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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소니는 <씨네21>이 미리 알아본 신예다. 2017년에는 <여자들>의 네 배우 대담 기사로, 2018년에는 ‘라이징 스타’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후 드라마 <남자친구>에서 진혁(박보검)을 짝사랑하는 오랜 친구 조혜인으로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고, 상업영화 데뷔작 <악질경찰>로 돌아왔을 때 새삼 반가운 마음마저 들었다. <악질경찰>에서 친구를 잃은 후 방황하는 고등학생 미나는 극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핵심 캐릭터다. <여자들> <죄 많은 소녀> 등 독립영화에서 신비한 마스크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던 전소니는 여전히 고유한 매력을 잃지 않으면서 더 넓은 바다로 헤엄쳐 나갈 발차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정범 감독이 학교에서 가르치는 학생의 단편영화 속 모습을 보고 먼저 미나 역을 제안했다고. 하지만 처음에는 한번 거절했다고 들었다.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다. 나 역시 세월호 사건을 지켜본 사람으
<악질경찰> 전소니 - 활기차게 앞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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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는 잠시 잊자. 봄바람과 함께 찾아온 한편의 청춘영화가 있다. <나의 소녀시대>(2015)로 전국 40만 관객을 동원하며 대만 청춘 멜로영화의 저력을 보여줬던 배우 왕대륙과 프랭키 첸 감독이 다시 뭉쳐 만든 영화 <장난스런 키스>다. 우선 제목이 눈에 익은 이유가 있다. 일본과 대만, 한국에서 여러 차례 드라마로 만들어진 동명 만화가 원작이다. 대만에서만 이미 두 차례 드라마화된 작품을 다시 영화화한 이유는 아마도 닳고 닳은 이야기 속에 숨겨진 특별한 재미 때문이리라. 하늘 아래 더이상 새로울 것 없다는 학창 시절 첫사랑 사수 스토리는 보고 또 봐도 왜 지루하지 않은 걸까. 대만 청춘 스타로 떠오른 왕대륙, 그리고 주성치 감독이 <미인어>(2016)로 발굴한 신예 임윤의 통통 튀는 매력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줄지 모른다. 그때 그 시절의 연애가 그러했듯, 뻔하지만 그래서 더욱 재미있는 러브 스토리와 두 배우의 무한 매력을 미리 짚어봤다.
<장난스런 키스>가 보여주는 첫사랑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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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감독조합(이하 DGK)이 먼저 움직였다. 2016년 영화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이후 업계 전반에서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이 공유되면서, DGK는 2017년 초 성폭력방지위원회를 신설해 성폭력 문제 방지 및 해결 방안 마련에 나섰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지난 2월 27일 DGK 총회 때 발표된 중·지·신(중지(Stop)·지지(Support)·신고(Report)) 행동 강령이다. “모든 영화인은 성희롱, 성추행을 포함한 성폭력 혹은 원치 않은 성적 관심이 없는 환경에서 일할 권리가 있다”는 내용을 공식 문서화한 것으로, ‘성적 괴롭힘’의 범주를 보다 넓게 규정하고 감독조합은 영화계의 다른 주체들과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총회 당시 조합원들 앞에서 행동 강령을 발표한 성폭력방지위원회의 박현진, 이윤정 감독 그리고 DGK 부대표 모지은 감독을 만났다. 중·지·신 행동 강령이 의미하는 바를 꼼꼼하게 짚은 이 대담은 영화계에 남은 중요한
박현진, 이윤정, 모지은 감독이 ‘한국영화감독조합 중·지·신’ 행동 강령에 대해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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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브 몰레르 감독의 <더 길티>는 제34회 선댄스영화제를 시작으로 뮌헨국제영화제, 로테르담국제영화제 등 전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잇달아 초청받고 수상하며 화제를 모은 영화다. 긴급구조전화센터에서 일하는 남자에게 걸려온 한통의 구조 요청 전화만으로 88분을 지탱하는 독특한 소재의 영화 <더 길티>는 기초적인 요소로 영화가 어디까지 보여줄 수 있는지 실험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미 할리우드에서 제이크 질렌홀 주연 및 제작으로 리메이크를 결정했을 만큼 흥미로운 영화. 하지만 이건 그간 전혀 보지 못한 파격적인 문법이 아니다. 아니, 차라리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오래된 미래에 가깝다. <더 길티>는 어떻게 흥미로운 영화가 되었나. 소리만으로도 관객의 호기심을 붙들어두는 기술, 이 모든 걸 조화롭게 관리하는 연출의 힘, 구스타브 몰레르 감독이 상영시간 내내 긴장을 유지하는 비결에 대해 찬찬히 풀어보았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노이즈가 화면을 메운
이미지를 절제하고 사운드를 극대화한 <더 길티>가 긴장감을 유지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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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가던 식당이 있었다. 그곳의 음식 맛은 집밥처럼 담백했지만 메뉴는 개성이 분명했다. 손님은 많지도 적지도 않았다. 조용하고 편안한 느낌에 즐겨 찾던 곳이었다.
여느 때처럼 그곳을 방문했는데 입구에 “10일까지 영업합니다. 그동안 애용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바로 그날이 10일이었다. 하필이면 식당의 마지막 영업날 그곳을 찾았던 것이다.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애틋해졌다. 식당 내부를 구석구석 살펴보니 그날 따라 더 고색이 짙어 보였다. 그곳에서 먹는 마지막 음식이라 생각하고 가장 좋아하는 메뉴를 시켰다. 매니저는 마지막 날이라 재료가 떨어져서 평소보다 양이 적게 나올 것이라고 했다.
과연 평소보다 양이 너무나 적었다. 마지막 남은 한줌의 재료로 만든 음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 애잔해졌다. 손님이 없던 탓에 ‘그렇다면 내가 마지막 손님이라도 되어야겠다’ 생각하고 문 닫을 때까지 버티리라 결심했다. 실망스럽게도(?) 그 생각을 하자마자
단골, 시대착오적으로 서글픈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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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의 진짜 이름은 막금이다. 딸 셋에 또 딸, 금이들의 마지막이었다. 곧 죽으리라, 아랫목에 밀쳐둔 핏덩이는 언니들이 몰래 흘려준 밥물을 먹고 살아났다. 영화 <사바하>를 봤을 때, 생과 멸, 선과 악 등 여러 종교적 상징을 둘러싼 한국적 오컬트에 대한 매혹에 앞서, 단번에 이 일화가 떠올랐다. 이름 없는, 그러나 죽지 않은 여아 ‘그것’은 이것과 저것의 이분법에서 배제된 존재이다. 그렇기에 그는 이것은 저것이 되고 저것은 이것이 되는 회로를 상기시킨다. 등록되지 못한 ‘그것’은 이미 죽은, 인식되지 않는 여아들을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강조컨대 여아 살해는 무던히 행해지는 가부장제 문화의 일부이다. 그러나 영화 <사바하>에서 대비되는 1899년과 1999년은 특별한 뜻을 함축한다. 1899년은 불사(不死)를 염원하는 남성이 태어난 해이다. 이때 식민의 전야 조선에 근대화의 상징으로 전차와 철도가 놓였다. 그리고 새 밀레니엄을 앞둔 1999년, ‘고
<사바하>, 식민지 남성성과 여아 살해로 읽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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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매기 질렌홀)는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엄마이자 아내이자 유치원 교사다. 일터인 유치원과 집을 오가며 안정적이면서도 단조로운 생활을 이어가는 그녀에게 시 수업은 재미와 기쁨을 선사한다. 어느 날 유치원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던 중 리사는 다섯살짜리 유치원생 지미(파커 세바크)가 아름다운 문장을 읊조리는 걸 듣는다. 그것은 지미가 즉흥적으로 창작한 시다. “애나는 아름답다 내게는 충분히 아름답다 태양이 그녀의 노란색 집을 두드린다 마치 신이 보낸 신호처럼.” 리사는 쉬운 단어와 간결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시에 매료돼 지미의 천부적인 재능을 끌어내려 한다. 그러나 지미의 재능에 대한 리사의 애착은 이내 집착으로 변한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재능에 대한 질투는 문학 천재를 발견한 눈 밝은 스승이 되고자 하는 리사의 욕망과 뒤얽힌다.
<나의 작은 시인에게>는 중산층 중년 여성의 권태로운 일상과 예술적 성취에 대한 욕망을 내밀히 들여다보는 영화다. 지미가 창작한 아
<나의 작은 시인에게> 천재 소년을 향한 스승의 애정과 집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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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소시스트>(1975), <오멘>(1976)에 이어 빙의된 자식 때문에 고생하는 부모가 나온다. 이번엔 그 주체가 악령이 아니라 사이코패스 영혼이다. 여성들의 손을 모으는 것이 취미였던 연쇄살인마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죽는 순간에 새라(테일러 실링)는 첫아이 마일스(잭슨 로버트 스콧)를 낳는다. 유아기부터 뛰어난 지능을 보인 마일스는 8살 무렵부터 점점 폭력적인 이상행동을 저지르는데, 새라는 영혼의 이동을 연구하는 의사를 통해 마일스의 몸에 연쇄살인마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프로디지>는 호러 문법의 강약을 노련하게 조절하는 테크니션의 손길로 완성됐다. 어떻게 해야 관객이 깜짝 놀라며 비명을 지르거나 조용히 신경을 곤두세울지 잘 아는 영화임은 분명하다. 빙의, 최면, 방언 등과 같은 익숙한 오컬트 요소들이 초·중반부까지 빈틈없이 이어진다. <그것>(2017)에서 종이배와 함께 사라진 노란 우비 소년으로 등장했던
<프로디지> 마일스의 몸에 연쇄살인마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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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호구>(2011), <시발, 놈: 인류의 시작>(2016) 두편으로 가내수공업 저예산 C급 코미디의 새 장을 열어젖혔던 백승기 감독이 돌아왔다. 영준(손이용)은 흠모하는 지나(박지나)에게 잘 보일 궁리를 하다가 엉겁결에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는 지나를 주연배우로 캐스팅하고 시나리오를 궁리한다는 핑계로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펼쳐놓고 커피도 마시며 호사를 누릴 꿈에 부풀어 있다. 하지만 영준은 중고 거래 사기를 당해 그 꿈이 좌절될 위기에 처하고, 결국 보이스피싱 사기의 원흉인 중국의 사기꾼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영화는 가진 것 얼마 없던 영준의 전 재산과도 같았던 노트북을 앗아간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표출하는 복수극을 표방한다.
주인공 못지않게 형편이 여의치 못한 이 영화의 제작진은 서울과 중국을 마음껏 오가지 못하고 인천 올 로케이션으로 대륙의 스케일을 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백승기 감독은 자전적 사기 피해 사연을 담아 진정성
<오늘도 평화로운> 전 재산과도 같았던 노트북을 앗아간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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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완벽한 세계>는 벚꽃철에 딱 어울리는 결이 고운 사랑 이야기다. 인테리어 회사에서 일하는 24살 카와나(스기사키 하나)는 새로 협업하게 된 건축 사무소 직원들과 회식하는 자리에서 고등학교 선배 아유카와(이와타 다카노리)를 만난다. 고교 시절 미술부였던 카와나는 농구부의 에이스 아유카와를 짝사랑한 적이 있다. 첫사랑과의 조우가 남긴 황홀함도 잠시, 카와나는 아유카와가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혼란스러운 감정에 빠진다.
일본에서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던 만화 <퍼펙트 월드>가 원작이다. 필터링된 화면과 순수한 감정이 떠오르는 일본 청춘 멜로의 익숙한 전개 속, 배우 스기사키 하나의 눈망울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행복 목욕탕>(2016), <메리와 마녀의 꽃>(2017) 등의 필모그래피 중 단연 대표작으로 꼽을 만한 연기다. 착하고 희생적인 순정 만화 속 여성의 전형처럼 그리는 부분도 있지만, 이같은 러
<우리들의 완벽한 세계> 다시 만난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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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연출작이 흥행에 실패한 감독(여균동)은 카페에서 베스트셀러 <예수를 만나다>를 읽는다. 예수가 세상에 나타나 누군가를 만나 함께 밥을 먹는 이야기다. 제작자에게 이 책을 영화로 만들어달라는 제안을 받은 터다. 그런데 한 청년(조복래)이 갑자기 감독 앞에 앉아 자신을 예수이자 배우라고 소개하며 감독의 영화에 예수 역할로 출연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다. 감독은 황당무계한 말을 늘어놓는 청년이 어이없지만, 호기심에 함께 길을 나서기로 한다.
<예수보다 낯선>은 <세상 밖으로>(1994), <맨?>(1995), <죽이는 이야기>(1997), <1724 기방난동사건>(2008)을 연출하고, <너에게 나를 보낸다>(1994), <박봉곤 가출사건>(1996) 등 여러 영화에서 배우로도 활약한 여균동 감독이 약 10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전직 조직 폭력배, 주차요원, 영화제작자, 아
<예수보다 낯선> 자신을 예수이자 배우라고 소개하는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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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다섯편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소설 <막다른 골목의 추억> 중 동명의 마지막 에피소드를 기반으로 한다. 한국 여성 유미(최수영)에겐 오래 만난 연인 태규가 있다. 일본에서 회사를 다니는 태규가 연락이 닿지 않자, 유미는 그를 찾아 나고야에 온다. 하지만 유미의 눈앞에 펼쳐진 건 태규와 그의 새로운 연인의 행복한 모습이다. 상심한 유미는 나고야시를 헤매다 막다른 골목에 위치한 카페 겸 게스트하우스 엔드포인트에 다다른다. 무심한 듯 따뜻하게 투숙객들의 기분을 살피는 청년 니시야마(다나카 슌스케)와 동네 사람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엔드포인트의 투숙객과 함께하며 유미는 조금씩 상처를 치유해간다.
“푹 쉬고 가. 여기가 막다른 골목에 있지만 다들 여기서부터 시작하기도 하거든.” 엔드포인트를 설명하는 니시야마의 대사가 영화의 핵심을 말하고 있다. <막다른 골목의 추억>은 최근 극장가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
<막다른 골목의 추억> 힘겨운 날, 가만히 열어보고 싶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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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박정학)의 현실은 여러모로 골치 아프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서 여기저기 돈을 빌리러 다니고, 아들 도진(맹세창)이 타로 가게에서 일하는 애 엄마 윤아(양조아)와 사귀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였던 아버지 광덕(전영운)이 위독하다는 소식에 고향으로 내려간 문성은 그의 병수발을 들고 있는 은혜(이태경)를 마주한다. 문성은 은혜가 아버지의 무죄판결로 나올 배상금을 갖기 위해 곁에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한다. 결국 숨을 거둔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른 후 그는 아들과 관계를 회복해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국가 폭력의 피해는 대를 이어 자식들에게까지 전이된다. 세월호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이유 역시 명백한 국가 폭력의 피해가 대를 이어 전해진다는 공통점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씻을 수 없는 상흔을 소재로 했지만, <파도치는 땅>은 감독의 전작 <폭력의 씨앗>(2017)보다 훨씬 희망적으로 끝맺음되는 작품이다. 문성이 누
<파도치는 땅> 한국 사회의 씻을 수 없는 상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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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아(강진아)는 어느 날 문득 친구에게 “가까운 사람들 만나는 게 힘들다”고 말한다. “자신은 안 괜찮은데 자꾸 괜찮으냐고 물어보니까 괜찮다고 말해야” 하는 상황이 버겁기 때문이다. 진아가 처한 상황은 불편한 걸 넘어 때로는 억울하고 서럽기까지 하다. 오랫동안 만난 애인이 어떤 사고로 심각한 병을 얻어 병실에 누워 있는 상황. 그 때문에 시를 쓰고 가르치는 일을 하는 진아는 시를 한 글자도 쓸 수 없고, 누구 앞에서도 전처럼 이야기를 편하게 주고받을 수 없다. 진아는 교편을 잡고 시를 강의하는 자신도, 친구들과 어울려 술잔을 기울이는 자신도 그저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병상에 누워 있는 애인을 향한 죄의식이 점점 자아를 짓누르는 가운데, 영화는 무너져 내린 진아의 일상을 임상실험 기록지처럼 세세하게 전달한다. 일상의 사소한 부분에 대한 묘사는 감정의 폭풍을 몰고 오고 관객으로 하여금 진아가 겪는 일상을 어떻게든 벗어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을 갖게 만든다. <
<한강에게> “괜찮냐고 묻지 말아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