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혁은 영화에서 노래를 꽤 불렀다. 기가 막히게 잘 불렀다는 게 아니라 몇번 불렀다는 얘기다. 신기하게도 영화는 그의 노래를 중간에 끊지 않고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들려줬다. 그의 무덤덤하면서도 담백한 노래는 몇 마디 인상적인 대사보다 영화가 얘기하고자 하는 바를 그대로 전해줬다. 그런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공교롭게도 그 노래들은,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 최호섭의 노래인 <세월이 가면>,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이하 홍반장)에서 각각 김광석과 유재하의 노래인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와 <그대 내 품에>다. 어쩜 그리도 떠난 그를 떠올리게 하는 곡들인지. 당연히 원곡보다야 못하지만 이상하게 그의 노래는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그래서 아마도 카메라는 그로 하여금 영화에서 그 노래들을 꼬박 다 부르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꽤 한동안 그 노래들이 입가를 맴돌 것 같다. “세월이 가면
[김주혁 추모] 더없이 든든했던 배우 기억하겠습니다
-
2017 서울프라이드영화제는 ‘연대는 희망이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11월 2일(목)부터 8일(수)까지 7일간 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열리는 비경쟁 퀴어영화제다. 올해는 전세계 30개국 70여편의 작품이 상영된다. 개막작으로 선정된 로뱅 캉피요 감독의 <120 비츠 퍼 미니트>는 올해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작품으로 90년대 초반 프랑스 파리에서 제대로 된 치료제 없이 에이즈로 죽어가는 자신과 동료들을 살리기 위해 정부와 제약회사에 대항하여 투쟁한 ‘액트업’(정부의 에이즈 대책 강화를 요구하는 단체) 활동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폐막작으로는 영화제의 제작 지원 제도인 ‘프라이드 필름 제작 지원’을 받은 김창범 감독의 단편 <두 밤>, 이은경·이희선 감독의 <셔틀런>, 홍유정 감독의 <프리버드> 등 세편이 상영된다.
프로그램은 다섯개의 섹션으로 구성되는데 ‘핫 핑크 섹션’, ‘스페셜 프라이드 섹션’, ‘코리아 프
2017 서울프라이드영화제
-
1920년대 독일영화의 최고 전성기를 담당했던 우파(Ufa)영화사가 100주년을 맞았다. 우파영화사 세트장이 자리했던 베를린과 포츠담에서는 전시회, 회고전, 학술대회 등 기념행사가 연달아 열리고 있다. 이미 베를린 예술영화극장 바빌론이 9월 한달 동안 우파영화사 영화 100여편을 선정해 상영했다. 또 9월 25일엔 독일 대통령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와 독일 영화인 4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독일 우파 100주년 기념식도 열렸다. 현재 포츠담 영화박물관에서는 전시회와 상영회가 열리고 있고, 베를린 영화박물관에서도 11월 전시회 일정이 잡혀 있다. 독일 프랑스 합작 공영 방송국 <아르테>에서는 우파영화사 100주년 기념 특집 영화들을 방영하고, 방영된 영화들을 인터넷에도 제공하고 있다. 우파영화사 영욕의 역사를 다룬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들이 12월 초 방영 예정이다. 한편 독일 역사박물관에서 지난 5월에 열렸던 우파영화사 관련 학술회의가 12월에도 열린다.
우파영화사는 독
[베를린] 1차대전 독일 프로파간다로 시작된 영화사의 과거와 현재
-
본문 내용과는 별 상관이 없지만 <잇 컴스 앳 나잇>(2017)이라는 제목에 대해서 한마디 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원제인 ‘It Comes at Night’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기본적인 단어들로만 이루어진 명쾌하고 으스스하고 우아한 제목이다. 무엇보다 이 제목은 아무런 장애 없이 한국어로 말끔하게 번역될 수 있다. 그런데 수입사에서는 이 간단한 작업을 하지 않고 <잇 컴스 앳 나잇>이라는 괴상한 제목을 붙여버린다. 쉬운 단어라고 해서 한글 표기도 그러라는 법은 없다. ‘comes’는 쉬운 단어지만 ‘컴스’라고 쓰면 어색할 뿐이다. 물론 기억하기도 어렵다. 수많은 잠재 관객이 이 영화의 제목을 감당하지 못하고 포기했을 가능성이 높다. 도대체 못 볼 수 없는 문제인데 어떻게 이 제목으로 극장 개봉까지 온 것일까. 모를 일이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잇 컴스 앳 나잇>이라니 이 영화는 십중팔구 호러이거나 스릴러다. 제목만 본다면 호러
호러의 규격을 배반한 <잇 컴스 앳 나잇>이 공포를 야기하는 방법
-
-
혼외자녀를 집에 들인 남편과 이혼하지 못하는 재벌가 막내딸 김정혜(이요원)와 자식이 학교폭력에 휘말린 재래시장 생선장수 홍도희(라미란), 가정폭력 피해자인 중산층 전업주부 이미숙(명세빈). 부암동에 사는 세 여자가 복수 품앗이를 위해 모임을 결성했다. ‘부암동 복수자 소셜 클럽’이라는 거창한 이름은 짓자마자 ‘복자클럽’이라 줄어들었고, 대책 없이 모여서 제일 먼저 한 합의는 ‘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의 복수가 좋겠다는 거였다. tvN <부암동 복수자들>은 복수를 전면에 내걸고 있지만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자신과 주변을 갈아넣는 눈먼 복수자가 주인공인 드라마와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일반적인 복수극이 돌이킬 수 없는 무언가를 앗아간 대상에게 억울함을 터뜨리다 악인과 닮아가고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 뒤늦게 치유되는 흐름이라면, 복자클럽 멤버들은 지키고 보호하고 싶은 것들이 있어서 조심스럽다. 또한 이들은 상처 입은 각자의 존엄을 회복하기 위해 제일 먼저 자신들을 돌본다. 생
[TVIEW] <부암동 복수자들> 나, 우리, 세계
-
<오리엔트 특급 살인> Murder on the Orient Express
감독 케네스 브래너 / 출연 케네스 브래너, 페넬로페 크루즈, 윌럼 더포, 주디 덴치, 조니 뎁, 조시 개드, 미셸 파이퍼, 데이지 리들리 / 수입·배급 이십세기폭스코리아 / 개봉 11월 말
“이 기차엔 악마가 타고 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고전 추리소설, <오리엔트 특급 살인>(1933)이 영화화됐다. 영국 감독 케네스 브래너가 감독과 주연을 겸한 이 작품은 이스탄불에서 런던으로 향하는 고급 열차, ‘오리엔트 특급’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조명한다. 이 열차에는 세계적인 명탐정, 에르큘 포와로(케네스 브래너)가 타고 있다. 폭설로 열차가 멈춘 사이, 한 승객이 살해당하고 탑승객 13명이 용의선상에 오른다. 교수, 집사, 공작 부인과 하녀, 가정교사, 선교사, 미망인, 세일즈맨과 의사, 백작 부부와 비서, 그리고 갱스터. 범인은 이 안에 있다. 케네스 브래너는 “원작의 정수를 유지
[Coming Soon] <오리엔트 특급 살인>, ‘오리엔트 특급’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
<온리 더 브레이브> Only the Brave
감독 조셉 코신스키 / 출연 조시 브롤린, 마일스 텔러, 제프 브리지스
2013년 미국 애리조나에서 발생한 산불로 순직한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했다. 2007년 애리 조나의 프레스콧 소방국은 에릭(조시 브롤린)의 주도로 최정예 산불진화 대원을 선발한다. 젊은 대원 브렌단(마일스 텔러)을 포함해 21살에서 41살의 소방관으로 구성된 ‘그래닛 마운틴 핫샷 크루’가 탄생한다. 이들은 대규모 산불 진화 작업에 투입되고 20명 중 19명이 순직하는 아픔을 겪는다. 숭고한 희생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해외 박스오피스] 미국 2017.10.27~29
-
-매즈 미켈슨, 세계 최강 암살자 연기한다.
매즈 미켈슨이 다크 호스 코믹스의 그래픽노블을 원작으로 하는 액션 스릴러 <폴라>의 주연에 캐스팅됐다. 그가 연기할 던칸은 세계 최고의 암살자로, 은퇴 후 은둔해 있던 그가 무고한 여자를 보호하기 위해 다시 비장의 무기를 꺼내든다는 내용을 담는다.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 AMPAS 특별상 수상한다.
아카데미 위원회는 올해 VR 단편영화 <살과 모래>를 만들어 칸국제영화제에서 공개했던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에게 제9회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특별상을 수여한다고 발표했다. 이 상은 기술 혁신을 이룩한 영화인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그는 19번째 수상자가 됐다.
-앤설 엘고트, 아마존 제작 영화에 합류한다.
영화 <황금방울새>는 작가 도나 타트의 퓰리처상 수상작인 소설 <황금방울새>를 영화화하는 작품으로 워너브러더스와 아마존 스튜디오의 합작 영화다. 미술관 폭탄
매즈 미켈슨, 세계 최강 암살자 연기 外
-
[정훈이 만화] <블레이드 러너 2049> 박사님께서 창조하신 리플리컨트 임시 NO.5 입니다
[정훈이 만화] <블레이드 러너 2049> 박사님께서 창조하신 리플리컨트 임시 NO.5 입니다
-
‘완벽한 한 잔’ 시리즈. <완벽한 커피 한 잔: 원두의 과학>에 이어 <완벽한 차 한 잔: 찻잎의 과학>이 출간되었다. ‘차’라고 통칭되는 음료의 산지별, 가공과정별 특징과 우리는 법까지가 핸드북 형식으로 정리되어 실렸다. 세계 제1의 차 생산국은 중국인데, 중국산 차 이름을 정하는 규격화된 공식은 존재하지 않아 이국적이고 현란하며 혼란스러운 이름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차를 많이 수입하고 재수출하는 나라는 차를 전혀 생산하지 않는 독일이다. 독일은 인도산 다질링차의 단일 최대 시장이기도 하다. 아침에는 아삼, 실론을 비롯해 강한 맛의 단일 원산지 홍차 혹은 잉글리시/아이리시 브랙퍼스트가 좋다. 점심이나 이른 오후에는 센차, 재스민, 마차, 황산모봉 등의 은은한 녹차나 아리산, 동방미인 같은 우롱차가 좋고, 저녁이나 이른 밤에는 우롱차, 백호은침, 백모란 등의 백차나 디카페인 차가 좋다고. 책의 후반부에는 공부차 끓이기, 개완 사용하는 법, 잉글랜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완벽한 차 한 잔>, ‘완벽한 한 잔’ 시리즈
-
그 섬으로 가기 위해서는 뱃사공의 도움이 없으면 안 된다. 어느 노부부는 뱃사공에게 섬으로 데려다달라고 청했는데, 남편을 먼저 태우고 간 뒤 뱃사공은 노파를 섬으로 데리고 가지 않았다. 뱃사공의 말은 이렇다. “가끔 부부가 함께 섬으로 건너가도록 허용되기도 하지만 드문 일이에요. 두 사람 사이에 대단히 강한 사랑의 유대가 있어야 하지요. 그런 일이 더러 있다는 거 부인하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남편과 아내, 심지어는 결혼하지 않은 연인이라도 두 사람이 배를 타고 건너가려고 기다리는 걸 보면 꼼꼼하게 확인해야 하는 게 우리 의무지요.” 가즈오 이시구로의 <파묻힌 거인>에 등장하는 뱃사공의 이야기는 그의 전작 <나를 보내지 마>를 연상시킨다. 그 작품에서는, 두 연인이 정말 서로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입증한다면, 그들에게 운명지워진 장기기증을 얼마간 뒤로 미룰 수 있으리라는 도시전설 같은 소문이 등장한다. 뱃사공의 이야기에도, 이 소문에도, 당신은 묻지 않을 수 없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파묻힌 거인>,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
지난 10월 27일, CJ문화재단에서 주관하는 신진 작가 기획개발 프로그램 스토리업(STOTY UP) 행사의 일환으로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의 ‘영화로 보는 인공지능’ 특강이 CGV용산에서 열렸다. 장장 3시간에 걸쳐 진행된 이날 행사의 1부에서는 정재승 교수가 인공지능 기술의 역사 전반에 대해 개괄적으로 소개했고, 2부에서는 김혜리 기자의 진행으로 참석자들과 함께 실제 인공지능을 영화화할 때 고려해야 할 요소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미래의 기술로 인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달라질 것이며, 영화는 달라질 미래 사회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한편, 스토리업 특강은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다양한 소재를 발굴하여 신인 스토리텔러 및 예비 창작자의 참신한 스토리 기획과 완성도 높은 스토리 구현에 기여하기 위한 전문토크 프로그램으로, 이후 이수정 교수의 ‘영화로 보는 인격장애’(11월 17일), 김복준 한국범죄학연구소 연구위원의 ‘영화로 보는 강력범죄’(12월 16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인공지능③]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김혜리 기자의 ‘영화로 보는 인공지능’ 토크 중계
-
10월 27일, CJ문화재단에서 주관하는 신진 작가 기획개발 프로그램 스토리업(STORY UP) 특강의 첫 번째 시간으로,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의 ‘영화로 보는 인공지능’ 특강이 CGV용산 아이파크몰 4관에서 열렸다. 장장 3시간에 걸쳐 진행된 이날 행사의 1부에서는 정재승 교수가 인공지능 기술의 역사 전반에 대해 개괄적으로 소개했다. <씨네21>에서는 정재승 교수의 강의를 발췌, 요약하여 6가지 질문으로 나눠서 정리했다. 거기에 각 질문을 염두에 두고 보면 좋을 영화도 함께 소개한다. 영화가 상상한 미래이자 인공지능이 영화에 던지는 질문이 여기에 있다. 한편, 스토리업 특강은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다양한 소재를 발굴하여 신인 스토리텔러 및 예비 창작자의 참신한 스토리 기획과 완성도 높은 스토리 구현에 기여하기 위한 전문 토크 프로그램으로, 이후 이수정 교수의 ‘영화로 보는 인격장애’(11월 17일), 김복준 한국범죄학연구소 연구위원의 ‘영화로 보는 강력범죄’(12월 16
[인공지능②] 정재승 교수에게 들었다- <터미네이터> 시리즈부터 <엑스마키나>까지 영화로 보는 인공지능 이야기
-
“인간이 패배한 것이 아니라 내가 진 거다.”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경기에서 내리 5전3선승의 경기에서 3연패를 당한 이세돌 9단은 인터뷰 말미 심경을 묻자 이렇게 밝혔다. 그리고 다음 경기에서 이세돌은 알파고에 1승을 거둔 유일한 사람으로 기록된다(알파고는 이후 커제 9단에게 3판 전승 승리를 거둔 후 공식 은퇴했다). 당시 네티즌들은 이세돌 9단의 발언을 뒤집어 이렇게 평가했다. “인간이 이긴 게 아니다. 내가 이긴 거다.” 농담 같은 패러디지만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로 한껏 부풀려진 이벤트의 본질을 꿰뚫는 한줄인 것 같다.
기계의 등장 이래 사람들은 기계가 인간의 자리를 밀어낼 거라는 불안에 사로잡혔다. 인간이 직접 해야 할 일들을 기계가 하나씩 대체하는 순간마다 언젠가 기계가 인간의 자리를 차지할 거라는 공포에 빠진다. 재미있는 상상이다. 말이 인간보다 빨리 달린다고 해서 말이 인류를 지배할 거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기계는 두려워한다. 인간의 것을
[인공지능①] 영화 속 인공지능의 변화, 현실의 인공지능 발전상, 그리고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