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겨울도 그럭저럭 만만하게 지나가는가 싶더니만 결국 동장군이 들이닥쳤다. 월화수목금 손꼽아 기다리던 주말, 걷기만 해도 두볼이 떨어져나갈 듯한 추위에 외출할 엄두도 못 내고 있다면, 따뜻한 이불로 몸을 휘감은 채 손가락이 노랗게 물들 때까지 귤을 까먹으며 만화책 삼매경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 거창하고 진지한 것보다는 여백이 많은 프레임에 짧은 대사가 간간이 조그맣게 떠다니는 만화 <콩고양이>를 슬쩍 권한다.
<콩고양이>의 이야기는 간단하다. 새끼고양이들 틈에서 데려온 콩알이와 팥알이가 집 안 이곳저곳을 누비며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게 전부다. 많은 애묘만화가 대개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을 중심으로 전개된다면, <콩고양이>는 전적으로 콩알이와 팥알이의 행동을 축에 놓고 페이지를 더해간다. 고양이 둘은 쉴 새 없이 재잘대면서 한가로운 집 안을 돌아다니며 거기에 적응한다. 다만 그들의 대화는 사람들에게 그저 ‘냐~’ 정도로만 들릴 뿐이어서,
씨네21 추천 도서 <콩고양이1, 2, 3>
-
<자기 앞의 생>의 주인공은 자신이 열살인 줄 알고 살아가는 소년 모모다. 부모의 얼굴조차 떠올릴 수 없는 고아로 자랐지만, 그의 곁에는 삶의 쓰라림을 함께 견디는 친구들이 있다. 과거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던 로자 아줌마는 모모뿐만 아니라 비숑 거리에 사는 창녀들의 아이를 보살핀다. 양탄자를 팔며 평생을 떠돌아다녔던 하밀 할아버지는 비숑에 정착해 모모에게 사랑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그 밖에 모모의 주변은 매춘부, 이주노동자, 고아, 유대인, 아랍인, 범죄자 등 평범한 세상 바깥에 놓인 이들로 가득하다.
소중한 것의 가치는 진창 같은 역경을 딛고 선 후에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다고 했던가. 에밀 아자르는 명확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통해 보편적인 각성을 새삼 강조한다. <자기 앞의 생>에는 제 믿음을 맹목적으로 설파하듯 사랑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모모와 그 이웃들의 삶은 피폐하기 짝이 없지만 소설은 내내 빛을 잃지 않는다. 이야기가 어린아이의 천진한
씨네21 추천 도서 <자기 앞의 생>
-
2016년 새해부터 ‘더불어’라는 낱말이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변화를 향한 의지를 다지며 더불어민주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한편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으로 손꼽히던 신영복 교수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가 생전에 선보인 저서 중 하나인 <더불어숲>이 다시금 조명을 받았다. 전자가 열띤 찬반을 이끌어낸 데 반해 후자를 둘러싼 반응은 고인에 대한 헌사로 가득했다. <씨네21>의 새해 첫 북엔즈에 놓인 <자기 앞의 생> <콩고양이>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로큰롤의 유산을 찾아서> 역시 함께한다는 ‘더불어’의 뜻과 상통한 내용이 새겨진 책들이다.
로맹 가리는 자신의 소설을 무조건 비난하는 이들의 눈을 피해 에밀 아자르라는 허구의 소설가를 내세워 전세계 문학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로 마음먹는다. 에밀 아자르의 명의로 발표한 두 번째 소설 <자기 앞의 생>은, 어려서 부모와
희망을 찾다
-
두 거장의 만남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의 신작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의 사운드트랙이 발매됐다. 음악감독은 감독의 전작 <바벨>(2006)에서 사용된 음악 <Bibo No Aozora>의 주인공 사카모토 류이치. <레버넌트…>의 O.S.T는 둘의 만남이라는 점뿐만 아니라 암 투병으로 활동을 일체 멈췄던 사카모토 류이치가 건강을 회복하고 만든 첫 앨범이라는 점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사카모토 류이치와 함께 여러 사운드 작업을 했던 일렉트로니카 뮤지션 알바 노토, 밴드 내셔널의 멤버 브라이스 데스너,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25인조 오케스트라 등 든든한 조력자가 힘을 보탰다.
현대적 서울
1999년 세상을 떠난 사진작가 한영수는 유족이 운영하는 한영수문화재단이 출간한 작품집 <서울 모던타임즈>(2014), <꿈결 같은 시절, Once Upton a Time>(2015)을 통해 다시금 주목받았다.
[culture highway] 두 거장의 만남
-
-
요즘 한 클럽만 고집하는 축구선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의리보다 돈이 우선하는 시대가 아닌가. 스티븐 제라드가 존경스러운 건 단지 AC밀란을 상대로 한 2005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0 대 3으로 뒤지던 시합을 뒤집어 승리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이스탄불의 기적’의 주인공이어서가 아니다. 1998년 리버풀에 입단해 2015년 LA갤럭시로 옮기기까지 17년 동안 줄곧 고향팀 리버풀에서만 504경기를 뛴 ‘원 클럽 맨’이라는 사실이 대단하다. 긴 세월 동안 세계 최고의 미드필드로 활약했지만, 그가 들어올린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은 단 하나도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더 많은 우승컵을 수집할 수 있었음에도 제라드는 끝내 리버풀에 남았다. 제라드만큼 리버풀을 사랑한 선수는 없었고, 그는 리버풀의 자랑거리이자 로맨티스트였다.
이 책은 선수의 일대기를 시간 순서대로 나열하는 보통의 자서전과 다르다. 프리미어리그 2013∼14시즌이 시작하기 직전부터 2014∼15시즌이 끝난 뒤
[도서] 리버풀의 로맨티스트
-
★★★★★
세상에 멎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 가운데에 데이비드 보위의 창작력도 반드시 포함될 것이다. 보위의 69살 생일에 맞춰 발매된 스물여덟 번째 앨범 《Blackstar》를 들어보아도 이런 짐작은 힘을 얻는다. 나이 든 음악가의 원숙함은 물론 미지의 영역으로 기꺼이 모험을 감행하는 패기까지 만날 수 있는 앨범이다. 그의 오랜 벗 토니 비스콘티가 변함없이 프로듀싱을 맡았고, 최근 싱글들에서 연을 맺은 도니 매캐슬린, 제임스 머피 등이 세션으로 참여했다.
콘서트 하면 이문세
‘독창회’, ‘붉은 노을’, ‘대.한.민.국 이문세’ 시리즈로 한국에서 브랜드 콘서트가 가능하다는 걸 증명해온 이문세. 그는 2015년, 극장이라는 공간을 이용한 연출이 돋보이는 <씨어터 이문세>로 총 17개 도시에서 전회 매진을 기록해 다시 한번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 현장을 즐기지 못했던 이들은 아직 아쉬워하기엔 이르다. 2월20일 대전을 시작으로 2월26일 전주, 3월4일 용인, 3월18
[culture highway] 빨간 머리 드라큘라와의 재회
-
“부모와 같은 집을 가질 수 있을까?” <청년, 난민 되다>가 던지는 질문이다. 대만, 홍콩, 일본, 한국의 젊은이들이 부모 집에서 살기를 포기하는 순간 어떤 일을 헤쳐나가야 하는지 취재를 통해 살핀 책이다. 그중 최악인 곳은 단연 홍콩이다. 평균 주택 매매 가격은 홍콩이 381만달러로, 런던의 10배, 샌프란시스코의 7배다. 주거 지옥 홍콩. 꼭대기로 올라갈수록 비싸지는 집. 홍콩은 면적이 고작 서울의 1.8배이기 때문에, 대학생들은 자취보다는 집에서 통학하거나 기숙사를 택한다. 일본의 젊은이들도 상황은 비슷한데, 25~29살 독신자 중 부모 집에 머무는 비율은 40%를 넘어섰다. 일할 수 없고 (일을 한다 하더라도) 자립할 수 없다. 그렇게 넷카페 붐이 일었다. 샤워실, 양말, 티셔츠, 맥주… 주거 난민들은 한국으로 치면 PC방이라고 할 수 있는 넷카페를 전전한다. 젊은이만 있는 건 아니다. 50대 이상이 넷카페족의 23%(2007년)를 차지했다. 상황이 바뀌리라고 낙
[도서] 부모와 같은 집을 가질 수 있을까?
-
내가 사는 집은 방은 두개지만 몹시 좁고, 한겨울 보일러 문제로 속을 썩인 적이 있는 노후 주택이다. 지금의 집에 불만이 거의 없는 이유는 교통이 편하고 대체로 한국에서 좋다고 하는 집들이 별로 욕심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간 살았거나 방문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런 집이라면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곳은 ‘실외지만 집 안인 공간’이 있는 집이다. 앞마당이나 뒤뜰, 중정이 있는 게 좋다. 한때 살았던 집처럼 욕실에 난 창문으로 무성한 숲의 꼭대기가 보이고 그 창을 통해 낮에는 불을 켜지 않아도 될 정도의 빛이 드는 정도도 좋겠다. 야마시타 카즈미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갔다. ‘다도실이 달린 전통가옥’을 직접 짓기로 결심했다. 야마시타 카즈미로 말하자면 <천재 유교수의 생활> <불가사의한 소년>을 연재하는 만화가. 그는 어느 날 망년회에서 알게 된, 전통가옥에 관심 있는 건축가와 의기투합해서 집을 짓기로 한다. 베스트셀러를 거느린 장기 연재 만화의 작가다운 호쾌함이다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돈 잘 버는 사람도 가난해지는 마법
-
코에이가 돌아온다! <삼국지 13> 한글화 확정
시뮬레이션 게임의 왕자,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가 돌아온다. 8비트 PC 시절부터 출발해 어느덧 13번째 시리즈를 발표한 <삼국지 13>은 탄생 3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전작 발매 후 4년 만에 돌아오는 <삼국지 13>은 2016년 1월28일 일본판과 대만판이 동시 발매되며 PC, PS4, X-BOX 버전으로 출시될 예정이다. 팬들이 오매불망 기다리던 한글판은 동시 발매는 아니지만 한글화를 확정짓고 번역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소장판 트레저박스 등 팬들을 위한 특별패키지와 특전도 준비 중이라니 기대를 안고 기다려보자.
노래하는 네 남자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전국투어 콘서트 <Soul 2 Real>이 지난 10주년 콘서트 이후 2년 만에 진행되고 있다. 이번 투어는 12월12일 광주에서의 공연을 시작으로 대구, 일산, 부산, 대전, 인천을 지나 내년 2월13∼1
[culture highway] 우디 앨런부터 장이머우까지
-
내게는 해묵은 호기심이 하나 있었으니, 왜 배우가 아니라 ‘여배우’라고 부르냐는 것이었다(남자배우는 남배우라고 하지 않으면서). <씨네21> 인기 연재물이었던 ‘한창호의 오! 마돈나’를 책으로 엮은 <여배우들>에는 연재 당시 읽을 수 없었던 굉장한 글을 두 꼭지 더 만날 수 있는데, ‘타자의 자리’라는 제목으로 오리엔탈리즘의 이방인으로 읽어낸 ‘여’배우의 스타 이미지에 대한 글과 마릴린 먼로에 대한 글이다. 영화산업의 시스템 안에서 ‘다른 사람에 의해 대변되어야 하는’ 여성 스타들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는 그는 그녀들이(백인이어도 금발이어도 아무리 아름다워도) 스스로가 원한 위치보다는 타자의 자리에 머물기를 강요받았던 삶의 순간들에 대해 말한다. 더불어, 2015년의 할리우드에서는 페미니즘이 유행이었고, 레드카펫에서 ‘몸을 핥듯’ 아래에서 위로 촬영하는 카메라의 시선에 대해, 그리고 페미니즘을 지지한다는 의견을 밝히는 배우들이 하나씩 늘기 시작했다. <여배우
[도서] <씨네21> ‘한창호의 오! 마돈나’를 엮은 책
-
바쁘다. 그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이유는, 살펴보고 닦고 기름치고 조여야 할 것들을 무시하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요가학원에 가서 강사의 말에 따라 반듯하게 눈을 감고 누워 있으면 갑자기 전신의 통증이 심해진다. 그냥 누워서 눈을 감고 호흡만 신경 써서 해도 그 지경이다. 삶의 문제들 역시 대체로 그러하다. 아무 생각 없이 카드를 쓰다가 재정상태를 살피는 순간, 매일 누군가와 만나다가 인간관계를 돌아본 순간, 커리어가 어쨌든 굴러는 간다 안도하다가 현재를 점검하고 미래를 모색하는 순간, 모든 것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오지은의 <익숙한 새벽 세시>의 프롤로그는 이렇게 겁을 먹고 걸음을 서두르느라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드는 이가 나 하나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한다. “어느 날 우편함을 보니 편지로 가득 차 있었다.” 시시한 고지서로는 “당신은 서른넷입니다”가 있고, 조금 심각한 편지로는 “당신이 재미있어 하던 것들이 재미없어졌다는 사실을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그림자와 놀기
-
타란티노의 소원 성취
지금까지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O.S.T는 그가 직접 선곡한 근사한 트랙들이 모인 컴필레이션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신작 <헤이트풀8> 사운드트랙의 주인공은 단 한 사람, 엔니오 모리코네다. 엔니오 모리코네가 한곡만을 작곡했던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2) 때와 달리 이번엔 영화의 모든 음악을 담당했다. <킬 빌> <데쓰 프루프>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등에서 그의 음악을 사용해온 타란티노의 꾸준한 편애를 떠올려본다면, <헤이트풀8>는 타란티노의 소원이 이루어진 결과물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새해에는 포크!
2016년 1월의 일요일에는 포크 음악가들을 만나러 가자. 홍대에 위치한 카페 벨로주가 준비한 포크 음악회다. 1월17일 강아솔, 이영훈의 듀엣 공연을 시작으로 1월24일에는 김사월X김해원, 권나무, 우주히피, 최고은이 한 무대에 오른다. 1월31일은 김창기, 김목인, 이호석,
[culture highway] 타란티노의 소원 성취
-
러시아는 우리에게 여전히 미지의 대륙이다. 흔히 서구영화라는 범주로 묶을 때 오랜 역사와 전통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영화는 생략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영화의 역사를 논할 때 러시아영화를 생략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부터 지가 베르토프,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를 지나 알렉산드르 소쿠로프까지, 영화 문외한이라도 이름은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러시아의 영화작가들은 할리우드나 유럽영화와는 또 다른, 독자적이고 견고한 미학을 구축해왔다. 세계영화의 지형도를 그린다면 러시아는 변방이 아니라 상당한 영토를 확보한 영화왕국으로 불려야 마땅하다. 올해 러시아의 할리우드로 불리는 모스필름 90주년을 맞이한 덕분인지 러시아영화를 소개하는 책 몇권이 연이어 출간됐다.
입문서를 찾는다면 데이비드 길레스피의 <러시아 영화: 문화적 기억과 미학적 전통>을 권하겠다. 데이비스 길레스피는 영국 배스대학교에서 오랫동안 러시아 문화와 영화를 연구해왔다. 20세기 러시아영화의 주요 작가와 작품
[도서] 러시아영화로 가는 문
-
다시, 날 보러와요
봉준호 감독의 걸작 <살인의 추억>의 근간이 되었던 연극 <날 보러와요>가 다시 무대에 오른다. 2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공연은 OB팀, YB팀 배우진을 나누어 진행한다. OB팀엔 이대연, 권해효, 김뢰하, 황석정, 류태호 등 익히 이름이 알려졌거나 <살인의 추억>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모였고, YB팀은 손종학을 비롯한 김준원, 김대종, 이원재, 우미화 등 젊은 배우들로 구성됐다. 늘 그랬듯, 이번 공연 역시 연출가 김광림이 총감독을 맡는다. 2016년 1월22일부터 2월21일까지, 명동예술극장.
우리 곁에 돌아온 목소리들
마음을 두드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시간이다. 단원고 아이들의 시선으로 쓰인 시집 <엄마. 나야.>가 출간됐다. 서른네명의 시인들이 세월호에서 실종되거나 희생된 서른네명의 단원고 아이들의 생일에 맞춰 가족과 친구들에게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고, 사진들을 건네받았다. 시인들이 모은 자료를 토대
[culture highway] 다시, 날 보러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