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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봉준호에게 디테일이란 카메라의 객관성을 증언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봉준호가 인물들을 자세히 관찰할수록 관객은 인물과 거리를 유지하게 된다. 봉준호의 카메라는 인물들의 낯설고 이상한 모습까지도 그대로 포착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괴물>(2006)에서 강두(송강호)가 손님이 시킨 오징어 다리를 떼먹는 신은 강두가 한치 앞도 못 보는 캐릭터임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강두는 보지 못한다. 관객은 본질적으로 보는 자이기에 보지 못하는 자는 관객에게 타자로 남을 수밖에 없다. 관객은 보지 못하는 자들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그들의 외부에서 그들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보게 된다.
보지 못하는 자들을 보여주는 것은 봉준호뿐만이 아니다. 만국노동자들의 에스페란토를 만들고 싶어 했던 채플린의 영화 속 ‘떠돌이’들은 모두 보지 못하는 자들이다. 물정에 밝지 못한 ‘떠돌이’들은 자신의 불행을 야기하는 사회적 모순을 보지 못한다. 관객은 이들을 멀리서 보게 되고
<7호실>은 삶의 실재를 무엇으로 환유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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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가히 작두 탔다고 표현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한 밴드의 멤버로 히트곡을 펑펑 쏘아올리더니 어느새 프로듀서로 스윽 변신해 다른 뮤지션들의 곡 크레디트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으니 말이다. 주인공은 바로 잭 안토노프. 밴드 펀의 기타리스트인 그는 이미 <Carry On> <We Are Young> 등의 곡들을 통해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했던 바 있다. 어디 이뿐인가. <We Are Young>으로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노래’도 수상했으니, 밴드 일원으로서 받을 수 있는 복은 다 받았다고 봐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잭 안토노프는 프로듀서로서도 엄청나게 잘나간다. 그의 섬세한 프로듀싱은 특히 여성 뮤지션들과의 연대에서 더 큰 빛을 발해왔는데, 우선 그는 테일러 스위프트가 가장 신뢰하는 파트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앨범 《1989》(2014)를 시작으로 최근에는 신곡 <Look What You Made Do>에 프로듀서로
[마감인간의 music] 잭 안토노프, 2017 최고의 팝 조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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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파 두목 장첸으로 <범죄도시>(2017)에서 윤계상이 전무후무한 악역 연기를 펼치는 동안, 스크린에서 지속적으로 관객의 시선을 끄는 또 한명의 배우가 있었다. 장첸의 오른팔 위성락은, 정말이지 한시도 쉬지 않고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민머리의 험상궂은 마스크로 흑룡파의 잔악함을 드러내고, 어필한다. 낯이 익지만 영화 속 모습이 사뭇 달라서 신선했고, 그래서 이제는 지울 수 없을 정도로 각인됐다. 위성락 역의 진선규는 늘 악당이 아닌, 순하고 선한 역할로 얼굴을 알려온 배우고, 이번엔 그간의 연기를 ‘판돈’으로 걸고 필사의 도전을 감행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범죄도시>가 680만 관객몰이로 흥행하기까지, 진선규를 모르고 극장을 찾았던 이들은, 이제 진선규와 조연배우들의 활약 덕분에 이 영화가 매력적이었다고 입모아 말한다. 영화뿐만 아니라 최근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닥터스> 등 무대, 브라운관, 스크린을 오가며 지난 15년간 묵묵히
<범죄도시> 진선규 배우, "역시 나보다는 영화가 더 잘되는 게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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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맨> HANGMAN
감독 조니 마틴 / 출연 알 파치노, 칼 어번, 브리태니 스노
상대가 생각한 단어를 맞히는 행맨게임을 모티브로 한 연쇄살인이 일어난다. 범인은 첫 살해 현장에 10개의 빈칸을 남겼다. 계속되는 살인에서 범인은 범죄 현장에 알파벳과 숫자를 남겨 자신이 연상한 단어를 맞히게 한다. 이 게임에 휘말린 형사 레이(알 파치노)와 프로파일러 윌(칼 어번)은 범인이 예고한 글자 수를 다 채우기 전에 사건의 진상을 밝혀야 한다. 그 진상에 다가갈수록, 이번 사건이 과거 두 사람이 해결한 어떤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12월 22일 북미 개봉예정.
[WHAT'S UP] <행맨>, 상대가 생각한 단어를 맞히는 행맨게임을 모티브로 한 연쇄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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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슬럼프’는 스포츠나 예술 분야 종사자의 기량이 일시적으로 정체에 빠진 상태를 뜻한다. 그런데 최근 이 슬럼프가 게으름이나 무기력을 뜻하는 일반 용어로 자리잡아가는 것 같다. 사람들은 이런저런 경우에 “요새 슬럼프야”, “인생이 슬럼프야”라는 자책 어린 표현을 한다.
슬럼프는 그저 할 일을 안 하는 불성실한 상태가 아니다. 옛날 옛적, 누구나 일을 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성실함이란 “주어진 일에 전념하는 태도”였다. 사람들은 말했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여기서 일이란 개인이 공동체를 위해 수행하는 역할이었다. 공동체에 기여하지 않는 자는 사람대접을 받을 수 없었다.
역사는 흘렀고 사람들은 대꾸하기 시작했다. “일하고 싶어도 일을 못하는데 먹지도 말라니, 너무 가혹하군요.” 그러자 새로운 말이 나왔다. “게으른 자는 먹지도 말라.” 일이 없다면 적어도 일을 구하기 위해 성실히 준비하고 노력해야 하며, 그러지 않는 자는 여전히 공동체에 해로운 사람이라는
달리는 당신, 슬럼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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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투 버건디>는 프랑스 버건디 지방의 와인농장을 부모에게 물려 받은 세 남매의 이야기를 그린다. 10년간 고향을 떠나 있던 첫째 장(피오 마르마이), 아버지가 죽자 돌아온 그에게 둘째 줄리엣(아나 지라르도)과 셋째 제레미(프랑수아 시빌)가 갖고 있던 서운함, 그리고 와인농장의 상속 및 부동산 문제가 엮인다. 적잖은 시간을 들여 숙성해야 하는 와인과 관계의 회복은 이야기에서 자연스럽게 조응하고, 더 나아가 영화의 호흡과도 썩 어울린다. 제2회 프렌치 시네마투어 참석차 한국을 찾은 <백 투 버건디>의 세드리크 클라피쉬 감독을 만나 이 기막힌 결합에 대해 좀더 자세히 물었다.
-와인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그냥 직관이었다. 촬영하면서 와인을 주제로 한 영화에서 어떤 점이 흥미롭고 어디에 더 치중해야 하는지 알게 됐다. 그게 바로 가족간의 연결고리였다. 특히 시간과 관련된 유사점이 많다. 만드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이 필요
<백 투 버건디> 세드리크 클라피쉬 감독 - 와인과 영화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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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투 버건디>는 실제로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들며 1년간 시간 순서대로 촬영한 작품이다. 주인공은 10년 만에 함께 살게 된 세남매다. 가족 사이의 갈등이 풀리며 화해하는 과정을 연기하는 것이 실제 배우들이 친밀해지는 과정과 병행되는 셈이다. 세드리크 클라피쉬 감독이 “각자가 훌륭한 배우인가보다 어떤 합이 나올 수 있느냐를 중점적으로 보고 캐스팅했다”고 말한 이유다. 한국을 찾은 아나 지라르도에게 이런 독특한 촬영현장의 경험에 대해 물었다.
-영화에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이미 첫째 장(피오 마르마이)과 셋째 제레미(프랑수아 시빌)가 캐스팅된 상태였다. 평소 세드리크 클라피쉬 감독님과 함께 작품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프랑스 감독 중 하나이며 인간관계를 아주 잘 그린다. 그런 감독님이 캐스팅 건으로 다 함께 보고 싶다고 전화를 준 것이다. 차가 막혀서 약속 장소에 1시간 늦게 도착했다. 캐스팅에서 떨어졌겠구나 싶어서 울면서 귀가했는데 “
<백 투 버건디> 배우 아나 지라르도 - 시간과 연기가 함께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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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일라 슬리마니는 모로코 출신의 프랑스 소설가다. 2016년 <달콤한 노래>로 공쿠르상을 받은 슬리마니는 최근 지난 11월 7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 의해 프랑스어 진흥 특사로 임명된 직후 한국을 방문했다. 배우, 기자로 일했고 두 아이를 둔 슬리마니의 두 번째 장편소설 <달콤한 노래>는 “아기가 죽었다. 단 몇초 만에. 고통은 없었다고 의사가 분명하게 말했다”라는 오싹한 도입부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죽음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따라가지만, 미스터리를 해결하기보다 더 풍부하게 만들어간다. 평온해 보이는 한 가정의 문 뒤에서 벌어지는 일들, 사건이나 사고로 이어지기 전에는 쉽게 무시되는 갈등과 비밀. 슬리마니는 아이들을 죽이는 것을 묘사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에 오히려 책 속에서 아이들을 누구보다 생생하게 살아 있게 하겠다고 결정했다고. 그녀를 만나 소설과 여성의 삶에 대해, <달콤한 노래>에 대해 들었다.
-<달콤한 노래>
<달콤한 노래> 작가 레일라 슬리마니 - 여성의 이야기를 집 밖으로 끌어내면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이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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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시네마 365일 개봉관_ 롯데시네마 3개관(부천 신중동역, 안양일번가, 라페스타) / 상영시간 1일 2회 오전 10시~오후 1시 중 1회, 오후 6~9시 중 1회
● G-시네마 동시개봉관_ 고양영상미디어센터, 파주 헤이리시네마 / 상영시간 각 동시개봉관 홈페이지 확인
● 11월 5주 상영작_ <메소드> <국정교과서 516일: 끝나지 않은 역사전쟁> <프레스>
<메소드>
감독 방은진 / 출연 박성웅, 윤승아, 오승훈 / 82분 / 15세 관람가
내 연기, 진심일까? 내 감정, 진짜일까? 만났다 나 같은 놈을. 무대를 위해 자신을 버리는 메소드 배우 재하. 연기를 위해 자신을 던지는 아이돌 스타 영우. 열정과 진심사이, 완벽 그 이상의 메소드 연기가 시작된다.
<국정교과서 516일: 끝나지 않은 역사전쟁>
감독 백승우 / 97분 / 12세 관람가
<천안함 프로젝트>를 만들었던 백승우 감독은 한
[경기도 다양성영화 G-시네마] 경기도 다양성영화관 G-시네마 다양성영화 11월 5주 상영작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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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롱도르의 역사를 한눈에
크루이프, 베켄바우어, 플라티니, 지단, 피구, 메시, 호날두의 공통점은?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들에게 수여하는 상 발롱도르를 받은 선수들이다. 발롱도르 시상식을 주관하는 <프랑스 풋볼>은 지난해 제정 60주년을 맞아 책 <발롱도르: 세계 축구의 전설들>(풋볼리스트 펴냄)을 출간했다. 1956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세계 축구 정상에 오른 선수들의 인터뷰와 사진, 발롱도르 수상자들과 자웅을 겨뤘던 차점자들이 누구인지, 그해 세계 축구의 여러 사연들을 차곡차곡 담아낸 책이다. 12월 7일 열리는 2017 발롱도르의 주인공은 누가 될까. 메시일까, 아니면 호날두일까.
연말을 알리는 목소리
겨울이면 찾아오는 단골 손님, 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이 12월 내한한다. 전세계에서 유일한 아카펠라 소년합창단인 이들은 올해 더욱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선보인다. 보이 소프라노의 역량이 돋보이는 모차르트의 <자장가>를 비롯해 성가 <아베
[culture highway] 상상마당이 뽑은 올해의 배우는?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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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살인자라 불리는 미세먼지는 어느새 서울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중국 베이징, 인도 델리와 더불어 서울은 세계에서 공기 오염이 가장 심한 도시로 꼽힌다. 지난 반세기, 서울에서 가장 사악한 살인마는 평양이었다. 그 살인마는 눈에 가장 잘 띄는 동시에 좀처럼 보이지 않는 신출귀몰한 괴물이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평양의 이념이 쥐도 새도 모르게 서울의 뇌로 스며들어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한다”고 배웠다. 서울은 언제나 평양을 고발하고, 평양과 경쟁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제 서울은 허파에서 혈관을 타고 뇌까지 침투하는 1급 발암물질, 초미세먼지를 더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미세먼지를 줄이는 일은 큰돈이 드는 일이므로 서울에선 어려운 일이다. 돈을 만들고 쌓는 사업은 그 반대이므로 서울에서 미세먼지를 늘리는 건 어렵지 않다. 예나 지금이나 서울은 돈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산을 좋아하던 나는 요즘 산을 잘 오르지 않는다. 더 많은 공기를 마셔야 한다는 건, 더 많은
[노순택의 사진의 털] 평양 핵탄두 서울 돈탄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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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여성 감독 일디코 에네디의 18년 만의 복귀작.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하고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국내 관객을 만난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는 헝가리의 특별한 감수성을 체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가축 도축 공장에서 관리자로 일하는 엔드레(게자 모르산이)와 고기의 등급을 매기는 신입사원 마리어(알렉상드라 보르벨리)에게는 믿을 수 없는 공통점이 있다. 밤새 같은 꿈을 꾼다는 것이다. 상담 프로그램을 통해 우연히 꿈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엔드레는 과거 경험한 마음의 상처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마리어는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없다. 영혼의 소통을 넘어 육체의 교감을 원하는 두 사람의 바람은 번번이 좌절된다.
일디코 에네디의 세계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필요하다. 일견 아무 관계도 없어 보이는, 두 남녀의 무미건조한 일상과 사슴 한쌍이 설원을 배회하는 서정적인 풍경이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기묘하고도 아름다우며 시적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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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김은주)과 성락(서성광)은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농인 부부다.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 소중하고 건강한 아들이 태어나지만 둘은 이내 고민에 빠진다. 당장 생활을 꾸리기도 힘든 처지에 아기를 제대로 돌보기 어려울 거라 판단한 두 사람은 아이를 잠시 시골에 있는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기로 결정한다. 몇년 뒤 생활이 조금 나아지고 아이(이로운)가 학교에 갈 나이가 되자 보현은 아들을 데리러 간다. 하지만 아이는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부모가 낯설고 어렵다. 아이가 자신을 거절하자 충격을 받은 보현은 괜히 친정어머니까지 미워진다. 하지만 보현이 마음을 수습할 틈도 없이 친정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남겨진 보현과 아이는 한 가족이 되기 위한 조심스럽고도 어려운 첫발을 디딘다.
<아들에게 가는 길>은 코다(청각장애인 사이에 태어난 정상인 아이) 가정의 양육 문제를 다룬다. 듣고 말하지 못하는 부모와 정상인 아이 사이에는 단순한 소통의 어려움 이상의 장벽들이 산재해 있다. 영화는
<아들에게 가는 길> 소리 없는 진심을 전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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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미래, 숲속 저택에 사는 넬(엘렌 페이지)과 에바(에반 레이첼 우드) 자매와 아버지가 여느 때와 다름없는 저녁을 보내고 있을 때 서부지역 정전사태를 알리는 긴급 속보가 흘러나온다. 속보가 끝나자마자 넬의 집에도 전기 공급이 끊기고 정전은 며칠째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모든 전파가 끊기고 마을에는 약탈자들이 들끓는 데다 사고로 아버지까지 사망하면서 넬과 에바는 고립무원의 상태로 저택에 머물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넬의 남자친구 일라이(맥스 밍겔라)가 찾아와 자매에게 전기가 나오는 동부지역으로 함께 떠나자는 제안을 한다. 그러나 넬과 에바의 의견은 엇갈리고, 자매는 헤어짐의 갈림길에 선다.
회색이 아니라 녹색으로 이루어진 포스트 아포칼립스다. 넬과 에바는 불신과 공포 대신 자매애를 동력으로 삼아 회색 도시가 아닌 녹색 숲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이들이 대자연을 눈여겨 바라볼 때 어떤 경건함과 더불어 가장 소박하기에 아주 단단한 행복이 스며든다. 이 점에서 일반적인 포스트
<인투 더 포레스트> 가까운 미래, 전기에 지배당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