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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루마니아의 한 수도원에서 젊은 수녀가 자살한다. 교황청은 이 사건의 조사를 위해 노련한 퇴마사 버크 신부(데미안 비치르)와 수련 중인 수녀 아이린(타이사 파미가)을 루마니아로 파견한다. 수녀원에 도착한 버크 신부는 예전에 퇴마 과정 중 죽은 아이의 환영을 보게 되고 아이린은 수녀원의 수녀들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점을 발견한다. <컨저링>과 <애나벨> 시리즈에 공통되는 세계관인 컨저링 유니버스를 기반으로, <컨저링2>에서 처음 등장하는 수녀 악마 발락의 기원을 다루고 있다. 이 시리즈 중 가장 앞선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시리즈 중 관객을 놀라게 하는 신이 가장 많지 않은가 생각된다. 오래된 수녀원은 존재 자체만으로 으스스한 분위기를 뿜어내고, 수녀 악마 발락은 여전히 무서운 모습이지만, 영화는 감각적 공포에만 머무를 뿐, 심리적 공포까지 이끌어내지 못하기에 영화가 끝남과 동시에 공포도 사라진다. 오히려 영화는 액션의 비중이 높다. 말하자면 악
<더 넌> 수녀 악마 발락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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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행성에서 사냥을 즐기는 외계종족 프레데터가 처음으로 지구를 찾은 1987년 이후 도망치듯 지구에 불시착하는 프레데터와 이를 추격하는 또 다른 프레데터가 있다. 특수 부대원 퀸 맥케나 대위(보이드 홀브룩)는 작전 수행 중 이들과 마주한 뒤 증거 확보차 프레데터의 장비를 빼돌려 집으로 보낸다. 한편 정부는 진화생물학자 케이시(올리비아 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프레데터가 연구소를 습격해오자 증거 인멸을 위해 관계자들을 제거하려 한다.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퀸의 아들 로리(제이콥 트렘블레이)는 아빠가 보낸 프레데터의 장비를 사용하여 위치를 들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프레데터의 추격을 받는다. 우여곡절 끝에 함께하게 된 퀸과 케이시는 로리를 구하기 위해 달려간다.
1987년 저예산 SF 액션 스릴러로 흥행을 한 <프레데터>의 4번째 속편이다. 그동안 프레데터가 지구에 꾸준히 찾아왔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짜내보려 하지만 결과적으론 1편에 대한 존경과 헌사가 지
<더 프레데터> 더욱 영리하고 치명적으로 진화한 외계 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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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석, 김영광 주연의 <원더풀 고스트>는 두 배우가 지닌 장점 중 최고의 엑기스만 추출한 다음 이를 더욱 돋보이게 할 방법을 연구하듯 이야기를 창조해나간 영화 같다. 극중 마동석의 팔뚝은 묵직함을 선사하며 웃음과 액션을 담당하고, 김영광의 훤칠한 두 다리는 비현실적으로 해맑은 자태를 뽐내며 감동을 담당한다. 범죄에 연루되어 억울하게 죽을 위기에 처한 영혼 태진(김영광)과 정의 따윈 상관없는 이기적인 남자 장수(마동석)의 활약을 다룬 영화 <원더풀 고스트>를 오랫동안 다듬고 또 다듬느라 어느새 8년 만에 복귀작을 내놓게 된 조원희 감독을 만나 이 영화의 출발점부터 다시 되짚어봤다.
-2016년에 촬영(<씨네21> 1073호 씨네스코프 ‘조원희 감독이 연출하고, 마동석이 주연 맡은 <원더풀 라이프>(가제) 촬영현장’ 기사 참조)을 끝마쳤지만 개봉하기까지 시간이 꽤 흘렀다.
=후반작업이 좀 오래 걸리기도 했고 개봉 시기를 몇번 놓쳤다.
[추석, 한국영화④] <원더풀 고스트> 조원희 감독 - 마동석의 장기를 백분 활용한 코믹 액션을 기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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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영화의 득세가 돋보이는 추석 시즌에 <협상>은 그동안 제대로 다뤄진 적 없었던 경찰청 위기협상가의 세계를 히든카드로 꺼내들었다. 서울지방경찰청 위기협상팀의 베테랑인 하채윤(손예진)이 타이에서 활동하는 무기밀매상 민태구(현빈)의 인질극을 상대하는 12시간의 숨막히는 상황이 영화의 주 무대다. <협상>을 이끈 이는 <국제시장>(2014)의 조감독, <히말라야>(2015)의 각색 등을 거치며 JK필름과 꾸준히 연을 이어온 이종석 감독. “2시간 동안 말로 협상만 한다면 지루할 수밖에 없는데, 상업영화로서 이를 뒤집기 위해 다양한 변주를 취했다”는 그에게, 첫 장편 데뷔작을 완성하느라 남달랐을 그간의 경험들에 대해 물었다.
-<협상>은 어떻게 시작된 프로젝트인가.
=처음 <국제시장> 조감독 면접을 볼 때부터 윤제균 감독님이 “<국제시장> 개봉 전에 너를 입봉시켜줄게!”라고 호언장담했다. 나 역시 그 말을 전
[추석, 한국영화③] <협상> 이종석 감독 - 협상은 차갑게 감정은 뜨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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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해괴한 존재, ‘물괴’를 소재로 한 허종호 감독의 신작 <물괴>는 한국 괴수영화의 시대 배경을 조선시대로까지 확장한다. 현대적인 무기도 없고, 과학 기술도 발전하지 못한 조선 땅에서 사람들이 괴수와 벌이는 싸움의 형태란 과연 어떤 모습일까. 혹은 빌딩 숲 도시와는 전혀 다른 조선시대의 경복궁에서 펼쳐지는 괴수와의 싸움은 과연 어떤 시각적 쾌감을 선사할까. 기대 반 우려 반의 시선을 받으며 공개된 <물괴>의 허종호 감독은 과연 어떤 비전을 갖고 이 도전에 합류하게 됐을까. 웬만한 애정과 인내력을 지니지 않고서는 쉽사리 덤빌 수 없었을 것 같은 프로젝트의 지난한 과정에 대해 물었다.
-‘물괴’가 허구의 사건이라 생각했는데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더라. 중종 22년 즈음부터 ‘삽살개 같고 망아지 같은’ 물괴가 궁에 출몰했고 왕이 걱정하여 대비전까지 옮기는 일이 있었다고.
=허담 작가가 어느 날 조선시대
[추석, 한국영화②] <물괴> 허종호 감독 - 낮은 사람들이 높은 곳을 지켜내는 이야기에 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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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성>은 올 추석 극장가에서 만날 수 있는 한국영화 중 가장 규모가 큰 사극 액션 블록버스터다. 조인성과 남주혁, 김설현과 정은채 등 젊은 배우들을 앞세운 이 작품은 한국 사극영화에서 충분히 탐구되지 않은 고구려를 무대로 트렌디하고 활력 넘치는 ‘젊은 사극’을 지향한다. <안시성>을 이끄는 수장은 <내 깡패같은 애인>(2010)과 <찌라시: 위험한 소문>(2014)을 연출한 김광식 감독이다. 그의 첫 대작영화이자 꿈의 프로젝트였던 <안시성>은 두편의 사극영화(<물괴> <명당>), 두편의 현대물(<협상> <원더풀 고스트>)과 벌일 치열한 ‘공성전’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출격을 앞둔 그를 만났다.
-추석영화 대전을 앞둔 소감이 어떤가.
=<안시성> 외에 사극이 두 작품이나 있고, 현대물까지 한국영화가 많아 긴장이 된다. 말하자면 박스가 큰 시장에 들어가는 거잖나. 경쟁도
[추석, 한국영화①] <안시성> 김광식 감독 - 몸의 영화, 시각적 스펙터클을 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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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추석에는 역대급 ‘한국영화 대첩’이 벌어진다. 각 투자·배급사의 추석 라인업을 대표하는, 9월 19일 개봉하는 <협상> <명당> <안시성>이 연달아 언론 시사를 열며 그동안 감춰두었던 패를 꺼내 보였다. 시사가 열리는 극장마다 로비는 영화 관계자와 기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들 작품보다 한주 앞서 9월 12일 개봉한 <물괴>까지, 올 추석 극장가에서 만날 수 있는 주요 한국영화 네편이 모두 언론에 공개됐다. 추석 연휴 직후인 9월 26일 개봉하는 조원희 감독의 <원더풀 고스트> 또한 관객과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는 2018년 추석 연휴 극장가의 향방을 짐작해보기에 이보다 더 적기가 있을까. <씨네21>은 다섯편의 주요 추석영화 중 네편의 감독을 만났다. <안시성>의 김광식 감독, <협상>의 이종석 감독, <원더풀 고스트>의 조원희 감독,
추석, 한국영화 뭐 볼까? ① ~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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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아이>와 <죄 많은 소녀>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잉글랜드 도싯의 체실 비치는 해안 어디께냐에 따라 자갈의 마모 정도가 달라 캄캄한 밤에 닿아도 어부들이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다는 곳이다. 그러나 막 체실 비치에 도착한 1962년의 신혼부부 플로렌스(시얼샤 로넌)과 에드워드(빌리 하울)는 경우가 다르다. 둘은 삶의 희망찬 출발점에 서 있다고 믿지만 하루도 못 돼 의심에 사로 잡힌다. 순진하고 자존심 강한 젊은이들은 한번의 어긋남에 너무 멀리 내다보고 성급한 결론을 낸다. 앞으로도 당신이 원하는 걸 나는 못 채워줄 거고 그러면 대화가 줄 거야. 우린 불행해질 테고 내가 그 원흉이 되겠지? 영화를 함축한 한숏에서, 플로렌스는 해변에 부려진 조각배에 올라 마치 떠날 준비를 마친 것처럼 보인다. 분노한 에드워드는 소금기둥이 된 양 우두커니 서 있다. 도미닉 쿡 감독은 영화 내내 두 인물의 거리와 배치 구도에 정성을 들였다. 이 장면에서 프레임 밖으로 나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애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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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프에 빠진 코미디 작가가 있다. 그는 지난 1년간 상품성도 없고 그렇다고 작품성이 있는 것도 아닌 소설만 드문드문 발표했다. 그나마 소속된 코미디 월간지라도 있다는 것이 유일한 생명줄인데 어느 날 편집장으로부터 최후통찹을 받는다. “다가오는 10주년 특집호에 한줄이라도 글이 채택되지 않으면 재계약은 없다”고. 더이상 뭉개고 있을 수 없어 남은 일주일 동안 필사적으로 글을 쓰려 하지만 스스로 ‘비장의 카드’로 생각했던 원고를 잃어버리고 만다. 마지막으로 머무른 카페를 뒤져보고 지구대를 찾아 수사도 의뢰하지만 원고는 찾을 수가 없고 결국 인터넷 검색을 통해 원고를 찾아보려 하지만 잡히는 단서라고는 ‘블로그’뿐. 그가 카페에 원고를 가지고 있던 시간에 카페에 머물렀던 여성의 블로그를 단서랍시고 뒤지기 시작한 그는 자신의 현실세계와 블로그 주인장이 기가 막힌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블로그와 현실, 꿈과 현실이 중첩되며 주인공의 일주일간 행적을 따라가는 <러블로그
씨네21 추천도서 <러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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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단편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로 문학동네신인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박상영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 타인을 비평하는 일이 쉽고도 재미있기 때문에, 가끔은 거울을 보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잊곤 한다.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라는 제목의 이 소설집에 실린 단편소설들은 서로 느슨하게 연결을 맺고 있는데, 영화를 포함한 영상과 아이돌 연습생, SNS가 그것들을 연결짓는다. 내가 보고 있는 것과 나 자신의 거리가 지나칠 정도로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의 작은 점조차 되지 못했다!”는 깨달음이 모든 사람에게 거대하게 다가오는 시대다. 그 세대의 풍경화.
10월 4일로 다가온 부산국제영화제 개막과는 무관하지만, 박상영의 데뷔작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와 <부산국제영화제>는 순서대로 읽으면 재미있다.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에서 패리스는 개 이름이다.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모델이자 영화감독,
씨네21 추천도서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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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가 한국에 상륙하면서 새로운 이야기의 가능성도 가져온 모양이다. 콜럼비아의 마약 조직 ‘메데인 카르텔’과 그 수장인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이야기로 시작해 다른 카르텔의 이야기로 뻗어나가는 <나르코스>를 아는 사람이라면 <슬픈 열대>가 마치 스핀오프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은 전직 북한 특수요원 권순이다. 현재 콜럼비아에 머물고 있는데,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조직 ‘메데인 카르텔’의 용병이자 살인병기로 살고 있다. 국가에서 내리는 명령에 익숙한 그녀에게 새로운 조직의 룰에 적응하는 일은 어려울 것도 없다. 하지만 침몰하는 배에서 소녀들을 구하지 못한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 순이는 작전 수행 중 카르텔간에 벌어진 전쟁의 희생양이 된 소녀 리타를 발견해 데려온다. 거의 죽을 위기에 처한 리타는 순이를 쉽게 따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콜럼비아 대한민국 대사관 외무관이라는 정덕진이 그녀에게 접근한다. 주기적으로 어떻게 지내는지만 확인하면 된다는
씨네21 추천도서 <슬픈 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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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를 여행하는 유홍준의 길은 산사 밖 진입로에서부터 시작한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한 외국인 커미셔너들에게 한국 문화의 저력을 보여주고 싶어 순천 선암사를 함께 찾은 유홍준은 선암사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진입로를 따라 30분을 걸어 올라간다. “우리나라 산사 건축은 진입로로부터 시작된다. 산사의 진입로는 그 자체가 건축적, 조정적 의미를 지닌 산사의 얼굴”이라고 믿는 그는 친구 캐서린으로부터 산사 진입로에 대한 품평을 듣고 감탄한다. “길이 아름답고 인간적인 크기입니다. 특히 계곡을 따라 돌아가도록 멋있게 디자인되어 있네요.” 한국 산사의 진입로가 인간적인 크기이며 인공이 가해지지 않았음에도 디자인 개념이 들어가 있다는 생각을 외국인의 시선으로 확인한 저자가 얼마나 뿌듯해했는지는 책에도 잘 드러나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산사 순례>(이하 <산사 순례>)는 지난 6월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된 것을 기념으로 출간되었다.
씨네21 추천도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산사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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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말이 아닌 글로 하고 싶은 말을 이미 했기에, 소설이 끝난 후 작가와 시작하는 인터뷰는 무용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때 던져진 정확한 질문과 답이 이어지는 인터뷰는 앞선 텍스트의 해석을 풍성하게 만든다. 문지문학상 작품집 <소설 보다>는 소설 뒤에 소설가와 인터뷰이의 대담을 붙여놓았다. 김봉곤 소설을 읽은 후 “소설을 읽고 ‘기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기분은 감정과 달리 휘발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김봉곤 작가에게 기분이란 어떤 것인가요, 그것은 감정과 어떻게 다른가요”라는 질문이 던져지고 이에 “오, 정말이지 저와 같은 기분관을 가지고 계시군요!”라고 작가는 신이 나 답한다. 느낌표에 대담 당시의 화목한 ‘기분’까지 묻어난다. 조남주 작가에게 <82년생 김지영> 출간 후 이어졌던 논쟁(이를테면 아이돌이 이 소설을 읽었다는 것만으로 남성 팬에게 비난을 받은)에 대한 질문 역시 독자가 궁금해했던 영역이라 흥미롭게 읽힌다. 마침 영화 <8
씨네21 추천도서 <소설 보다: 봄-여름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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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소설 <좀도둑 가족>을 내면서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읽고 다시 영화를 보는 순서를 추천한다”고 했다. 소설을 읽다보면 그러한 순서를 작가가 추천한 이유를 납득하게 된다. 소설은 영화와 거의 같은 순서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영화에서 미묘하게 표현되었던 인물의 표정이나 대사를 소설에서는 훨씬 더 직접적으로 설명해준다. 예를 들어 둘 중 누가 회사를 관둘 것인지 다투던 동료에게 린의 존재로 협박을 당한 노부요가 일 대신 린을 선택하는 장면에서 관객은 노부요의 마음을 자세히 알 수 없다. 단지 ‘엄마’가 된 노부요에게 유리가 무척 중요해졌다는 것만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반면 소설 속 노부요는 지키고 싶은 것이 생긴 자신을 엄마라고 정확히 자각한다. 그리고 해고된 후 ‘나만 바라보고 있는 가족’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동네의 작은 상점에서 물건을 훔치던 쇼타가 “동생에게는 시키지 마라”라는 주인의 말을 들었을 때의 마음 역시 소설은 자세히 묘사한다. ‘할아
씨네21 추천도서 <좀도둑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