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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탐정>(1990)은 하드보일드 소설가 하라 료의 유일한 단편집이다. 이 소설집 역시 첫 소설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1988)부터 줄곧 작가가 페르소나로 삼아온 사립탐정 사와자키가 주인공이다. 한때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사와자키는 전 주인의 이름을 고스란히 남긴 와타나베 탐정 사무소를 운영하는 중년의 탐정이다. 탐정의 전형이라 일컬어지는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스나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와 영 딴판인 그는 하라 료의 독보적인 스타일로 그려져 나름의 존재감을 떨치며 일본을 대표하는 마초 캐릭터로 자리매김했다.
“현실의 냉혹하고 비정한 일을 감상에 빠지지 않고 간결한 문체로 묘사하는” 것이 하드보일드의 정체라면 <천사들의 탐정>은 어쩌면 하드보일드와 거리가 먼 여섯(혹은 일곱) 가지 이야기로만 채워졌다 할 만하다. 제목의 ‘천사들’은 저마다 다른 곤경에 처해 있는 10대 아이들을 뜻한다. 엄마를 살리고 싶은 소년, 섹스 중독의 아버
씨네21 추천 도서 <천사들의 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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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 때마다/ 아카시아꽃이 눈처럼 쏟아졌다/ 작은 꽃들이 하얗게/ 잡목으로 찌든 숲에/ 내 발길에 내려앉았다.”(시 <황방산의 달> 중에서) 전주에서 나고 자라 중년이 된 현재까지도 그곳을 떠나지 않은 이병초 시인은 어려서부터 보아온 산에 대한 시 <황방산의 달>로 문단에 나왔다. 데뷔부터 고향의 풍경과 추억을 노래한 그는 시작을 이어오는 와중에도 좀처럼 다른 곳에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다만 그 풍경을 둘러싼 말들은 갈수록 다채로워졌다. 추상보다는 구체적인 이미지를, 다듬어진 표준어보다는 꾸밈없는 방언을 추구한 덕에 이병초 시 속의 고향 전주는 세월을 거듭하며 새로운 옷을 갈아입었다. 그의 시는 눈으로 훑을 때보다 입으로 읊을 때 보다 선명해졌다.
<살구꽃 피고>(2009) 이후 7년 만에 발표한 세 번째 시집 <까치독사>의 시편을 소리내어 읽어보면 전작과의 차이가 금방 떠오른다. 바로 거센소리와 된소리의 활용이 잦다는 것. 낭
씨네21 추천 도서 <까치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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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텔 톤 배경에 분방한 손글씨로 적힌 제목, 한가운데 떡하니 버티고 선 (일러스트레이터 박오롬이 그린) 분명한 표정의 주인공과 그 옆 아담한 구름까지.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2013)가 지난해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 <오베라는 남자>(2012)를 쓴 스웨덴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의 또 다른 작품이라는 걸 알아차리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표지뿐만 아니라 그 안을 들여다보면 좀체 다가서기 어려운 만만찮은 성격의 등장인물들, 사건과 갈등의 연속 끝에 이루어지는 가족과 이웃간의 화해, 웃음과 눈물을 자유롭게 오가는 전환 등 닮은 구석이 많다. 다만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는 데뷔하기 전 작가가 블로그에 연재하기 위해 쓴 <오베라는 남자>에 비해 더 소설 같다. 첫 소설의 어마어마한 성공 이후 본격적인 소설가로 발을 내디딘 후 내놓는 작품이라 작품에 담긴 고민의 흔적이 역력하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씨네21 추천 도서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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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소설가, 극작가, 배우, 영화감독, 가수, 인권 운동가…. 이토록 수많은 역할을 능히 해낸 사람이 있다.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명에 손꼽히는 마야 안젤루가 그 주인공이다. 그녀가 전방위 활동에 걸쳐 펼친 올곧은 주장은 마틴 루터 킹, 버락 오바마, 오프라 윈프리 등 시대를 뒤흔든 인사들에게 거대한 ‘말씀’이 되었다. 빌 클린턴은 1993년 대통령 취임식에서 그녀의 시 <아침의 맥박>(On the Pulse of Morning)을 낭송한 바 있다.
2014년 5월 세상을 떠난 마야 안젤루가 살아생전 마지막으로 내놓은 작품은 자서전 <엄마, 나 그리고 엄마>(2013)였다. 길었던 삶의 끝을 눈앞에 둔 수많은 이들이 자신의 뿌리를 더듬었던 것처럼, 그녀 역시 어머니 비비언 백스터를 회고했다. 스스로 사진가 같은 기억력을 자랑하던 마야 안젤루는 날 때부터 눈감는 그 순간까지 어머니의 삶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그리고 그 시간에 자신의 삶을 가만
씨네21 추천 도서 <엄마, 나 그리고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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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소셜 브레인>이 출간된 이래 꾸준히 한국에 소개되고 있는 작가 오카다 다카시. 그는 학부에서 철학을 전공하다 그만두고 의대에 들어가 정신과 의사가 됐다. 독특한 이력의 영향은 그의 저서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오카다 다카시의 책은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는 마음의 부침을 듣기 좋은 말로 어루만지는 방향으로 향하지 않고 특정한 징후를 파고들어 이를 의학 이론을 토대 삼아 설명하는 길을 택해왔다. 전문적인 용어가 간간이 등장하지만 글은 술술 읽힌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서로를 미워한다.” 오카다 다카시의 근작 <나는 왜 저 인간이 싫을까?>는 책을 열며 순자의 말을 인용한다. 사람이 누군가를 미워하는 건 선천적이라는 선언으로 시작하는 셈. 그는 “인간이 인간을 과도한 이물질로 인식하고 심리적으로 거부반응을 보이는 증상”이라는 뜻의 조어 ‘인간 알레르기’를 제시하며, 의학적인 접근으로 미움을 탐구한다. 인간 알레르기의 개념으로부터 발을 뗀 <나는
씨네21 추천 도서 <나는 왜 저 인간이 싫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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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다른 시선으로 가까운 주변을 바라보는 책 다섯권이 5월 북엔즈에 꽂혔다. 마야 안젤루는 죽음을 앞두고 쓴 자서전으로, 프레드릭 배크만은 발랄하지만 외로운 7살짜리 소녀를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로 가족간에 나누는 화해와 용기를 그린다. 미스터리 탐정물에 천착해온 하라 료는 투박하지만 푸근한 탐정을 내세워 험난한 세상에 자기 식대로 뛰어드는 10대들을 담는다. 오카다 다카시는 인문학과 의학을 경유해 우리가 타인을 미워하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를 분석한다. 이병초 시인은 제 고장 전주의 여기저기를 바라보며 2016년의 한국을 생각한다.
미국의 거대한 지성, 마야 안젤루는 6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분야를 가리지 않고 활동하며 흑인과 여성의 인권을 위해 애썼다. 자신의 어머니에게 바친 <엄마, 나 그리고 엄마>는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바로 전해 어머니날에 발표한 마지막 책이다. 평생에 걸쳐 나눈 모녀의 정은 마야 안젤루의 파란만장한 생만큼이나 값진 가르침으로 가득하다.
다섯 가지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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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의 바디무비’라는 제목으로 <씨네21>에 1년여간 연재되었던 소설가 김중혁의 에세이가 책으로 묶여나왔다. 책 제목은 <바디무빙>. ‘버디무비’의 패러디에서 시작된 제목이 멀리까지도 갔다. 연재 당시에 만날 수 없었던 그의 그림도 다수 실렸다. 그림일기 형식인 ‘몸의 일기’와 다소 정색하고 신체 부위에 대해 설명하는 ‘믿거나 말거나 인체사전’이 바로 그렇게 추가된 그림과 글이다. ‘귀’에 대한 설명은 “청각과 평형감각을 담당하는 부위로서 외이, 중이, 내이로 구분할 수 있다”라고 시작해서 “주변을 둘러보면 나이가 많을수록 남의 말을 잘 듣지 못하는 ‘꼰대형 청력상실증 환자’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환자들의 특징 중 하나는, 청력이 약해지면서 말이 점점 많아지는 것이다”라고 뻗어간다.
“마흔을 넘기니 몸 여기저기에서 슬슬 이상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우선, 눈이 침침해지기 시작했다. 이십대 때는 눈에 불을 켜고 책을 읽었지만, 열심히 눈을 써도 혹
[도서] 소설가 김중혁의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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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남산한옥마을에는 타임캡슐 광장이라는 게 있다. 서울이 수도로 정해진 지 600년을 기념해 1994년, 보신각종 모양을 본떠 만들어졌는데 당시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600점의 물품이 담겨 있고, 2394년 11월29일에 개봉예정이다. 그 안에 들어 있는 물건 목록을 보고 있자면, 벌써 낯설어진 삐삐가 있는가 하면… 학교 시험지와, 무려 정력팬티도 들어 있다. 1994년의 사람들은 그 시대를 보여주는 물건으로 정력팬티를 생각했던 걸까. 리스트에서 정력팬티를 발견하고 얼이 빠졌던 기억을 되살린 것은 설치미술가이자 사진작가인 소피 칼의 <시린 아픔>, 그리고 이번에 아라리오뮤지엄에서 엮은 <실연의 박물관> 두권의 책이다. 소설가 백영옥은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에서 실연의 기념품(차마 버리지 못한 채 가지고 있는 옛 연인의 물건들)을 교환하는 모임에 대해 쓴 적이 있었다. 소피 칼의 <시린 아픔>은 이별 극복기를 사진으로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헤어짐을 기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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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파주보존센터 건립을 기념해 특별전을 개최한다. ‘영화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부제로 개최되는 이번 특별전에서는 <전함 포템킨> <네 멋대로 해라> <시민 케인> 등 영화사의 걸작과 우수 복원작 42편을 무료 상영한다. <오발탄>의 디지털 복원판도 최초 공개될 예정이다. 5월20일부터 6월17일까지 상암동 시네마테크 KOFA에서 관람할 수 있다. 자세한 상영일정은 영상자료원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뮤지컬의 고전 <노트르담 드 파리>
1998년 프랑스에서 초연한 이후 현재까지도 그 명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뮤지컬계의 고전, <노트르담 드 파리>가 다시 한번 한국 관객과 만난다. 오리지널 크리에이터들이 참여하는 건 물론이고 프랑스에서 직접 공수해온 세트로 무대를 꾸밀 예정. 캐스팅도 화려하다. 홍광호, 케이윌, 윤공주, 전나영, 마이클 리,
[culture highway] ‘영화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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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는 옷깃을 스치는 것도 전생에 억만겁의 인연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인간이 많다 보면 인연이 아니어도 옷깃을 스치는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하는 책이다. 저자 데이비드 핸드는 런던 임페리얼 칼리지 수학과 명예교수 겸 선임연구원으로 2008년부터 왕립통계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유럽에서 수익률이 가장 높은 알고리즘 매매 헤지펀드 중 하나인 윈턴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고문이기도 하다고 소개되어 있다. 자연의 통계법칙에 대해 다루는 이 책은, 미신과 종교, 예언부터 우연을 설명하는 여러 법칙에 대해 알기 쉽게 안내한다. 각종 징크스에 시달리는 스포츠 팬이나, 우연이 필연이라고 믿고 불행의 사이클에 빠져든 사람이라면 한번 읽어보시길. 숫자공포증이 있는 사람들도 재미있게 읽을 만한 내용이 많다. 예언에 대해 다루는 초반부는 특히 재미있다. “우리 눈에 띄지만 어떤 원인도 없고 단지 우연인 패턴은 보통 미신의 기반을 이룬다. 미신
[도서] 우연을 설명하는 여러 법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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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르디올라, 결국 하인케스 그늘 못 벗어났다.’ 지난 5월4일,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4강전에서 바이에른 뮌헨이 결승 진출에 실패하자 한 스포츠 매체의 기사에 달린 헤드라인이다. 재임 기간인 3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한 펩 과르디올라 뮌헨 감독을 두고 전임 감독인 유프 하인케스와 비교하며 비꼰 것이다. 임기 내내 구단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까닭에 과르디올라로선 어떤 비판을 받더라도 할 말은 없겠지만, 이런 식의 비교는 옳지 않다. 축구란 강팀이 언제라도 질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닌가. 어쨌거나 과르디올라는 크라위프로부터 물려받은 자신의 축구 철학을 바이에른 뮌헨에 접목시켜 독일축구와 전세계 축구계에 새로운 축구 바람을 일으켰다. 기자로서 취재원을 아주 가까이서 따라다니며 취재할 수 있는 기회는 드물다. <과르디올라 컨피덴셜>은 축구 기자라면 누구나 배 아파할 책이다. 스페인 축구 기자인 마르티 페라르나우가
[도서] 새로운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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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와 닉을 책으로 만나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토피아>의 영화적 순간을 모은 아트북이 국내 정식 출간됐다. 토끼 경찰관 주디 홉스, 여우 사기꾼 닉 와일드, 나무늘보 플래시 등 주인공들이 그려진 영화 속 멋진 장면과 동물 도시 주토피아의 곳곳을 담은 컨셉아트가 담겨 있다. 제작진의 설명이 추가된 도시 탄생 비하인드도 엿볼 수 있다.
망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총체적인 예술 협업 프로젝트 <망상지구>전을 기획했다. 현실과 망상의 경계에 놓인 동시대 상황에 대한 은유를 담은 작품들이다. 뮤지션 장영규, 달파란의 사운드 작업, 미디어 작업을 해온 김세진, 박용석의 영상, 사진영상작가 윤석무와 디제잉 분야에서 활약해온 정태효 작가의 실험을 한자리에서 만난다. 총 4개 존(zone)으로 구성된 전시는 4월27일부터 7월17일까지 열린다.
노장의 영화론
시드니 루멧 감독이 지난 40여년 동안 수많은 영화인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면서 느낀 회
[culture highway] 주디와 닉을 책으로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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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을 줄 알게 된 이래로 나는 추리소설을 좋아했다. 밤새 책을 읽게 만든 셜록 홈스 시리즈, 용돈으로 한권씩 사모으던 해문의 애거사 크리스티 전집, 그리고 (지금 와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두뇌 계발에 좋다던 미스터리 퀴즈 모음집, 성교육 교재를 대신했던 시드니 셸던의 반전 멜로 미스터리 서스펜스 소설(드라마로 치면 막장 드라마였다)들까지. 그러다 잡지 말미 일종의 게시판 코너에 글을 싣게 되었는데, 추리소설을 바꿔 보고 예쁜 엽서를 교환하자는 제안이었다. 그렇게 아저씨들과 바꿔 본 소설들은 충격과 공포였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은 식이며, 대체로 엇비슷했다. 남자주인공은 아내 혹은 딸을 강간살해로 잃은 뒤 복수하기 위해 원수의 아내 혹은 딸을 강간살해한다….
추리소설이라는 대분류 안에는 무수한 세부 장르가 있다. 그리고 현대 스릴러물에 가까울수록, 범인의 잔인함과 영리함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탐정이나 형사 주변의 여자들이 수난을 겪는 일이 많다. 영화로 예를 들자면, &l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왜 탐정 주변의 여자들은 고통받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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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영웅은 언제나 환영
향후 블리자드를 먹여살릴 기대작 <오버워치>가 5월24일, 드디어 출시된다. 블리자드가 처음 시도하는 미래형 FPS <오버워치>는 영웅 캐릭터별로 개성 넘치는 전투를 이끌어갈 수 있는 신개념 FPS다. 발매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5월5일부터 9일까지 오픈베타 테스트가 진행되니 관심 있는 사람은 미리 체험해봐도 좋을 것이다. 자막 및 성우 음성까지 완전 한글화를 거친 <오버워치>는 온라인 게임치고 드물게 패키지로 발매되며 일반판은 4만5천원, 소장판은 6만9천원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얼마나 풍성할지 기대해보자.
‘찰리 푸스’를 아시나요?
미국의 젊은 싱어송라이터 찰리 푸스가 8월18일 오후 8시 예스24 라이브홀에서 첫 내한공연을 갖는다. 그는 <분노의 질주: 더 세븐>의 주제곡 <See You Again>을 불러 빌보드 싱글 차트 12주 연속 1위에 오른 놀라운 신예다. 이 곡은 불의의 사고
[culture highway] 새로운 영웅은 언제나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