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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휘 작가가 카페에 어슬렁어슬렁 다가왔다. 카페에서 지척인 집에서 시나리오 작업을 하다가 마실 가듯 인터뷰하러 나왔다. 그는 “마감은 집이 편하다. 다른 공간에선 집중이 안 된다”며 “예전에는 오전 9시부터 일하면 무조건 12시간 동안 글쓰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요즘은 사람도 만나고 가족도 챙겨야 하는 까닭에 순간순간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된 <공작>의 각본을 쓰면서 영화계에서 주목받았다. 현재 권성휘 작가는 <공작>에 이어 윤종빈 감독의 신작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함구령이 내려진 상태라 자세히 밝히긴 어렵지만 말이다.
“작가 생활한 지 14, 15년째인데 주변 사람들로부터 영화 잘 봤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 권성휘 작가에게 <공작>은 비평적으로나 흥행적으로나 두루 호평받은 첫 작품이다. “영화를 보니 감독의 연출에 기댄 부분도 상당히 있어 시나리오작가로서 고민도
[주목할 만한 시나리오작가①] 권성휘 작가 - 관객으로 보고 싶은 영화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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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나리오작가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들 한다.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웹드라마 등 매체가 다양해지고, 작품 편수가 많아지면서 충무로는 좋은 작가를 찾는 데 혈안이다. <씨네21>은 최근 영화계 안팎에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시나리오작가 6명을 소개한다. <공작>의 권성휘 작가, <1987> <뺑반>의 김경찬 작가, <완벽한 타인> <극한직업>의 배세영 작가, <아이 캔 스피크>의 유승희 작가, <82년생 김지영> <7번방의 선물>, 드라마 <남자친구>의 유영아 작가, <변호인> <공조>의 윤현호 작가가 그들이다. 다음 장부터 이들의 글쓰기 작업 이야기가 펼쳐진다.
주목할 만한 시나리오작가 6인 인터뷰 ① ~ 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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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이 정치하는 건 봤어도, 정치인이 영화계에 입문하는 사례는 드물다. 이탈리아 정치인 발터 벨트로니야말로 이 드문 사례의 당사자다. 그는 이탈리아 정계에서 중도 좌파인 민주당의 대표, 로마 시장, 문화복지부 장관 등 다양한 직책을 역임했다. 그는 로마 시장으로 재직할 당시인 2006년 ‘로마국제영화제’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감독한 영화 <시간은 있다>(C’ è tempo)가 최근 이탈리아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40대의 비정규직 노동자 스테파노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는 어느 날 평생 소식도 몰랐던 아버지가 13살의 이복동생 조반니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형제는 이탈리아의 에밀리아 로마냐 지방과 토스카나 지방으로 여정을 떠나며 서로를 알아간다. <시간은 있다>는 수많은 고전영화들에 대한 향수와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특히 프랑수아 트뤼포와 베르나르도 베르
[로마] 전 로마 시장 발터 벨트로니, <시간은 있다>로 극영화 감독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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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세르지오 레오네 / 출연 헨리 폰다,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제이슨 로바즈 / 제작연도 1968년
자꾸만 펼쳐보게 되는, 밑줄 가득한 손때 묻은 소설 같은 영화들이 있다. 한컷, 한신의 밀도에 숨죽이고 도대체 저 숏은 뭘까 하며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들. 그중 하나가 오래전 누군가의 말처럼 공기가 느껴지는 영화, 바로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옛날 옛적 서부에서>다. 하지만 무엇보다 첫신에서 열연을 펼치며 종횡무진 날아다닌 파리의 윙윙거림 같은 부끄러움으로 남는 영화. 오랜 간절함 끝에 4수 만에 입학한 대학의 오티. 몇 순배의 술잔이 돌자 서먹하고 데면데면했던 분위기는 사라지고 선배, 동기들은 자신들의 베스트영화로 ‘선빵’을 날리기 시작했다. 당시 나에게 영화란 풍문으로 들었지만 보지 않은 영화, 말 그대로 듣도 보도 못한 영화, 봐도 안 본 것 같은 영화 그리고 보지도 않고 본 것 같은 영화들로 나뉘어 있었다. 정말이지 동서양을 망라하고 두루두루 꼼꼼하게 흘러나
[내 인생의 영화] 김중현 감독의 <옛날 옛적 서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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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규, 설경구, 거기에 천우희까지. 3월20일 개봉하는 <우상>은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하는 영화다. 뺑소니 사건을 시작으로 전개되는 영화에서 세 배우는 각각 가해자의 아버지(한석규), 피해자의 아버지(설경구), 피해자의 아내(천우희)를 맡아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배우들의 연기 외에도 <우상>에는 또 하나의 기대 포인트가 있다. 2013년 평단의 호평 세례를 받았던 독립영화 <한공주>의 이수진 감독의 차기작이라는 점. <한공주>는 여중생 성폭행이라는 끔찍한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 담담하지만 날카로운 시선으로 분노와 슬픔을 전달했다. 이수진 감독은 암담한 현실을 조심스러우면서도 섬세하게 그려냈으며 주인공 한공주를 연기한 천우희는 단번에 충무로를 이끌어갈 차세대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그렇다면 이수진 감독 외에, 독립영화에서 반짝이는 재능을 보여줬던 다른 감독들은 어떤 작품으로 관객들을 만날까. <우상>의 개봉과
이 영화들을 기억해둘 것, 평단의 찬사를 받았던 독립영화 감독들의 차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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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팅방의 이모티콘은 우리의 감정을 실어 나르는 언어의 반열에 올랐다. 2G폰 시절에 탄생한 ‘ㅇㅇ’이나 ‘ㅋㅋㅋ’가 사전에 등재될 날이 올지는 모르겠으나, 사전의 그 어떤 단어 이상으로 많이 쓰인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다음에는 그 자리를 각 기업의 메신저 플랫폼 이모티콘이 위협하고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더 길게 말해 무엇하랴, 카카오톡 캐릭터 라이언이 없었다면 우리는 채팅방을 떠도는 날카로운 말들 때문에 더 많이 상처받고 더 많이 싸웠으리라. 라이언은 누군가와의 대화 중에 나 대신 울어주고 사랑해주고 가끔 출근해서 일도 해주고 과음하거나 심지어 멍 때리는 것까지도 절실하게 또 적확하게 해주는 터라, 그가 실은 해당 기업 총수를 모델로 삼았다거나 실은 탈모 캐릭터라거나 하는 온갖 구설에 오르내려도 그 신뢰가 쉬이 무너지지 않는다. 책 소개가 아니라 라이언에 대한 상찬을 먼저 늘어놓는 이유는 이 말에 공감한다면 이 책을 붙들자마자 후루룩 한눈에 다 읽을 때까지 손에서
씨네21 추천도서 <라이언, 내 곁에 있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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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도 글이 될 수 있을까’ 에세이를 써보려 하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고민이다. 이를테면 마트 앞에서 호떡을 파는 아저씨에게 “붕어빵은 안 파세요?”라고 물었을 때 아저씨는 “에휴, 반죽하면 어깨 나가요”라고 답하고는 “요즘은 붕어빵도 다 프랜차이즈라 떼어주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 답한다. 누구나의 하루에 일어날 수 있는 사소한 대화이지만 저자 은유는 타인의 노동을 상상하고, 글로 옮긴다. 그러니까 일상의 관찰자가 되어 거기에 상상력을 더하면 무엇이든 글이 될 수 있다. 주의 깊게 듣고, 사소하게 묻고, 집중해서 듣고, 상대를 상상하지 않으면 우리는 ‘당사자’가 되어볼 수 없다. 그리고 당사자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섣불리 남에 대해 판단하고 평가하고 말을 덧붙여서는 안 된다. 그런 사려 깊은 고민과 상상력들이 <다가오는 말들>에는 담겨 있다. 딸이자, 엄마이자, 여성으로서 겪었던 일들을 강연에서 말하다 한 남성에게 “너무 남자를 미워하지 마세요”라는 비난을 들었을 때
씨네21 추천도서 <다가오는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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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살, 유명 푸드기업의 직원 아케미는 한계에 다다랐다. 마지막 휴일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일에 치여 살아가고 있는 그는, 몸과 마음을 다친 채 서서히 무너져내리고 있다. 지하철 선로에 뛰어들어서라도 출근을 멈추고 싶다고 생각한 어느 날, 누군가 아케미를 부른다. 무표정하고 키가 큰, 단발머리의 주스가게 여자. 그는 아케미에게 스무디를 건네며 마셔보라고 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아침 출근길에 여자가 만든 스무디를 마시며 아케미의 일상엔 작지만 분명한 변화가 생긴다.
<매일 아침 지하철에서 모르는 여자가 말을 건다>는 일본 작가 유즈키 아사코의 대표작 ’앗코짱 시리즈’의 속편이다. 퉁명스럽고 황당무계하며 제멋대로지만 특유의 오지랖과 상상력으로 위기에 처한 여자들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앗코씨는, 살면서 한번쯤은 만나 조언을 듣고 싶은 매력적인 여성으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지난해 국내 출간된 ‘앗코짱 시리즈’의 전편 <나는 매일
씨네21 추천도서 <매일 아침 지하철에서 모르는 여자가 말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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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 물속에 갇혀 있는 것만 같았다. 왜 이렇게 시간이 안 갈까.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은 분명 오늘 같을 테고. 시간은 너무 안 가는데,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10대 때에는 그랬다. 미숙의 청소년기도 그렇다. 시인인 아빠가 신경질 내며 던진 책 모서리에 맞아, 미숙의 눈 밑에는 상처가 남았다. 책 제목은 <무소유>였다. 미숙은 가진 게 없었다. 가난은 주머니 속 송곳처럼 자꾸 튀어나왔다. 아빠는 시인이었지만 시집 한권 낸 후 저작 활동을 멈췄고, 책상에 앉아서 하는 일이라고는 딸들에게 가시 돋친 말을 내뱉는 것뿐이다. 가계는 엄마가 각종 부업을 해서 이어나간다. 엄마와 아빠는 자주 부부 싸움을 했고, 그때마다 미숙과 언니 정숙은 집 밖으로 피신했다. 어둔 밤이면 불을 끄고 누워 언니의 등을 보고 미숙은 중얼거렸다. “언니, 친구들이 나를 ‘야, 미숙아’라고 불러.” “그게 뭐, 너 이름 미숙이잖아.” “아니, 미숙이가 아니라 미숙아라고 부른다고.
씨네21 추천도서 <올해의 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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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재미있는 일을 자석처럼 끌어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만화 <반경 3미터의 카오스>를 쓴 가마타미와 작가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다. 할인매대의 물건을 별 생각 없이 잠깐 구경하고 있는데, 모르는 사람이 “어머 싸기도 하지! 이거 저번에 봤을 때는 정가였어요. 대박!”이라며 호들갑을 떨더니 그대로 가버린다. 자기는 안 사고? 재미있는 사람과 만난 일을 잊기 아쉬워 매일 일기를 썼고, 그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코믹 에세이로 그렸다. 읽다 보면 나도 본 적 있는 유형의 사람들이 있다. 가게 직원인데 아무리 봐도 내가 산 물건이 안 들어갈 크기의 봉투를 꺼내 꾸역꾸역 넣으려다 실패하고 내 눈치를 흘끗 본다든지 맥락 없이 친근한 척하면서 음담패설을 속닥이는 모르는 중년 남성이라든지. 쇼핑, 일상, 체육관, 여행 등 11장으로 이루어진 이야기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낯선 이에게 유난히 조심한다는 일본사람들 이야기가 맞나 싶을 정도로 때로 웃기고 때로 이상하고 때로 기가 막힌다.
씨네21 추천도서 <반경 3미터의 카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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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우리 일상에는 재미있거나 특별한 일들이 자주 생긴다. 물론 같은 사건도 어떤 이에게는 글의 소재가 되고 어떤 이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흘러가지만. <씨네21> 3월의 책장에는 무엇이든 기록하려 애쓴 사람들의 책들이 담겼다. <반경 3미터의 카오스>는 길에서, 옷가게에서, 지하철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웃긴 에피소드를 담은 책이다. 굳이 친구가 아니라도 우리는 낯선 사람들과 말을 섞고 그들로부터 어이없는 감상을 받기도 한다. 작가는 자신에게 생긴 어이없거나 우스운 사건들을 그대로 흘려보내지 않고 만화로 그려 블로그에 기록했다. <올해의 미숙>은 상처받기 쉬운 누구나의 청소년기를 떠올리게 하는 만화다. 주인공 미숙은 가족에게서, 친구에게서 받은 상처를 이겨내고 자기보다 약한 존재를 보듬는 존재로 나아간다. <매일 아침 지하철에서 모르는 여자가 말을 건다>는 <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의 후속작이다. 파견직원 미치코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3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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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사람들의 얘기는 나이를 먹어서야 귀에 들어온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체력은 국력이 아니어도 내 경력과 직결되고, 건강은 정말로 중요하다. 다이어트에 날린 돈과 시간을 운동하는 데 썼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 몸 하나 지탱하기 힘들어진 뒤에야 운동을 시작한 요즘 JTBC <위대한 운동장–SKY 머슬>을 본다. 운동하는 여성들의 강인함을 내세운 캠페인, “너라는 위대함을 믿어”로 화제를 모은 나이키가 제작 협찬한 프로그램답게 여성 출연자와 지도자의 비중이 높다는 것은 눈에 띄는 장점이다. 아르바이트 수입을 운동에 쏟아붓는 고등학생, 소매치기를 멋지게 제압하는 전사가 꿈이었다는 대학생, ‘기지개 운동’밖에 못하고 있다는 워킹맘 등 각기 다른 이유로 출연을 신청한 여성들도 반갑다.
운동의 가장 좋은 점은 내 몸을 외양이 아니라 기능을 기준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키가 너무 큰 게 콤플렉스라는 여성에게는 수영하기에 유리한 조건이라는 격려, 볼링은 키가 조금
[TVIEW] <위대한 운동장–SKY 머슬>, 방향 알고 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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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
제작 영화사 레드피터 / 공동제작 화이브라더스코리아 / 감독 김윤석 / 출연 염정아, 김소진, 김혜준, 박세진, 김윤석 / 배급 쇼박스 / 개봉 4월 11일
“딸, 밥 먹었니?” 여느 날과 다름없는 자상한 목소리지만, 더이상 주리(김혜준)에게 아빠(김윤석)는 ‘내가 알던’ 그 아빠가 아니다. 어느 날 아빠와 미희(김소진) 사이에서 심상치 않은 행동을 목격하게 된 주리. 하필 미희의 딸은 우등생 주리와는 접점이 하나도 없는 같은 학교 문제아 윤아(박세진)다. 엄마 영주(염정아)가 제발 이 기막힌 상황을 모르고 지나가길 원하는 주리, 엄마 미희의 갑갑한 상황을 보고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윤아. 어른들의 문제로 급기야 둘은 일대 ‘전쟁’에 돌입한다.
<미성년>은 17살 소녀 주리와 윤아가, 그들의 눈높이로 바라보는 복잡한 어른들의 세상이다. 아직 주민등록증도 발급받지 못한 ‘미성년’에게 모순에 가득 찬 어른들의 행동을 바라보는 일은 버겁기만 하다.
[Coming Soon] <미성년>, 폭풍 같은 사건을 마주한 두 가족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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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서 조우진이 연기한 한지철은 금융계를 교란하는 자들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금융감독원의 수석검사다. 조우진의 얘기대로라면 <돈>은 신참 주식브로커 조일현(류준열)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작품이기 때문에 자신은 “으깬 감자나 삶은 달걀, 삶은 고구마 같은 인물”이어야 했다고 한다. “그래야 조일현이 가진 밝고 경쾌한 기운, 청량감이 확 살아날 테니까.” 조우진은 자신의 캐릭터에만 집중하지 않고 영화의 전체 판을 읽는 시야 넓은 배우다. “나에게 돈이란?”이라고 물었을 때도 “돈보다 어려운 건 사람이고, 사람보다 어려운 건 연기”라는 대답을 들려주는 그는 자나 깨나 돈이 아닌 연기만 생각하는 배우다.
-시나리오의 어떤 점이 매력적이었나.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어 하지 않나. 돈에 대해 욕심을 내기 마련이고. 돈을 대하는 인물들의 태도와 생각이 모두 다른데, 각 인물들의 욕망이 계속해서 부딪힌다. 그 중심에 조일현이란 인물이 있다. 일현의 감정을 따라가는 것만
<돈> 조우진 - 연기보다 이해가 먼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