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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현장 감독관으로 일하는 로만(아놀드 슈워제네거)은 오랜만에 생일을 맞아 집을 찾은 딸을 기쁘게 해주려고 집도 꾸미고 꽃도 한 다발 산다. 멀리서 오기 때문에 임신한 딸을 아내가 직접 비행기에서부터 동승해서 데리고 오는 중이다. 도착할 시간이 되어서도 집에 오지 않자 그는 공항까지 직접 마중을 나간다. 그날 하필, 항공교통관제사 제이크(스콧 맥네리)의 근무시간 내내 이상한 일이 생긴다. 갑자기 사람들이 근무 교대시간에 전화선을 수리한다고 부산을 떨더니, 예정에 없던 회항 소식까지 들려오는 탓에 그는 밀려드는 항공기 관제 컨트롤을 제때 해내지 못한다. 그 결과, 사람들은 끔찍하고 비극적인 참사 소식을 듣게 된다. 어떤 사건의 후유증 내지는 남아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영화 <애프터매스>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영화는 사상 최악의 항공기 참사 이후 고통을 견뎌내야 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피해자 로만과 직접적 가해자는 아니지만 사실상 가해자로 지목된 제이크 두 사람
<애프터매스> 사상 최악의 항공기 참사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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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간 아메리칸 인디언을 토벌해온 전설적인 대위 조셉 블로커(크리스천 베일)는 불치병으로 곧 죽음을 앞둔 샤이엔 인디언 족장 옐로우 호크(웨스 스투디)와 그의 가족을 고향 몬태나로 호송할 명을 받는다. 임무 수행 도중, 그는 인디언에게 가족을 잃은 로잘리 퀘이드(로저먼드 파이크)를 비롯해, 인디언 일가 전체를 살해해 군사재판을 받게 된 탈영 병장 찰스 윌스(벤 포스터) 등을 만나게 된다. 1892년 서부. <몬태나>는 원주민과 미국인이 대치하고 반목해온 시간의 끊임없는 악순환 속으로 불쑥 들어간다. 영화의 첫 장면, 로잘리 가족을 습격하고 머릿가죽을 벗겨간 인디언의 극악무도한 모습은 이야기의 발단이 아닌, 이 역사 안에서 결코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과정 중 하나다. 그 전면에는 금광 채굴권 등 이권을 위해 원주민의 땅을 ‘내 것’이라고 주장하며 공격을 일삼은 미국인의 포악함 역시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스콧 쿠퍼 감독은 조셉이 이끄는 행렬을 이 폭력과 증오의 역사를 설
<몬태나> 몬태나로 향하는 1,000마일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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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은 구약성서 사사기에 인류 최초의 영웅으로 등장하는 삼손의 이야기를 성경 속 주요 사건 중심으로 충실히 스케치한다. 기원전 1170년 이스라엘, 블레셋(팔레스타인)인들의 지배를 받던 히브리(이스라엘)인들은 굶주림 속에서 신의 예언에 따라 태어난 삼손(타일러 제임스)의 활약만을 기다린다. 삼손은 민족의 희망과 기대를 한몸에 받지만, 왕의 시녀에 이어 데릴라(케이틀린 리히)에 이르기까지 블레셋 여성들과 차례로 사랑에 빠지면서 타고난 괴력으로도 거부할 수 없는 시련에 휩쓸린다. 블레셋의 왕자 랄라(잭슨 리스본)와 다투는 과정에서 맨손으로 사자를 때려잡고 여우들의 꼬리에 횃불을 묶어 밭에 불을 지르는 등 삼손의 엄청난 힘과 지혜를 묘사한 성경 속 일화들이 영화에 그대로 재현되지만, 미술 세트와 CG 장면에서 드러나는 저예산의 흔적이 끝내 아쉬움을 남긴다. 지금껏 삼손이 주로 거칠고 호전적인 단발의 거인으로 묘사되었던 것과 달리 <삼손>은 허리춤까지 오는 긴 머리
<삼손> 신의 예언에 따라 태어난 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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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아티스트 이자벨(줄리엣 비노쉬)은 남편과 이혼한 후 진정한 사랑의 실체를, 특별한 사람과의 남다른 관계를 갈구한다. 은행가부터 직업배우, 마지막에 등장하는 점쟁이까지 다양한 군상의 남자를 만나지만 그들과의 인연은 원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끝맺음된다. 격렬한 숨소리로 시작하지만 이자벨에게 충분한 만족을 주지 못한 채 허무하게 종결되는 섹스를 보여주는 오프닝은 영화의 전반적인 정서를 암시하는 단서다. 섹스 때문이든 정서적 교감의 문제든 이자벨과 남자들의 관계는 내내 덜컹거린다.
<렛 더 선샤인 인>을 이끄는 것은 주로 남녀의 끊임없는 대화 장면이다. 클레르 드니와 로맨틱 코미디의 조합도 생소하지만 대화의 형태에 영화의 성패를 건다는 점 역시 감독의 새로운 면모다.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크리스틴 안고트가 함께 쓴 시나리오는 프랑스의 구조주의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을 각색한 결과물이다. 클레르 드니는 “원작이 그렸던 극심한 고통의 컨셉
<렛 더 선샤인 인> ‘이자벨’은 오늘도 ‘누군가’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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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 출연 그라지나 자폴로스카, 올라프 루바젠코 / 제작연도 1988년
나의 고향은 충청남도 태안이다. 꼬꼬마 시절 내가 처음 접했던 영화들은 방학 때마다 마을회관에서 무료로 상영해주던 <영구와 땡칠이> 시리즈가 전부였다. 친구들과 일주일에 한번 정도 모여 대여점에서 빌린 비디오를 보곤 했는데 주로 홍콩영화들이었다. 강시들이 나오는 호러 코미디물과 <호소자> 시리즈, 그외엔 <WWF 레슬마니아> 시리즈를 즐겨봤었다. 제대로 된 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는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서울 이모님 댁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보게 된 팀 버튼 감독의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이었다. 그러나 당시엔 아무 생각 없이 봐왔던 영화들과 너무 다른 생경한 느낌에 큰 인상을 받진 못했었다. 영화 일로 먹고살게 된 지금, 내 인생의 영화는 과연 어떤 작품이었을까를 떠올려보니 성장기에 봤던 수많은 영화들 중 내가 영화 일을 하게 된
박정훈의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어른이 된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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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활약하는 배우들은 갑자기 어디에서 튀어나온 게 아니라 대중에게 발견되기 전까지 연극무대에서 관객을 직접 만나며 여러 역할을 소화해왔다. 연극 <바람 불어 별이 흔들릴 때>는 25년 만에 연극으로 돌아온 배우 최불암의 포스터로 개막 전부터 화제가 되었다. 현장에서 불편한 선배가 될까봐 한동안 연기를 쉬었다던 대배우는 극본이 주는 울림에 다시 무대를 선택했다.
또한, 배우 박철민은 스테디셀러 연극 <늘근도둑이야기>에 출연하며 ‘대표 도둑배우’로 활약하고 있다.
아내 혹은 엄마로 드라마에서 익숙해진 배우 장영남과 서이숙, 예수정은 그리스 고전을 바탕으로 한 연극 <엘렉트라>에 출연한다. 강동호, 신보라가 출연하는 <젊음의 행진>도 4월에 주목할 만한 뮤지컬이다. 이 공연들은 문화가 있는 날 홈페이지(www.culture.go.kr/wday/index.do)를 통해 특별 할인된 가격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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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으로 돌아간 배우들의 공연 4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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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은 감독의 영화는 무해하다. 쿨하고 예의바른 연출자의 성격을 닮은 그의 인물들은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느니 자신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쪽을 택한다. 날것의 감정을 드러내는 영화에 익숙한 국내 관객에게 그의 영화는 다소 심심하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괜찮다’는 말로 위장한 두려움과 불안의 감정을, 이동은 감독은 누구보다 집요하게 탐구할 줄 아는 연출자이며 그의 영화를 보면 이토록 담담하고 섬세하게 감정의 격랑을 좇는 연출자가 우리에겐 더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당신의 부탁>은 이동은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로, 세상을 떠난 남편이 남긴 아들, 종욱(윤찬영)과 함께 살기로 결심한 30대 여성 효진(임수정)의 이야기다. 상실 이후의 삶을 딛고 새로운 관계 속에서 성장을 도모하는 인물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이동은 감독의 전작 <환절기>의 연장선상에 있다.
-201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나리오 부문 당
<당신의 부탁> 이동은 감독 - 상실 이후 선택을 책임지는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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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면에서는 독립영화의 저력을 보여주는 두 감독의 이야기를 소개하려 한다. <눈꺼풀>(4월 12일 개봉)의 오멸 감독과 <당신의 부탁>(4월 19일 개봉)의 이동은 감독이 그들이다. 척박한 제작 환경 속에서도 타협의 유혹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확장해나가고 있는 이들은 올해 4월 극장가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먼저 <눈꺼풀>의 오멸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한국 사회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수많은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눈꺼풀>은 지나간 시간의 어둠을 되새기게 하는 작품이다. 망자들이 찾는 섬, 미륵도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떡을 만들고자 하는 노인의 모습을 담은 <눈꺼풀>은 졸음이 쏟아지자 눈꺼풀을 잘라버렸다는 달마의 이야기처럼, 해소되지 않은 고통으로 잠 못 이루는 산 자들의 마음을 응시하는 영화다. ‘세월호 영화’ <눈꺼풀>을 만든 오멸 감독을 만난 날은 공교롭게도 4월 16일이
<눈꺼풀> 오멸 감독 - 처방을 위장한 영화, 그럼에도 만들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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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감독 다카하타 이사오가 세상을 떴다. 지난 4월 6일 그는 향년 82살로 일본 도쿄의 한 병원에서 폐암으로 숨졌다.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은 매체를 넘나들며 <알프스 소녀 하이디> <엄마 찾아 삼만리> <빨강머리 앤> <반딧불이의 묘> 등 일본 애니메이션의 발전을 이끌었다. 또한 지난 1985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스튜디오 지브리를 공동 설립한 뒤 <추억은 방울방울> <이웃집 야마다군> 등을 발표하며 변함없는 그만의 작품세계를 보여주었다. 애니메이션 연구자 나호원 평론가가 <플란다스의 개>에서, 루벤스 그림 앞에서 파트라슈와 함께 세상을 떠난 네로를 떠올리며 추모의 글을 보내왔다.
다카하타 이사오가 세상을 떠났다. 그 소식을 접한 날엔 봄비와 미세먼지가 꽃을 시샘했다. 정서와 풍경, 날씨가 뒤엉키면서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그의 작품 어딘가에서 풍겨져 나오는 맛과 내음 같았다. 그는 누구였을까?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 추모, 안식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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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한겨레TV <김어준의 파파이스> 21화에 출연해 세월호가 침몰 직전 지그재그로 운항했다는 사실을 처음 공개했을 때 프로젝트 제목이 <화씨134>였다. 다큐멘터리 작업이 시작되면서 제목이 <인텐션>으로 바뀐 뒤 최종적으로 <그날, 바다>가 되었는데.
=굉장히 오래전 일인데 오랜만에 들으니 반갑다. (웃음) 세월호에 멋모르고 뛰어들었다가 세월호가 침몰하기 전 지그재그로 운항했다는 사실을 찾았고, 침몰 직전 134도 방향으로 한 바퀴 돌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화씨134>는 <김어준의 파파이스> 21화에서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를 처음 만났을 때 김 총수가 프로젝트 이름을 지으라고 해서 평소 좋아하는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2004)에서 본떠 지은 제목이다.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세월호라는 거대한 사건에 덤벼들었으니 정신 나간 거지. (웃음)
-134라는 코스값
<그날, 바다> 김지영 감독 - 데이터로 접근해 사실에 다가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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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바다>가 개봉한 지 5일 만에 무려 20만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세월호가 침몰된 지 4년이 지났는데도, 세월호 정부합동 추모식이 처음으로 치러지고, 아이들의 분향소가 정리됐는데도 여전히 사람들이 세월호 사건에 관심이 많은 건 드러나야 할 진실이 더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지영 감독이 연출하고, 프로젝트 부가 제작한 영화 <그날, 바다>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진실인 세월호의 침몰 원인을 사실만 가지고 과학적으로 추적하는 다큐멘터리다. 다큐멘터리로서 이 영화가 거둔 성취를 살펴보고, 지난 3년 반 동안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던 데이터와 씨름하며 이 프로젝트를 이끌어온 김지영 감독을 만났다.
배가 움직이면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배와 관련한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선명, 선박 길이와 너비, 선종 및 안테나 위치 같은 배의 고유 정보는 물론이고, 선박 위치, 침로(배의 선수가 향하는 방향. 헤딩(Headin
다큐멘터리영화 <그날, 바다>는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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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가족의 달, 이제는 ‘영화제의 달’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영화제가 준비되어 있다. 국내 유일의 어린이영화제인 서울구로국제어린이영화제도 올해로 6회째를 맞이했다. 올해는 “온 가족 모두! 영화와 함께 세계로 떠나보자”라는 슬로건과 함께 출격한다. 오는 5월 10일부터 17일까지 CGV구로와 구로아트밸리예술극장, 구로구민회관에서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올해는 키즈무비 작품 공모 결과 73개국 906편이 접수되어 전년도 53개국 644편에 비해 28% 늘어나면서 더욱 풍성하고 글로벌한 영화제로 거듭난다. 분야별로는 극영화가 586편으로 가장 많았고 애니메이션 270편, 다큐멘터리 50편이 접수되었으며 특히, 초·중생이 직접 연출·제작한 작품은 30여편이 출품되었다. 초·중생이 연출한 작품은 별도 경쟁부문으로 심사를 진행한다. 전국 초·중생 심사위원을 모집하여 또래 아이들의 안목으로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시상도 학생 심사위원들이 하게 되는 이 행사에는
제6회 서울구로국제어린이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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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프랑스의 남쪽 바닷가 마을 세트. 의대 공부를 포기하고 파리에서 시나리오 견습생이 된 아민은 휴가차 고향으로 내려온다. 몰래 짝사랑하는 친구 오펠리와 소문난 바람둥이 사촌 토니와 낯뜨거운 재회를 한 아민은, 이들과 함께 흥청망청 휴가를 보내는 젊은이들의 그룹에 합류해 바닷가, 식당, 술집, 디스코텍을 오가며 시간을 보낸다. 깊은 눈매를 가진 아민은 수차례 미녀들의 러브콜을 받지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이들의 육감적인 몸을 관찰할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아민의 여름휴가는 끝나간다. 그야말로 싱거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더 놀라운 건 이 작품의 러닝타임이 세 시간에 육박한다는 거다. <멕툽 마이 러브: 칸토 우노>는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이후 4년 만에 돌아온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의 여섯 번째 장편이다. 이번 영화에서도 캐릭터와 이야기에 놀라운 생동감을 부여하는 그의 장기는 여전하다. 아민의 시선을 체현하는 카메라는 느슨한
[파리] <멕툽 마이 러브: 칸토 우노>, <가장 따뜻한 색, 블루>가 연상되는 감독의 차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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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매리언(로리 멧커프)과 딸 크리스틴(시얼샤 로넌) 사이의 갈등은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다. 딸은 독립하길 원하고 엄마는 가족 모두가 함께하길 바란다. 그러나 <레이디 버드>(2017)에는 ‘모녀’라는 낯익은 단어가 채 담지 못하는 감정의 얼룩들이 존재한다. 엄마는 딸이 어서 성장하길 바라지만 운전도, 계란 프라이도 혼자서 하지 못하게 한다. 딸이 자기 몰래 뉴욕의 대학에 지원한 것에 화가 나서 말을 하지 않는 매리언의 모습은 절친에게 토라졌던 줄리(비니 펠드스타인)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자신의 흉을 볼까봐 편지를 전하지 못하는 모습은 크리스틴이 제나(오데야 러시)를 대하던 모습과도 얼마간 닮았다. 그러나 서운함, 배신감, 동경 중 그 어떤 것으로도 그녀의 마음을 완벽하게 설명하진 못할 것이다. 기하 수업에 들어가지 않는 줄리의 마음을 단순히 ‘질투’로 정의할 수 없듯, 딸을 대하는 매리언의 마음도 하나의 감정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엄마를 대하는 크리스틴의 태도도 이
<레이디 버드>를 두 여자의 관점에서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