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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는다. 영화 <선희와 슬기>는 거짓말을 거듭하다 급기야 자신의 삶을 버리고 슬기라는 새로운 사람이 된 선희(정다은)의 사연을 그린 이야기다. 유복하지만 자신에게 관심과 애정을 주지 않는 부모 때문에 학교 친구들에게 관심받고 싶어 거짓말을 하는 선희가 한편으로는 이해되면서도, 같은 실수를 또다시 저질러 슬기로 사는 새로운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 때는 무척 안타깝다. <소녀 배달부>(2014), <1킬로그램>(2016) 등 단편영화로 국내외 여러 영화제에서 인정받은 신인 박영주 감독은 첫 장편영화인 <선희와 슬기>를 통해 거듭된 거짓말로 어리석고 나약한 모습을 드러내는 한 인간을 집요하게 그려낸다. <선희와 슬기>는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과 제42회 예테보리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었다.
-학창 시절 거짓말을 하던 친구를 보면서 구상한 이야기라고 들었
<선희와 슬기> 박영주 감독 - 비극이 된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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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에 장이 선 뒤 오후 3시에 마감할 때까지 시시각각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숫자에 따라 눈치작전이 치열하다. <돈>에서 원진아가 연기한 박시은은 검은 정장 차림의 남성 브로커 사이에서 유난히 돋보이는 여성 브로커다. 원진아는 첫 장편영화인 <강철비>에서 개성공단에서 일을 하다 미사일 폭격을 피해 북한1호와 남한으로 내려오는 북한 여성 려민경을 연기한 뒤로 <그냥 사랑하는 사이> <라이프> 등 두편의 드라마로 얼굴을 알렸다. 어떤 질문을 던져도 막힘없이 술술 말하는 모습이 시종일관 여유 있는 시은을 쏙 빼닮았다.
-목소리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듣던 것보다 훨씬 더 저음이다.
=하하. 오디션을 보러 가면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하는 내 목소리를 듣고 당황하는 감독님들도 계셨다. 목소리가 부드러울 거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 평소에는 목소리의 높낮이 폭이 큰 편이다. 장난칠 때는 어린아이 목소리가 나오기도 하고.
-고객에게 신뢰를 줘
<돈> 원진아 - 낮은 목소리, 당당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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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마블>이 전세계 흥행 수익 8억달러 돌파를 앞두고 있다. 국내 관객수는 480만명(3월 21일 기준). 개봉 전부터 국내외에서 많은 이슈를 몰고 왔지만 흥행 전선에는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한 듯하다. 한국뿐만 아니라 북미의 반응이나 흥행 추이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분위기는 한달 뒤 개봉할 <어벤져스: 엔드게임>까지 이어질 것 같다. <캡틴 마블>과 그 뒤를 잇는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페이즈 3기를 마무리하는 최종장 기능을 하는 영화들이다. <블랙팬서>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가 와칸다라는 무대를 바탕으로 히어로의 탄생과 빌런들과의 전쟁을 어떻게 엮어냈는지를 환기시켜보면 되겠다. 그런 점에서 <캡틴 마블>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지난 10년의 역사를 정리함과 동시에 어벤져스 이후 새로운 히어로의 세대교체를 예고하는 영화라는 점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다. 혹여 <캡틴
페미니스트, <캡틴 마블>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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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에 맞춰 <캡틴 마블>이 개봉했다. “<캡틴 마블>은 페미니즘을 위한 가장 거대한 발언대이기 때문에 이 영화에 참여하는 것이 기쁘다.” 브리 라슨이 캐스팅 후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 말 덕분에 브리 라슨은 영화가 개봉할 때까지 수많은 공격을 받았다. 별점 테러는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개봉 전 영화에 관한 정보가 공개될 때마다 설정에 대한 비판과 외모(?!)를 둘러싼 공격이 이어졌다. 별점 테러단은 역대 마블영화 중 최악이며 그에 걸맞게 관객의 외면을 받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결과는 상영 첫주에 가려졌다. <캡틴 마블>은 첫주 흥행성적만으로 손익분기점을 훌쩍 넘었을 뿐 아니라 히어로들이 총출동한 <어벤져스> 시리즈에 이어 높은 흥행성적을 기록하는 중이다.
그러니까 <캡틴 마블>은 스크린과 스크린 바깥, 두곳에서 동시에 개봉해 동일한 서사로 관객을 만나는 중이다. 스크린
캡틴 나의 캡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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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의 인물로 단일한 공간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끌고가는 방식은 종종 시도된다. 그러나 선택한 하이 컨셉이 단순한 형식 유희를 넘어 내용과 조응하는 정당성을 획득하고 영화 전체를 지탱하는 경우는 드물다. 구스타브 몰레르 감독의 <더 길티>는 드문 성공의 예다. <더 길티>의 솔로 주인공은 야간 비상구조 콜센터에서 야근중인 경찰 아스게르(야코브 세데르그렌). 업무규정 위반 혐의로 콜센터에 임시 배치된 그에게 납치당했다는 여성의 전화가 걸려온다. 능력과 직감을 자신하는 아스게르는 현장요원과 연결하는 임무를 넘어 피해자를 직접 구하려 한다. <더 길티>는 인물을 움직이는 사건 자체도 충분히 긴장을 자아내지만 결말에 이르러 관객이 이해하게 되는 것은 주인공의 캐릭터라는 점에서 전화 통화만으로 이뤄진 또 다른 영화 <로크>(2013)와 친구다.
03/10
가려진 여자들의 스토리가 소나기처럼 쏟아진다. 내용이 제목 그대로였던 <히든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유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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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만들기를 환유하는 영화에 관한 영화. <국경의 왕>이 영화 만들기에 관한 자기 반영적 영화라는 데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배우 김새벽을 제외하면 감독의 전작 <라오스>(2014) 출연진이 대부분 합류한 데다 감독을 포함한 대부분의 스탭이 배우를 겸한다. 주요 캐릭터는 영화를 만들었거나, 만들기 위해 일단은 무언가를 쓰거나 구상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그것이 어쨌다는 말인가. 영화에 관한 영화를 만드는 이가 임정환 감독만은 아니며, 자기 반영성은 만드는 방식의 곤궁에서 비롯된 어쩔 수 없는 선택일 때도 있다. 물론 곤궁이 필연적으로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종종 자기만족적 신세 한탄이 자기 반영성으로 둔갑하며, 이 둘을 분간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적어도 지금의 한국 독립영화를 논할 때 ‘영화에 관한 영화’라는 설명에는 부연이 필요하다.
<국경의 왕>에는 현실의 조건과 충돌하며 돌출되는 서사적 야심이 있다. 이것이 여타 독립영
<국경의 왕> 독립영화적인 서사에서 벗어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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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마케팅으로 화제가 된 영화가 있다. 지난 2월 사전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채 ‘개봉미정’이라는 이름으로 시사를 개최했던 <더 길티>다. 호기심을 자극한 영화는 관람객들의 호평 아래 제목을 공개, 3월27일 개봉을 확정했다.
그러나 <더 길티>의 진짜 신선함은 그 형식에 있었다. 긴급신고센터에서 근무 중인 아스게르(야곱 세데르그렌)의 납치 사건 해결을 그린 영화는 단 한 장소에서만 이야기가 진행된다. 게다가 주연 배우도 단 한 명. 마치 연극의 한 종류인 ‘1인극’ 같은 형태다. 날 선 음향으로 빈틈을 메운 것도 크지만 야곱 세데르그렌은 절제된 연기로 불안정한 심리를 표현, 영화의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그렇다면 <더 길티>처럼 배우 한 명이 극 전체를 끌고 갔던 영화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 사례를 모아봤다.
인내와 성찰 <127시간>
첫 번째는 등산가 아론 랜스턴의 실화를 그린 대니 보일 감독의 <127시간&g
혼자서도 충분하다! 배우 한 명이 멱살 잡고 끌고 가는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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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1873~1954)는 프랑스에서 예술적 성취를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첫 여성 작가였다. <콜레트>는 남편의 유령작가로 ‘클로딘 시리즈’를 썼던 콜레트의 작가 경력 초창기 이야기에 집중한다. 프랑스 생소뵈르 출신의 콜레트(키라 나이틀리)는 나이 많은 바람둥이 작가 윌리(도미닉 웨스트)와 결혼해 파리 생활을 시작한다. 윌리는 고용 작가들의 재능을 착취해 작가의 명성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파리의 유명 인사다. 윌리는 글재주가 있는 콜레트에게도 글쓰기를 권유하고, 콜레트는 자신을 투영한 10대 소녀 캐릭터 클로딘을 창조해 첫소설 <학교에서의 클로딘>을 완성한다. 하지만 윌리는 여성 작가의 글은 아무도 읽지 않는다며 소설을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한다. 책은 순식간에 독자들을 사로잡고 성공의 대가는 모두 윌리에게 돌아간다. 아내로서의 삶과 유령작가로서의 삶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 콜레트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로 한다. <콜레트>에는 콜레트뿐만
<콜레트> 프랑스에서 예술적 성취를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첫 여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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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길티>는 하나의 무대, 한명의 주인공, 한건의 납치극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팽팽한 심리 스릴러다. 모종의 사건으로 경질된 채 긴급구조전화센터에서 근무 중인 경찰 아스게르(야고브 세데르그렌)에게 어느 날 밤 이벤이라는 여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이벤이 남편 미카엘에게 납치된 상황임을 간파하고, 방치된 그들의 딸 마틸데와 죽은 아들 올리베르의 사정까지 알게 된 아스게르는 전화교환원의 본분을 잊고 미카엘을 잡기 위한 위험한 단독행동을 시작한다.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생략과 침묵을 활용해 관객을 몰입시키는 정교한 사운드 디자인이다. 이에 발맞춰 자기만의 방식대로 사건 현장 곳곳을 꾸며내는 관객의 상상력이 영화를 견인한다. <더 길티>로 데뷔한 덴마크의 신예 감독 구스타브 몰레르는 “관객과 공동 창작하는 영화”라고 말하기도 했다. 제한된 정보로 최대치의 상상을 더하는 즐거움은 문학읽기와 비슷하지만, <더 길티>는 결정적으로 관객이 마주하는 유일한 이
<더 길티> 하나의 무대, 한명의 주인공, 한건의 납치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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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살 선희(정다은)가 봉착한 난관은 자신을 드러낸 채 떳떳하게 살아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학교에선 친구들 무리에 끼지 못해 소외당하고, 집에 오면 무관심한 부모의 태도에 상처받는다. 선희는 그래서, ‘거짓말’을 택한다. 아이돌 기획사에 아는 오빠가 있고, 키 크고 잘생긴 대학생 남자친구가 있는 ‘멋진 아이’로 자신을 포장한다. 거짓으로 쌓아올린 주변의 ‘환대’는 그러나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선희의 거짓말로 친구가 자살을 하게 되고, 선희는 끔찍한 현실을 등지고 도피한다. 연고 없는 선희를 돌봐준 보육원, 그리고 새롭게 시작한 기숙학교 모두에서 선희는 ‘슬기’라는 이름으로 또다시 ‘괜찮은 아이’로 자신을 연기한다.
“이름이 뭐니?” 선희는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자주 받는데, 그때마다 새로운 이름을 내놓는다. 가짜 이름을 발설하는 순간, 그에 걸맞은 또 다른 거짓말이 증식되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집요하게 선희의 표정에 밀착한 카메라의 시선이 인상적이다. 주눅 들어 굳어 있던 소
<선희와 슬기> 사람들의 관심을 갈망하는 사춘기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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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입학식. 위안샹친(임윤)은 서둘러 강당으로 향하다 장즈수(왕대륙)와 부딪친다. 의도치 않은 키스 사고는 앞으로 펼쳐질 이들의 운명에 대한 예고편이다. A반부터 F반까지 성적순으로 서열화되어 있는 학급에서, 장즈수는 최고 엘리트만 모인 A반의 에이스다. 아이큐 200, 완벽한 외모, 아버지의 기업을 물려받게 될 재벌 2세의 경제력까지 모든 걸 갖췄다. 반면 위안샹친은 포기를 모르는 긍정의 마인드를 빼곤 내세울 게 별로 없는 F반의 평범한 학생이다. 용감하게 장즈수에게 고백했다 공개적으로 망신만 당한 위안샹친의 시련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살던 집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홈리스 신세가 된 위안샹친은 성공한 아버지 친구의 집에서 잠시 살게 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집 아들이 장즈수다. 위안샹친의 적극적인 애정공세와 장즈수의 적극적인 방어태세 속에서 차츰 로맨스가 피어난다.
1990년대에 출간된 다다 가오루의 동명의 일본 만화가 원작이다. 이미 일본과 중국에서 여러 차례 영화와
<장난스런 키스>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용감한 짝사랑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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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에 고립된 남자가 있다. 비행기 추락 사고의 유일한 생존자 오버가드(매즈 미켈슨)는 꾸준히 신호를 보내며 구조대를 기다린다. 낚시로 잡은 생선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혹한의 추위에서 살아남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던 남자는 점차 한계에 이르렀음을 느낀다. 다행히 그를 발견한 헬기가 구조하러 오지만 기쁨도 잠시, 때마침 불어닥친 눈 폭풍에 헬기는 추락하고 헬기 조종사마저 사망하고 만다. 살아남은 구조대원을 구출했지만 이미 심한 부상을 당해 움직이기조차 힘든 상태다. 이대로 구조대원을 방치했다간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 오버가드는 구조가 가능한 지역으로 이동할 계획을 세운다. 이윽고 황량한 설원으로의 무모한 여정이 시작된다.
조 페나 감독의 장편 데뷔작 <아틱>은 가혹한 환경에서의 분투를 그린 재난영화다. 카메라는 오버가드의 사정 따윈 설명하지 않고 오직 은백색 죽음의 대지 위에 홀로 버티고 선 인간의 발자국을 따라간다. 더없이 아름다운 풍광과 대조되는 남자의
<아틱> 황량한 설원으로의 무모한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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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로운 살얼음판 같은 일상 위에 겨우 버티고 선 모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매일 밤 술과 파티에 절어 흥청망청 지내던 마를렌(마리옹 코티야르)은 어린 딸 엘리(앨라인 악소이 에테익스)가 종종 족쇄처럼 느껴지지만 누군가 자신과 딸의 관계를 위협할 때는 맹렬하게 저항한다. 하지만 마를렌은 술을 끊지 못해 어떠한 개선의 여지도 보이지 않는 상황.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친구가 찾아와 파티 소식을 알리자 마를렌은 또다시 파티장으로 향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딸 엘리를 클럽에 데리고 들어가는 실수를 저지른다. 그곳에서 남자들과 춤을 추고 술을 마시던 마를렌은 어느 순간 엘리가 자신을 따라서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섬뜩해한다. 짙은 화장과 현란한 액세서리 속에 진심을 감춰버린 듯 흐느적대는 마리옹 코티야르의 불안한 모습이 영화 내내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언제 어린 딸 엘리가 끔찍한 사고를 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함 속에서 엘리는 엄마를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연기 경험도 얼마
<엔젤페이스> 살얼음판 같은 일상 위에 겨우 버티고 선 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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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도 나이도 출신 지역도 제각각이지만 나라가 독립해야 한다는 열망만큼은 강했다. 유관순, 어윤희, 권애라, 김향화, 임명애, 심영식 등 서대문 형무소 8호 감방에 갇힌 이들은 1919년 3·1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체포돼 온갖 고초를 당한 여성 독립운동가들이다. 당시 이화학당을 다니던 18살 학생 유관순(이새봄)은 고향인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독립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됐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기생이 된 김향화(박자희)는 동료들과 일제 경찰의 눈을 속이고 만세 운동을 주도했다. 시각장애인 전도사인 심영식과 구세군 사령의 아내인 임명애는 각각 개성과 파주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불렀다.
<1919 유관순>은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학생, 간호사, 임신부, 기생, 시각 장애인 등 당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재연과 인터뷰 형식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독립운동가들을 소개하고, 3·1운동의 의미를 살펴보는 의도와 내용은 좋지만, 완성도를
<1919 유관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