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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방송에서 ‘고시원에 살았던 경험’이 평생의 고생을 상징하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다. ‘다시는 겪지 않을 과거의 나락’으로 그곳을 묘사하며 훈장처럼 자랑하는 사람들.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어떻게 장담하는 걸까. 나에게도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고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경험이 있는데 바로 고시원 살이다. 그때를 떠올려보면, 관보다 조금 큰 좁은 방에 창만 하나 겨우 달려 있었는데, 그래도 서울에 내 방에 생겼다는 게 좋아서 첫날 피식피식 웃으며 잠들었던 기억이 난다. 위험도 했고(자고 일어나보니 간밤에 비가 새서 스탠드 전선에 빗물이 손을 뻗고 있었다), 좁고 더러웠지만 나에게는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공간이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고시원을 ‘가난과 고생’의 척도로 들이댈 때마다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 기분은 어떨지’를 생각하게 된다. 전건우 작가 역시 고시원을 다소 특이한 공간으로 인식하고 소설을 풀어간다. <고시원 기담>에서 고시원
씨네21 추천도서 <고시원 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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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까지 텍스트가 전무한 그림책을 얼마 만에 본 건지 모르겠다. 아니, 그림만 있다고 해도 읽었다고 쓰는 게 정확하겠다. 안녕달 작가의 <안녕>은 읽어내야 하는 그림책이다. <안녕>은 소시지 할아버지와 그의 반려견의 생애를 그린 그림책이다. 소시지 할아버지가 탄생하고(사실 그의 정체가 소시지이고 할아버지라는 것을 두 번째 읽을 때에서야 주름을 보고 알았다), 그가 버림받은 강아지를 만나고 함께 살고 또 헤어지는 과정이 아주 느리게 펼쳐진다. 그 쓸쓸한 서정성은 어른을 위한 그림책 같지만 <안녕>은 아이들이 읽었을 때 더 직관적으로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는 그림책이란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그림에 편견이 들어가지 않은 순수의 눈으로 봤을 때 더 서사가 잘 읽히기 때문이다. 앞에 썼지만 <안녕>에는 텍스트가 없다. 어른이나 아이를 위한 그림책에서 그림이 글을 설명하기 위한 보조 역할을 하는 것과 달리 안녕달 작가는 오직 그림만으로 이야기를 진
씨네21 추천도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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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지구온난화… 먼 미래의 시점에서야 걱정이 필요할 줄 알았지만 이게 현재의 문제라는 것이 더욱 와닿는 요즘이다. 이언 매큐언은 오랫동안 기후변화에 큰 관심을 가져왔다고 한다. 환경단체의 요청으로 북극해의 스발바르로 떠난 이언 매큐언은 피오르의 장대함에 감탄하는 한편 나날이 심해지는 공용 탈의실의 카오스에 충격을 받았다. 매큐언을 비롯해 전세계의 석학들이 함께 사용하는 탈의실이건만 누가 누구의 물건을 더 빨리 훔치는지 경쟁이라도 하듯 물품이 사라지며, 탈의실은 점차 난장판이 되어갔다. 인류애로 무장한 석학들이 최소한의 질서조차 유지하지 못하는 한심한 광경을 보면서 소설가의 눈빛은 반짝였다. 자기 삶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면서 지구온난화로부터 지구를 구하겠다는 야심에 사로잡힌 ‘비어드’는 그렇게 탄생했다. 이언 매큐언의 열한 번째 장편소설 <솔라>의 주인공 비어드는 호감을 가지기 어려운 인물이다. 그는 ‘막연히 비호감이고, 대머리에 키가 작고, 뚱뚱하고, 머리가 좋다
씨네21 추천도서 <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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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오손그룹은 IMF를 무사히 넘기고,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슬기롭게 대처해 부동산, 투자 중심의 서비스 회사로 자리매김한다. 오손그룹의 정대철 회장 주변에는 (대기업 오너가 늘 그러하듯) 은밀한 소문이 따라다닌다. 그가 아내 몰래 사귀는 신입사원의 성별이 남자라는 등…. 정대철 회장의 아들 정지용은 아버지의 적당한 무관심 속에서 글로벌 기업의 상속자다운 ‘부르주아’로 성장한다. 물론 정지용을 둘러싼 세간의 소문 또한 만만치 않다. 어딘가 덜떨어졌다느니, 추남이라느니 하는 등…. 여느 재벌가의 3세들이 그러하듯 정지용은 ‘학벌, 미모, 집안’ 삼박자를 고루 갖춘 최영주와 결혼을 하고 오손그룹이 계획한 신도시의 스마트아파트 메종드레브에 신혼집을 차린다. 다양한 계층이 서로 다른 층수와 평수에서 살도록 통제하는 메종드레브에서 정지용은 5평에 사는 이하나를 만나게 되고 그녀와 내연관계가 된다. 최영주는 허무하지만 완벽한 자신의 럭셔리 라이프를 인스타그램에 올려 하트를 받는 게 취미이고,
씨네21 추천도서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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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여름은 끝나지 않았다. 기상청에 의하면 9월까지는 더울 예정이고 매해 여름은 길어진다고 한다. 자주 틀린 예보를 해왔던 기상청이기에 이번의 예측 역시 틀리기를 바랄 뿐이지만 아마 이번만큼은 기상청이 맞을 것이다. 여름이 더 뜨겁고 길어지고 있다. 어쨌든, 8월도 중순으로 꺾였으니 더위가 끝나기만을 바라며 8월의 북엔즈에는 시대의 고민을 담은 소설들을 담았다. 김사과의 신작 <N.E.W>는 태어날 때부터 계급으로 나뉠 수밖에 없는 한국의 젊은 세대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작가가 만든 역할극의 마리오네트가 된 인물들에게는 다소 뻔한 역할들이 주어진다. 재벌 3세, 재벌가 며느리, 인터넷 BJ, 도박 중독자 등등…. 전 계층이 모여 있는 메종드레브라는 미래적 뉴타운에 모인 인간 군상으로 작가는 자본주의의 한 단면을 무심하게 베어내 보여준다. 이언 매큐언의 장편소설 <솔라>는 지구온난화가 위기의 남자와 만나면 블랙 코미디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노벨물리학상을 탔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8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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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밤에는 간식을 준비한다. 좋아하는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거나, 찬장을 뒤적여 찾아낸 팝콘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TV 앞에 앉는다. 예능 프로그램을 ‘본방 사수’할 이유는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모처럼 예외가 생겼다. “브라자 풀고 같이 먹어요”라는 김숙의 명언과 함께 시작된, 올리브TV <밥블레스유> 때문이다.
<밥블레스유>는 시청자들의 사연을 받아 ‘이럴 땐 이런 음식’을 먹어보라고 추천해주는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사연은 거들 뿐, 네명의 베테랑 예능인 최화정, 이영자, 송은이, 김숙의 우애 넘치는 식탁은 마치 내 친구들과의 식사처럼 두서없이 즐겁다. 서러웠던 신인 시절부터 망한 연애와 좌절의 경험까지, 인생의 굴곡마다 함께해온 ‘언니들’은 오래된 만큼 가깝지만 친밀함을 핑계 삼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고기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코스만 짜와도 “네가 자랑스럽다”라며 칭찬하고, 사소한 농담에도 크게 웃어주며, 이렇게 좋은 곳에 데려와줘 고맙다고 말
[TVIEW] <밥블레스유> 다정이 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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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실 비치에서> On Chesil Beach
제작·감독 도미닉 쿡 / 출연 시얼샤 로넌, 빌리 하울, 에밀리 왓슨, 새뮤얼 웨스트 / 수입·배급 그린나래미디어 / 개봉 9월 예정
“나 좀 무서운 것 같아.” 첫 섹스를 앞두고 여자는 호소하지만, 남자는 ‘두려움’이라는 그녀의 언어를 결혼생활을 향한 ‘불성실’이라 지레 해석해버린다. 첫눈에 반해서 시작된 꿈같은 연애, 그리고 결혼, 그러나 뜻하지 않았던 파국. 1962년 영국의 체실 비치로 신혼여행을 간 커플 에드워드(빌리 하울)와 플로렌스(시얼샤 로넌). 신혼여행 온 지 한나절 만에 그들은 서로에게 뼈아픈 안녕을 고한다. 보수적인 당시 사회에서 서로를 위해 순결을 지켜왔다고 믿었던 두 사람은 결국 의견 충돌로 한 단계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하지 못한다. 사랑했지만, 각자 가지고 있던 아픔들이 무엇인지 헤아리지 못했던 미숙한 사랑! 영국의 아름다운 마을 체실 비치를 배경으로, 인물들의 심경을 전달하는 듯한 클래식 음
[Coming Soon] <체실 비치에서>, 1962년 영국의 체실 비치로 신혼여행을 간 커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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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공개된 푸티지를 보고 왔다. 낯선 남자들이 당신을 내려다보는 가운데 잠에서 깨는 장면인데, 코믹하게 그려졌지만 케이시 브라켓 입장에서는 끔찍하게 공포스러운 장면이다.
=그 장면은 처음과 비교하면 완전히 달라졌다. 어떤 대사가 그대로 남았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할 정도다. 처음 받은 각본에서는 내가 침대에서 일어나서 거의 3페이지에 이르는 대사를 혼자 떠드는 거였다. 내 휴대폰은 어디에 있냐? 여기가 어디냐? 당신들은 누구냐?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셰인(블랙 감독)에게 “누구라도 이러진 않을 거다. 진짜처럼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 생각을 피칭했고, 그 결과 재미있고 억지스럽지 않고 캐릭터에 대해 많이 알 수 있는 장면이 됐다.
-케이시는 위험한 순간에 아무렇지 않게 총을 들어 자신을 지키려고 한다. 케이시를 위한 뒷이야기는 어떻게 설정했나.
=케이시는 생물학자다. 그래서 CIA가 작전에 불러들인다. 개인적으로 케이시가 총을 다룰 줄 안다는 사실
<더 프레데터> LA에서 만난 배우 올리비아 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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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리언>과 함께 SF스릴러의 양대산맥으로 꼽히는 <프레데터> 프랜차이즈의 신작이 돌아온다. 존 맥티어넌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출연한 시리즈의 첫편 <프레데터>로부터는 31년 만이고, 마지막 속편이었던 <프레데터스>(2010)로부터는 8년 만이다. <프레데터>는 중미의 오지에서 게릴라와 대치하던 CIA 요원들이 지구를 침략한 외계의 미생명체와의 전투로 확대되는, 복잡한 다종 장르의 괴작이었는데 1987년 개봉 당시 북미에서만 9830만달러의 놀라운 흥행 수입을 기록했다. 그 뒤 1990년과 2010년에 속편이 만들어졌고, <에이리언 vs. 프레데터> 크로스오버 시리즈로 만들어지는 등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가진 원작으로 활약했다. 그리고 1980년대의 향수를, 장르의 황금기를 잊지 못하는 할리우드는 다시 한번 <프레데터> 프랜차이즈를 스크린에 되살린다. 9월 중순 한국에서 개봉하는 <더
<더 프레데터>는 <프레데터>의 리부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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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광은 호감 가는 인터뷰이다. 준비한 듯한 대답으로 자기 포장을 하지 않아 신선한데, 오히려 곱씹을 만한 발언이 튀어나온다. 데뷔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소년 같은 성정으로 대화 상대를 기분 좋게도 한다. <너의 결혼식> 역시 배우로서의 그에 관한 생각을 바꾸는 변곡점 같은 영화다. 총 50회차 중 무려 49회차를 촬영하며 작품을 안정적으로 이끄는 힘을 보여준 그와의 만남을 전한다.
-고등학생 때부터 서른 즈음까지의 시간을 담은 <너의 결혼식>은 결국 우연의 성장영화더라.
=고등학생 때 승희(박보영)를 향한 사랑은, 아이들이 엄마가 장난감 안 사준다고 길바닥에 누워서 떼쓰는 것 같았다. 대학생 때도 마찬가지였고. 사회 초년생 때는 마음과 다른 말이 나가서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 하지만 내 사랑이 어땠는지 이성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나이가 되고서는 “네 앞에서 당당해지는 게 꿈이다보니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이석근
<너의 결혼식> 김영광 - 더 진한 감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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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과속스캔들> 개봉 10주년이 되는 해다. 미혼모 정남 역의 박보영이 어느덧 20대 후반의 로코퀸이 되었다. 물론 그녀가 여기까지 버티고 올라온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여전히 교복을 입고 스크린에 등장해도 전혀 이질감이 없는 풋풋한 면을 지님과 동시에 이제는 웬만한 욕설은 자연스럽게 내뱉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때묻은(?) 모습도 보인다. <너의 결혼식>의 승희를 연기하면서 그녀가 고민했던 점은 무엇이었을까.
-<너의 결혼식>은 우연(김영광)의 시선에서 첫사랑 승희의 자취를 쫓는 이야기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승희의 상황과 감정이 영화에 드러나지 못하는 단점을 지니고 있다. 이에 대해서 이석근 감독이나 동료 배우들과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나.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부터 내 욕심만큼 승희가 지닌 면면을 영화에 드러낼 수는 없을 거라 여겼다. 남자들은 납득할지라도 여자들이 봤을 때 이해가 안 되는 승희의 모습이 드러날 경우에는 고쳤으
<너의 결혼식> 박보영 - 영화를 더 많이 찍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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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영화만큼 캐스팅의 힘이 중요한 장르가 또 있을까. <너의 결혼식>은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박보영과 김영광의 매력이 시작부터 절반은 먹고 들어가는 영화다. 여기에 원래부터 커플 연기를 할 운명이었던 것처럼 조화로운 연기 쌍성이 인상적이다. 이석근 감독에 따르면 “실수 없이 정확한 연기를 하는 박보영과 매번 액션과 리액션이 다른 김영광은 넘치는 파도를 다 받아주는 흔들리지 않는 방파제” 같았다고. 계약 연애로 얽힌 일진 커플을 연기한 <피끓는 청춘>(2013) 이후 오랜만에 현실적인 사랑의 모양을 연기한 두 배우를 만났다.
<너의 결혼식> 박보영·김영광 - 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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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국내 첫사랑 영화다. <늑대소년>으로 늑대 인간과의 로맨스를 그렸던 박보영이 이번에는 미숙한 첫사랑을 담은 <너의 결혼식>으로 돌아왔다. <피끓는 청춘>에서 한차례 호흡을 맞췄던 김영광과의 재회다. 사랑에 대한 아련함을 표현하기에 첫사랑만큼 좋은 소재도 없어 보인다. 그중에는 명작으로 평가받으며 아직까지 사랑받는 작품들도 있다. <너의 결혼식>도 그 영화들이 남겼던 강한 여운을 새겨주길 기대해보며, 짙은 감성을 자랑한 첫사랑 영화들을 모아봤다. 다양성을 위해 여러 국가의 영화들을 선정했다.
* 해당 영화들에 대한 내용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건축학개론>
감독: 이용주 / 출연: 엄태웅, 한가인, 이제훈, 배수지 / 한국 / 2012년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만난 서연(배수지)과 승민(이제훈)은 함께 숙제를 하며 가까워진다. 서연을 짝사랑하게 된 승민은 쉽사리 마음을 고백하지 못한다. 결국 혼자 속앓이를 하던 그
제목만 들어도 두근두근! 설렘과 아련함을 간직한 각국의 첫사랑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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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 Christopher Robin
감독 마크 포스터 / 출연 이완 맥그리거, 헤일리 앳웰, 마크 게티스 외
세기를 넘어 사랑받는 디즈니의 인기 캐릭터, 곰돌이 푸가 등장하는 실사영화가 제작됐다. 10월 3일 국내 개봉예정인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는 어른이 된 로빈에게 유년 시절의 베스트 프렌드 곰돌이 푸와 친구들이 다시 찾아오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네버랜드를 찾아서>(2004), <007 퀀텀 오브 솔러스>(2008) 등을 연출한 마크 포스터 감독의 신작.
[해외 박스오피스] 미국 2018.8.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