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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만큼 애증으로 엮인 관계는 또 없다. 석봉(마동석)은 학원에서 국사를 가르치며 유물을 발굴하는 데 삶의 열정을 쏟는 남자다. 그의 동생 주봉(이동휘)은 건설회사 직원으로, 고속도로 공사 구간을 잘못 정해 옷을 벗어야 할 위기에 처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가문의 동산이 회사의 고속도로 건설 사업에 방해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석봉과 주봉은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집을 나간 지 3년 만에 고향 안동으로 향한다. 두 형제가 본가에 가는 길에 무언가를 친 것 같아 차 밖을 나와 확인해보니 정체불명의 오로라(이하늬)가 쓰러져 있었다. 오로라가 걱정돼 차에 태워준 형제는 오로라로부터 본가 어딘가에 100억원 상당의 금불상이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 각기 다른 이유로 돈이 필요한 둘은 가족 몰래 집을 뒤지기로 한다.
<부라더>는 장유정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했던 인기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를 각색한 영화다. 가족과의 갈등 때문에 집을 나간 두 형제가 3년 동안 서로
<부라더> 마동석과 이동휘의 스크루볼 코미디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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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그룹의 멤버 영우(오승훈)는 연극 <언체인>의 주연으로 발탁돼 정통파 메소드 배우로 유명한 베테랑 연극배우 재하(박성웅)와 호흡을 맞춘다. 재하는 대본 리딩 첫날부터 지각을 하고 성의 없이 연습에 임하는 영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런 어느 날, 연극 연습을 하던 두 사람의 마음이 한순간 통한다. 영우는 연극 연습을 핑계로 적극적으로 재하 주변을 맴돌고, 재하는 자신이 캐릭터에 몰입하고 있는 것인지 영우에게 끌리는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재하의 오랜 연인 희원(윤승아)은 두 사람의 관계를 지켜보며 불안해한다.
“오로지 진실할 뿐이다. 거짓을 말할 때조차도.” 영화가 시작되면, 대표적인 메소드 배우 알 파치노의 명언이 뜬다. 메소드는 극중 인물과 배우 자신을 동일시하는 극사실주의적 연기 스타일을 일컫는 말이다. 배우 출신인 방은진 감독 역시 “캐릭터에 온전히 몰입하다보면 어떤 모습이 자기의 진짜 모습인지 헷갈리는 순간이 있다”고 말했다. 그 극적인 경험을 바
<메소드> “오로지 진실할 뿐이다. 거짓을 말할 때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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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느닷없는 휴대폰 벨소리가 잠든 커플의 얼굴 위로 쏟아진다. 누군가의 전화를 받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다. 머피(칼 글루스먼)는 발신자의 이름을 확인한다. 노라, 그의 전 연인 엘렉트라(아오미 뮈요크)의 어머니다. 머피는 약에 취해 잠든 지난밤을 잠시 후회한다. 아이에게 새해 인사를 건넨 머피는 노라의 음성 메시지를 확인한다. 노라는 행방불명된 딸이 자살했을 것 같은 두려움에 빠져 있다. 2년 전에는 반대로 머피가 노라에게 전화를 걸어 엘렉트라를 애타게 찾았었다. 일단 엘렉트라에 관한 기억이 떠오르자, 엘렉트라를 향한 머피의 그리움은 점차 커지고, 그녀와 함께했던 시간이 사무치게 그리워지기 시작한다.
<러브>는 파격적인 성애 묘사로 일찍이 화제가 된 문제작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가스파 노에의 가장 순정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약에 잔뜩 취한 남자의 내면에 관객을 침잠시키는 전략은 전작 <엔터 더 보이드>와 동일한데, 이번에는 자신이 아닌 누군가
<러브> 가스파 노에의 가장 순정적인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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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현장 소장으로 일하는 봉용(성지루)은 주부 화연(전미선)의 남편이자 쌍둥이 남매 우주(양홍석)와 달님(권소현), 그리고 막내 별님(이예원)의 아버지다. 영화는 가정과 직장에서 모두 존중받지 못하는 봉용의 모습을 통해 외벌이 가장의 설움을 드러낸다. 밖에서는 건설사 간부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을’이지만, 가족에게는 술자리 때문에 가사에 소홀한 이기적인 아버지일 뿐이다. 봉용이 대장암 선고를 받으면서 그와 가족 사이의 갈등은 더 강조된다. 투병 사실을 모르는 가족은 평소처럼 그에게 짜증을 내고, 봉용은 자신을 이해하지 않는 가족에게 괜스레 화를 내게 된다. 평생 가족을 위해 일하고도 가족에게 외면받는 아버지를 위로하는 서사는 그간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했던 테마다. 여전히 많은 관객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소재라 해도, 봉용의 감정을 강조하기 위해 가족 내의 다른 구성원을 무심하고 짜증이 많은 존재로 그려내는 것은 다소 쉬운 선택이라는 인상을 남긴다. 봉용의 억울함을 이해하지
<내게 남은 사랑을> 외벌이 가장의 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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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 앱을 통해서는 진정한 인연을 만날 수 없을까? 반대로 서로에게 유일한 인연이 되는 일은 필요에 따라 만나고 떠나는 데이트 앱의 관계와 특별히 다를까? <뉴니스>는 이성의 사진을 랜덤으로 보여주고, 실제 만남을 주선하는 데이트 앱에서 출발하는 이야기다. 주인공 마틴(니콜라스 홀트)과 가브리엘(라이아 코스타)은 데이트 앱의 충실한 이용자로 ‘일회성 만남’을 전전하며 매일 밤을 보낸다. 두 사람의 만남도 하룻밤의 데이트에서 출발하지만, 여타 만남과 달리 이들은 상대에게 급속도로 빠져든다. 영화는 데이트 앱이란 소재에서 시작해 현대사회의 관계 맺기 방식에 대해 고찰한다. 늘 새로움을 갈구하는 두 주인공은 각자 다른 이와 외도를 즐긴 밤부터 서로에게 더 빠져든다. 연인 관계를 유지하되 다른 이들과 만나는 것을 이해하는 소위 ‘다자연애’에서 스릴을 느끼는 것이다. 연인이 다른 이를 유혹하는 모습을 보며 흥분하고, 중요한 욕구는 서로에게서 해결하는 이들의 관계는 관음증과 정복욕
<뉴니스> 데이트 앱을 통해서는 진정한 인연을 만날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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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년, 영국의 지배를 받던 시기의 인도. 하급 관리 압둘 카림(알리 파잘)은 빅토리아 여왕(주디 덴치)의 즉위 50주년을 기념하는 주화를 헌정하기 위해 영국으로 떠난다. 첫 만남에서부터 잘생긴 압둘에게 호감을 느낀 여왕은 압둘을 개인 시종으로 삼는다. 왕실에서 외롭게 지내온 여왕의 마음에 압둘의 말들은 마치 시처럼 다가오고, 여왕은 압둘을 모슬렘들의 영적 스승이라는 뜻의 ‘문쉬’, 즉 왕의 스승으로 대우해준다. 하지만 여왕이 압둘에게 의지하는 것을 우려한 총리와 왕실 관료들은 압둘을 내쫓을 계획을 세우고, 압둘의 거짓말들을 폭로한다.
<플로렌스>(2016)와 <더 퀸>(2006)을 연출한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의 신작이다. 영국의 전성기였던 빅토리아 시대의 실화를 다루는 이 영화는 빅토리아 시대의 화려한 삶, 특히 의상을 보는 재미가 있다. 전체적으로 유머러스하지만, 주디 덴치는 권력에 집착하는 통치자이며 동시에 죽음이 아른거리는 외로운 인간으로서의 여왕
<빅토리아 & 압둘> 위대한 빅토리아 여왕과 평범한 인도 청년 압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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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우리는 슈퍼히어로들의 분열을 목격했다. 어벤져스가 둘로 나뉘어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 토르와 헐크는 대체 어디에 있었나? <토르> 시리즈의 3편 <토르: 라그나로크>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자, 2018년 개봉예정인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라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의 거대한 이벤트를 향한 발걸음이다. 3편의 토르(크리스 헴스워스)는 어벤져스의 본거지인 뉴욕을 떠나 은하계를 탐험하고 있다. 그는 오딘의 오랜 숙적 수르트와의 대결에서 승리하는데, 수르트는 “라그나로크(아스가르드의 종말을 의미하는 말)가 이미 시작됐고,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한편 오딘(앤서니 홉킨스)의 힘이 약해지며 그가 봉인했던 ‘죽음의 여신’ 헬라(케이트 블란쳇)가 나타난다. 오딘의 첫째딸인 그녀는 두 동생, 토르와 로키(톰 히들스턴)를 가볍게 제압하고 아스가르드를 정복한다. 헬라와의 전쟁
<토르: 라그나로크> ‘라그나로크’를 막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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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 출연 말론 브랜도, 알 파치노 / 제작연도 1972년
내 오랜 꿈은 <씨네21>에 ‘내 인생의 영화’를 기고하는 것이었다. ‘영화감독 김민식’이라는 소개를 달고. 1996년 MBC 입사 이래 20년 가까이 로맨틱 코미디를 연출하며 언젠가 내가 만든 드라마가 대박나면 극장판을 만들어 영화감독으로 데뷔하는 게 꿈이었다. 그런데 인생이 참 기구하다. 2012년 MBC 노조 부위원장으로 일하면서 170일간 파업을 했다. 그때 구속영장 청구로 유치장에 함께 간 집행부 동료들이 다 해고되고, 나는 정직 6개월을 받았다. 지난 6년, MBC의 몰락을 지켜봤고, 올해 초 ‘김장겸은 물러나라’를 외치며 사내에서 1인 시위를 했다. 그 장면이 최승호 감독의 영화 <공범자들>에 나오면서 <씨네21>에 출연자 인터뷰를 하고 ‘내 인생의 영화’ 원고 청탁을 받았다. 연출이 아니라 출연으로 <씨네21>과 인연을 맺을 줄은 꿈에도 몰
김민식의 <대부> 괴물과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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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푸의 모험>(1977) 스토리보드 작가
“꽤 많은 캐릭터를 그려왔지만 지금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는 ‘위니 더 푸’(Winnie-the-Pooh)의 곰돌이 푸다. 스스로 가끔 뇌가 작은 곰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웃음) <로빈 후드>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곰돌이 푸의 모험>의 스토리보드 작가로 참여한 적이 있다. 그때의 경험 때문에 2011년 디즈니에서 <곰돌이 푸>를 리메이크할 때 스토리보드를 다시 그려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당시 곰돌이 푸 목소리까지 연기해가며 발표를 했고 승낙을 받았다. 목소리 하나, 캐릭터 동작 하나까지 직접 해보면서 그리는 건 푸가 유일한 것 같다. 1977년 <곰돌이 푸의 모험>을 그릴 때 아내가 곰돌이 푸의 인형을 만든 적이 있다. 실제로 오프닝에 실사 인형이 등장하는 장면까지 찍었는데 볼프강 라이테르만이 최종적으로는 삭제해 쓰지 못했다. 그때 만든 인형을 다락방에서 꺼내어 다
버니 매틴슨의 대표작들 - 유명한 이야기를 ‘재창조’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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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입사 후 올해로 64년째 한해도 거르지 않고 출근 중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최장수 애니메이터 버니 매틴슨이 제19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BIAF)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고교 졸업 후 무작정 디즈니에 입사해 사내 우편배달부부터 경력을 시작한 버니 매틴슨은 보조 애니메이터, 스토리 작가를 거쳐 감독과 프로듀서를 역임했다. 설립자 월트 디즈니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13년간 함께 근무했던 그는 지금도 여전히 현역 애니메이터로 활약 중인 디즈니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2008년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큰 기여를 한 아티스트로서 ‘디즈니 레전드’에 선정되었고, 2013년 60년 근속상을 받았다. 걸어온 길이 곧 역사가 된 거장이지만, 그는 스스로 무언가 되고자 의식했다면 지금의 위치에 다다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저 오늘 하루를 충실하게 지내며 행복하게 그림을 그리는 것이 전부라는 그는 내일도 출근 도장을 찍고 책상에 앉아 손으로 그림을 그릴 것이다. 버디 매
디즈니의 살아 있는 전설, 버니 매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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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을 가득 채운 눈동자가 우리를 바라본다. 아니, 우리가 거대하게 찍은 눈동자를 목격하는 걸까. 두 문장은 같지만 전혀 다르다. 드니 빌뇌브의 <블레이드 러너 2049>(이하 <2049>)와 1982년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의 관계가 정확히 이러하다. <2049>는 리들리 스콧이 스크린에 붙들어 맨 세계의 형태에 경배를 바치며 충실한 복제를 시작하는 것처럼 보인다. <블레이드 러너>의 오프닝을 먼저 떠올려보자. 칠흑 같은 암흑에 별처럼 박힌 건물의 불빛들과 간헐적으로 솟아오르는 불기둥이 익스트림 롱숏으로 펼쳐진다. 이윽고 클로즈업된 눈동자가 화면을 메우는데 녹색의 눈동자에는 불빛과 화염들이 거울처럼 반사되고 있다. <2049>의 경우 시작과 함께 화면을 메우는 건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포착한 눈동자다. 영화는 눈동자를 한참 바라본 뒤에야 익스트림 롱숏으로 하얀 바닥에 점처럼 박힌 단백질 농장의 전경을 천천히
<블레이드 러너 2049> 세계의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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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는 <마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더!>를 보다 떠오른 건 즈비뉴 립친스키의 단편 <탱고>(1981)였다. 미국 아카데미에서 단편애니메이션 작품상을 수상했고 어느덧 고전이 된 이 작품은 보통 ‘반복과 단절’의 주제로 읽힌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작지만 단정하게 정리된 방이 배경이다. 앞쪽으로 침대가 놓여 있고, 반대쪽으로는 문과 창이 보인다. 문은 좌우 벽에 하나씩 더 있으며, 오른쪽 벽으로는 아기 침대가, 왼쪽 벽으로는 옷장이, 가운데엔 원탁과 의자 두개가 배치되어 있다. 반복되는 탱고 음악이 흐르고 제목이 제시된 다음, 창을 통해 공이 튀어 들어오고 한 아이가 뒤따라와 공을 들고 나간다. 아이의 행동이 반복될 동안, 두 번째 인물인 여성이 뒤쪽 문을 통해 들어와 원탁에 앉아 아이에게 젖을 물린 다음 침대에 누인다. 세 번째 인물인 검은 선글라스의 남자가 몰래 침입해 옷장 위에 놓인 꾸러미를 훔쳐 달아
<마더!> 여기서 파라다이스를 꿈꾸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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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과 이견이 분분하다고 좋은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좋은 영화는 반드시 영화를 둘러싼 말이 넘쳐난다. 드니 빌뇌브의 <블레이드 러너 2049>와 대런 애로노프스키의 <마더!>는 흥행과 별개로 어떤 방식으로든 좀더 이야기되어야 할 영화들이다. 누군가는 그 앞에 문제작이라는 팻말을 붙이기도 하고 누군가는 걸작이라며 칭송해 마지않을 것이다. 이것은 평가가 아니라 논의의 시작이다. 몇 마디 말과 몇편의 글로 전부를 갈음할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 두고두고 이어질 이야기에 물꼬를 틔우는 심정으로, 송경원 기자와 이용철 평론가의 글을 부친다.
<블레이드 러너 2049> <마더!> 문제작 심층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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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이미지의 최전선. 삶 전체를 관통하는 단면을 기어이 포착해내 10여분의 짧은 영상 속으로 옮겨담는 카메라의 시선은 영상매체로서는 아주 전통적이고 또 그래서 더욱 전복적인 시도를 꾀할 수 있다. 단편영화의 매력은 거기에서 나온다. 올해로 15회를 맞이하는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AISFF, 이하 아시프)의 메인 포스터 전면에 꽉 들어차 있는 보름달의 이미지가 보여주는 의미도 실은 영상의 길고 짧음에 상관없이 우주 만물을 담아낼 수 있다는 포부가 아닐까. 11월 2일부터 7일까지 6일간 씨네큐브 광화문과 CGV피카디리1958에서 열리는 이번 영화제에서는 총 125개국 5452편이 출품된 가운데 국제경쟁부문에서 총 31개국 47편, 국내경쟁부문에서 총 13편을 최종 선정했다. 올해 15회를 맞이해 수상 부문에 약간의 변화를 꾀했는데 기존 수상 부문에 더해 한국영화아카데미의 후원으로 ‘KAFA상’이, 티캐스트 협찬으로 국내경쟁에 한해 수상하는 ‘씨네큐브상’이 추가로 신설됐다. 국내외 경
제15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11월 2일부터 11월 7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