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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심한 사람들을 증오한다. 프리드리히 헤벨이 그랬듯이 나는 ‘산다는 것은 지지자(혹은 참여자)가 된다는 것을 뜻한다’는 말을 믿는다. 세상에 시민만 존재할 수는 없다. 도시에는 이방인도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살아 있는 사람들은 시민일 수밖에 없으며, 무언가를 지지하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무관심은 무기력이고 기생적인 것이며 비겁함일 뿐 진정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무관심한 사람들을 증오한다.” “성적인 관심사는 이탈리아인들의 모든 유형의 서사-서정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럴 경우 작품이 독창적인 구성이나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비록 그 결론이 항상 동일한 것- 사랑, 열정, 불륜- 임에도 심리적인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냈다는 데 성공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안토니오 그람시 산문선 <나는 무관심을 증오한다>에는 냉전이 끝나고 사회주의도 끝난 지금 읽기에 시차가 느껴지는 글과 여전히 동시대성을 느끼게 되는 글이 모두 실려 있
[도서] 안토니오 그람시 산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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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연의 <옆집의 영희 씨>는 ‘창비청소년문학’ 일흔 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이것은 청소년‘도’읽을 수 있다는 뜻일 뿐, 청소년‘용’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옆집의 영희 씨>에서는 SF 판타지 단편들을 만날 수 있다. 정소연은 익숙함에서 출발해 아주 먼 곳까지, 능숙하게 항해할 줄 안다.
표제작 <옆집의 영희 씨>는 좋은 집을 싸게 임대하려는 집주인의 감언이설로 시작한다. 어딘가 이상하지 않은가? 천사 같은 집주인이라니, 오오, 이래서 SF인가? 아니다. 그 집에는 현실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다. “옆집에 그런 게 있어서 그렇지….” 옆집에 외계인이 있다. 그를 감시하는 양복 입은 남자들도 있다. 그런데 갈색 두꺼비 같은 그와 마주친 날, 당황해서 차라도 마시고 오라고 인사치레로 말을 건넨 바람에 정말 그가 수정의 집으로 들어온다. 2주에 한번꼴로 이웃과의 티타임을 갖게 된 수정은 그에게 이름이 뭐냐고 묻는다. 그의 이름은 이영희. 그의 별에서 쓰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알아보기, 발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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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으로 돌아온 <지구를 지켜라!>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2003)가 개봉 13년 만에 연극으로 재탄생한다. 연출가 이지나와 제작사 PAGE1의 2년여간의 노력으로 탄생한 연극으로,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영상과 조명의 활용을 극대화해 병구와 강만식 두 주인공의 심리게임에 중점을 뒀다는 제작사쪽 설명이다. 병구 역으로 샤이니의 키가 연극 무대에 첫 도전하며, 이율과 정원영이 더블 캐스팅됐다. 강만식 역으로는 지현준, 강필석, 김도빈이 캐스팅됐으며 배우 육현육은 10개 이상의 역할을 맡아 멀티맨으로 활약할 예정이다. 4월9일부터 5월29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에서 공연된다.
DC 코믹스 공식 인증 미리 보기 세트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영문 제목에 왜 VS가 아니라 V가 쓰였는지 궁금하면 <씨네21> 1046호 기획 기사를 읽으면 된다. 하지만 영화의 스토리가 궁금하다면, 혹은 원작을 어떻게 각색했을지
[culture highway] 연극으로 돌아온 <지구를 지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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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루멧 감독의 <영화를 만든다는 것>의 목차는 가십이 떠다니는 분장실에서 던질 만한 질문들로 만들어진 것 같다. 시나리오- 작가들은 꼭 필요한 존재인가? 스타일- ‘사랑’ 다음으로 가장 많이 오용된 단어. 배우- 배우가 부끄러움을 탄다는 것이 정말 가능한가? 프로덕션 디자인과 의상- 페이 더너웨이는 정말 열여섯 군데에서 같은 치마를 입고 있는가? 그중 ‘배우’ 부분은 이렇게 시작한다. “배우에 대한 선입견은 일단 제쳐두자. 멍청하고, 바보 같고, 버릇없고, 개런티가 지나치게 높고, 성적으로 문란하며, 자기중심적이고, 신경질적 등등….” 아, 루멧 감독님, 누구한테 맺히셨나요? 하지만 농담같이 시작된 이 챕터는 루멧의 배우론(<밤으로의 긴 여로> <12인의 성난 사람들> <네트워크>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같은 영화들에서의 배우 연기를 떠올려보라)을 근사하게 펼쳐 보인다. “삶을 훌륭하게 모방할 줄 아는 배우가 많다
[도서] 시드니 루멧 감독의 배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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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봄이 되면,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한척이 가라앉고 그 배에 타고 있던 사람이 전원 구조되었다는 뉴스를 처음 보며 가슴을 쓸어내리던 어느 오전이 떠오른다. 뉴스 속보의 ‘전원구조’라는 말에, 하던 일로 돌아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던 마음은 이후 죄책감이 되어 납처럼 가라앉았다. 뒤이어 아주 이상한 일들이 연이어 벌어졌고, 아무것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시간이 흐른다. 잊지 않겠다는 이들을 위해 <세월호, 그날의 기록>이 쓰였다. 독자적 조사의 결과가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기록과 자료를 분석하고 이해하고자 노력한 결과이며, 세월호 도면, 침몰에 이르는 시간의 상세한 타임라인(세월호에서 온 카카오톡이며 통신 기록으로 만들어낸), 출동 주도 세력, 항로, 세월호 선장과 선원(2016년 2월 기준의 재판결과 포함), 해경 지휘와 교신 담당자들, 청해진해운과 세월호 인허가 및 관리감독 기관까지 표가 실렸다.
표 이후에는 1부 ‘그날, 101분의 기록’과 2부 ‘왜 못 구했나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공적 기록으로 재구성한 4월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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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똑같은 책을 써온 것 같다.” 프랑스의 대문호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들은 스스로의 술회처럼 닮은 구석이 많다. 대부분 일인칭으로 이루어진 작품들은 주인공의 폐쇄적인 성격으로 인해 전반적으로 톤이 어두컴컴하다. 또한 주인공은 말수가 적고 자기에 대해 특별한 희망이 없으며, 타인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법이 없다. 그를 둘러싼 사람들도 별다를 바 없어, 그들의 관계는 늘 피상적이다. 모디아노의 근작 <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에 등장하는 다라간 역시 그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다.
필요한 것만 전달하는 건조한 문체를 밟아나가다보면 제목 ‘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는 차라리 반어처럼 느껴진다. 나이든 작가 다라간이 수첩을 찾아준 이에게서 자기 과거를 더듬어나가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희미하게 새긴 이야기는 마치 추리소설처럼 진행된다. 하지만 “불확실하고 몽환적인 과거”를 다루는 마당에 박진감 같은 게 끼어들 틈은 없다. 그저 다라간이 과거에서 더 오래된 과거로 옮겨가며 어
씨네21 추천 도서 <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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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을 자축했던 샴페인의 거품이 채 마르지도 않았을 때, 시대와 동떨어진 듯한 책 하나가 한국 사회에 도착했다. 이름부터 낯선 <괭이부리말 아이들>은 인천 만석동 빈민촌 아이들의 생활을 그렸다. 대중의 반응은 뜨거웠다. 시대착오라는 일각의 비판이 무색하게도, 책은 현재까지 2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한국 아동문학의 대표작이 됐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이 보다 특별했던 건, 책 속의 절절한 이야기가 작가 김중미의 상상이나 취재가 아닌 십수년간 만석동 아이들 곁에서 생활하며 경험한 바를 토대로 쓰여졌다는 점이다.
<괭이부리말 아이들> 이후 16년. 시간은 훌쩍 지났지만 김중미는 여전히 아이들과 함께다. 스물넷에 만석동 괭이부리말에 들어와 공동체를 만든 지 올해로 30주년이 됐다. 에세이 <꽃은 많을수록 좋다>는 1987년 기찻길옆아가방에서 이듬해 공부방으로, 그리고 2001년 강화도에서 농촌 생활을 시작해 강화와 만석동을 오가며 기
씨네21 추천 도서 <꽃은 많을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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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훈은 시인이다. 그런데 그의 방대한 저서 목록을 보면 그를 시인으로만 불러도 될지 망설여진다. 원재훈은 1988년 시인으로 문단에 나와 시집, 소설, 동화, 수필, 인물론, 번역, 영화 이야기까지 내놓으며 왕성한 창작력을 과시해왔다. 그렇게 그는 근 30년간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였고, 세상이 아직 모르는 알토란 같은 정보를 전했다. 올해 초에 나온 <상처받을지라도 패배하지 않기 위하여>는 그가 지금껏 사랑해온 책 28권을 소개하는 에세이다. 시대를 넘나드는 고전과 문학을 벗하며 사는 이들이 조용히 마음에 품어온 책이 즐비하게 엮였다.
‘원재훈의 독서고백’이라는 부제는 그가 문인들을 만나 얻은 행복관을 묶은 <나는 오직 글쓰고 책읽는 동안만 행복했다>를 떠올리게 한다. 단행본뿐만 아니라 여러 매체에 기고하는 칼럼까지 부지런히 소화하는 그에게 더없이 걸맞은 제목이다. <상처받을지라도 패배하지 않기 위하여>는 원재훈 에세이 특유의 상냥한 말투와
씨네21 추천 도서 <상처받을지라도 패배하지 않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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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소설가 엘리너 캐턴의 <루미너리스>의 실물을 마주했을 때 묘하게 권위적이란 인상을 받았다. 1, 2권 합쳐 1200페이지에 달하는 두께는 물론, “47년 맨부커상 역사상 최연소 수상 작가의 천재적 작품!”이라는 문구로 채워진 널찍한 띠지 또한 어딘가 고전의 풍모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외관에 대한 느낌은 시작에 불과하다. 책을 읽어내려갈수록 드러나는 28살 작가의 야심은 묵직한 장정을 비집고 나올 만큼 거대하다. 외곽으로 몰린 사내 무디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절박함으로 금광을 찾아온다. 그리고 같은 목적으로 그곳을 찾은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 어떤 살인사건에 휘말린다. 엘리너 캐턴은 소설을 이루는 12명의 인물 누구 하나 헛되이 다루지 않으면서도 서사의 밀도를 단단하게 붙든다. 그는 캐릭터와 이야기를 촘촘히 엮어나가면서 별자리의 체계를 경유한다. 열두 남자는 각각 황도 12궁을 대표해 그에 맞는 성격과 특징을 부여받아, 해당 별자리가 등장하는 때에
씨네21 추천 도서 <루미너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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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가을 <파인즈>로 한국에 첫선을 보인 <웨이워드 파인즈> 3부작이 최근 마지막 권 <라스트타운>으로 시리즈를 완결했다. 지난해 7월 2권 <웨이워드>가 발매되고 3권이 나오기까지 불과 7개월의 간격이 있었지만, 상황은 그 시간보다 더 뚜렷하게 바뀌었다. M. 나이트 샤말란이 총제작(과 파일럿 연출)을 맡고 맷 딜런이 주인공 에단 버크를 연기한 드라마 <웨이워드 파인즈>가 기대를 웃도는 인기를 얻었고, 소설 3부작 역시 드라마와 장르소설 팬들의 성원으로 발간 당시보다 훨씬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다.
사라진 동료를 찾던 중 정신을 잃고 낯선 마을에 도착한 에단 버크가 마을을 휘감고 있는 수상한 기운을 추적해나간 시리즈는 <라스트타운>에서 그동안 꽁꽁 감춰놓았던 어마어마한 비밀을 죄다 풀어놓는다. 3부가 신을 거스르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말하는 구약전서의 욥기 구절을 인용하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점은, 이 대장정
씨네21 추천 도서 <라스트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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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막힌 상황에 놓인 사람의 이야기는 언제나 일정 이상의 흥미를 선사한다. 극단을 종용하는 선택지를 쥐고 있는 이들은 끔찍한 패배의 주인공이 되거나 숭고한 결정을 내리는 용기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3월 북엔즈는 숭고함과 끔찍함의 현장으로 독자를 초대하는 책들을 모았다.
드라마 <웨이워드 파인즈>는 지난해 미국 전역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 중 하나다. 독재사회와 디스토피아를 중심으로 무수한 장르들의 조합이 구현된 지옥도는 작가 블레이크 크라우치의 무시무시한 필력이 없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결과물이다. 외딴 마을에 떨어져 자신이 세계를 구원한다는 미친 과학자의 어둠에 기꺼이 반기를 드는 한 남자의 무용담은 말초적인 재미와 함께 다음 세상에 대한 참혹한 비전을 동시에 보여준다.
엘리너 캐턴은 <루미너리스>에서 곤궁함을 어떻게든 벗어나고자 탐욕으로 뒤덮인 금광에 뛰어든 사내 ‘무디’를 그린다. 그로부터 시작한 이야기는 점점 몸집을 불리며 비슷한 처지의 열
선택지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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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다시 부르기
“그의 노래에 감염된 나는, 여전히 속수무책이다.” 시인 안도현은 말했다. 김광석의 흔적이나마 되짚어 쓸쓸한 마음을 달래보자. 김광석 20주기 추모 전시회 <김광석을 보다展: 만나다, 듣다, 그리다>가 4월1일부터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선 김광석의 자필 악보, 직접 쓴 일기와 메모, 그가 사용했던 악기와 즐겨 들은 앨범 등 300여점에 달하는 유품이 공개되며 김광석의 육성을 편집해 만든 오디오 가이드도 마련된다. 당연히 음악도 함께한다. 김광석을 존경하는 현업 뮤지션들이 헌정의 의미로 김광석의 노래를 다시 부를 예정. 8개 전시관마다 테마를 다르게 해 뮤지션 김광석, 가장 김광석, 사람 김광석을 모두 만날 수 있는 알찬 기획이다.
언더그라운드 북마켓
언제부터인가 독립 출판물을 만들고, 읽고, 공유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해방촌을 기반으로 운영 중인 책방 스토리지북앤필름이 주최하는 3회째 언더그라운드 북마켓은 이런 흐름의
[culture highway] 아직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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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11일. 바다에서 고작 4km 떨어진 일본의 한 작은 마을. 오카와 소학교에는 학생 78명이 있었는데 4명 빼고 모두 사망했다. 지진이 일어나고 쓰나미가 덮칠 때까지 50여분. 학생들은 계속 교정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산으로 피신하자는 아이도 있었지만 선생님에게 제지당했다. 학교는 건물을 옮겨 다시 수업을 시작했지만 옛 학교 건물은 그대로 있다. 대지진 이후 유족들이 처음 모인 기자회견장에, 죽은 아이들이 왔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죽은 자들의 웅성임>은 살아남은 사람들이 영영 잊을 수 없을 죽은 자들의 기척을 다룬다. 도호쿠 지방의 여러 재난지역에서는 유령을 보았다는 택시 기사들의 목격담이 많다. 해안가를 달리는데 사람을 들이받았다, 그런데 아무도 없더라. 손님을 태웠는데 아무도 없더라. 출처를 물으면 그저 전해들은 이야기로 도시전설에 가까워 보이지만,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택시 기사들은 자신이나 가까운 이가 쓰나미로 누군가를 잃은 사연을 넘
[도서] 죽음 그 이후에 대한 일본인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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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수필가인 데이비드 실즈는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에서 나이든 아버지를 바라보는 중년 남성의 관점에서 노화와 죽음을 적었다. 의사인 아툴 가완디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 수많은 침상 곁에 서본 경험을 바탕으로 노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실감나게 썼다. 생물학자인 조너선 실버타운은 <늙는다는 건 우주의 일>을 통해, 다소 인간이라는 생물의 죽음과 늙음을 묘파했다.
<늙는다는 건 우주의 일>은 문학과 생물학을 결합해 노화를 다룬다. 흥미로운 인용구로 독자의 긴장을 뺀 뒤 진지한 연구 결과로 끌고 간다. 기대수명에 대해 먼저 말하자면, 현재 추세가 지속된다는 가정하에 2000년 이후 부자 나라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대부분 100살까지 살 수 있으리라고 한다. 장수촌에서 진행된 연구 결과는 다소 놀랍다. “아주 늙으면 노화가 멈춘다.” “110~119세인 미국 초백세인의 40퍼센트가 혼자서 살 수 있거나 최소한의 도움만 필요할 만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문학+생물학으로 본 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