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들고 파주로
휴식에 필요한 것 두 가지만 꼽으라면, 단연 책과 음악이다. 12월24일, 30일, 31일 파주출판도시 지혜의숲과 게스트하우스 지지향에서 ‘책과 휴식이 있는 하룻밤 동안의 음악회’ <ROUND MIDNIGHT>가 열린다. 행사는 밤 9시부터 이튿날 새벽 5시까지 이어진다. 참가자들은 밤 9시부터 전체 프로그램이 끝나는 시간까지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다. 밤 10시부터는 ‘미드나잇 북토크’가 시작된다. <그래도, 사랑>의 정현주 작가, <신과 함께>의 주호민 작가, 정신과 의사 윤대현이 독자들 앞에 선다. 북토크가 끝나면 밤 11시부터 ‘미드나잇 콘서트’가 이어진다. 조정희 쿼텟, 피아니스트 성현, 9와 숫자들, 안녕하신가영 등 다양한 장르 음악이 연주된다. 콘서트까지 끝나면 작은 서점들이 엄선해온 책을 구입할 수 있는 ‘새벽의 책방들’이 시작된다. 헬로 인디북스, 프레드릭, 책방무사가 판매자로 참여한다.
황홀한 이브의 전야제
[culture highway] 책 들고 파주로
-
“슈티플러, 과거가 당신을 잡으러 왔어.” 경험 많은 형사 에릭 슈티플러에게 전화 한통이 걸려 온다. 발신자의 목소리는 낯설지만 번호만큼은 익숙하다. 에릭의 내연녀, 아나벨의 번호다. 전화를 받자마자 찾아간 강가에서 에릭은 온갖 부유물들과 함께 널려 있는 아나벨의 시체를 발견한다. 희생자의 배 위엔 에릭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에릭은 그날로 강변 살인 사건의 수사팀을 꾸린다. 경찰대를 갓 졸업한 25살 신입 경찰관 마누엘라 슈페를링은 서장의 지시로 팀에 합류한다. 패기로 똘똘 뭉친 마누엘라는 자신을 따돌리는 마초적인 동료들과 뭔가를 숨기는 듯한 에릭을 벗어나 홀로 현장을 뛰어다니며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려 분투한다. 며칠 후, 에릭의 전처 카티 또한 같은 방식으로 익사한 채 발견된다.
독일의 작가 안드레아스 빙켈만은 <사라진 소녀들> <창백한 죽음> <지옥 계곡> 등 순수한 악과 생존 본능을 대변하는 이들의 사투를 그린 스릴러 소설을 써왔다. 전작
[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물의 감옥>
-
잘하는 일을 할 것인가 좋아하는 일을 할 것인가. <양과 강철의 숲>은 좋아하는 세계에 우연히 발들인 후, 부족한 재능을 채우고자 애쓰는 평범한 청년 도무라의 직업 분투기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 도무라는 학교 체육관에서 우연히 조율사 이타도리가 피아노를 조율하는 걸 지켜보게 된다. 조율을 마치고 가볍게 친 피아노 소리에서 도무라는 가을 숲냄새를 느낀다. 도무라의 인생이 바뀌던 순간이다. 욕심도 꿈도 없던 도무라는 그날로 조율사의 꿈을 품는다. 소설에는 조율 전문학교를 수료한 도무라의 견습생활이 중점적으로 묘사된다. 피아노의 건반을 누르면 양철로 된 해머가 강철로 된 현을 두드리며 소리를 낸다. 이런 피아노의 구조와 원리, 그리고 도무라가 꿈꾸는 세계에서 책 제목, ‘양과 강철의 숲’이 나왔다.
책에서 눈여겨볼 것은 일을 대하는 도무라의 태도다. 그는 고객과 상사의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한다. 조율을 마치고 나오면, 차를 타자마자 그날의 작업을 메모한다. 피아노에도 클
[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양과 강철의 숲>
-
지하철에서 성추행하는 남자에겐 니킥을 꽂고,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얌체 운전을 하는 운전자를 끝까지 쫓아가 한마디 하는 여자. 법원에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들어섰다가 손가락질을 받자 이내 시위하듯 부르카로 갈아입고 나오는 여자. 20대 중반의 젊은 신입 판사 박차오름은 인터넷에선 ‘미스 함무라비’로 통한다. 법관의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옷차림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의 태도 때문이다. 하지만 박차오름 판사가 해석하는 함무라비 법전의 의미는 조금 다르다. “평민이나 노예가 귀족이나 힘 있는 사람의 털끝 하나만 실수로 건드려도 목이 날아갈 수 있었던” 고대에, “피해와 동일한 만큼의 처벌만 허용한다는 것은 사람들의 복수를 엄청나게 제한한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편견, 권위 따위에 굴하는 법이 없는 박차오름 판사와 서울중앙지법 44부 판사 동료들은 서로를 거울삼아 성장해나간다.
<미스 함무라비>는 문유석 작가가 2015년 봄 <한겨레>에 연재했던 소
[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미스 함무라비>
-
-
호주의 유명 정치평론가 애너벨 크랩은 ‘아내’를 이렇게 정의한다. “집 안 여기저기 쌓여가는 무급 노동을 더 많이 하려고 유급 노동을 그만둔 사람.” 작가는 ‘아이가 있는 두 부모 가족’의 경우 이 노동자의 존재는 여성임이 당연시되고 남성의 전유물로 인지되는 현실을 지적하며 <아내 가뭄>의 서두를 연다. 불평등한 가사 노동의 현실을 요목조목 짚어내는 이 책에서 많은 사례는 어린 자녀 셋과 전일제로 일하는 남편을 두고 역시나 ‘일하는 엄마’로 살아가는 작가 본인의 경험담에서 비롯한다. 일하는 시간이 불규칙한 탓에 어린이집을 보낼 수가 없자 저자는 자녀를 안고 식탁 앞에 서 원고를 쓰고, 아이를 일터에 데리고 다니며 ‘현대의 철인5종경기’를 펼친다. 그런 그에게 일상처럼 따라오는 질문들이 있다. “어떻게 그 모든 일을 다 해요?”, “피곤하지 않으세요?”, “애들은 누가 봐요?” 역시나 “여러 가지 일을 묘기에 가깝게 해내”는 남편에겐 아무도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작
[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아내 가뭄>
-
러시아의 문호 이반 투르게네프는 인간을 두 종류로 나누었다. 햄릿 아니면 돈키호테다. 그가 본 돈키호테는 이상에 대한 애착에 사로잡혀 있고 그 이상을 위해서라면 어떤 고통도 견딜, 심지어 목숨까지 희생할 각오가 돼 있는 인물이다. 반면 햄릿은 분석적이고 꼼꼼히 따지는 태도와 자의식의 상징이다. 그외에도 독일의 대문호 괴테, 실존주의의 선구자 니체,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 등 숱한 지성인들은 <햄릿>에 대해 저마다의 주석을 달았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이처럼 시대별로 수많은 비평과 분석을 덧입으며 고전 중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해왔다. 창비세계문학 시리즈의 50번째 작품 <햄릿>에는 <햄릿> 속 캐릭터와 극적 장치들에 대한 고전적 비평이 실린다.
부록이 아무리 탄탄해도 가장 중요한 건 본문이다. 역자는 주요 판본 중 하나인 해럴드 젱킨스가 편집한 <아든 셰익스피어: 햄릿>에 다른 판본의 내용을 종합해 원문을 풍부하게 구성했
[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햄릿>
-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다.” 햄릿의 가장 유명한 독백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뒤따른다. “어느 쪽이 더 장한가. 포학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마음으로 받아내는 것, 아니면 환난의 바다에 맞서 무기 들고 대적해서 끝장내는 것?(후략)” 최근 <햄릿>의 새로운 번역본을 내놓은 설준규 박사는 뒤따르는 이 대사들을 토대로 저 유명한 문장을 새롭게 해석했다. “이대로냐, 아니냐, 그것이 문제다.” 단지 삶과 죽음에 대한 문제뿐 아니라 현 상태를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할 것인지의 갈림길에서 나온 질문이라는 게 번역자의 생각이다. 올해의 마지막 북엔즈에는 ‘이대로냐, 아니냐’ 하는 절체절명의 질문 앞에서 보다 근본적인 삶의 변화를 모색하길 택한 책 다섯권이 꼽혔다.
셰익스피어 문학의 정수 <햄릿>의 주인공 햄릿은 문학사상 가장 유명한 캐릭터 중 하나다. 햄릿은 억울하게 독살당한 선왕의 복수를 위해 거짓으로 미친 체한다. 그 과정에서 사
[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 변화를 이야기하는 책 다섯권
-
사랑하는 사람의 진심을 알기 위해서는 무엇을 봐야 할까? 소설 <녹색광선>의 주인공 헬레나 캠벨에게는 생각한 바가 있었다. 하일랜드(스코틀랜드 고지대) 지방의 전설에 따르면, 녹색광선은 그것을 본 사람으로 하여금 사랑의 감정 속에서 더이상 속지 않게 해주는 효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가 사망한 뒤 두 독신 삼촌의 손에서 애지중지 키워진 헬레나는 결혼 전에 이 녹색광선을 보겠다고 마음먹는다. 조카의 결혼이 이제 유일한 목표인 두 삼촌은 자신들의 기준에 부합하는 젊은 학자(이름이 아리스토불러스 어시클로스인데, 이름만 봐도 쥘 베른이 이 남자를 신랑감으로 생각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를 신랑감으로 점찍고는, 녹색광선을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수평선으로 해가 질 때, 기상 상황에 따라 잠깐 스쳐간다는 녹색광선을 찾아서. 어딘가에서 들어본 이야기 같은가? 에릭 로메르의 <녹색광선>에 이 소설이 언급되고, 주인공 델핀은 녹색광선을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진심이 있는 곳
-
낙서는 위대하다
대세는 힙합이다. 힙합 음악이 대중음악의 주류로 자리잡으면서 힙합 문화의 일부인 그래피티 또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12월9일부터 2017년 2월26일까지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선 국내 최초 그래피티 뮤지엄쇼인 <위대한 낙서>전이 열린다. 바스키아, 키스 해링과 함께 그래피티 아티스트 운동을 선도한 크래시, 뱅크시가 존경하는 아티스트로 유명한 닉 워커 등 세계 최정상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전시될 예정이다. 작가 중 일부는 내한해 라이브 페인팅을 선보인다. 미술사가 이현이 진행하는 무료특강과 음악평론가 김봉현, 재즈칼럼니스트 황덕호 등이 강사로 나서는 화요 특강 등 다양한 부대행사도 준비돼 있다. 동시대 예술의 최전선을 맛보자.
황우럭을 아십니까
제주 지역 언론에 실린 시사만화의 50여년 역사를 망라한 책 <제주 시사만화연대기>(팬덤북스 펴냄)가 출간됐다. 3년 전부터 제주 지역에 정착해 살고 있는 김성훈 만화비평가가 제주 언론에
[culture highway] 낙서는 위대하다
-
환갑을 눈앞에 둔 여성이 칠순을 넘긴 남성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구술했다. <아저씨 도감>에서 ‘아저씨’로 규정되는 나이가 여기서는 ‘할배’가 된다는 생각해볼만한 차이점이 있기도 하거니와, <할배의 탄생>의 부제는 무려 ‘어르신과 꼰대 사이, 가난한 남성성의 시원을 찾아서’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을 거쳤고, 결혼을 하기도 하고 못하기도 했다. 그 사이의 무수한 한국의 가난한 삶의 결을 읽을 수 있다. 가난하고 보수적인 남성성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그나마 남성인 사람들과 여성인 사람들간의 차이도, 그들이 의도했건 그렇지 않건 시종일관 눈에 띄는데 그것은 최현숙씨가 대화의 상대로서 기능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군대, 여자, 돈. 40년대에 태어난 남자에게만 이 세 가지가 중요했을 것인가. 그들은 과거의 사람이 아니라 현재에 속해 있다. 가난했지만 내 인생은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생각, 강한 사람에게 붙어야 한다는 논리, 분열은 안 되니
[도서] 어르신과 꼰대 사이, 가난한 남성성의 시원을 찾아서
-
<아저씨 도감>은 일본 일러스트레이터 나카무라 루미가 그리고 쓴 일본 아저씨 관찰의 결과물이다. 일본 아마존 코믹 에세이 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이 책은 직업이나 취미, 외모에 따른 아저씨 분류법을 보여준다. 그냥 중년 남성이면 다 아저씨 아닌가 생각할 수 있으나, ‘아저씨’로 통칭되는 그들이 얼마나 다양한 외모와 분위기, 행동양식을 보여주는지를 그림과 글로 보여준다. 알고 있는 아저씨의 특징을 떠올리며 책을 보면 무릎을 치게 되는 대목이 많은데, 예를 들면 ‘예술가 아저씨’는 디자인 계통과 순수예술 계통+페스티벌 계통으로 나뉜다. ‘기발한 옷을 입지는 않았지만, 바지를 접어 올려서 양말을 슬쩍슬쩍 내보이며 맵시를 뽐내는 아저씨’는 그림을 보면 내가 아는 디자인 사무실 남자 대표님들 룩이고, ‘딱 달라붙는 타이츠도 그렇고, 온몸이 하이패션 브랜드 같지만 뭐라 말하기 힘들다’는 일단 아저씨 일러스트레이터 중에 꽤 많이 본 모습이다. 아저씨와 아줌마의 차이를 쓴 부분도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아저씨 탐구생활
-
뮤지컬로 만나는 백석의 시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모티브를 딴 동명의 뮤지컬이 나왔다. 백석과 그의 연인 자야 김영한의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여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시인 백석을 그린다. 백석의 시를 뮤지컬 넘버로 만날 수 있는 귀한 시간이다. 백석 역에는 강필석, 오종혁, 이상이가, 자야 역에는 정인지와 최연우가 캐스팅됐다. 11월5일부터 내년 1월22일까지 드림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시대와 호흡하다
‘나쁜 년’과 ‘미스 박’으로 상처받았던 기분이 치유되는 느낌이랄까.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었는데/PRADA SHOES/한짝만 남았어.” 팬덤의 리더이자 래퍼인 ‘키겐’의 새 싱글 <PRADA SHOES>(Feat. ESBEE)가 12월1일 자정을 기점으로 전 온라인 음원 사이트들을 통해 발매되었다. <깨달음> <현대 의학의 힘> <
[culture highway] 뮤지컬로 만나는 백석의 시
-
나에게는 ‘육아와 함께 사라진’ 친구 명단이 있다. 함께 일하는 호흡이 가장 잘 맞은 동료, 통찰력이 뛰어나고 글을 잘 썼던 친구 등이 한명씩 사라졌다. 그녀들에게는 가정이 최우선이고, 친정과 시댁 어르신들, 아이의 육아와 관련된 선생님들이나 학부형들이 그다음이다. 그 사이에 직장을 어떻게든 끼워넣어야 한다. 사교 생활은 그것들을 중심으로 재편된다. 여자에게만 육아가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적극적인 육아를 하다 상담치료를 받는 남자들이 있다. 아이가 웃으면 고통이 사라지는 것 아니냐고 무자식 상팔자 같은 소리를 했더니 단호한 답이 돌아왔다. “아이가 예쁜 것은 예쁜 것이고, 힘든 것은 힘든 것이다.”
친구들이 사라졌다고 투덜거렸지만, 사실 내가 아는 숱한 엄마, 아빠들은 아이를 위해, 그리고 지구의 미래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사람들이고, 나는 세금 납부와 기부 활동으로 지구 아이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노력한다. 거기까지다. 나는 아이 없이 살기로 했다. 잘 교육받고 부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통신 끝
-
더 늦기 전에!
올 한해 상영한 다양성영화 중 29편을 선정해 재상영하는 앙코르전 ‘늦어도 11월에는’이 필름포럼에서 열린다. 11월30일부터 12월6일까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환상의 빛>, 제이 로치의 <트럼보>, 필립 가렐의 <인 더 섀도우 오브 우먼>, 미셸 프랑코의 <크로닉>, 자비에 지아놀리의 <마가렛트 여사의 숨길 수 없는 비밀> 등 상영기간이 짧아 미처 챙기지 못했던 영화들, 다시 한번 관람해도 아깝지 않을 영화들을 다시 불러모았다. 상영작 중 <트럼보> <백엔의 사랑> <립반윙클의 신부> <트루스> <헝거> <아이 인 더 스카이>는 영화 관계자들의 GV도 마련된다.
지브리와 재즈와 크리스마스
올 연말엔 지브리 음악들을 재즈풍으로 즐겨보자. 2011년부터 매년 한국을 방문해온 가즈미 다테이시 트리오가 지브리 음악을 연주하는 <지브리, 재
[culture highway] 더 늦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