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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월룡과의 첫 조우
화가 변월룡은 한국 미술사에서 흔적조차 없는 이름이었다. 연해주에서 태어나 러시아 미술계에서 활동했던 그는 북한 미술의 초석을 마련했다고 평가받는 작가다. 변월룡의 작품 세계를 처음으로 한국에서 소개하는 대규모 회고전 <변월룡(ПенВарлен) 1916~1990>이 5월8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린다. 올해로 탄생 100년을 맞는 작가를 재조명하는 프로그램 <백년의 신화: 한국근대미술 거장전>의 첫 순서다. 북한과 러시아를 잇는 근대사의 흔적이라 일컬어도 무방할 200여 작품과 70여점의 자료가 전시된다.
서울, 디자인, 10년의 역사
서울에 자생적이고 독특한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가 하나둘 생겨난 지 어느덧 10년. 스튜디오의 규모는 작아도 디자인에 대한 그들 각자의 취향과 개성, 디자인에 대한 지향만큼은 확실하다. 일민미술관의 <그래픽 디자인, 2005-2015, 서울>전은 이들 그래픽 디자인
[culture highway] 변월룡과의 첫 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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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사용되는 초등학교 6학년용 사회과 국정교과서에 일본군 ‘위안부’라는 용어가 빠진다. ‘성 노예’라는 단어도 빠지고, 사진도 들어가지 않는다. 2014년 제작한 실험본에는 위안부 사진자료와 함께 “전쟁터에 강제로 끌려가 일본군의 성 노예가 되었다”는 사진 설명이 있었다. 초등학생 교육에 적합하지 않은 표현이라는 판단에서 이루어진 변화라고 한다. 초등학교 6학년생과 나이 차가 얼마 나지 않던 소녀들이 위안부로 끌려갔던 역사적 사실을 떠올려볼 때, 이런 결정이 역사를 제대로 교육하겠다는 행동인지 의심스럽다. 이전 교과서에도 실리지 않았던 표현이라는 해명이 있었지만,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피해자도 피해 사실도 아니라는 것을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만 든다.
이런 소식이 전해진 지난주, 일본 저널리스트 가와타 후미코의 <몇 번을 지더라도 나는 녹슬지 않아>를 읽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꾸준한 저작 활동을 해왔던 저자는 식민지 전쟁 시대를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재일 할머니들, 식민지 전쟁 시대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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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수용소 한가운데에 서다
라슬로 네메시 감독의 <사울의 아들> 개봉을 맞아 CGV압구정과 CGV여의도에서 NOON VR체험 행사를 진행한다. 35mm 필름 제작, 주인공의 시점숏, 4:3화면비율 등 파격적인 형식으로 홀로코스트 현장을 생생하게 구현한 이 작품이 VR기술을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할지 두려움 반 흥분 반이다. 3월4일부터 NOON VR 전용 앱을 통해 VR 시네마 포맷의 <사울의 아들> 예고편을 감상할 수도 있다.
추억에서 현재로
시작은 ‘토토가’였다. 지난해 이맘때 <무한도전>의 ‘토토가’를 통해 90년대 화려한 인기를 누렸던 터보가 다시 뭉쳤고, 보컬 김종국과 각기 다른 시기 활동했던 래퍼 김정남과 마이키가 모여 3인조가 됐다. 반응은 뜨거웠다. 15년 만에 발표한 앨범 《Again》은 음원사이트를 휩쓸었다. 오는 3월부터는 데뷔 20년 만에 처음으로 전국투어 콘서트를 연다. 90년대 가요계를 수놓았던 터보의 히트곡
[culture highway] 아우슈비츠 수용소 한가운데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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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담과는 다르다! 건담과는!
건담 게임이 아니다. 건프라 게임이다. 건프라 마니아들의 지갑을 털기 위해, 올 것이 왔다. 건담 브레이커 시리즈 최식작 <건담 브레이커3>가 3월3일 PS4, PS Vita 버전으로 발매된다. 건프라의 특징을 살려 경쾌한 배틀을 맛볼 수 있는 이번 <건담 브레이커3>에는 SD건담도 참전이 확정되어 좀더 다양하고 아기자기한 배틀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이번 발매는 일본 발매일과 동일한 일정이며 2월19일부터 예약판매를 시작한다. 초회동봉특전으로 현재 방영 중인 <기동전사 건담 철혈의 오펀스>의 ‘HG 건담 발바토스(제4형태)’의 파츠와 무기 데이터 일식을 얻을 수도 있으니, 팬이라면 꼭 득템하자!
뮤지컬로 만나는 윤동주
윤동주의 시가 가무극으로 재탄생한다.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는 비극의 시대에 자유와 독립을 꿈꾼 청년 윤동주의 모습을 그려내며, 그의 시를 노래와 춤으로 풀어낸다.
[culture highway] 건담과는 다르다! 건담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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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존 치버의 일기와 서간집이 출간되었다. 작가의 사후에 아들 벤저민 치버가 엮은 이 책에는, 아들로서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동성애 애인들과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편지들을 발견했을 때의 놀람과 그 편지들마저 이 서간집에 포함시킨 경위가 실려 있다. 존 치버 단편소설의 묘미를 아는 이들에게 이 편지 모음은, 소설과 그의 삶이 별반 다르지 않았나보다 생각하게 만들곤 한다. 힘 있는 단문들의 나열이 끌어올리는 몰입도는 편지에서도 그대로니까. “날씨가 흐려요. 눈이 올 것 같네요. 존 업다이크는 아프리카에 갔어요. 내 결혼생활은 바닥을 치고 있고요. 난 아침식사로 보드카를 마셔요. 스케이트도 타는데 그러고 있으면 절대적인 망각을 발견합니다.” “나는 내 뮤즈도 기다리고요. 나는 늘 사랑을 하는 쪽이었으므로- 사랑받는 쪽이 되어 본 적은 없이- 인생의 많은 시간을 기다리며 살아왔어요. 기차를, 배를, 발자국 소리를, 초인종 소리를, 편지를, 전화를, 눈을, 비를, 천둥을, 기타 등등
[도서] 존 치버의 일기와 서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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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見知り’라는 일본어 표현이 있다. ‘히토미시리’라고 읽는데, 그 뜻은 ‘낯가림’이다. 일본에는 ‘낯가림이 심하다’라는 컨셉으로 쇼 프로그램 기획을 하고 책도 쓴 개그맨이 하나 있는데 그가 바로 오도리 와카바야시다. 와카바야시는 일본 예능 프로그램 <아메토크>에서 ‘낯가림이 심한 개그맨’ 특집을 기획한 적이 있는데, 그 자신이 낯가림이 너무 심한데도 개그맨이라는 직업으로 먹고살아야 하는 데서 생기는 우여곡절이 이보다 더 웃길 수 없었다(낯선 사람과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무엇이든 글씨를 읽는다- 예컨대 음료수 캔에 쓰인 성분표시- 는 말은, 역시 낯가림으로 고생하는 나에게 공감의 폭소를 불러일으켰다).
일본에서는 개그맨의 활동 범위가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다. 마타요시 나오키는 소설 <불꽃>을 써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해 100만부 판매를 돌파했고(요즘 일본 서점에서는 마타요시가 추천한 소설들에 특별 코멘트가 붙어 광고된다), 영화감독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여기 나 혼자만은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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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씨네21>의 진득한 독자들은 그레이엄 무어의 이름에서 대번에 컴퓨터공학의 토대를 마련한 수학자 앨런 튜링의 실화를 그린 <이미테이션 게임>의 각본가를 떠올렸을 것이다. 자잘한 스탭 명단까지 꿰는 이들이 아니라면,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맑은 눈으로 불우했던 과거를 고백하며 “이상해도 괜찮아요, 달라도 괜찮아요”(Stay weird, Stay different)라고 근사한 수상소감을 전했던 한 남자를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시나리오작가로서 세간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그이지만, 그의 커리어는 2010년 소설 <셜로키언>에서 출발했다. 아주 잘 만들어진 이야기를 두고 “영화 같다”고 상찬하는 입버릇은, 그레이엄 무어의 다재다능한 행보를 두고 하는 말처럼 들린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셜록 홈스와 앨런 튜링을 연기했다는 점 외에도, <셜로키언>과 <이미테이션 게임>은 서로 닮은 구석들이 여럿 있다. 우선 두 작품 모두
씨네21 추천 도서 <셜로키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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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불안에 침잠하는 게 아니라 세계의 불안과 마주하고 있는 소설이다. 이 불안은 소설 속에서 어떤 인물도 무너뜨리지 못하며 또한 어떤 사건도 파국으로 이끌지 못한다. 다만 그것은 지루하면서도 때론 희극적으로 반복될 뿐이다.” 한국 문단의 사랑을 받고 있는 소설가 최정화의 데뷔작 <팜비치>에 대한 평. 2012년 겨울과 2015년 봄 사이에 발표했던 단편들이 묶인 첫 소설집 <지극히 내성적인>은 앞선 분석이 멀리까지 내다본 혜안이었음을 드러내는 증표다. 불안은 10개의 이야기를 통해 변주되며 한껏 뚜렷해졌고, 이는 고스란히 이제 막 단행본을 손에 쥔 소설가의 명백한 인장이 됐다. 그녀를 불안을 조용히 따라가는 소설가라고 부르고 싶다.
최정화 소설 속 불안은 다양한 사람들의 마음에 인다. 가정부 면접을 보러온 여자가 안주인 자리를 차지할 거라는 망상은 커지고(<구두>), 잘 나기만 했던 남편이 틀니를 하게 되자 그를 무시하게 되고(<틀니&g
씨네21 추천 도서 <지극히 내성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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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독이는 에세이군은 베스트셀러 동네의 꾸준한 터줏대감 노릇을 해왔다. 단번의 독서처럼 되도록 간편한 방법으로 삶의 지혜를 얻고 싶은 희망 때문일 것이다. 법륜 스님은 그 가운데에서 유독 많은 사랑을 받아온 한국 대중의 대표적 멘토다. 그의 에세이는 그간 숱하게 책으로 만났던 종교 인사들의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이른바 ‘즉문즉설’(卽問卽說)을 통해 전하는 간단하고 시원시원한 가르침은 연애와 결혼생활, 보육, 청춘 등 특정한 키워드를 경유해, 길을 더듬는 대중에게 상세한 안내가 됐다. 그저 예쁘고 평화로운 말로 채우는 법을 구태여 우회한 법륜은 경전을 자기 식으로 풀어낸 <금강경 강의>, 당대의 한국을 진단하고 미래를 내다본 <쟁점을 파하다> 같은 저서를 발표하며 뿌리인 종교와 터전인 현실 사회를 붙드는 균형도 잊지 않았다.
법륜의 신간 <법륜 스님의 행복>(이하 <행복>)은 단도직입적이다. 1988년 <실천적 불교사상>
씨네21 추천 도서 <법륜 스님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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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내 마음만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불가피하게 엮인 잡다한 관계들에 치이고 치이다 거꾸러진 채로 중얼거리곤 한다. 기댈 곳 없이 홀로 살아가는 척박함이 무엇인지, 타인과의 갈등을 딛고 마침내 깨닫게 되는 만족이 얼마나 값진지 알면서도, 닳아진 생의 의지를 목격할 때마다 우린 이런 기분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리고 다시 어쩔 도리 없이 관계 안으로 투신해,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희망을 따라가는 게 내일의 일이다.
<씨네21>의 2월 북엔즈에서는 서로 다른 타인들이 경험하는 관계의 면면을 그린 책들을 모았다. <법륜 스님의 행복> <지극히 내성적인> <셜로키언>. 일상을 사는 각박함보다는 사람과 사람이 만났을 때 작동하는 새로운 것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책들이다.
<법륜 스님의 행복>은 법륜 스님이 지금껏 발표한 책들의 에센스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법륜 스님은 자신과의 갈등을 단정하게 정리하고, 더 나아가 세상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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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의 처음
최근 고전의 초판본을 그대로 살린 책들이 베스트셀러의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과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를 발간한 출판사 소와다리가 이번엔 백석의 <사슴> 초판 복각판을 내놓는다. 1936년 당시 100부만 제작돼 그 모습조차 구경하기 힘들었던 전설적인 시집 <사슴>을 애초의 그 모습 그대로 소장할 수 있게 됐다. 부지런한 독자들에게 부록으로 나무펜과 펜촉을 사은품으로 제공하는 초판본 <사슴>은 사전예약만으로 인터넷 서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섰다. 예약을 서두르자.
문소리를 무대에서 만나다
김영하의 장편소설 <빛의 제국>이 무대에 오른다. 서울로 남파된 스파이가 모든 걸 정리하고 평양으로 귀환하라는 지령을 받은 후 벌어지는 24시간을 그린 <빛의 제국>은 한반도의 역사와 개인의 문제를 서늘하게 써내려간 소설이다. 지난해 객석점유율 95%를 기록
[culture highway] 응답하라, 누벨바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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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로 보는 <이미테이션 게임>
플레인 아카이브에서 <이미테이션 게임> 넘버링 한정판 블루레이를 출시한다. <이미테이션 게임>(감독 모튼 틸덤)은 제2차대전에서 암호를 푼 앨런 튜링(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실화를 다룬 영화다. 디자인에 따라 렌티큘러 풀슬립 케이스 A, 반투명 PET 풀슬립 케이스 B 등 두 버전으로 출시된다. 버전 상관없이 소책자, 캐릭터 엽서 세트, 트레이딩 카드가 한정판 특전으로 제공된다. A, B버전 각각 2천장, 1500장 한정판이라고 하니 서두르자. 현재 플레인 아카이브 홈페이지에서 프리오더를 접수 중이다.
한국을 사랑한 팝스타
한국은 해외 뮤지션의 라이브를 만나기엔 불모지에 속하지만, 한국을 찾았던 몇몇 스타들은 팬들의 열띤 호응에 반해 재차 내한해 특별한 에피소드를 남기곤 한다. 미카는 그 가운데서도 유독 한국을 사랑하는 가수다. 첫 내한부터 순식간에 티켓이 매진된 데 이어 팬들로부터 노래 <We Are G
[culture highway] 당신은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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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은 그 어느 해보다도 ‘페미니즘’이라는 말이 전세계적으로, 특히 한국에서 많이 들린 해였다. 하지만 여전히 그 단어를 주홍글씨 취급하는 시선은 만연해서, 여성인권에 대해 말하다 보면 이런 질문을 받곤 한다. “당신은 왜 자신을 여성으로만 봅니까? 왜 그냥 인간으로 보지 않습니까?”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에서 이 질문을 보고 비명을 지를 뻔했다. 이런 멍청한 질문이 한국 밖에서도! 페미니스트란 말이 굳이 필요하냐고, 그냥 인권옹호자라고 하면 안 되느냐고?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에게 왜 당신 자신을 노동자로만 보느냐고 묻지 않는다. 흑인인권운동을 하는 사람에게 왜 자신을 피부색으로만 판단하느냐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성운동에는 꼭 저런 말이 붙는다. 여성운동 말고도 세상에는 신경써야 할 가난, 불평등, 전쟁이 너무 많다고. 세계 인구의 52%를 차지하는 여성들이 여성이라는 젠더 때문에 공통적으로 겪는 불평등(한국의 남녀 임금 불평등은 OECD 중
[도서] 오늘날의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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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일을 업으로 하게 된다면 가능한 한 일찍 겪어보면 좋은 것이 ‘(제대로 된) 엄격한 교정’이다. 오탈자 잡기는 기본이고, 습관적으로 반복해 적는 군더더기 표현들을 지운 뒤, 어색한 표현이나 문장 호응을 맞게 수정하고 나면 글이 다이어트라도 한 양 확 줄어드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나도 신의 손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교정지를 들고 그 선배에게 가서 “굳이 왜 이렇게 고쳐야 합니까?”라고 따졌다. 설명을 들으며 이유를 납득했고, 이후로는 그 선배가 고치는 부분을 눈여겨봤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를 읽으며 그때 생각이 났다.
원고 교정에 대한 필자들의 원성(혹은 원한)을 모아 책으로 만든다면 지구 세 바퀴 반을 돌 정도로 많다. 최근 책을 낸 사람을 만나 물어보라. 그들의 불만을 요약하면 이렇다. “꼭 이렇게까지 고쳐야 해?” 문법적으로 틀리지 않았다면 그냥 고치지 말고 그대로 두고 싶다는 말이다. 서투른 교정자들이 문장의 뜻을 바꿔버리는 실수를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꼭 이렇게까지 고쳐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