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언가 규정해야만 속이 후련해지는 흔한 남자로서, 김형경에게 단 하나의 수식을 붙여야 한다면 소설가가 옳을지 심리 에세이스트가 옳을지 망설이곤 한다. 다만 그녀가 내놓은 책의 목록이 점점 쌓일수록 결정은 후자에 기울게 되는 게 사실이다. 새 책 <오늘의 남자> 역시 심리 에세이스트 김형경의 면모를 잘 엿볼 수 있는 글들이 모였다. 세계를 여행하면서 만난 많은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를 통해 사람의 감정에 대해 사색한 <사람풍경>(2004)을 필두로 이어진 산문집이지만, <오늘의 남자>는 특히 남자를 탐구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남자를 위하여>(2013) 옆에 놓이는 책이다. 활동 초기부터 줄곧 여성을 향해 예민한 시선을 던졌던 작가의 커리어를 떠올린다면, 두해 간격으로 출간된 두권의 책은 분명 독특한 행보다.
남자에 관해 처음으로 쓴 책 <남자를 위하여>와 이번 <오늘의 남자> 사이의 차이를 묻자, 김형경은 “이번에는 쫄
씨네21 추천 도서 <오늘의 남자>
-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을 통해서는 여간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지만, 수필에서는 자전적인 내용이나 자신이 일상 속에서 만난 사건과 감정의 편린을 솔직히 늘어놓곤 한다. 신간이 나오자마자 그 안에 쓰인 음악들부터 따로 갈무리될 만큼 널리 알려진 음악 취향,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서 경험한 위스키 삼매경, 유럽 여행 중에 기록한 문학에 대한 견해 등 별별 이야기들이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이름 아래 단정하게 모인다. <시드니!>(2000)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일본의 유력 스포츠지의 청탁을 받고 특별취재원으로서 시드니올림픽을 기록한 에세이다. 매일 400자 원고지 30매에 기관총을 쏴대듯 거침없이 써내려간 흔적은 그 분량을 소화하는 작가의 스태미나에 감탄하는 것만으로도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시드니!>는 (2000년 시드니가 아닌) 별안간 1996년 애틀랜타에서 시작한다. 애틀랜타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마라토너의 경기를 생생하게 그린 이 오프닝은 마치 &l
씨네21 추천 도서 <시드니!>
-
“대중에게 널리 보급될 수 있도록 값이 싸고 가지고 다니기 편하게 부문별, 내용별 등 일정한 체계에 따라 자그마하게 만든 책.” 문고의 사전적 정의는 <파울로 코엘료 베스트 컬렉션>의 많은 걸 나타낸다. <연금술사>(1988)의 어마어마한 성공 이후 현재까지 그의 (비블리오그래피 대부분에 해당하는) 열네 작품을 출간한 바 있는 문학동네가 코엘료 컬렉션 중 세 작품을 엄선했다. <연금술사>를 비롯해 <브리다>(1990), 에세이 <흐르는 강물처럼>(2006)이 한데 묶인, 사람과 삶에 대한 깊은 시선이 담긴 경전 같은 책 세권은, 곁에 놓고 두고두고 꺼내볼 수 있는 조그만 판형을 만나 이 겨울을 지낼 온기를 불어넣어줄 것이다.
<연금술사>는 가벼운 문체로 풀어낸 장중한 이야기로, 56개 언어로 번역돼 6500만부의 판매고를 올리며 파울로 코엘료를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했다. 양치기 산티아고가 피라미드 근처에서
씨네21 추천 도서 <파울로 코엘료 베스트 컬렉션>
-
작가가 비로소 작가로 남을 수 있는 건 그들이 문자 그대로 쓰는 이가 아닌, 스스로의 시각으로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2015년 마지막 북엔즈에 꽂힌 세 작가의 책들은, 그들이 오랫동안 구축해온 관찰자로서의 능력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파울로 코엘료는 작가로 세상에 등장한 이래 한시도 거르지 않고 인간의 삶을 통찰하는 성숙한 우화를 통해 세계의 갈채를 받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올림픽 ‘특별취재원’이라는 대외적인 타이틀이 무색하게도 올림픽 자체에 대한 어떠한 흠모도 드러내지 않은 채 1996년과 2000년의 어느 27일을 자유롭게 기록했다. 김형경은 여자의 연애에 관해 쓴 많은 소설들을 지나 영영 정확히 알 수 없을 존재인 남자를 여러 학자들의 고견을 빌려 더듬어나갔다.
<파울로 코엘료 베스트 컬렉션>은 작가의 커리어에서 뚜렷하게 빛나는 소설 <연금술사>와 <브리다>, 산문집 <흐르는 강물처럼>을 작게 만든 컴필
파울로 코엘료, 무라카미 하루키, 김형경이 본 세상
-
-
메커닉 에로스
정금형 작가의 신작 퍼포먼스 <재활훈련>이 12월26∼28일 오후 8시 문래예술공장 스튜디오M30에서 상연된다. <재활훈련>은 2013년 같은 장소에서 초연됐던 <심폐소생술연습> 이후 2년 만의 작품으로, 전시공간 ‘시청각’과 독일의 극장 팍트 졸페라인이 함께 제작했다. 정금형은 올해 에르메스재단 미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데 이어 <동아시아 페미니즘: 판타시아>(서울시립미술관), <댄싱 마마>(코리아나 미술관), <MOVE & SCALE>(시청각) 등의 전시에 참여한 바 있다.
황정민 칸타빌레~
산에 있어야 할 황정민이 지휘자가 되어 돌아왔다. 누가 클래식을 우아하다 했던가. 황정민이 연출과 주역을 맡은 뮤지컬 <오케피>는 무대 아래 오케스트라 피트를 배경으로 연주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별별 해프닝을 그린다. 더블캐스트인 황정민과 오만석은 천재적인 지휘자이지만 여자 앞에선 한없이 갈
[culture highway] 황정민 칸타빌레~
-
존 윌리엄스가 지휘하는 우주의 선율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의 개봉에 맞춰 오리지널 시리즈의 음악감독인 존 윌리엄스가 직접 지휘하고 보스턴 팝 오케스트라가 참여한 <스타워즈> O.S.T가 출시된다. 이번 앨범은 <스타워즈> 4, 5, 6편의 테마뿐만 아니라 <E.T.>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에이리언> <스타트렉> 시리즈 등의 테마도 함께 실려 있다. 또한 작곡가 존 윌리엄스의 영감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홀스트의 <혹성> 시리즈 7곡이 함께 실려 있다. 우주의 선율이 2장의 CD에 모두 담긴 셈이다.
오빠가 돌아왔다
조용필과 그의 밴드 위대한 탄생의 서울 공연이 12월12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다. 2013년 말 《Hello》 앙코르 투어 이후 2년 만에 시작한 이번 투어는 대구, 일산, 광주, 부산을 지나 서울에서 대미를 장식한다. 이번 공연은 기존 음반을 그대로 재
[culture highway] 존 윌리엄스가 지휘하는 우주의 선율
-
모네를 디지털로 즐기자
클로드 모네의 작품에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컨버전스 아트 전시 <모네 빛을 그리다 展>이 열린다. 전시는 1차원의 그림에 3D 매핑 기술을 접목, 전면과 측면, 바닥을 이용한 체험형 콘텐츠를 제공한다. 3D 오브젝트에 투사되는 이미지는 변형되고 움직이며 모네의 빛을 우리 앞에 생생하게 그려낸다. 모네 외에도 프레데리크 바지유,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에드가 드가, 폴 세잔 등 인상파 작가들의 섹션도 마련된다. 뮤지션 윤상이 오디오 해설자로 나섰으니 해설도 놓치지 말자. 2015년 12월11일부터 2016년 2월28일까지 서울 용산전쟁기념관 기획전시실.
미술관에서 만나는 지구
<내셔널지오그래픽전>이 3년 만에 ‘미지의 탐사 그리고 발견’이라는 부제로 돌아왔다. 이번 전시는 고대문명의 신비와 함께 오지, 우주, 바다를 비롯한 다양한 탐험의 기록을 담은 사진과 영상 200여점을 공개한다. 이번 전시에는 해양생물학자이자 내셔널지오그래픽
[culture highway] 포스트 누벨바그의 거장 필립 가렐
-
방정리를 하다가 출간된 지 몇달 지난 로버트 그루딘의 <당신의 시간을 위한 철학>을 ‘발굴’해 읽기 시작했다. “범죄 가운데 가장 만연하고 많이 재발하면서도 좀처럼 법으로 처벌할 수 없는 것이 근거 없는 헐뜯기, 즉 중상이라는 달콤하고 사교적인 공격이다.” 중상의 세 가지 기본조건은 이렇다. “(1)헐뜯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겉으로는 친구이고, (2)듣는 사람은 대체로 그 내용과 말한 이를 피해자에게 드러내기를 꺼리며, 역설적이지만 (3)헐뜯는 사람과 그 피해자가 겉으로는 친하다.” <당신의 시간을 위한 철학>에는 관계와 시간에 대한 성찰을 담은 글이 많다. ‘자신’과 ‘타인’이라는 두 단어에 대해 말하며 시간 속 정체성의 범위를 설명하는 대목도 그래서 생각해볼 만하다. 우리의 과거와 미래 가운데 우리가 인정하고 자신의 측면으로 적극적으로 대하는 범위는 얼마나 될까. 너무 어렵게 들린다면 이렇게 설명하겠다. “한때 폭력 범죄를 저질렀던 중년 남자는 그것을 젊음의
[도서] 중상이라는 달콤하고 사교적인 공격
-
미소녀 아이사와 리쿠는 마음먹은 대로 눈물을 흘릴 수 있다. 열네살. 예쁘면서 독특한 분위기. 완벽한 주부인 엄마와 잘생긴 아빠가 있다. 남자 선생님들은 그녀에게 남몰래 전화번호를 주곤 한다. 어려울 거라고는 없다. 아, 여기가 눈물 흘릴 타이밍이네. 그런 생각이 들면 아이사와 리쿠는 머릿속 수도꼭지를 살짝 돌려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는 감정 상태라는 것은 전혀 알지 못한다. 어른들의 사정이라는 것도 그녀에게는 손바닥 안처럼 쉽게 들여다보인다. 예컨대 리쿠의 아빠는 바람을 피우고 있다. 바람피우는 상대는 아빠가 사장으로 있는 회사의 젊은 여직원. 아빠의 애인이 회식을 이유로 집에 온 날, 리쿠는 눈물을 흘린다. 엄마가 (말로 한 적은 없지만) 그것을 원하니까.
<아이사와 리쿠> 초반에 그녀를 보면서, 결말이 내다보인다고 생각했다. 냉미녀 리쿠가 눈물이 뭔지 알게 되겠지. 울고 싶지만 울지 못하는 기분, 정말로 눈물이 몸에서 흘러나온다는 기분을. 너무 뻔하지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뒤늦게 깨달은 진짜 감정
-
코레일네트웍스 대표이사를 지낸 김선호가 음악 에세이 <정동진에서>와 시집 <풍경소리에 어제를 버리다>에 이어 월드뮤직 가이드라고 할 수 있는 <지구촌 음악과 놀다>를 펴냈다. 부제는 ‘떠나기 전 꼭 들어야 할 지구촌 명곡 100선 이야기’로, “세계 도처의 좋은 음악을 골라서 독자들과 함께 놀고 쉬어보자는 취지에서 쓴 책”이다. 연대기적 구분이나 장르적 구분에 따른 전문서 형태가 아니라 에세이이며, 따라서 음악에 이미 충분한 지식이 있는 사람보다는 입문하는 사람에게 권한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보고 음악이 좋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이라면 관심이 있을 것이다. 참고로 이 책에 소개할 음악을 선별한 기준에 대해서 말하자면, “듣기 편하고 서정적인 곡 위주로 소개하고자 했다. 유명해서 잘 알고 있는 곡은 간단히 언급하거나 제외했다. 또한 비트가 강한 곡, 신시사이징된 곡들도 가능한 제외했다. 기본적으로 필자는 그런 곡을 썩 좋아하지 않
[도서] 읽고 듣고 여행하자
-
한국여성민우회에서 후원자들을 대상으로 배포했던 <새록세록: 비싼 월세가 답답하고 고장난 집이 서글픈 세입자들의 기록으로 만든 안내서>라는 책이 있다(한국여성민우회의 후원자로, 재인쇄 후원금 5천원을 내면 받을 수 있다). 여성 세입자들을 위한 집 구하기 가이드 북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인데, 나는 독립한 직후에 친구로부터 선물로 받았다. 집 구하기 관련 체크리스트가 제법 잘 정리되어 있는 책이었는데, 이번에 <새록세록…>을 바탕으로 한 <내가 살 집은 어디에 있을까?>가 나왔다. 이 역시 한국여성민우회에서 낸 책으로, ‘생활의 발견’이라는 시리즈 중 한권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어디에 물어봐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궁금한 것들에 대해 잘 정리되어 있다. 집을 구할 때 대출을 받아야 한다면 자신의 수입 규모에 맞는 대출 액수는 얼마일까? 주택 유형, 크기, 지역, 가격 중 우선순위는 어떻게 정해야 할까? 집을 보러다닐 때, 공인중개사의 말에 혹해서 자신의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현명하게 집 구하기
-
실험적인 도트그래픽, 책으로 만난다
포털 사이트 Daum ‘만화속세상-웹툰’에서 연재됐던 선우훈 작가의 <데미지 오버 타임>이 두권짜리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선’이 아닌 ‘점’을 모아 그리는 도트그래픽 등 새로운 웹툰 형식과 미학을 개척한 이 작품은 좀비에 맞선 인간들의 비극을 그리고 있다. 웹에서는 볼 수 없었던 미공개 50.1화, 50.2화를 수록해 단행본만의 특성을 살렸다. 서점 북새통과 유어 마인드, 그리고 알라딘 온라인 스토어 세곳에서만 구매 가능하다.
다이나믹 ‘꿀잼’ 듀오
“오늘도 열심히 산 듯해. 세상은 반대로 자포자기한 듯해. 그래 몇 시간 후면 오네 fuckin new day. 늙네 늙어 느리던 시간까지 속도를 낸다면 완전 속수무책.”(다이나믹 듀오 8집 《GRAND CARNIVAL》 수록곡 <도돌이표>의 가사 일부.) 15년간 열심히 한국 힙합신을 일궈온 다이나믹 듀오의 새 앨범 《GRAND CARNIVAL》이 나왔다. 그 어떤 앨범
[culture highway] 이제 곧 작별의 시간
-
강호인문학? 언제는 “인문학이 위기”라더니 이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답은 인문학에 있다”며 온갖 수식을 붙인 인문학들이 줄을 잇는 트렌드 중 하나겠거니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앞에 붙은 말 강호의 뜻을 살펴보면 잠시 멈칫하게 된다. 설마 했겠지만 흔히 ‘무림의 고수’들이 제 몸을 숨겨 수행의 길을 걷는다는 그 강호(江湖)가 맞기 때문이다. 저자 이지형은 사람들의 삶 주변을 겉돌기만 하는 인문학의 무력함을 탄식하며, 그 대안으로 강호인문학을 시침 뚝 떼고 권한다. 강호를 지키는 고수는 사주, 풍수 그리고 주역 셋이다. <강호인문학>은 이 셋의 복권이 진정한 위로의 등장을 예고한다는 확신하에 시작한다.
작가의 지난 책 목록을 살펴보면 그가 오랫동안 ‘강호’와 위로의 관계를 강조해왔음을 알 수 있다. ‘답답하고 어수선한 마음 달래주는 점의 위로’라는 부제가 붙은 책 <바람 부는 날이면 나는 점 보러 간다>(2011)부터 사주, 풍수, 소주에 대한 ‘살림지식총서
씨네21 추천 도서 <강호인문학>
-
드라마가 영화의 아성을 허물듯이 세를 넓혀가고 있는 2010년대, <BBC>가 공개한 드라마 <셜록>은 베네딕트 컴버배치라는 걸출한 배우를 지구에 알리며 영향력을 불렸다. 빅토리아 시대의 원작을 21세기 런던을 배경으로 고스란히 재현한 이 시리즈는, 컴버배치의 셜록과 마틴 프리먼의 왓슨이 선사하는 호흡(둘의 사랑을 목격하겠다는 동인녀들의 의지!)을 동력 삼아 동시대 드라마 시리즈의 꼭대기에 우뚝 섰다. 새로운 시즌을 만나기까지 2년을 기다려야 하지만, 전세계의 셜록 팬들은 2016년을 시작하며 나이를 다시 두살 먹었다는 사실도 잠시 잊은 채 <셜록: 유령신부>를 보기 위해 마음을 가다듬을 것이다. 그들에게 <셜록>의 모든 걸 집대성한 책 <셜록: 크로니클> 한글판을 권한다.
1.2kg이 넘는 무게를 자랑하는 <셜록: 크로니클>은 연대기라는 이름을 충분히 만족시킬 만큼 독자들이 상상할 만한 모든 자료를 담고 있다. 페
씨네21 추천 도서 <셜록: 크로니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