촬영감독이라는 여전히 미스터리한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델리카트슨 사람들>(1991), <세븐>(1995) 이후 많은 촬영감독들은 물론 시네필들에게 당신은 이름만으로도 영화를 선택하게 하는 존재다.
=나는 내 일에 대한 평가를 스스로 하지 않는다. 판단하는 것, 평가하는 것 그 수준이 어떻다라고 말하는 건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건 대중의 몫이자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달린 것이니까. 만약 단 하나의 스타일이 영화에서 존재한다면, 그건 감독의 스타일일 것이다. <옥자>라면 봉준호의 스타일이 느껴지면 된다. 나의 스타일 혹은 인장을 남긴다는 생각은 손톱만큼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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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 다리우스 콘지 촬영감독, "이미지에 힘을 싣지 않는 것이 그 이미지를 가장 강렬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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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안 해도 좋다고 했다. 다리우스 콘지와의 작업이라면.” <옥자>의 조명팀을 책임진 개퍼 이재혁은 조명감독으로 활동하다가 <두근두근 내 인생> <서부전선> 등을 거치며 촬영감독으로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그런 그가 촬영 대신 포지션을 바꿔 조명팀을 맡다니 의아한 시선이 앞서기도 한다. “다리우스 콘지 촬영감독은 촬영을 하는 사람에게 성서와 같은 존재다. 아직도 내게 최고의 촬영 작품은 그가 참여한 <쎄븐>(감독 데이비드 핀처, 1995)이다.” 경외하는 이와 작업한다는 것. <옥자>의 현장은 그에게 선택이 아닌 ‘필연’이었다.
이재혁은 서울예대 영화과, 한국영화아카데미를 거쳐 미국영화연구소(AFI)에서 촬영을 전공했다. 조명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이후 <말아톤> 조명감독으로 입봉해 활동하다, 전공을 살리고자 촬영감독으로 포지션을 바꾸었다가 이번에 다시 <옥자>로 조명팀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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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 개퍼 이재혁 - 모두가 빛과 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