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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우리 이민 가자.” 올해 초, 회사를 그만두고 학업을 다시 시작한 아내를 졸랐다. 아내가 이유를 물었다.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늙어서 회사를 그만두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답도 없는 데다가 이놈의 나라는 더이상 희망이 없다고 대답했다. 아내는 “언제 나라 걱정 했냐”면서 “어디로 가고 싶냐”고 물었다. 유럽의 많은 청년들이 창업을 하기 위해 향하는 기회의 땅, 독일 베를린이 먼저 떠올랐다. 그 얘길 기다렸다는 듯 아내의 잔소리가 속사포처럼 나왔다. “기회의 땅? 거기서 뭐 먹고살 거야? 김밥천국? 김밥 말 줄 알아? 내가 요리하면 된다고? 서빙은? 네가 하면 된다고? 독일어는? 독일어 배울 거라고 얘기한 지가 언젠데.” 음, 실패다, 작전 변경. 아내가 유학을 갈 코스타리카로 조타수를 돌렸다. 전 국토의 80%가 국립공원인 데다가 커피농사가 국가의 주요 산업이라고 하니 그거라도 배워서 살면 괜찮겠다 싶었다. 미국 중산층의 상당수가 은퇴하면 가장 가고
[도서] 외국 생활도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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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이면 부록 많은 한정판으로
플레인 아카이브가 <이다>(2013) 블루레이 타이틀을 출시한다. 이동진 평론가의 음성해설과 파블리코프스키 감독과의 대화 영상이 수록돼 영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11분30초 길이의 감독 인터뷰와 메이킹 영상도 실렸다. 한정판 1500장(국내 1천장)에 한해 영화 리뷰가 실린 소책자, A3 접지 포스터, 영화 카드가 포함돼 있으니 빨리 예매를 서두르는 게 좋겠다. <이다> 블루레이 타이틀은 8월31일 출시.
The King Is Coming
동시대 가장 거대한 프로듀서 퍼렐 윌리엄스가 8월14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첫 내한공연을 갖는다. 프로듀싱팀 넵튠스로 활동하며 2000년대 초반 수많은 명곡을 만들어냈던 그는, 최근 <Happy>, 로빈 시크의 <Blurred Lines>, 다프트 펑크의 <Get Lucky>의 어마어마한 성공과 함께 새로운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이번 공
[culture highway] 평생을 바쳐 담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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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후 전기. 열여섯살에 후궁으로 간택돼 마침내 황실의 최고 결정권자가 되어 50여년 동안 청나라를 통치한 서태후를 자료들을 통해 다시 그려낸다. 현대 중국의 기초를 만들어간 서태후의 삶은 어땠을까. <대륙의 딸>을 쓴 장융이 또 한명의 신화와 가십으로 무성한 역사적 인물의 초상을 보여준다.
[도서] 현대 중국의 기초를 만들어간 서태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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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벌어진 보스턴 마라톤 테러 사건을 소재로 쓴 <미스터 메르세데스>는 묻지마 테러를 벌인 살인마와 정년 퇴직한 형사의 이야기를 다룬다. 훔친 메르세데스 승용차로 취업박람회 개장을 기다리던 시민들에게 돌진하여 아기를 포함한 8인의 희생자를 내고 도주한 일명 ‘미스터 메르세데스’와 악연으로 얽힌 형사의 사건수사기.
[도서] 보스턴 마라톤 테러 사건을 소재로 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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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최초로 에볼라 바이러스를 발견했고, 일생을 아프리카와 개발도상국의 전염병 및 소외질환과 싸워온 피터 피오트의 책. 에볼라와 에이즈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를 담고 있다. 에볼라를 발견한 시점부터 현대 최악의 유행병으로 꼽히는 에이즈와 맞서 싸우는 일련의 사건과 기록을 읽고 있으면, 인류가 새로이 등장한 질병들에 얼마나 취약한지 알 수 있다.
[도서] 에볼라 바이러스 최초 발견자 피터 피오트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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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ease, Mother, Enough.
한국에도 <본격소설> <필담> 등의 책이 소개된 일본의 소설가 미즈무라 미나에가 지난해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의 제목이다. ‘제발, 어머니, 이만하면 됐어’ 정도로 해석될 수 있는 제목의 이 글은 연말, 병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어머니가 막 응급차로 실려왔다는 소식인데, 길에서 넘어져 어깨뼈와 엉덩이뼈가 부러졌다고 한다. 병원에 달려가던 그녀의 첫 반응은, “또!”였다. 일년 반이 지나 끝날 기약이 없는 병간호를 하느라 병원 침상 옆에 앉아 있던 그녀는 불쑥 이런 생각을 했다고 적었다. “엄마, 언제 돌아가실 거예요?”
나이들고 병든 부모에 대한 불효라고 혀를 찰 일이 아니다. <나 홀로 부모를 떠안다>는 노인개호(스스로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이들을 돌보는 일) 문제를 다루고 있다. 고령화와 비혼이라는 두 가지 사회 이슈(한국이라고 다르지 않다)가 결부되어 있는데,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삶의 비극적 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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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아저씨 오신다
벌써 7번째 방문이지만 반가움의 크기는 여전하다. 다름 아닌 톰 크루즈니까. <미션임파서블: 로그네이션> 개봉에 맞춰 톰 크루즈가 한국을 찾는다. 7월30일(목) 오후 6시30분 롯데월드몰 1층 아트리움에서 톰 크루즈와 크리스토퍼 매쿼리 감독의 레드카펫 행사가 열린다. 31일엔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서 영화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갖는다. 톰 크루즈를 만나는 일에 불가능은 없다.
물, 꿈, 신화
수중촬영의 거장 제나 할러웨이의 사진전 <the Fantasy>가 7월3일부터 9월7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녀가 첫째딸과 함께 작업한 수중사진 동화집 <물의 아이들>에 수록된 삽화와 제나 할러웨이의 이름을 전세계에 알린 <Seahorse> 등 그녀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주요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다. 티몬과 예스24, 인터파크에서 예매가 가능하다.
야한 얘기는 혼자 봐
[culture highway] 톰 아저씨 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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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립자> <투쟁 영역의 확장>을 쓴 미셸 우엘벡의 <복종>이 출간된 날 프랑스 대표적 풍자 전문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를 겨냥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총격 테러가 벌어졌다. <복종>은 2022년 이슬람 정권이 들어선 프랑스 사회를 그린 소설로, <렉스프레스>는 “소설은 시대와 그 시대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평했다.
[도서] 2022년 이슬람 정권이 들어선 프랑스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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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곶의 찻집>과 <쓰가루 백년 식당>를 쓴 모리사와 아키오의 에세이다. 여름이면 무조건 산과 바다, 강으로 나가 무한한 자유를 느꼈던 이십대 시절 여행기. 보트를 타다가 폭포로 떨어질 뻔한 후 맥주, 쇠등에 떼와의 결전 뒤 만신창이가 된 후 미지근한 맥주…. 맥주의 계절 여름을 그만의 방식으로 만끽한 흥미진진한 모험기.
[도서] 모리사와 아키오의 이십대 시절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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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1996년을 배경으로 한 고1 여학생 하석의 이야기다. 부족할 것 없는 가정환경이지만 집에는 하석이 태어날 즈음 사라진 언니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지 못할 좋은 딸이자 모범생이었던 언니를 이길 수 있는 방법으로 하석은 ‘죽음’을 생각하고, 자살 방법을 수집하기 시작한다.
[도서] 제2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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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을 포함해 출판물의 저자이거나 편집자인 사람들은 책 표지에 대해 자주 투덜거린다. 출판 디자인, 그중에도 표지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의 변은 왕왕 “책이 이렇다”다. 자신의 책 표지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불편한 마음이 드는 이유도 거기 있을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이 표지는 혹시 내 책이 이렇게 읽혔다는 뜻은 아닌가? 충분한 금전적 보상이 주어지지 않고 일의 양이 많고 일정이 급박한 한국 출판 환경이 어긋남의 주범인 경우가 많은데도.
“표지 디자이너의 역할은 거의 문자 그대로 독서라는 본질적 행동을 하는 일이다. 즉, 책의 껍질 속을 꿰뚫어보고 그 책의 토대를 정확히 찾아 보여주는 일이며, (…) 표지 디자이너는 예언자들이 나뭇잎이나 내장을 읽어내는 식으로 책을 읽는다.” 뮤지션이자 북디자이너인 피터 멘델선드가 만든 책 표지를 모은 <커버>의 소개글을 쓴 톰 매카시는 책의 무의식을 측정하는 일이 바로 피터 멘델선드의 재능이라고 설명한다. 피아니스트로 음악원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책의 영혼을 읽어내는 북디자이너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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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매우 조심스럽게 쓴 글이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 하나는 스포일러를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앤터니 호로비츠의 <셜록 홈즈: 모리어티의 죽음>의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스포일러가 될 만한 것들로 가득하다. 평소 기본적인 정보 정리에도 스포일러라고 민감히 반응하는 건 유난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책 앞에서는 좀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작가가 치밀하게 준비한 몇 가지 반전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는 하나의 사건 뒤에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사건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자세히 소개하는 것조차 고민이 된다.
일단 첫장에서는 ‘클래런스 데버루’라는 악질 악당을 잡기 위해 존스 경감과 탐정 프레더릭 체이스가 등장하지만 그 뒤로 어떤 본격적인 전개가 펼쳐질지는 자세히 얘기하지 않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 책의 제목이 <셜록 홈즈: 모리어티의 죽음>이니 적어도 셜록과 모리어티는 등장하는 게 맞지 않
씨네21 추천 도서 <셜록 홈즈: 모리어티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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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또는 글이란 매체의 특징이자 장점은 독자의 의도대로 진행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를 1.5배속으로 보면 죄책감이 들지만 책은 빨리 보아도 천천히 보아도, 또는 보다가 잠시 딴생각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그런 읽기의 과정이 독서의 고유한 경험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런 맥락에서 미우라 시온의 <마사&겐>은 천천히 읽기에 좋은 책이다. 같은 동네에 사는 73살 동갑내기 두 할아버지의 일상을 그린 이 소설에는 독자의 진지한 몰입을 강제하는 어떤 심각한 사건도 발생하지 않는다. 또는 심각한 사건이 일어나도 지극히 가벼운 태도로 그 사건에 접근한다.
여기서 가볍다는 건 부정적인 말이 아니다. 단지 작가와 소설 속 주인공들이 자기 주변의 일에 필요 이상의 감정을 쏟지 않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사와 겐에게는 엄청나게 슬픈 일도 일어나지 않고, 엄청나게 기쁜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기쁜 일이 일어나도 심술궂은 말을 굳이 한마디 덧붙이고, 소
씨네21 추천 도서 <마사&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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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우아한 거짓말> 등으로 익숙한 김려령 작가의 신작 <트렁크>를 술술 읽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용어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먼저 NM은 ‘새로운 결혼’(New Marriage)의 줄임말로서 비밀 회원들을 대상으로 ‘기간제 결혼’ 서비스를 제공하는 팀의 이름이다. 그리고 FW, FH는 ‘필드 와이프’(Field Wife)와 ‘필드 허즈번드’( Field Husband)의 줄임말로서 기간제 결혼에서 아내/남편 역할을 담당하는 맞춤형 결혼기술자를 의미한다.
이 소설 속 세계는 사랑에 기반한 정석적인 결혼의 절차는 피하고 싶지만 결혼 자체는 잠깐씩 누리고 싶은(안정적인 섹스, 성정체성 숨기기, 외로움 방지 등 이유는 다양하다) 사람들이 아내와 남편을 돈을 주고 고용하는 곳이다. 그리고 <트렁크>의 주인공 노인지는 서른도 안 된 나이에 네 번째 ‘결혼 출장’의 경력을 자랑하는 FW로서, 지금은 인기 작곡가와 ‘재계약’해 열심히 ‘직장
씨네21 추천 도서 <트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