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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전조일까, 아니면 우연의 연속일까. 지난해 추석 시장과 크리스마스 시장에서 한국영화 대작들이 연달아 흥행에 실패한 것을 두고 충무로 안팎에서 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최근 신생 투자·배급사들이 산업에 뛰어들었고, 네이버웹툰과 카카오M 같은 공룡 ICT 기업들도 드라마와 영화 같은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겠다고 나서면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진 상황에서 산업 분위기는 다소 어수선하다. 롯데, CJ, NEW, 쇼박스, 메가박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등 투자·배급사 및 직배사에서 한국영화 투자를 책임지는 사람들을 만나 최근의 산업 상황에서 무엇을 고민하는지 물었다. 또 시장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한국영화 위기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확인했다.
한국영화 기획, 맞는 길로 가고 있습니까?-한국영화 투자·배급사 투자책임자 인터뷰 ① ~ 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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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장벽이 붕괴된 지 30주년 되는 올해, 시의적절한 영화가 나왔다. 동독 출신 중견 작가 잉고 슐체의 소설 <아담과 에블린>(국내 2012년 번역 출간)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역시 동독 출신인 안드레아스 골트슈타인 감독의 데뷔작이다.
영화는 1989년 동독 어느 시골의 한여름 낮, 파스텔톤 하늘과 구름, 풀벌레 소리, 새소리, 들꽃이 제멋대로 무성히 자라고 있는 정원에서 시작된다. 수천명의 동독 여행객들이 헝가리 국경을 넘어 오스트리아 서독대사관으로 탈출하고 있음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배경음으로 알 수 있다. 여성들에게 아름다운 옷을 만들어주는 재단사이며 취미는 사진 찍기인 아담은 일상에 만족하지만 여자친구 에블린은 틀에 박힌 웨이트리스 생활에 불만이 많다. 에블린이 먼저 동유럽으로 떠나고 그 뒤를 아담이 좇는다. 이들이 길을 떠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영화를 채우고 있다. 고정된 카메라에 담긴 동유럽의 아름다운 여름 풍경과 느릿한 진행, 코믹하지만 진지한 대화
[베를린] <아담과 에블린>, 베를린장벽 붕괴 당시의 로드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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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피터 잭슨 / 출연 이언 매켈런, 마틴 프리먼, 리처드 아미티지 / 제작연도 2012년
<반지의 제왕>과 <호빗> 시리즈를 좋아한다. 그리고 <반지의 제왕>보다 <호빗>을 더 좋아한다. <반지의 제왕>이 절대악에 맞서 다양한 종족들이 정의로운 연합을 구성해 어렵사리 승리를 거두는 이야기라면 <호빗>은 욕망과 상처를 가득 품은 채 몰락 이후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몸부림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호빗>의 주인공인 참나무방패 소린(리처드 아미티지)은 한때 에레보르 왕국의 난쟁이 왕자로서 엄청난 부와 영광을 누렸지만 자신보다 더욱 탐욕스럽고 강력한 존재인 용 스마우그에게 왕국의 모든 것을 빼앗긴 뒤, 마지막까지 충성을 맹세한 몇 안 되는 가신들과 함께 세상을 떠돈다. 그는 왕국을 잃어버린 왕자, 즉 살았지만 죽은 존재이다.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그를 살아가게 하는 것은 오직 명예다. 탐욕스런 용
[내 인생의 영화] 장혜영 감독의 <호빗>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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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이디 버드>의 엄마는 차에서 오디오북을 듣는다. 옆자리에 딸을 태우고 오디오북을 듣던 그녀는 청취에 몰입해 갑자기 눈물을 흘린다. 레이디 버드와 엄마가 함께 듣는 책은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다. 한두번 들은 모양새가 아닌데도 엄마는 같은 문장에서 다시 감동한다. 대공황 시대 경제적으로 위태한 소설 속 주인공에 자기 삶을 대입하고 만 것이다. 그녀에게 오디오북은 일상의 BGM이 아니라 집중해서 듣는 독서 행위다. 실직한 남편 몫까지 가계를 책임지고, 야간 근무 후 가사까지 돌보는 고단한 삶에서 엄마가 유일하게 자기 자신을 위해 하는 일이 귀로 듣는 독서다. 책을 읽는 많은 방법 중 가장 편리한 방법이 누군가 읽어주는 것을 귀로 듣는 것이고, 낭독자가 또렷하거나 나긋한 목소리의 배우라면 듣기의 효율은 더욱 올라간다.
한국 단편소설 걸작을 배우들이 나누어 낭독한 <100인의 배우, 우리 문학을 읽다>는 EBS <책 읽어주는 라디오&
씨네21 추천도서 <100인의 배우, 우리 문학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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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있다. 그에게는 유년 시절 각인된 이미지가 하나 있다. 폭력적이었던 그 장면, 그 장면의 의미를 이해하는 여정이 영화 <환송대>의 내용이다. 그 사건이 벌어진 때는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몇년 전. 장소는 오를리공항의 거대한 환송대였다.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고 한 사람의 몸이 쓰러졌다. 그 모습을 경악에 찬 몸짓으로 바라보는 여자가 있었다. 얼마 뒤, 파괴가 시작되었다. 파리는 폐허가 되었다.(이때 등장하는 폐허가 된 도시 사진은 파리가 이미 경험했던 과거의 세계대전에서 가져온 것이리라) 생존자들은 지하에 자리를 잡았고, 주인공은 포로가 되어 그곳에 갇혔는데, 어느 날 그는 시간을 통과하는 실험의 주인공으로 선정된다. 현재를 구하기 위해 그는 시간 속으로 떠나야 한다. 그는 과거 특정한 순간의 이미지에 집착하고 있어서 선정되었고, 고통스러운 과정 끝에 마침내 평화 시기의 장소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환송대 위에서 본 여자를 보게 된다. 1차 실험이 성공하
씨네21 추천도서 <환송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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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인 서인도제도에서는 지배계급이었던 애나는 영국에서 하층계급으로 살아간다. 월터와 사랑에 빠진 애나는 서인도제도에서의 나날을 떠올리곤 한다. 월터에게서 버림받은 뒤 현실과 과거는 더욱 뒤섞인다. 남자에게서 버림받는다는 일은 하층계급의 여자에게는 생존이 걸린 재앙이나 다름없다.
“가끔은 내가 그곳으로 돌아가 있는 듯하고 영국은 하룻밤 꿈처럼 느껴졌다. 어떤 때는 영국이 실제이고 그곳이 꿈이었는데, 나는 결코 그 둘을 제대로 끼워맞추지 못했다.” 이 문장을 진 리스의 소설 <어둠속의 항해>의 두 번째 페이지에서 읽었다. 진 리스가 <제인 에어>에 등장하는 ‘다락방의 미친 여자’, 즉 로체스터씨의 아내였던 버사 메이슨의 전사(前史)를 상상한 소설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를 썼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가 상상한 버사 메이슨은 <어둠속의 항해>의 주인공과도 닮아 보이고 작가 자신과도 무척 닮아 보인다. 실제로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알려져 있는 &
씨네21 추천도서 <어둠속의 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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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 중 어느 한명에게 ‘이야기꾼’의 칭호를 내려야 한다면 그것은 단연코 교고쿠 나쓰히코의 차지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기담과 민속학, 종교학을 아우르며 괴이한 사건을 현실에 밀착해 풀어내는 작가다. 교고쿠 나쓰히코의 소설 중 처음 만난 것은 <우부메의 여름>이었다. 책을 읽은 지 10년도 더 되었는데, 지금도 독서 당시 여름의 끈적한 감촉이 기억난다. 더워서 땀이 줄줄 흐르는데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어서 땀을 흘리며 그 길고 긴 이야기를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우부메의 여름>은 내게 괴물을 잉태한 여자의 커다란 배를 펜으로 그린 삽화로 기억되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내 기억에 달라붙어 있던 삽화가 책에는 없었다. 그러니까 책을 읽고 내 멋대로 상상한 그림을 삽화로 기억하고 있었던 거다. 교고쿠는 독자의 기억에 자기가 만들어놓은 묘사를 이미지로 남겨버린다. 교고쿠는 비논리의 대상인 요괴(혹은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귀신)를 확인하는 추리의 과정을 섬세하게
씨네21 추천도서 <후 항설백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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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느끼게 될 감정은 아마도 ‘부러움’일 것이다. 아니, 이렇게나 부지런하다니! 매일 책을 한권씩 읽고 심지어 그걸 매일 기록했어! 이 엄청난 생산력은 무엇인가! 그런데 우습게도 매일 책을 만지거나(저자 서효인과 박혜진은 편집자다), 읽거나 독서일기까지 썼던 저자들의 글에서 자주 언급되는 감정도 ‘부러움’이다. 이들은 명민하고 다정한 문장을 쓴 작가를 애정하거나, 좋은 기획을 한 편집자를 존경한다. 그리고 ‘나도 이런 책을 만들어 끝까지 가보고 싶다’고 다짐한다. 이 얼마나 곡진한 책 사랑인가. 어쩌면 우리는 나보다 조금 나은 누군가를 동경하기 위해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서효인, 박혜진은 민음사에 근무하는 편집자들이다. 이들은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을 만들었다. 이들은 모두 문학 편집자이며, 서효인은 동시에 시인이고, 박혜진은 평론가다. 매일 읽는 것은 아무나 못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은 매일 읽은 독서를 기록하
씨네21 추천도서 <읽을 것들은 이토록 쌓여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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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되었든 다짐들을 하게 되는 시기다. 그것은 공부나 운동일 수도 있고 건강이나 커리어를 위한 자기 자신과의 약속일 수도 있다. 연초에 하는 다짐들은 필연적으로 ‘미래’적일 수밖에 없는데, 도래한 미래 위에서 또 다른 미래를 걱정한다. <씨네21> 1월의 책꽂이에는 소설과 서평, 오디오북과 사진집 등 여러 종의 책이 꽂혔다. 서효인·박혜진의 독서일기 <읽을 것들은 이토록 쌓여가고>, 교고쿠 나쓰히코의 기담 소설집 <후 항설백물어>, 창비세계문학 66번째 소설 진 리스의 <어둠속의 항해>, 크리스 마커의 영화-소설집 <환송대>, 103명의 배우들이 한국 근현대사 문학을 낭독한 오디오북 <100인의 배우, 우리 문학을 읽다>가 그것이다. 매달 좋은 책들을 뻐근하게 받아들고 서평으로 소개하는 일은 새해에도 계속된다. 이렇게 좋은 책들과 올해의 항해도 시작되었다.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1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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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개봉한 <소수의견> 이후 윤계상, 유해진이 3년 만에 재회한 영화 <말모이>. 각각 여러 작품으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 만큼 이번 영화에서도 두 배우는 안정적으로 극을 이끌어간다. 윤계상은 조선어학회의 대표로 일제의 눈을 피해 우리말 사전을 만드는 류정환을 연기했으며, 유해진은 극장에서 해고된 후 아들 학비를 위해 가방을 훔치다 얼떨결에 정환과 함께 하게 되는 판수 역을 맡았다.
그러나 윤계상, 유해진 외에도 <말모이>는 수많은 조연 배우들의 활약이 돋보인 영화다. 그중 메인 포스터에도 실린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때로는 웃음을, 때로는 감동을 선사하며 다양한 매력을 뽐냈다. 그렇다면 <말모이> 이전, 그들은 어떤 작품으로 먼저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었을까. 한 번쯤은 본 듯한 익숙한 얼굴의 조선어학회 조연 배우들. 그들의 전직(?)에 대해 알아봤다.
김홍파
조선어학회의 큰 어른 조갑윤을 연기한 김홍파는 1990년대부터 꾸
<말모이> 속 조선어학회 회원들, 어디서 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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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에서 노숙자로 전락했다가 약자를 돕는 변호사로 돌아온 조들호(박신양)가 새 이야기를 시작했다. KBS <동네변호사 조들호2: 죄와 벌>에서 그는 또다시 나락으로 떨어진다. 성폭행 가해자측의 말을 믿고 변호를 맡은 조들호의 차에 피해자가 뛰어들고, 들호는 이후 변호사 일을 포기한다. 자책으로 일상을 무너뜨린 그는 까치집 머리에 삼선 슬리퍼를 신은 추레한 몰골로 고농도의 진정성을 뿜고 다닌다.
초임 검사 시절을 함께했던 수사관 사망사건을 뒤쫓는 조들호는 문상을 갈 때도 진흙탕에 구른 점퍼와 슬리퍼 차림으로 나타났다. 상복을 입고 아버지의 빈소를 지키는 윤소미(이민지) 앞에서 옷을 갈아입는 것도 잊을 정도로 애도하는, 그런 진정성이다. 의례나 격식을 개의치 않는 ‘꼴통’ 캐릭터가 없지 않았지만, 늘 진지하게 몰두하는 박신양이 연기하면 진정성의 농도는 더 짙어진다. 누가 그의 적수가 될 수 있을까?
국일그룹 기획조정실장 이자경(고현정)은 타인을 도구로 삼는 소시오패스다
[TVIEW] <동네변호사 조들호2: 죄와 벌>, 조들호와 박신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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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The Favourite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 / 출연 올리비아 콜먼, 에마 스톤, 레이첼 바이스, 니콜라스 홀트, 마크 게티스, 조 알윈 / 수입·배급 이십세기폭스코리아 / 개봉 2월
신화의 세계가 아니다. <더 랍스터> <킬링 디어>의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이번엔 실제 역사를 재연한다. 18세기 영국, 절대권력을 가진 여왕(올리비아 콜먼). 그리고 여왕의 총애를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두 여성. 여왕의 최측근 사라 제닝스(레이첼 바이스)는 지략과 미모를 겸비한 캐릭터로 여왕을 대신해 정계를 쥐락펴락하며 권력을 누리는 왕실의 실세다. 하지만 그녀의 신경을 건드리는 초강력 견제 세력이 등장한다. 몰락한 귀족 가문 출신 애비게일 힐(에마 스톤) 역시 신분 상승을 꿈꾸는 권력 지향형 캐릭터다. 종잡을 수 없는 변덕, 히스테릭한 여왕의 마음, 과연 누가 그녀를 사로잡을 것인가. 절대권력 앞에 엮인 세 여성
[Coming Soon]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여왕의 총애를 얻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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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말모이> 나는 우리의 아름다운 욕설을 찾아 전국을 누볐어
[정훈이 만화] <말모이> 나는 우리의 아름다운 욕설을 찾아 전국을 누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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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버스를 타고 하루 열몇시간씩 이동하는 날이 이어졌다. 창밖의 풍경은 가끔 화성 같았고, 대체로 그곳이 그곳 같았다. 지평선을 원 없이 보던 나날이었다. 가이드는 지루한 낮의 사막을 지나며 밤의 사막에 대해 들려주었다. 그는 별을 보기 위해 인간이 만든 불빛이 없는 높은 곳에 이르러 모든 불을 끄고 차에서 내렸는데, 다음 순간 너무나 두려워서 견딜 수가 없었단다. 하늘이 별로 가득한데, 그 모두가 마치 쏟아져내리는 듯 했다고. 가장 많은 별과 가장 큰 두려움. 그 이야기를 들으며 부러웠던 기억이 난다. 나는 압사당할 공포를 느끼며 별을 본 적이 없다. 내가 밤의 자연에 대해 모르는 건 그 외에도 많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달빛 속을 걷다>는 걷기에 대한 글 다섯편을 엮은 책이다. 첫글이 표제작인데, 밤산책에 대해 썼다. 자연관찰가로 사상가로 유명한, <월든>의 작가답게, 그는 밤의 자연 속을 걷는다. “눈 못지않게 냄새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달빛 속을 걷다> 도시인간풍의 자연애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