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집 한달 전기요금은 500엔입니다.” 부부와 아이 둘이 사는 도쿄 교외의 집,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싶다. <궁극의 미니멀라이프>를 쓴 아즈마 가나코가 많이 듣는 말은 그래서 당연하게도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에요?”라고. 세탁기 없이 대야로, 청소기 없이 빗자루로, 냉장고 없이 저장식품으로 전기 없는 생활을 꾸려간다고 한다. 돈 대신 노동력을 쓰기로 결심한 생활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보면, 노동력을 제공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저 모든 가전제품이 있다 해도, 가전제품 혼자 일을 하지는 않으니 그 경우에도 노동력은 필요하다. 빨래를 색깔이나 옷감 등으로 구분해 몇번이고 세탁기를 돌리고 털어 말린 뒤 개는 과정을 떠올려보라.
<궁극의 미니멀라이프>는 그런 이유로, 미니멀리즘에 대한 책이자 가사노동에 대한 책이 된다. 이런 식이다. 아즈마 가나코의 집에는 전구 3개가 전부다. 거실과 부엌, 목욕탕에 한개씩 있다. 부엌의 조명은 거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친환경 살림의 연료는?
-
French Spirit!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잔다라 페스타 2016>에서 프랑스의 인디밴드 여섯팀의 무대가 열린다. 마르세유 출신의 3인조 밴드 차이니스 맨은 록, 솔, 펑크, 일렉트로닉 장르를 아우르며 턴테이블 스킬을 선보일 예정이다. 밴드 컬러스 인더 스트리트, 3인조 콜트 실버스는 강렬한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자랑한다. 통렬한 사회비판으로 유명한 더 디지 브레인스, 듀엣 코코모의 70년대풍 사운드도 놓치기 아쉽다. 여기에 밴드 텔레페릭의 록 사운드도 귀를 자극한다. 10월2일 밤 10시 홍대 무브홀에서 진행되는 이번 공연의 자세한 소식은 www.facebook.com/zandarifesta에서 확인 가능하다.
대륙의 북디자인을 만나다
중국 북디자인계의 스승처럼 여겨지는 1세대 디자이너 뤼징런의 북디자인 전시가 열린다. <전승과 창조-뤼징런의 북디자인과 10명의 제자展>이다. 뤼징런이 지금까지 40년간 작업해온 도서 표지, 삽화
[culture highway] French Spirit!
-
청춘은 몇몇의 얼굴로 기억된다. 백수린의 두 번째 소설집 <참담한 빛>에는 그 얼굴들을 자꾸만 돌이켜보는 인물들이 나온다. <짝사랑>의 주인공 ‘나’는 대학 시절 짝사랑하던 선배와의 만남을 앞두고 원피스를 장만하기 위해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일하는 내내 ‘나’는 머릿속으로 J선배와의 기억들을 곱씹는다. “여전히 기특하구나. 술집의 소음은 물 밖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아득했고, 선배의 그 말 한마디가 또렷이 귓가에 울렸다. 나는 정말 기특한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뿌듯한 기분이었다. 열심히 해라. 나는 정말 무엇이든 열심히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스트로베리 필드>의 ‘준’은 유학 시절 추억이 녹아 있는 런던 곳곳을 여행하며 ‘주드’의 고백을 되새긴다. “주드를 향해 품었던 감정, 나를 매일같이 달뜨게 하고, 숨 쉴 수 없게 하고, 비참하게 하던 감정 역시 가뭇없이 사라져 나의 일상은 바람 빠진 색색의 고무공처럼 초라해졌다. 나 혼자만 남아서
[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참담한 빛>
-
17세기 네덜란드 상류층에서는 캐비닛을 가꾸는 취미가 유행이었다. 정교하게 조각된 캐비닛을 그보다 더 정교한 미니어처 조각들로 채우는 일은 귀족과 부자들이 교양과 재력을 과시하는 수단이었다. 당시 네덜란드는 해상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 거상들이 늘어나면서 사치와 투기 풍조가 만연했다. 캐비닛에는 개개인의 생활 감각이나 인생관이 담기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세계를 갖고 싶어 했던 정복욕이 잔뜩 묻어 있었다. 영국 출신의 작가 제시 버튼은 휴가차 방문한 네덜란드의 한 박물관에서 ‘미니어처 하우스’라는 전시품을 보고 작품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이후 4년에 걸친 자료조사와 집필을 통해 인간 내면에 자리한 깊숙한 욕망을 건드리는 데뷔작 <미니어처리스트>를 완성했다.
시골 출신의 소녀 넬라는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거상 요하네스와 결혼한다. 남편이 대개 부재하는 대저택에는 그녀 말고도 시누이 마린, 하인 오토와 코넬리아가 함께한다. 그들은 은밀하고
[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미니어처리스트>
-
-
셜록 홈스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직접적인 리메이크나 패러디가 아니더라도 홈스와 맞닿아 있는 숱한 영화, 드라마, 뮤지컬, 연극, 소설들이 자취를 감춘다면 세상은 그만큼 시시해질 거다. 셜록 홈스는 허구의 인물 중에 가장 많이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진 캐릭터로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렸다. <BBC> 드라마 <셜록4>의 예고편이 수많은 셜로키언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요즘, 셜로키언이 아니어도 누구든 열광 할 만한 셜록 홈스 소설 장편 전집이 나왔다. 잘 알려진 대로 <주홍색 연구> <네 사람의 서명> <바스커빌 가문의 사냥개> <공포의 계곡> 네권으로 이뤄져 있다. 셜록 홈스 시리즈를 통해 탐정은 좀더 정밀하고 과학적인 직업으로 재탄생했고, 추리소설은 ‘추론을 통한 두뇌게임’이라는 양식을 확립했다. 56편의 단편과 함께 셜록 홈스 시리즈를 구성하는 네편의 장편소설은 추리소설의 원형이라고 할 만한 이야기들로 꾸려
[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셜록 홈즈 전집 장편 세트>
-
‘커피 한잔 할까요?’ 허영만 화백 작품 중 처음 접하는 청유형의 제목이다. 제목부터 한잔을 권하는 <허영만의 커피 한잔 할까요?>를 읽고 있자면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이 간절해진다. 최고급 커피든 인스턴트 커피든 검고 쓴 커피의 향과 맛을 모르는 사람은 없기에 공감의 폭도 넓다. 5화 에피소드 중, 지하철에 탄 주인공이 살포시 원두 봉지의 소매를 열자 잔뜩 찌푸린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그 장면에서 누구나 종이를 뚫고 전해지는 커피향을 느낄 테다.
<허영만의 커피 한잔 할까요?>에는 장인의 호칭이 손색없는 바리스타 ‘박석’과 그가 운영하는 테이블 두개짜리 카페, ‘2대카페’가 나온다. 또 경력이라곤 동네 작은 카페에서 몸 쓰는 일을 도맡던 경험이 전부인 제자 ‘강고비’가 있다. “혀는 확실해야 하고 머리는 유연해야 해. 다른 커피에 대한 무관심은 우리에겐 죄다.” “프로는 자기 개성이 확실해야 하며 반대편이나 아무것도 모르는 손님의 취향을 이해하고
[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허영만의 커피 한잔 할까요?>
-
‘시절’에는 ‘세상의 형편’이란 뜻이 있다. 그 의미를 곱씹어볼 때, 시절은 서사에 더없이 훌륭한 질료다. 픽션으로만 구성된 9월의 북엔즈에는 한 시절을 생생히 묘사하는 작품 네권이 꽂혔다. 허영만 화백의 신작 만화 <허영만의 커피 한잔 할까요?>는 커피 한잔에 위로받는 사람들과 그들이 살아가는 현재를 그려낸다. <셜록 홈즈 전집 장편 세트>에서는 셜록 홈스가 태어나고 활동했던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생활상이 묻어난다. <미니어처리스트>는 사치와 투기 광풍이 불었던 17세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배경으로 하고, 마지막으로 <참담한 빛>은 사회적 참사가 개인의 고통으로 치환되는 현실을 담고 있다.
한국 만화계의 대들보 허영만 화백이 도박, 관상, 팔도의 음식을 거쳐 주목한 소재는 커피다. 커피 장인으로 통하는 주인공 박석은 “드릴 수 있는 것은 오직 커피뿐”이라는 말과 함께 가난한 예술가, 창업을 준비하는 청년,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도서] 시절을 질료로 삼다
-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애타게 오스트 출시를 기다리던 ‘아가씨갤러’(이하 아갤러)들의 숙원은 결국 이루어졌다. 8월25일 <아가씨>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이 출시됐다. 출시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 만큼 조영욱 음악감독의 주옥같은 곡들이 무려 38곡이나 수록되어 있다(가인과 민서가 부른 <임이 오는 소리>도 포함되어 있다). 앨범 재킷이 히데코와 숙희 두 버전으로 출시됐으니 취향대로 고르면 되겠다.
작품에 묻은 세월
국립현대미술관이 과천 이전 30주년을 맞아 그간의 소장품을 중심으로 한 특별전을 연다. 전시의 제목은 <달은, 차고, 이지러진다>. 내년 2월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300여 작가의 소장품과 소장 자료, 신작 등 560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미술관의 대부분을 전시공간으로 활용한 이번 전시는 ‘해석’, ‘순환’, ‘발견’ 3부로 구성되고, 다양한 퍼포먼스들이 전시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펼쳐진다.
늦여름, 반딧불이
무주의 반딧불
[culture highway]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은 뭐라고 정의하려고 하면 단어의 사이로 도망가는 것 같다. 아마도 시간의 흐름에도 살아남은 대부분의 예술작품이 그러하리라. 시인 마크 스트랜드는 <빈방의 빛: 시인이 말하는 호퍼>라는 책으로 호퍼의 그림을 글로 옮겨보고자 한다. 그림이 등장하고 글이 따른다. 1963년작 <빈방의 빛…>에 대해 스트랜드는 “호퍼의 방들은 욕망의 침울한 안식처다. 우리는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싶지만, 물론 알 수가 없다. 본다는 행위에 수반되는 침묵은 커져만 가고, 이는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 호퍼에 대한 해설이 아니라 감상이고, 호퍼에 대한 글인 동시에 그림에 대한 글이고, 또한 마크 스트랜드 자신에 대한 글이다. 그리고 당연히, 세 번째에 가장 방점이 찍혀 있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찬찬히 살피며 다른 누군가와 대화하는 기분으로 읽으면 좋은 책. 스트랜드의 글을 읽다보면, 수평과 수직의 직선이 분할하는 공간들 사이의 틈
[도서] 그 찬란한 고독의 순간
-
“작가가 된다는 것은,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제2의 존재와 그 존재를 만들어낸 세상을 인내심을 가지고 오랜 세월 동안 노력하여 발견하는 것입니다. ‘글쓰기’라고 하면 먼저 소설, 시, 문학적 전통과 같은 것들이 아니라 방 안에 틀어박혀 책상 앞에 앉아서 홀로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하여 단어들로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이가 눈앞에 떠오릅니다.” 오르한 파묵의 이 글은, 그의 에세이집 <다른 색들>의 맨 마지막 9부 ‘아버지의 여행가방’에서 인용한 것이다.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문인 이 글은 시인을 꿈꾸었던 아버지가 어느 날 그에게 주고 간, 그간 쓴 글이 담긴 가방에 대한 것이다. 그의 소설만 읽었던 나는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 직후에 이 글을 읽었고, <다른 색들>에 수록된 문장, 풍경을 즐거운 마음으로 600쪽이나 읽은 끝에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여행가방’과 재회했을 때, 목이 메는 것을 느꼈다. 이미 알고 있는, 심지어 좋아했던 글을, 처음 읽었을 때와는 완전히 다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작가로 산다는 것
-
10살 된 대단한단편영화제
올해로 10년차 영화제로 자리잡은 대단한단편영화제가 9월1일부터 7일까지 홍대 KT&G 상상마당
시네마에서 열린다. 본선 진출작 25편은 물론이고 특별전의 주인공들도 눈여겨보자. <우리들>의
윤가은 감독 특별전에서는 <사루비아의 맛> <손님> <콩나물>이 상영된다. 배우 특별전의 주인공은 <남매> <바캉스> 등에 출연한 이상희 배우다. <문영> <연애경험> <전학생> <졸업여행> <타이레놀>이 단편 초청 섹션에서 상영된다.
전설의 밴드, 비틀스, 산타나, 토토를 한 무대에서
‘살아 있는 전설’이라는 수식어는 너무 뻔하다. 하지만 그 대상이 비틀스 멤버라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긴 힘들 거다. <500일의 썸머>의 그 까다로운 썸머조차 애정을 고백한 남자, 비틀스의 드러머 링고 스타가 내한 공연을 갖는다. 1963년에
[culture highway] 10살 된 대단한단편영화제
-
애플뮤직 한국 서비스가 시작된 뒤 음악 듣는 재미가 커졌다. 열흘쯤 지나자 눈에 익은 곡들만 보였다! 나는, 힙합과 R&B를 많이 듣고, 비발디와 바흐를 비롯한 바로크 시대 건반악기곡을 좋아하고, 재닛 잭슨과 휘트니 휴스턴, 에이미 그랜트를 비롯한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의 여성 팝보컬리스트의 노래를 반복 청취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안에서 큐레이션은 아무리 돌고 돌아봤자다. 바다는 넓다는데 속초 앞바다만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큐레이션 서비스는 안전하다. ‘당신이 좋아할지도 모를’ 음악이나 책을, 기존 데이터(유사한 취향을 지닌 다른 유저들의 이용 결과를 포함하는)를 통해 골라준다. 내가 하는 일도 그런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쯤은 숫자와 고유명사에 어두운 나보다 컴퓨터쪽이 더 능할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오스카리아나>는 그런 고민의 연장에서 만난 특이한 책이다. 세상 웬만한 명언의 발화자를 찾아보면 십중 이삼은 오스카 와일드가 했다고 한다. <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정연히 골라 더 빛나는
-
독일어권 삼국의 포스터를 만나다
매년, ‘100 Best Poster Association’에서는 독일어권 국가를 대상으로 100장의 독특하면서도 재치 있는 포스터 디자인을 선정한다. 수상작은 독일의 베를린, 에센, 뉘른베르크,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도른비른 그리고 스위스의 루체른과 라쇼드퐁 등에서 전시가 열리는데 올해는 최초로 서울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8월13일부터 27일까지 KF갤러리에 마련되는 <100 베스테 플라카테: 100개의 베스트 포스터 2015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D.A.CH>는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삼국의 현 그래픽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살필 수 있는 자리다.
니들이 그림을 아냥?
<고양이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어머니가 남긴 뚱보 고양이 자라투스트라를 촬영하는 동안 슬럼프로부터 자신을 일으킬 수 있게 된 작가이자 미술 큐레이터 스베틀라나 페트로바의 신개념 서양미술사다. 넉넉한 몸매의 고양이 사진을 명화에 넣어
[culture highway] 독일어권 삼국의 포스터를 만나다
-
미국, 중국, 일본은 신문의 외교면 앞자리를 번갈아 차지하는, 한국의 가장 친숙한 이웃 나라들이다. 하지만 친숙한 것과 잘 아는 것은 다르다. 미국의 세계 정책에 대해선 어느 정도 말할 수 있어도 총기사고가 왜 그리 빈번히 발생하는지는 제대로 설명하기 힘들다. 일본에서 오타쿠 문화가 확산된 계기나 중국 대중이 구글 대신 바이두를,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대신 웨이보와 위챗을 쓰는 이유를 말하는 건 쉽지 않다. 한국의 독자들을 위해 현대 미국, 중국, 일본의 정치·경제·문화·생활상을 담은 교양서가 나왔다. ‘이만큼 가까운’이란 제목처럼 세 나라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을 알려주는 시리즈물이다. 현대의 미국, 중국, 일본을 설명하는 데 필수적인 정보는 물론 한국 대중이 흔히 갖고 있는 오해까지 꼼꼼히 짚고 넘어간다. 각국에 대해 오래 연구해온 학자들이 국가별로 저술을 맡았다. <이만큼 가까운 미국>에서는 미국인의 삶과 문화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핵심적인 가치관으로 개인
[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이만큼 가까운 미국> <이만큼 가까운 중국> <이만큼 가까운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