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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퍼거슨은 남아프리카 지역에 관한 특수한 질문과 논쟁에서 시작해 <분배정치의 시대> 집필에 착수했다. 점증하는 불평등과 구조적 실업(과 잉여노동)에 대한 그의 관심사를 따라가다 보면, 분배라는 말이 포퓔리슴이라는 단어와 함께 쓰이며 혐오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한국의 사정이라고 뭐 크게 다른가 싶어진다. 퍼거슨은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미국인들은 일의 세계에서 주변화된 사람들, 특히 어떤 종류든 사회적 지급을 받는 사람들을 기생충으로 조롱하고 폄하하는 데 익숙하다. 나는 자기 나라 국민의 ‘99퍼센트’를 차지하는 ‘민중’이 ‘개·돼지처럼’ 취급받아야 한다는 충격적인 주장을 펼친 한국 교육부 고위관료에 관한 기사를 읽으면서 비슷한 사고방식을 발견했다.”
그러면 분배와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퍼거슨의 생각은 한국의 민중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분배정치의 시대>의 원제인, 물고기를 주라는 주장은 어떤가. “어떤 사람에게 물고기를 그냥 준다면 그를 하루만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분배에 찬성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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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포르나세티
2013년, 밀라노 트리엔날레 디자인 뮤지엄에서 피에로 포르나세티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대규모 전시가 열렸다. 전시는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2015년 파리 장식 미술관에서의 순회 전시로 이어졌다. 바로 그 전시가 한국에 상륙했다. 아시아에서는 최초다. 지난해 11월 말부터 진행되어온 <FORNASETTI 포르나세티 특별전>은 3월19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배움터에서 계속된다. 1300여점의 전시작품은 대부분 밀라노 포르나세티 아카이브가 선정했으며, 화가 포르나세티로서의 작업, 건축가 지오 폰티와의 콜라보레이션, 아들 바르나바가 이어가는 최근 작업까지를 담고 있다.
호러가 되어 돌아온 좀비 게임의 왕자
<바이오 하자드6> 이후 5년 만에 돌아온 시리즈의 최신작이다. 1월24일 발매를 앞두고 있는 <바이오 하자드7>은 주인공, 스토리, 플레이 방식 모두 혁신적으로 변경될 예정이다. 3인칭 TPS로 다양
[culture highway] 21세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포르나세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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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마 히로키는 <체르노빌 다크 투어리즘 가이드>를 쓴 작가로, <후쿠시마 제1원전 관광지화 계획>도 펴낸 바 있다. 전자는 한국에서도 출간되었는데, 원자력발전소 사고현장을 관광지로 소비하는 게 올바른가에 대해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주었다. 아즈마 히로키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원자력발전소 사고와 향후 가동여부와 관련된 일반인들의 공감대를 넓힐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노벨문학상을 받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체르노빌의 목소리>(체르노빌 방사능 유출사고로 인해 피폭당한 벨라루스 사람 100여명을 인터뷰했다)를 마무리하면서 그렇게 원폭 피해 현장을 관광하는 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을 적은 바 있다. 관광지화되면 그저 구경거리로 전락할 위험을 막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또한 일반인들도 사고현장의 모습을 가까이서 경험하고 원자력 발전의 위험을 실감할 수 있으리라. 아즈마 히로키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이런 주장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메타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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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바구니 채우는 소리가 들린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시나리오가 추가로 출간됐다. <아가씨>(2016) 시나리오에 이어 박찬욱 감독과 정서경 작가가 함께 쓴 <친절한 금자씨>(2005),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 <박쥐>(2009)의 시나리오들도 각각 책으로 엮었다. 온라인 서점에선 <아가씨> 각본집을 제외한 다른 세권의 책을 한 세트로도 판매한다. 각본집을 펴낸 출판사 ‘그책’이 “4종 중 2권 이상 구매할 경우 각본집 표지 이미지로 만든 래핑 페이퍼 증정 이벤트도 곧 마련할 예정”이라 전했으니 기대해보자.
웰컴 투 라샤펠 월드
초현실주의 미학에 사회적 메시지를 녹여내는 사진작가 데이비드 라샤펠의 작품이 한국에 도착했다. <데이비드 라샤펠: 인스케이프 오브 뷰티(INSCAPE OF BEAUTY)> 사진전이 서울 종로구 아라모던아트뮤지엄에서 내년 2월26일까지 열린다. 네 구간으로 나뉜 전시에서 가장 먼저
[culture highway] 장바구니 채우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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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고양이 없어”라는 트위터 농담이 있다. … 아니다. 사실 농담은 아니다. 다들 진지하다. 타임라인에는 늘 누군가가 웃긴 고양이, 예쁜 고양이, 애교 있는 고양이, 카리스마 있는 고양이, 자는 고양이, 우는 고양이, 새끼 고양이, 나이 든 고양이 사진을 올리거나 리트윗하고 있다. 고양이에 대한 화제가 많아지고 다양해졌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길냥이 두 마리의 집사임을 밝힌 뒤 새삼스럽게 트위터 스타가 되었다. 고양이는 출판계에서도 시장이 확장일로에 있는 드문 영역 중 하나다. 12월 신간 릴리즈를 보면 매주 한권의 페미니즘 도서와 한종의 고양이 관련 책이 출간된다.
소설 <고양이는 내게 행복하라고 말했다>는 인생이 잘 풀리지 않는 시기에 도달한(일도 안 풀려 가족은 사고쳐, 그리고 화룡점정으로 애인은 바람을 피워) 주인공이 “나 좀 들여보내줄래?”라는 고양이의 말을 듣는 것으로 시작한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식의 ‘일과 사랑, 사랑과 일’ 사이에서 무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나만 고양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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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화원으로 초대합니다
인도 여행 중 부모를 잃은 소녀 메리는 삼촌의 대저택에서 함께 살게 된다. 그곳에서 비밀의 화원을 발견하고는 마음씨 좋은 하녀 마사와 마사의 동생 디콘, 그리고 몸이 허약한 사촌 콜린과 화원에서 우정을 쌓아나간다. <소공녀>와 함께 미국 작가 프랜시스 버넷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동화 <비밀의 화원>의 줄거리다. 이 명작 동화를 읽지 말고 체험해보자. 국내외 20여명의 작가가 <비밀의 화원>을 주제로 기획전을 꾸렸다. 총 네 부분으로 나뉘는 전시를 따라가다보면 동화 속 비밀의 화원을 거닐고 있는 듯 생생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내년 3월5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는 부암동에 위치한 서울미술관에서 즐길 수 있다.
<슈퍼 마리오 런>, 국내 도입이 시급합니다
닌텐도가 처음 내놓은 모바일 게임 <슈퍼 마리오 런>이 12월15일 출시된 지 4일 만에 4천만 다운로드를 돌파했다. <포켓몬 GO>
[culture highway] 비밀의 화원으로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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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좋지 않다. 글은 작가가, 디자인은 미술팀이, 인쇄는 인쇄소가, 판매는 서점이 하는데 편집자는 중간에서 심부름을 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식의 몰이해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편집자 부부가 주인공인 야마다 에이미의 소설 <A2Z>는 인기 작가를 섭외하기 위해 부부 사이에도 경쟁하는 모습이 등장했다. 마쓰다 나오코의 <중쇄를 찍자!>는 만화 원작이 드라마로 만들어져 인기를 끌며 팔리는 책을 만들기 위한 신참 편집자의 고군분투를 현실적으로 보여주었다. 가와사키 쇼헤이의 <중쇄 미정>은 소형 출판사 편집자의 이야기를 담은 만화다. 소형이라고는 해도 편집장, 부편집장, 고참 편집자, 주인공인 신참 편집자, 영업부장과 영업자까지 있다. <중쇄 미정>은 정말 하나하나를 다 짚어가며 말한다. ‘제시간’이라는 말에는 설명이 달려 있다. “많은 편집자가 늘 고민하는 문제. 한바탕 일을 치르고 난 뒤부터는 신기하게도 제시간에 맞춰 일을 한다.” 이 ‘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놀지 마시고 원고를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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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들고 파주로
휴식에 필요한 것 두 가지만 꼽으라면, 단연 책과 음악이다. 12월24일, 30일, 31일 파주출판도시 지혜의숲과 게스트하우스 지지향에서 ‘책과 휴식이 있는 하룻밤 동안의 음악회’ <ROUND MIDNIGHT>가 열린다. 행사는 밤 9시부터 이튿날 새벽 5시까지 이어진다. 참가자들은 밤 9시부터 전체 프로그램이 끝나는 시간까지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다. 밤 10시부터는 ‘미드나잇 북토크’가 시작된다. <그래도, 사랑>의 정현주 작가, <신과 함께>의 주호민 작가, 정신과 의사 윤대현이 독자들 앞에 선다. 북토크가 끝나면 밤 11시부터 ‘미드나잇 콘서트’가 이어진다. 조정희 쿼텟, 피아니스트 성현, 9와 숫자들, 안녕하신가영 등 다양한 장르 음악이 연주된다. 콘서트까지 끝나면 작은 서점들이 엄선해온 책을 구입할 수 있는 ‘새벽의 책방들’이 시작된다. 헬로 인디북스, 프레드릭, 책방무사가 판매자로 참여한다.
황홀한 이브의 전야제
[culture highway] 책 들고 파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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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티플러, 과거가 당신을 잡으러 왔어.” 경험 많은 형사 에릭 슈티플러에게 전화 한통이 걸려 온다. 발신자의 목소리는 낯설지만 번호만큼은 익숙하다. 에릭의 내연녀, 아나벨의 번호다. 전화를 받자마자 찾아간 강가에서 에릭은 온갖 부유물들과 함께 널려 있는 아나벨의 시체를 발견한다. 희생자의 배 위엔 에릭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에릭은 그날로 강변 살인 사건의 수사팀을 꾸린다. 경찰대를 갓 졸업한 25살 신입 경찰관 마누엘라 슈페를링은 서장의 지시로 팀에 합류한다. 패기로 똘똘 뭉친 마누엘라는 자신을 따돌리는 마초적인 동료들과 뭔가를 숨기는 듯한 에릭을 벗어나 홀로 현장을 뛰어다니며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려 분투한다. 며칠 후, 에릭의 전처 카티 또한 같은 방식으로 익사한 채 발견된다.
독일의 작가 안드레아스 빙켈만은 <사라진 소녀들> <창백한 죽음> <지옥 계곡> 등 순수한 악과 생존 본능을 대변하는 이들의 사투를 그린 스릴러 소설을 써왔다. 전작
[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물의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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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는 일을 할 것인가 좋아하는 일을 할 것인가. <양과 강철의 숲>은 좋아하는 세계에 우연히 발들인 후, 부족한 재능을 채우고자 애쓰는 평범한 청년 도무라의 직업 분투기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 도무라는 학교 체육관에서 우연히 조율사 이타도리가 피아노를 조율하는 걸 지켜보게 된다. 조율을 마치고 가볍게 친 피아노 소리에서 도무라는 가을 숲냄새를 느낀다. 도무라의 인생이 바뀌던 순간이다. 욕심도 꿈도 없던 도무라는 그날로 조율사의 꿈을 품는다. 소설에는 조율 전문학교를 수료한 도무라의 견습생활이 중점적으로 묘사된다. 피아노의 건반을 누르면 양철로 된 해머가 강철로 된 현을 두드리며 소리를 낸다. 이런 피아노의 구조와 원리, 그리고 도무라가 꿈꾸는 세계에서 책 제목, ‘양과 강철의 숲’이 나왔다.
책에서 눈여겨볼 것은 일을 대하는 도무라의 태도다. 그는 고객과 상사의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한다. 조율을 마치고 나오면, 차를 타자마자 그날의 작업을 메모한다. 피아노에도 클
[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양과 강철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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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성추행하는 남자에겐 니킥을 꽂고,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얌체 운전을 하는 운전자를 끝까지 쫓아가 한마디 하는 여자. 법원에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들어섰다가 손가락질을 받자 이내 시위하듯 부르카로 갈아입고 나오는 여자. 20대 중반의 젊은 신입 판사 박차오름은 인터넷에선 ‘미스 함무라비’로 통한다. 법관의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옷차림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의 태도 때문이다. 하지만 박차오름 판사가 해석하는 함무라비 법전의 의미는 조금 다르다. “평민이나 노예가 귀족이나 힘 있는 사람의 털끝 하나만 실수로 건드려도 목이 날아갈 수 있었던” 고대에, “피해와 동일한 만큼의 처벌만 허용한다는 것은 사람들의 복수를 엄청나게 제한한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편견, 권위 따위에 굴하는 법이 없는 박차오름 판사와 서울중앙지법 44부 판사 동료들은 서로를 거울삼아 성장해나간다.
<미스 함무라비>는 문유석 작가가 2015년 봄 <한겨레>에 연재했던 소
[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미스 함무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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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유명 정치평론가 애너벨 크랩은 ‘아내’를 이렇게 정의한다. “집 안 여기저기 쌓여가는 무급 노동을 더 많이 하려고 유급 노동을 그만둔 사람.” 작가는 ‘아이가 있는 두 부모 가족’의 경우 이 노동자의 존재는 여성임이 당연시되고 남성의 전유물로 인지되는 현실을 지적하며 <아내 가뭄>의 서두를 연다. 불평등한 가사 노동의 현실을 요목조목 짚어내는 이 책에서 많은 사례는 어린 자녀 셋과 전일제로 일하는 남편을 두고 역시나 ‘일하는 엄마’로 살아가는 작가 본인의 경험담에서 비롯한다. 일하는 시간이 불규칙한 탓에 어린이집을 보낼 수가 없자 저자는 자녀를 안고 식탁 앞에 서 원고를 쓰고, 아이를 일터에 데리고 다니며 ‘현대의 철인5종경기’를 펼친다. 그런 그에게 일상처럼 따라오는 질문들이 있다. “어떻게 그 모든 일을 다 해요?”, “피곤하지 않으세요?”, “애들은 누가 봐요?” 역시나 “여러 가지 일을 묘기에 가깝게 해내”는 남편에겐 아무도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작
[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아내 가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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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문호 이반 투르게네프는 인간을 두 종류로 나누었다. 햄릿 아니면 돈키호테다. 그가 본 돈키호테는 이상에 대한 애착에 사로잡혀 있고 그 이상을 위해서라면 어떤 고통도 견딜, 심지어 목숨까지 희생할 각오가 돼 있는 인물이다. 반면 햄릿은 분석적이고 꼼꼼히 따지는 태도와 자의식의 상징이다. 그외에도 독일의 대문호 괴테, 실존주의의 선구자 니체,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 등 숱한 지성인들은 <햄릿>에 대해 저마다의 주석을 달았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이처럼 시대별로 수많은 비평과 분석을 덧입으며 고전 중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해왔다. 창비세계문학 시리즈의 50번째 작품 <햄릿>에는 <햄릿> 속 캐릭터와 극적 장치들에 대한 고전적 비평이 실린다.
부록이 아무리 탄탄해도 가장 중요한 건 본문이다. 역자는 주요 판본 중 하나인 해럴드 젱킨스가 편집한 <아든 셰익스피어: 햄릿>에 다른 판본의 내용을 종합해 원문을 풍부하게 구성했
[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햄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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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다.” 햄릿의 가장 유명한 독백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뒤따른다. “어느 쪽이 더 장한가. 포학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마음으로 받아내는 것, 아니면 환난의 바다에 맞서 무기 들고 대적해서 끝장내는 것?(후략)” 최근 <햄릿>의 새로운 번역본을 내놓은 설준규 박사는 뒤따르는 이 대사들을 토대로 저 유명한 문장을 새롭게 해석했다. “이대로냐, 아니냐, 그것이 문제다.” 단지 삶과 죽음에 대한 문제뿐 아니라 현 상태를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할 것인지의 갈림길에서 나온 질문이라는 게 번역자의 생각이다. 올해의 마지막 북엔즈에는 ‘이대로냐, 아니냐’ 하는 절체절명의 질문 앞에서 보다 근본적인 삶의 변화를 모색하길 택한 책 다섯권이 꼽혔다.
셰익스피어 문학의 정수 <햄릿>의 주인공 햄릿은 문학사상 가장 유명한 캐릭터 중 하나다. 햄릿은 억울하게 독살당한 선왕의 복수를 위해 거짓으로 미친 체한다. 그 과정에서 사
[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 변화를 이야기하는 책 다섯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