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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팅방의 이모티콘은 우리의 감정을 실어 나르는 언어의 반열에 올랐다. 2G폰 시절에 탄생한 ‘ㅇㅇ’이나 ‘ㅋㅋㅋ’가 사전에 등재될 날이 올지는 모르겠으나, 사전의 그 어떤 단어 이상으로 많이 쓰인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다음에는 그 자리를 각 기업의 메신저 플랫폼 이모티콘이 위협하고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더 길게 말해 무엇하랴, 카카오톡 캐릭터 라이언이 없었다면 우리는 채팅방을 떠도는 날카로운 말들 때문에 더 많이 상처받고 더 많이 싸웠으리라. 라이언은 누군가와의 대화 중에 나 대신 울어주고 사랑해주고 가끔 출근해서 일도 해주고 과음하거나 심지어 멍 때리는 것까지도 절실하게 또 적확하게 해주는 터라, 그가 실은 해당 기업 총수를 모델로 삼았다거나 실은 탈모 캐릭터라거나 하는 온갖 구설에 오르내려도 그 신뢰가 쉬이 무너지지 않는다. 책 소개가 아니라 라이언에 대한 상찬을 먼저 늘어놓는 이유는 이 말에 공감한다면 이 책을 붙들자마자 후루룩 한눈에 다 읽을 때까지 손에서
씨네21 추천도서 <라이언, 내 곁에 있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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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도 글이 될 수 있을까’ 에세이를 써보려 하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고민이다. 이를테면 마트 앞에서 호떡을 파는 아저씨에게 “붕어빵은 안 파세요?”라고 물었을 때 아저씨는 “에휴, 반죽하면 어깨 나가요”라고 답하고는 “요즘은 붕어빵도 다 프랜차이즈라 떼어주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 답한다. 누구나의 하루에 일어날 수 있는 사소한 대화이지만 저자 은유는 타인의 노동을 상상하고, 글로 옮긴다. 그러니까 일상의 관찰자가 되어 거기에 상상력을 더하면 무엇이든 글이 될 수 있다. 주의 깊게 듣고, 사소하게 묻고, 집중해서 듣고, 상대를 상상하지 않으면 우리는 ‘당사자’가 되어볼 수 없다. 그리고 당사자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섣불리 남에 대해 판단하고 평가하고 말을 덧붙여서는 안 된다. 그런 사려 깊은 고민과 상상력들이 <다가오는 말들>에는 담겨 있다. 딸이자, 엄마이자, 여성으로서 겪었던 일들을 강연에서 말하다 한 남성에게 “너무 남자를 미워하지 마세요”라는 비난을 들었을 때
씨네21 추천도서 <다가오는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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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살, 유명 푸드기업의 직원 아케미는 한계에 다다랐다. 마지막 휴일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일에 치여 살아가고 있는 그는, 몸과 마음을 다친 채 서서히 무너져내리고 있다. 지하철 선로에 뛰어들어서라도 출근을 멈추고 싶다고 생각한 어느 날, 누군가 아케미를 부른다. 무표정하고 키가 큰, 단발머리의 주스가게 여자. 그는 아케미에게 스무디를 건네며 마셔보라고 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아침 출근길에 여자가 만든 스무디를 마시며 아케미의 일상엔 작지만 분명한 변화가 생긴다.
<매일 아침 지하철에서 모르는 여자가 말을 건다>는 일본 작가 유즈키 아사코의 대표작 ’앗코짱 시리즈’의 속편이다. 퉁명스럽고 황당무계하며 제멋대로지만 특유의 오지랖과 상상력으로 위기에 처한 여자들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앗코씨는, 살면서 한번쯤은 만나 조언을 듣고 싶은 매력적인 여성으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지난해 국내 출간된 ‘앗코짱 시리즈’의 전편 <나는 매일
씨네21 추천도서 <매일 아침 지하철에서 모르는 여자가 말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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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 물속에 갇혀 있는 것만 같았다. 왜 이렇게 시간이 안 갈까.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은 분명 오늘 같을 테고. 시간은 너무 안 가는데,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10대 때에는 그랬다. 미숙의 청소년기도 그렇다. 시인인 아빠가 신경질 내며 던진 책 모서리에 맞아, 미숙의 눈 밑에는 상처가 남았다. 책 제목은 <무소유>였다. 미숙은 가진 게 없었다. 가난은 주머니 속 송곳처럼 자꾸 튀어나왔다. 아빠는 시인이었지만 시집 한권 낸 후 저작 활동을 멈췄고, 책상에 앉아서 하는 일이라고는 딸들에게 가시 돋친 말을 내뱉는 것뿐이다. 가계는 엄마가 각종 부업을 해서 이어나간다. 엄마와 아빠는 자주 부부 싸움을 했고, 그때마다 미숙과 언니 정숙은 집 밖으로 피신했다. 어둔 밤이면 불을 끄고 누워 언니의 등을 보고 미숙은 중얼거렸다. “언니, 친구들이 나를 ‘야, 미숙아’라고 불러.” “그게 뭐, 너 이름 미숙이잖아.” “아니, 미숙이가 아니라 미숙아라고 부른다고.
씨네21 추천도서 <올해의 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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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재미있는 일을 자석처럼 끌어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만화 <반경 3미터의 카오스>를 쓴 가마타미와 작가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다. 할인매대의 물건을 별 생각 없이 잠깐 구경하고 있는데, 모르는 사람이 “어머 싸기도 하지! 이거 저번에 봤을 때는 정가였어요. 대박!”이라며 호들갑을 떨더니 그대로 가버린다. 자기는 안 사고? 재미있는 사람과 만난 일을 잊기 아쉬워 매일 일기를 썼고, 그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코믹 에세이로 그렸다. 읽다 보면 나도 본 적 있는 유형의 사람들이 있다. 가게 직원인데 아무리 봐도 내가 산 물건이 안 들어갈 크기의 봉투를 꺼내 꾸역꾸역 넣으려다 실패하고 내 눈치를 흘끗 본다든지 맥락 없이 친근한 척하면서 음담패설을 속닥이는 모르는 중년 남성이라든지. 쇼핑, 일상, 체육관, 여행 등 11장으로 이루어진 이야기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낯선 이에게 유난히 조심한다는 일본사람들 이야기가 맞나 싶을 정도로 때로 웃기고 때로 이상하고 때로 기가 막힌다.
씨네21 추천도서 <반경 3미터의 카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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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우리 일상에는 재미있거나 특별한 일들이 자주 생긴다. 물론 같은 사건도 어떤 이에게는 글의 소재가 되고 어떤 이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흘러가지만. <씨네21> 3월의 책장에는 무엇이든 기록하려 애쓴 사람들의 책들이 담겼다. <반경 3미터의 카오스>는 길에서, 옷가게에서, 지하철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웃긴 에피소드를 담은 책이다. 굳이 친구가 아니라도 우리는 낯선 사람들과 말을 섞고 그들로부터 어이없는 감상을 받기도 한다. 작가는 자신에게 생긴 어이없거나 우스운 사건들을 그대로 흘려보내지 않고 만화로 그려 블로그에 기록했다. <올해의 미숙>은 상처받기 쉬운 누구나의 청소년기를 떠올리게 하는 만화다. 주인공 미숙은 가족에게서, 친구에게서 받은 상처를 이겨내고 자기보다 약한 존재를 보듬는 존재로 나아간다. <매일 아침 지하철에서 모르는 여자가 말을 건다>는 <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의 후속작이다. 파견직원 미치코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3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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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사람들의 얘기는 나이를 먹어서야 귀에 들어온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체력은 국력이 아니어도 내 경력과 직결되고, 건강은 정말로 중요하다. 다이어트에 날린 돈과 시간을 운동하는 데 썼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 몸 하나 지탱하기 힘들어진 뒤에야 운동을 시작한 요즘 JTBC <위대한 운동장–SKY 머슬>을 본다. 운동하는 여성들의 강인함을 내세운 캠페인, “너라는 위대함을 믿어”로 화제를 모은 나이키가 제작 협찬한 프로그램답게 여성 출연자와 지도자의 비중이 높다는 것은 눈에 띄는 장점이다. 아르바이트 수입을 운동에 쏟아붓는 고등학생, 소매치기를 멋지게 제압하는 전사가 꿈이었다는 대학생, ‘기지개 운동’밖에 못하고 있다는 워킹맘 등 각기 다른 이유로 출연을 신청한 여성들도 반갑다.
운동의 가장 좋은 점은 내 몸을 외양이 아니라 기능을 기준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키가 너무 큰 게 콤플렉스라는 여성에게는 수영하기에 유리한 조건이라는 격려, 볼링은 키가 조금
[TVIEW] <위대한 운동장–SKY 머슬>, 방향 알고 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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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
제작 영화사 레드피터 / 공동제작 화이브라더스코리아 / 감독 김윤석 / 출연 염정아, 김소진, 김혜준, 박세진, 김윤석 / 배급 쇼박스 / 개봉 4월 11일
“딸, 밥 먹었니?” 여느 날과 다름없는 자상한 목소리지만, 더이상 주리(김혜준)에게 아빠(김윤석)는 ‘내가 알던’ 그 아빠가 아니다. 어느 날 아빠와 미희(김소진) 사이에서 심상치 않은 행동을 목격하게 된 주리. 하필 미희의 딸은 우등생 주리와는 접점이 하나도 없는 같은 학교 문제아 윤아(박세진)다. 엄마 영주(염정아)가 제발 이 기막힌 상황을 모르고 지나가길 원하는 주리, 엄마 미희의 갑갑한 상황을 보고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윤아. 어른들의 문제로 급기야 둘은 일대 ‘전쟁’에 돌입한다.
<미성년>은 17살 소녀 주리와 윤아가, 그들의 눈높이로 바라보는 복잡한 어른들의 세상이다. 아직 주민등록증도 발급받지 못한 ‘미성년’에게 모순에 가득 찬 어른들의 행동을 바라보는 일은 버겁기만 하다.
[Coming Soon] <미성년>, 폭풍 같은 사건을 마주한 두 가족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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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서 조우진이 연기한 한지철은 금융계를 교란하는 자들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금융감독원의 수석검사다. 조우진의 얘기대로라면 <돈>은 신참 주식브로커 조일현(류준열)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작품이기 때문에 자신은 “으깬 감자나 삶은 달걀, 삶은 고구마 같은 인물”이어야 했다고 한다. “그래야 조일현이 가진 밝고 경쾌한 기운, 청량감이 확 살아날 테니까.” 조우진은 자신의 캐릭터에만 집중하지 않고 영화의 전체 판을 읽는 시야 넓은 배우다. “나에게 돈이란?”이라고 물었을 때도 “돈보다 어려운 건 사람이고, 사람보다 어려운 건 연기”라는 대답을 들려주는 그는 자나 깨나 돈이 아닌 연기만 생각하는 배우다.
-시나리오의 어떤 점이 매력적이었나.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어 하지 않나. 돈에 대해 욕심을 내기 마련이고. 돈을 대하는 인물들의 태도와 생각이 모두 다른데, 각 인물들의 욕망이 계속해서 부딪힌다. 그 중심에 조일현이란 인물이 있다. 일현의 감정을 따라가는 것만
<돈> 조우진 - 연기보다 이해가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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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유지태는 밀도 높은 캐릭터로 관객을 만났고, 만날 예정이다. 언론배급시사회 전까지 출연 사실이 숨겨져 있던 <사바하>에서 반전의 키를 담당했던 그는, <돈>에서는 신입 주식브로커 조일현(류준열)에게 위험한 제안을 하는 작전 설계자 번호표를 연기한다. “유지태 정도 경력 있는 배우가 후배 배우들을 서포트하는 캐릭터를 맡는 게 좀 의외”라고 말하자, “내 기준은 좀 다르다. 주연만 하려고 하면 우울해지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자신의 배우 인생에서 하이라이트는 29~30살 때였고, <돈>이나 <올드보이>(2003), <뚝방전설>(2006) 모두 촬영 회차는 비슷했다며 분량보다는 캐릭터의 힘을 강조했다.
-<올드보이> 때부터 인연이 있던 사나이픽처스 한재덕 대표와 다시 만났다.
=“거절해도 돼. 참고로 주인공은 아냐. <올드보이>의 기시감이 들 수 있는 캐릭터이긴 한데 세월이 많이 흘러서 사람들이
<돈> 유지태 - 말하지 않는 순간의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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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트 차림에 출입용 명찰까지. 여의도 증권가의 아침 풍경, 어디서 많이 본 평범한 샐러리맨. 막 동명증권에 입사한 신입 주식브로커 조일현의 모습이다. 백도, 줄도, 실적도 없던 일현이 작전 설계자 번호표(유지태)를 만나면서 ‘돈맛’을 알아버렸다. 억 단위 돈을 좌지우지하는 클릭 사기. 돈을 벌고 싶었고, 돈에 빠지고, 그래서 돈의 무서움을 알기까지. 류준열은 시시각각 변모하는 일현을 연기한다. 지금까지 류준열의 작품에서 보았던 익숙한 모습들이 그 변화에 조금씩 녹아들어간다. 익숙하면서도 한층 믿음직스러운 모습으로, 류준열은 <돈>의 스토리를 무리 없이 끌어나간다.
-<돈>의 어떤 매력이 가장 크게 다가왔나.
=일현은 동시대 인물이자, 나와 같은 나이대다. 나에게도 일현 같은 사회초년생 시절이 있었다. 직업을 선택하고 취직을 해야 하고 또 돈에 대해 고민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지점들에 공감이 많이 됐다.
-평범한 인물의 일탈 과정을 따라간다는 점에서 앞서
<돈> 류준열 - 고전은 훌륭한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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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되고 싶었다.” 누구나 내뱉는 말이지만 그저 바람일 뿐. 하지만 여의도 증권가에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돈>은 동명증권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주식브로커 일현(류준열)이 작전 설계자 번호표(유지태)와의 비밀스러운 만남으로 ‘돈맛’을 알아가는 이야기다. 클릭 몇번이면 한번에 수십억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절대 유혹. 그 속에서 빠져나오려는 순간, 일현은 더 큰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다. ‘어디까지가 불법이고 합법인지’의 판단에 앞서 그저 잘못된 클릭을 종용하는 번호표, 그리고 일현의 ‘사기행각’을 추적하는 금융감독원의 수석검사 한지철(조우진). 돈이 앞서는 세상, 돈이 가진 영향력은 어디까지일까. 질주하는 이야기의 흐름 속, 세 배우의 ‘일대일’ 대결이 매 장면 긴장을 고조시킨다. 영화 속 날 선 모습과 달리 스튜디오에서 내내 화기애애했던 류준열, 유지태, 조우진 배우와 만났다.
<돈> 류준열 · 유지태 · 조우진 - 그들이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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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이스케이프 룸> 여기서 탈출 못하면 우린 끝장이야.
[정훈이 만화] <이스케이프 룸> 여기서 탈출 못하면 우린 끝장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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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마블>이 슈퍼히어로물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북미 시사회 이후 <버라이어티> 등의 외신에서 약 1억2천만달러 선으로 예상했던 오프닝 성적은, 실제 1억5300만달러를 웃돌았다. 월드와이드 수익은 4억5500만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역대 월드와이드 오프닝 성적 6위 수준의 기록이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영화 중에서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2018)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3월 12일에는 월드와이드 수익 5억달러를 돌파, <할리우드 리포터>를 포함한 여러 외신은 “최종 성적은 10억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같은 흥행 돌풍은 한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현재진행형인 평점 테러 행위와 대비된다. 로튼 토마토의 관객 평점 지표인 팝콘 지수는 한때 31%까지 하락했고, IMDb 사이트에서 <캡틴 마블>에 평점1점을 준 네티즌은 무려 전체의 10.1%에 다다른다. 하지만 직접 영화를 본 관객의 만족도를 조사한 ‘시네
<캡틴 마블>, 월드와이드 수익 5억달러 돌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