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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회의 분위기를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되는 존재들이 있는데, 특히 배우 김서형은 흥미로운 지표다. 그와 관련한 기사에 심심찮게 보이는 “할리우드에서 태어났으면 더 활약했을 것”이라는 네티즌의 반응은 그럴싸한 추정이다. 과거 한국 미디어가 고분고분하고 소극적인 여성상에 호감을 보일수록, 주도권을 쥐는 쪽이 어울리는 그는 드라마 조연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드라마 <아내의 유혹>을 기점으로 쉽게 굽히지 않는 그의 단단한 이미지가 ‘카리스마 있는 악인’ 역할에 자주 소환되기도 했었다. 최근 KBS2 <연예가중계>와 가진 인터뷰에서 “<아내의 유혹> 이후 나도 이제 주연을 하고 광고를 찍을까 생각했지만 3개월 동안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 <SKY 캐슬>이 이렇게 분위기를 타고 있지만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에 그냥 생각을 안 하고 싶다”고 고백한 것 역시 강한 여성을 향한 세간의 편견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작품 안팎에서 할 말은 정확히 하고 자
<SKY 캐슬> 배우 김서형, "난 배우로서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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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위신 감독과 배우 견자단이 3편까지 끌고 온 <엽문> 시리즈가 외전으로 다시 태어났다. 연출은 <매트릭스>(1999), <와호장룡>(2000), <킬 빌>(2003)로 할리우드까지 접수한 홍콩의 전설적인 무술감독이자 영화감독 원화평이 맡았다. <엽문3: 최후의 대결>(2015)에 무술감독으로 참여했던 원화평은 <엽문 외전>에서도 액션 거장의 여유를 뽐낸다. <엽문 외전>은 3편에서 영춘권의 전통 계승자를 자처하며 엽문(견자단)에게 도전했던 장천지(장진)를 새로운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엽문에게 패한 뒤 무술계를 떠나 아들과 평범하게 살려고 했던 장천지가 홍콩의 갱단과 얽히면서 다시 무술인의 도리를 다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엽문 외전>에서 견자단의 자리를 대신하는 건 <라이즈 오브 더 레전드: 황비홍>(2014), <살파랑2: 운명의 시간>(2015), <더 브링크>
<엽문 외전> 원화평 감독, 배우 장진 - 홍콩 액션영화라는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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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꿈과 빈곤한 현실은 청춘을 대변하는 불변의 키워드지만, 최창환 감독이 전태일재단의 지원을 받아 노동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 <내가 사는 세상>은 최근 몇년간 더욱 심화된 한국 청년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보다 집요하게 비춘다. DJ가 되기 위해 낮에는 퀵서비스 배달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클럽에서 공연을 하는 민규(곽민규)가 원하는 건 정당하게 근로계약서 쓰고 일하고, 오랜 연인 시은(김시은)과 안정된 삶을 사는 평범한 권리지만, 그의 바람은 멀고 요원하게만 보인다. 건국대 영화예술학과를 졸업하고 여러 편의 단편영화를 거친 배우 곽민규는 그동안 방황하고 흔들리는 청춘의 표상을 유독 자주 연기해왔다. <내가 사는 세상> 이후 “내 주변에 있는 노동하는 사람들의 존재가 더 자주 눈에 들어온다”는 그에게 첫 장편영화로 얻은 것에 대해 물었다.
-<내가 사는 세상>은 최창환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캐스팅 과정에서 어떻게 만났나.
=주연으로 참여한
<내가 사는 세상> 곽민규 - 청년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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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허비 행콕: 무한한 가능성>(감독 더그 바이로, 존 파인, 2006)은 기본적으로 음악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완성되는지에 관한 기록영화다. 이 영화의 주인공 허비 행콕은 2005년 자신의 앨범 《Possibilities》를 만들면서 그 과정을 한편의 영화에 담았다. 음악이라는 것이 혼자 골방에 앉아 피아노를 치거나 기타를 퉁기면서 이를 악보에 적고 스튜디오에 가서 간단히 녹음해서 완성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과정은 그다지 영화에 담을 만한 것이 못 될 것이다. 하지만 음악이라는 것은 그렇지 않다. 곡을 만든 작곡가가 연주 이전에 많은 부분을 구체적으로 만들어놓았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이를 연주하는 과정에서는 예상치 못한 수많은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음악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이 악보에 기록되어 있는 클래식 음악도 리허설을 지속적으로 해야 하고, 그 상황을 기록한 많은 리허설 녹음과 메이킹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진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심지어 대략의 멜로디 라인과
음악평론가 황덕호가 본 <허비 행콕: 무한한 가능성>… 왜 《Possibilities》 앨범 제작과정이어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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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는 18세기 영국의 앤 여왕을 중심으로 한 세 여성의 권력 다툼과 사랑 이야기다. <송곳니>(2009), <더 랍스터>(2015), <킬링 디어>(2017) 등을 통해 지독한 현실 풍자와 잔인한 우화를 보여준 란티모스 감독은 자신의 첫 시대극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에서 또 다른 비극의 서사를 써나간다. 세 여성 캐릭터가 보여주는 너무도 인간적인 비극을 생각해보았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과 배우 올리비아 콜먼, 레이첼 바이스, 에마 스톤, 니콜라스 홀트의 인터뷰에서 발췌한 말도 함께 실었다.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이하 <더 페이버릿>)는 10개 부문 후보에 올라 단 하나의 상만을 가져갔다. 여우주연상 부문의 올리비아 콜먼에게 주어진 트로피가 유일했다. <그린 북> <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속 세 여성이 보여주는 격렬한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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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세계를 어떻게 묘사할 수 있을까? 아무 죄 없는 아이들이 어른들이 만든 ‘악’으로 상처받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흔한 방법 중 하나다. 더 최악의 세계를 묘사하는 덜 흔한 방법이 있다. 아이들이 어른들이 만든 악에 물들고 심지어 거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 <가버나움>은 최악의 세계 중에서도 최악을 보여준다. 이 세계가 최악 중 최악인 이유는 아이들이 어른들의 악을 별생각 없이 흉내내서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아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머리를 굴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방법은 없다. 어른들처럼 마약을 팔고 인신매매를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영화의 주인공은 레바논에 사는 12살 자인(자인 알 라피아)이다. 자인의 부모는 11살짜리 딸을 성인 남자에게 팔아넘겼다. 어린 나이에 임신한 자인의 여동생은 끝내 병원에서 사망한다. 분노한 자인은 사내를 칼로 찌르고 범죄자로 전락한다. 법정에 선 자인은 자신을 세상에 태어나게 하고 끔찍한
그 누구도 고상함을 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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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세 여자의 역학 관계로 굴러간다는 점에서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가 기억에서 불러내는 영화는 <이브의 모든 것>(1950)과 <외침과 속삭임>(1972)을 꼽을 수 있다. 코스튬 드라마 가운데에는 역시 18세기가 배경인 스탠리 큐브릭의 <배리 린든>(1975)이 으뜸이다. 자연광과 촛불만 이용한 조명, 클래식 음악의 전면적 사용, 격식 차린 서슬 퍼런 대사와 건조한 유머가 50년을 뛰어넘어 두 영화를 잇는다. 또한 2부 구성의 <배리 린든>은 아일랜드 청년 레드먼드 배리(라이언 오닐)의 극적인 신분 상승을 1부로, 전락의 과정을 2부로 다루는데, 상승과 하강의 궤적이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에서 교차하는 애비게일(에마 스톤)과 사라(레이첼 바이스)의 운명에 견줄 만하다.
02/10
<조지 왕의 광기>(1994)까지 갈 것도 없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오! 나의 여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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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다뤄졌지만 두편의 영화를 잇는 하나의 이미지가 계속 머리에 남았다. <알리타: 배틀 엔젤>(이하 <알리타>)과 <드래곤 길들이기3>(이하 <드래곤3>)를 본 후 한동안 누군가의 눈을 이렇게 오랜 시간 바라본 적이 있었나 싶었다. 두 영화가 보여준 빼어난 기술적 성취나 그에 반해 상대적으로 아쉬운 서사는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되었으니 여기서 굳이 보태지 않겠다. 그보다 관심을 끈 것은 마치 일본 만화 캐릭터처럼 눈이 얼굴의 절반쯤 차지하고 있는 것 같은 얼굴들이 생각보다 덜 어색하게 다가왔다는 점이다. <알리타> 예고편을 봤을 때 걱정됐던 기이함과 어색함이 정작 영화에서는 그다지 거북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어색하지 않아서 이상했다. 알리타(로사 살라자르)를 제외하곤 모두 정상적인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 알리타 홀로 과장되어 있음에도 같은 화면 속에서 위화감 없이 섞인다는 것은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이다. 뒤늦
<알리타: 배틀 엔젤>과 <드래곤 길들이기3> 속 눈동자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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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애니메이션 <슈퍼미니>(2014)를 본 관객이라면 오랫동안 기다렸을 속편이다. 꼬마 무당벌레와 일개미들의 모험을 그린 <슈퍼미니>는 곤충의 세계를 실사 배경과 3D애니메이션 캐릭터로 표현한 환상적인 애니메이션이었다. 1편에 이어 토마스 자보, 헬레네 지로 감독이 공동연출한 <슈퍼미니2>에서도 경이로운 곤충의 세계가 펼쳐진다. 불개미떼에 쫓기는 일개미를 구하려던 꼬마 무당벌레가 카리브해의 과들루프섬으로 발송되는 택배 상자 안에 떨어진다. 지구를 반 바퀴 돌아 기후와 토질이 완전히 다른 낯선 곳에 도착한 꼬마 무당벌레는 열대우림에서 길을 잃고 대형 거미의 밥이 될 위기에 처한다.
불필요한 인간의 언어는 삭제되었다. 대사도 내레이션도 없지만 개미들의 더듬이 신호와 무당벌레들의 대화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한편의 아름다운 무성영화를 보는 듯한 감흥은 곤충의 시선과 언어를 존중한 연출의 결과다. 종(種)을 초월한 곤충들의 우정과 사랑에선 깊은
<슈퍼미니2> 산 넘고 물 건너, 이번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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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에서 날아온 두 남매의 우애를 다룬 이야기다. 사고뭉치 광고 마케터 오빠 첫(서니 수완메타논트)은 오랜 일본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동생 제인(우랏야 세뽀반)과 다시 한집에서 살아야 한다. 그런데 두 사람은 어릴 때도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고, 지금도 너무 다른 서로의 라이프 스타일에 괴롭기만 하다. 자유분방한 오빠의 라이프스타일을 견디기 어려운 제인은 대책 없이 어지럽히기만 하는 오빠의 뒷바라지가 지겨워진 상태. 이 두 사람이 결정적으로 서로의 일상을 간섭하는 사건이 생기는데, 바로 제인이 고향으로 돌아와 일을 시작하면서 알게 된 남자 모치(닉쿤)가 하필 오빠 회사의 중요한 클라이언트였던 것. 첫은 그러한 사정도 모른 채 눈치 없이 모치를 눈엣가시로 여기게 되면서 두 남매의 갈등이 불거진다. <브라더 오브 더 이어>는 타이 젊은이들의 삶을 선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두 남매의 갈등을 위해 모든 프로덕션 디자인이 꽉 짜여 있기 때문에 타이 생활상이 자
<브라더 오브 더 이어> 여동생의 연애를 방해하는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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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걸출한 재즈 피아니스트, 허비 행콕의 삶과 음악 세계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는 그가 2005년 발표한 앨범 《Possibilities》의 제작 과정을 좇으며 재즈와 문화, 나아가 사회를 바라보는 거장 뮤지션의 고찰을 담아낸다. 평소 많은 뮤지션이 특정 스타일에 갇혀 있는 것이 안타까웠던 허비 행콕은 개성과 스타일이 각기 다른 음악을 추구하는 뮤지션들과 협업해 앨범 《Possibilities》를 만들려 한다. 영화는 그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존 메이어, 라울 미동, 스팅, 데이미언 라이스 등의 뮤지션을 찾아가 함께 연주하며 그 과정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고 이루어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전에 많은 것을 합의하지 않고 순간적으로 발휘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뮤지션들의 모습은 허비 행콕이 생각하는 ‘재즈’의 정의를 몸소 실천하는 이들이다. “재즈는 순간이고 우리는 순간을 연주했다”는 허비 행콕의 소회는 과거 마일스 데이비스 밴드의 재즈 피아니스트였던 그
<허비 행콕: 무한한 가능성> 허비 행콕의 삶과 음악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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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은 청년 세대의 빈곤 중에서도 특히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예술계 종사자들의 현실에 관심을 두는 영화다. DJ를 꿈꾸는 민규(곽민규)는 낮에는 퀵서비스 배달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친한 형인 지홍(박지홍)의 클럽에서 공연을 한다. 낮이든 밤이든 근로계약서 한장을 쓰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월급이 덜 들어온 게 분명한데도 기껏 사장을 찾아간 자리에서 “덜 들어온 것 같습니다”라고 불확실한 의견인 양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 그의 일상. 오래 만난 연인 시은(김시은) 역시 미술학원 입시반 강사로 일하면서 과중한 업무와 부당한 임금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다. <소공녀>(2017), <이월>(2017) 그리고 <내가 사는 세상> 등 생활고에 시달리는 청년의 초상을 주요하게 다루는 한국 독립영화들이 빈번하게 눈에 띈다. 새롭진 않아도 절대 지겹다고는 말할 수 없는 슬픔이, 그래서 어쩌면 더욱 심화된 슬픔이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내가 사는 세상> 예술계 종사자들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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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꾸어진 정원에서 집 안으로 들어온 한 마리 작은 양. 덜덜 떨던 양은 거실 안, 에어컨 바람의 한기를 견디다 못해 그만 죽고 만다. 양은 도대체 어디로 들어온 걸까? 파올로 소렌티노는 소리도 못 내고 픽 하고 고꾸라진 양의 시선 끝에 한 인물을 조명한다. 언론 장악, 마피아와 결탁, 탈세, 여성 편력 등 셀 수 없이 많은 악행으로 이탈리아 부정부패의 아이콘으로 자리한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야기다. 파올로 소렌티노는 실존 인물을 소재로 삼아 최소한의 가공으로, 이번에도 가장 영화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비판이 아닌 풍자와 우화의 톤으로 완성한 블랙코미디다. <그때 그들>은 전반부에 실비오 베를루스코니(토니 세르빌로)를 등장시키지 않는다. 우리가 실비오의 존재를 짐작하는 건, 지방에서 권력자들에게 여성을 ‘상납’하는 남자 세르지오 모라(리카르도 스카마르치오)에 의해서다. 성 상납으로 ‘학교 급식 계약건은 내가 힘써주지’라는 못된 정치가의 확답을 받아내는 부패한 나
<그때 그들> 이탈리아 부정부패의 아이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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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부터 2018년까지 개봉한 한국영화 1992편 중 최다 관객을 동원한 코미디영화는 순서대로 이일형 감독의 <검사외전>(2015, 970만명)과 황동혁 감독의 <수상한 그녀>(2013, 865만명)다. 우선 <수상한 그녀>를 중심으로 정통 코미디영화를 나열하려면 시간을 조금 거슬러 한국 코미디영화 흥행사를 새로 쓴 이환경 감독의 <7번방의 선물>(2012, 1291만명)부터 언급해야 한다. 이 이례적인 흥행을 시작으로 2년 주기(개봉 연도 기준)의 바통 터치를 시작한 2010년대 코미디영화는 <수상한 그녀>, <럭키>(2015, 696만명), <완벽한 타인>(2018, 529만명)으로 이어진다. 지난 20년간 한해에 제작되는 코미디영화의 편수와 다양성은 날로 침체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히트작들의 간헐적인 등장이 코미디영화의 생명력을 다시금 증명했다는 사실 역시 부정할 수 없다. 요양원행을 앞둔 70대 할
[한국 코미디영화 총정리⑧] 2014~18년 오락영화의 요소가 된 코미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