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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원은 영화계에서 그 본명과 예명 홍설아·홍진아만큼이나 여러 일에 종사했다. 그는 스크립터로 출발해 조감독을 거쳐 시나리오작가, 작사가, 감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재능을 보인 충무로의 정통파였다. 두 예명에 ‘예쁠 아’(娥)를 넣을 만큼 그는 눈처럼 아름답고 참되게 살려고 했던 것일까. 실제로 스튜디오에선 언니로 통할 만큼 영화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1950년대 중·후반 그는 전창근·유두연 감독, 허백년 평론가 등 영화인들이 즐겨 찾던 명동 나일구다방에 자주 나타났다. 명동에는 이 다방과 함께 김승호, 김동원, 장민호와 같은 배우들이 드나든 동방살롱 등이 있었다. 을지로 입구 외환은행 본점에서 명동 방향 골목에 있던 예술인들의 찻집이었다. 충무로에 스타다방, 청맥다방과 같은 영화인들의 휴식 공간이 미처 생기기 전이었다. 아침에는 으레 날계란을 띄운 모닝커피가 나왔다.
경성으로 돌아와 영화 일을 시작하다
내가 그를 처음 본 것은 이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창근 감독
[여성 영화인들③] 홍은원 감독 - 스크립터로 출발한 충무로의 정통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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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8일 한국 최초의 여성영화감독으로 불리는 박남옥 감독이, 향년 94살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별세했다. 그가 우리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7년 처음 열린 서울여성영화제를 통해서다. 그때 한국영상자료원에 결말부 영상과 일부 사운드가 유실된 채로 네거티브필름만 보관되어 있던 그의 연출작 <미망인>(1955)이 다시 빛을 보게 되었고, 이를 통해 그간 한국영화사 기록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박남옥을 시작으로 한 역사 속 여성 영화인들의 활동상도 새롭게 조명되었다. 당시 이러한 작업을 주도한 여성 영화인들은 사단법인 여성영화인모임을 결성하였고, <여성영화인사전> (주진숙·장미희·변재란 외 지음, 도서출판 소도 펴냄, 2001)과 다큐멘터리영화 <아름다운 생존: 여성 영화인이 말하는 영화>(감독 임순례, 2001, 이하 <아름다운 생존>) 등의 결실도 맺게 된다. 박남옥 감독이 그 출발점이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성 영화인들②] 박남옥 감독 - 한국 최초의 여성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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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감독 6인에 대한 전시를 기획하게 된 이유는.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 4월 최은희 선생님의 부고였다. 한 시대가 저무는 느낌이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지난해 박남옥 감독님이 돌아가신 뒤 따님인 이경주 선생님이 감독님에 대한 자료를 기증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던 게 생각났다. 그분들과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여성 연출자인 홍은원 감독님도 함께 떠오르더라.
-여성감독들의 역사를 정리한 사료가 많지 않다. 전시 준비에 어려움이 있었을 법하다.
=박남옥, 최은희 감독님은 자서전을 쓰셨고 홍은원 감독님은 기념사업회에서 낸 책이 있어 자료가 풍부했다. 이미례, 임순례 감독님은 직접 뵙고 필요한 걸 요청드리면 됐다. 문제는 황혜미 감독님이었는데, 연출작 세편의 필름이 유실되어 영화를 볼 수 없는 상황이고 백방으로 수소문을 했으나 지금 살아 계시는지조차 확인이 어려웠다. 임순례 감독님의 다큐멘터리 <아름다운 생존> 속 인터뷰 영상이 유일하게 남
[여성 영화인들①] 오성지 한국영상자료원 연구전시팀 차장, “여성감독들의 낭만에 관객이 공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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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4월 8일, 한국 최초의 여성감독 박남옥이 세상을 떠났다. 올해 4월 16일에는 1950~60년대를 풍미한 톱스타이자 한국영화사에 등장한 세 번째 여성감독 최은희의 부고 소식이 들려왔다. 여성감독의 존재감이 전무하다시피했던 20세기 중반, 충무로라는 광야에서 그들만의 설 자리를 개척했던 두 감독의 잇단 부고를 접하면서, 한국영화 속 여성감독들의 활약상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후대의 여성감독들에게 선구자적인 존재로 평가 받는 6명의 여성감독을 조명한 한국영화박물관의 전시 <아름다운 생존: 한국여성영화감독 박남옥·홍은원·최은희·황혜미·이미례·임순례>(9월 28일~12월 5일, 공동주최 <씨네21>)의 개막을 맞아 이들의 활약상을 기록한 다양한 필자들의 글과 이후에 등장한 여성영화감독들을 아울러 여성감독 30인의 계보를 정리하는 특집을 마련했다. 어려움 속에서도 카메라를 든 손을 멈추지 않아 온 감독들의 이야기는, 지금의 한국영화계가 귀기울
여성 영화인들이여,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내다보라 ① ~ 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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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으로 2007년 외국어영화상 부문 오스카를 수상한 바 있는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의 신작 <작가 미상>(Werk ohne Autor)은 올해 외국어 부문 오스카 후보에 다시금 거론되며 독일 언론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상영시간이 180분이 넘는 <작가 미상>은 현존하는 독일의 유명 화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생애를 다룬다. 1932년생 동독 드레스덴 출신 리히터는 드레스덴 미술대학에서 당시 사회주의 화풍을 배우지만, 1961년 독일 장벽이 세워지기 전에 서독으로 도주한다. 그 후 리히터는 뒤셀도르프 미술대학에서 수학한 후 추상과 구상, 사진과 회화를 넘나드는 거장으로 자리잡았다. 영화는 리히터의 일대기를 다루면서도 실제 인물의 이름 사용은 피했다. 그래서 주인공 이름은 쿠르트 바네르트(톰 실링)다. 이 작품은 그가 예술가로 성장하는 일대기를 그리면서 나치 시대, 분단 시대를 아우르며 독일 격동기를 배경으로 한 대하 드라마이기도 하다. 폰
[베를린] 독일의 화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생애로 독일의 격동기 그린 <작가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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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마를렌 고리스 / 출연 빌레케 반 아메루이, 엘스 도터만스, 도라 반 더 그로엔, 비를레 반 오버로프 / 제작연도 1995년
20세기 말 한국 사회를 휩쓴 영화의 봄은 현실 사회주의 몰락과 함께 왔다. 소련이 몰락하자 사람들은 한때 꿈꾸었던 변혁의 길을 우회하기 시작했다. 화염병을 내려놓고, MBC FM <정은임의 영화음악실>을 듣고, 시네마테크에 가서 예술영화를 보고, 으뜸과 버금 체인에서 비디오를 빌렸다. 때마침 한국예술종합학교가 개교했고, 친구들은 영화를 배우기 위해 영상원이나 한국영화아카데미에 입학했다. 영화저널이라는 타블로이드가 등장하여 영화잡지의 감수성을 혁신했고, <씨네21>이 창간되어 갑자기 사라진 영화저널의 뒤를 이었다. 전문성을 표방한 영화잡지 <키노>(KINO)가 등장하여 ‘보그체’(패션산업계나 관련 잡지에서 관행적으로 쓰인 외래어 남용 문체)와 쌍벽을 이룰 만한 현학적인 영화평론 문체를 유행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부산국제
김영민 교수의 <안토니아스 라인> 가지 않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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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드라마 <오늘의 탐정>은 현재 한국에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직업인 ‘탐정’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탐정이라는 명칭을 사용해 영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행정사와 법무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오늘의 탐정’이 처한 현실과 배경을 무척 꼼꼼하게 챙긴 드라마는 공권력 없이 의뢰인이 요구한 일을 조사하는 과정과 범주를 또렷하게 그려놓는 수고를 마치고, 주인공 이다일(최다니엘)을 죽여버렸다. 이후, 귀신이 된 다일은 연쇄자살사건을 일으키는 ‘생령’을 추적한다.
돈을 받고 누군가를 대리해 사건을 조사하던 인물이, 죽음으로 피해 당사자가 되어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사건을 풀어가는 <오늘의 탐정>의 기이한 위치를 역전하면 형사가 연쇄살인범에게 아내나 연인을 잃고 피해자의 가족이 되어 복수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최근 몇년간 유행하던 범죄수사물이 이 패턴과 겹친다. 한국 드라마의 ‘오열’ 신에 경찰 주인공의 지분이 늘어난 것도 이즈막이다. 공권력을 가지고 수사하는 이들이
[TVIEW] <오늘의 탐정> 주인공부터 죽이고 시작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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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백>
감독 이지원 / 출연 한지민, 김시아, 이희준 배급 리틀빅픽처스 / 개봉 10월 11일
세상에 맞서느라 어쩔 수 없이 험한 선택을 한 사람들이 있다. 어린 나이에 전과자가 된 백상아(한지민)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사람들과 등지고 살아간다. 자신을 도와주는 형사 장섭(이희준)으로부터 친모의 부고를 접한 이후, 상아의 앞에 학대 받는 어린 소녀 지은(김시아)이 나타난다. 무책임한 부모와 폭력의 세계를 앞서 경험했던 상아에게 어린 지은은 반드시 구원해주고 싶은 존재다. 그동안 ‘레옹’ 혹은 ‘아저씨’가 호출됐던 자리는 이제 ‘미쓰백’에게 돌아갔다. 더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진하고 눅눅한 감정, 서로를 지키기로 결심한 두 사람의 애틋한 결속이 감정의 농도를 더욱 짙게 만들 작품이다. 이지원 감독의 데뷔작인 <미쓰백>은 연일 아동학대 사건이 접수되는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건드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새로운 아역배우 김시아의 등장, 거리낌 없고 강한 성
[Coming Soon] <미쓰백>, 서로를 지키기로 결심한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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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훈은 최근 1년 동안 <씨네21> 표지에 4번 등장했다. 네편의 작품 중 이미 개봉한 세편의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고, 그중 <신과 함께> 시리즈 두편은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미 2018년을 대표하는 영화배우가 된 주지훈이 민낯에 삭발을 감행한 <암수살인>으로 다시 관객을 찾는다. 자신이 7번의 살인을 저질렀다고 먼저 고백하는 강태오는 액션보다는 말, 감정보다는 침착한 이성이 앞서는 <암수살인>에서 판을 쥐고 흔드는 인물이다.
-특수효과가 가득한 <신과 함께> 시리즈와 파워풀한 선배 배우들에 둘러싸인 <공작> 촬영을 마친 후, 연쇄살인범으로 나오는 <암수살인>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여러 이유로 망설였다. 캐릭터가 강렬해서 배우로서는 연기하는 맛이 날 것 같은데, 관객에게 잘 흡수가 될까 싶더라. <아수라>(2016) 때부터 형들과 작업하면서, 연기와 영화는 물론 작품을 보는 관객의 반
<암수살인> 주지훈 - 주지훈이라는 돌파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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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형사야?’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김윤석은 여러 유형의 형사를 연기해왔다. 그런데 <암수살인>에서 그가 맡은 김형민은 이제껏 맡았던 형사와 많이 다르다. 범인과 육탄전을 벌이는 대신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포기하기 않고 사건의 실마리를 진득하게 풀어나가는 ‘진짜’ 형사다. 요행을 부리지 않고 정면 돌파하는 모습을 보니 배우 김윤석을 쏙 빼닮았다.
-김형민은 수사가 진행되면서 성격이 하나둘씩 드러난다는 점에서 양파 같은 남자다.
=상황을 차분차분 바라보되 단서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정보를 수집해 사실과 강태오(주지훈)의 증언 사이에 널린 퍼즐들을 꿰맞추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캐릭터가 어떤 인물인지 서사 초반에 설정하거나 하드보일드한 장르 속 형사 캐릭터로 접근하지 않아서 좋았다.
-용의자나 범인과 뒤엉키거나 육탄전을 벌이는 여느 형사영화와 달리 액션은 없지만 태오가 던져준 단서를 세심하게 수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더라.
=강태오가 하는 말이
<암수살인> 김윤석 - 영화적인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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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호상박. <암수살인> 현장에서 배우들의 연기를 첫 번째로 목도한 관객이었던 김태균 감독은 김윤석과 주지훈의 기세를 이렇게 비유했다. 김윤석이 정적으로 보이지만 내재된 용광로 같은 감정을 숨기고 눈빛으로 표현하는 호랑이 같았다면, 넓은 스펙트럼의 감정을 능글맞고 혹은 악마같이 표현하는 주지훈의 연기에서는 여유로운 뱀장어나 용이 떠올랐다고. 극중 형사와 살인범 사이의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촬영 전 대기시간에도 일부러 떨어져 앉았다는 두 사람이지만, <씨네21> 표지 촬영 현장은 영화와 달리 훨씬 편안한 기운이 맴돌았다.
<암수살인> 김윤석·주지훈 - 용호상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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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2월 개봉 예정인 <엑스맨: 다크 피닉스>에서 역대급 진 그레이를 만나볼 수 있을까. 지난 26일(현지 시각), <엑스맨> 프리퀄 시리즈 속에서 진 그레이를 연기 중인 소피 터너가 미국 TV 토크 프로그램 <레이트 레이트 쇼>에 출연해 <엑스맨: 다크 피닉스>의 첫 예고편을 공개했다. 지난주 러시아에서 열린 폭스 행사에서 유출 사고를 당했던 그 예고편이다.
<엑스맨: 다크 피닉스>는 1980년 출시된 코믹스 ‘다크 피닉스 사가’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진 그레이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힘, 피닉스 포스를 받아들이고 다크 피닉스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렸다. 올해 11월 개봉 예정이었으나 재촬영을 진행하며 2019년 2월로 개봉이 미뤄진 작품. 개봉이 미뤄진 기간만큼 영화에 대한 팬들의 기대가 상승했음은 당연한 일이다.
<엑스맨: 다크 피닉스>는 그 기대 이상을 충족시켜줄 수 있을 듯하다. 대부분의 외신은 &
역대급 진 그레이 탄생할까, <엑스맨: 다크 피닉스> 트레일러 첫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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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촬영 도중 상대 여배우를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배우 조덕제의 유죄가 확정됐다. 지난 9월 13일, 대법원은 무고죄 및 강제 추행죄로 2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40시간 성폭력 치료 강의 수강을 선고받은 피고 조덕제의 상고를 기각해 유죄 판결을 확정지었다. “신체의 일부 노출과 성행위가 표현되는 영화 촬영 과정이라 하더라도 연기를 하는 행위와 연기를 빌미로 강제추행 등의 위법행위를 하는 것은 엄격히 구별되어야 하고, 연기나 촬영 중에도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은 충분히 보호되어야 한다.” 이처럼 항소심 판결문은 감독의 지시에 따른 가상의 연기 또한 성폭력이 될 수 있음을 지적했고, 대법원은 그 내용이 타당하다고 인정했다. 사건의 피해자인 배우 반민정의 변호를 맡은 이학주 변호사(법무법인 참진)는 대법원 판결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번 판결은 그동안 예술이라는 미명하에 행해졌던 문화예술계 내 잦은 성폭력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그 기준점을 제시하는 중요한 선례가
조덕제 유죄 확정 판결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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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심플 페이버> A Simple Favor
감독 폴 페이그 / 출연 블레이크 라이블리, 안나 켄드릭, 에릭 존슨
폴 페이그 감독이 동명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미스터리 스릴러물이다. 육아 블로거인 스테파니(안나 켄드릭)는 친구 에밀리(블레이크 라이블리)가 실종되자 디지털 플랫폼에 능숙한 장점을 활용해 친구 찾기에 나선다. 영화를 본 해외 평자들로부터 심심찮게 데이비드 핀처의 <나를 찾아줘> 혹은 히치콕식 스릴러가 거론됐다. 흔한 예상보다는 조금 더 어둡고 뒤틀린 서스펜스의 영화일 것으로 기대된다.
[해외 박스오피스] 미국 2018.9.1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