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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지은 이의 바람을 담아낸다. <혼자를 기르는 법>의 주인공, ‘이시다’의 이름에는 “훌륭한 분이시다”, “귀한 몸이시다”라는 표현처럼 남들에게 대접받고 살라는 아버지의 뜻이 담겨 있다. 하지만 성을 떼고 보면 그의 이름은 부하 혹은 아랫사람을 뜻하는 속어에 불과하다. 예상대로 그는 ‘시다씨’로 불린다. 귀한 뜻을 타고 태어나 누군가의 부하 직원으로, 사회의 부품으로 살아가는 인생. 주인공 이시다뿐 아니라 일인분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모든 ‘혼자’들의 몫이다.
<혼자를 기르는 법>은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만화가인 김정연이 2015년 말부터 연재한 웹툰 중 200여 가지 에피소드를 모은 책이다. 이시다와 햄스터 쥐윤발이 동거하는 자취방 한칸이 만화의 주된 무대다. 치열하고 소소한 일상에서 작가가 마주한 통찰의 순간들을 관통하는 것은 관조의 태도다. 인스턴트로 끼니를 때우며 살다가 나중에 썩지 않는 방부제 미라가 되는 것을 걱정하고 중장비보다 더 긴 노동시간
[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혼자를 기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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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북엔즈에 꽂힌 신간 도서들은 일반적인 장르 도서와 차별화된 구성이 돋보인다. 세권의 도서는 각각 만화, 에세이, 소설로 글의 종류도 다르고 자취 생활, 세계 각지의 음반들, 자폐아 가정의 생활과 살인사건 등 글의 소재도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세권 모두 독자가 스토리를 따라가고 메시지를 읽어내는 데 최선의 방식이 무엇인지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만화가 김정연의 <혼자를 기르는 법>은 회사 생활을 위해 상경한 디자이너 이시다가 생활의 동반자 햄스터, 친구들과 함께 꾸려나가는 일상을 그린다. 페이지별로 같은 크기의 세컷이 세로로 배치되는데 좌우로 시선이 분산될 일 없이 물 흐르듯 읽어나갈 수 있다. 에피소드 하나당 여섯컷에서 아홉컷으로 편당 호흡이 짧다는 것도 이 만화의 특색이다. 생활 곳곳에서 건져올린 작가의 통찰과 뛰어난 유머 감각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에 더 없이 적합한 구성이다. 500쪽에 달하는 두꺼운 양에도 앉은자리에서 바로 읽어낼 수 있
[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 참신한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책 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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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없이는 우리도 없다. <평양의 영어 선생님>의 원제는 그렇다. 부제도 있다. 북한 고위층 아들들과 보낸 아주 특별한 북한 체류기. 저자 수키 김은 재미동포 소설가로, 2003년 첫 장편소설 <통역사>로 펜 헤밍웨이 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통역사>도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꼭 말해보고 싶은 작품이지만, <평양의 영어 선생님>을 먼저 떠올린 이유는 역시 김정남의 피살 뉴스 때문이다. 이럴 때면 내가 사는 곳이 휴전국가였지, 분단국가였지를 어쩔 수 없이 떠올리게 된다. 모든 뉴스의 중심 화제가 바뀌었다. 정확히는 김정남이 아니라 그 아들 김한솔 때문에 <평양의 영어 선생님>을 다시 생각했다. 김한솔은 지금 마카오에서 중국의 보호하에 있다고 하는데, 그전에는 파리정치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2013년 장성택 처형 이후 그를 포함한 북한 출신 유학생들이 모두 사라졌다는 보도가 있었다. 파리정치대학에 다닌다고? 공부를 잘하는 모양이다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그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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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알트먼 X 폴 토머스 앤더슨=?
그야말로 ‘빅 매치’다. 1970년대 미국영화를 대표하는 연출자이자 할리우드의 영원한 반골 감독인 고 로버트 알트먼. 그런 그의 적자로 평가받으면서도 자기만의 확고한 영화세계를 구축한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대표작 14편을 만날 수 있는 상영회가 상암동 시네마테크 KOFA에서 2월14일부터 28일까지 열린다. <고스포드 파크>와 <내쉬빌>, <펀치 드렁크 러브>와 <매그놀리아> 등을 상영한다.
봄과 함께, 노라 존스
노라 존스가 올봄 내한한다. 올해로 3회를 맞이한 2017 뮤즈 인 시티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오르는 것. 노라 존스는 2002년 앨범 《Come Away With Me》로 데뷔해 2003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올해의 앨범, 올해의 노래, 신인상 등 8개 부문을 휩쓸며 ‘그래미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에 등극했다. 이번 무대에서 노라 존스는 지난해 발표한 신곡들은 물론 명곡들도
[culture highway] 로버트 알트먼 X 폴 토머스 앤더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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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로 우뚝한 건물의 그림자, 위아래로 길쭉한 창문 앞의 속옷만 걸친 여자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처음 봤던 때가 떠오른다. 그의 다른 작품들을 보고 싶었고 실물로 보고 싶어 안달이었다. <Nighthawks> 같은 그림으로 말하면 과장을 좀 보태 이 그림에 홀리지 않는 사람을 본적이 없다. 소설가 조이스 캐럴 오츠의 말에 따르면, “미국적 고독의 낭만적인 이미지 가운데 가장 통렬하고 쉬지 않고 복제되는 작품”. 올리비아 랭이 에세이 <외로운 도시>의 두 번째 장에서 휘트니 미술관의 이 그림을 설명하는 가이드 말을 옮길 때만 해도 나는 이 그림의 푸르고 희고 검은 무표정한 어둠을 떠올리고 있었다. 직접 봤을 때의 그림이 나에게 보여주던 빛을 떠올리며. 랭은 고독에 대해 말한다. “사람들이 외로워질수록 사회가 흘러가는 물길을 따라가는 숙련도가 점점 낮아진다.” 혼자일 때 보살핌이 결여되어서 스트레스가 생기는 것인가, 혼자라는 감정 자체가 스트레스를 안기는 것인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창작의 재료 혹은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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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한 땅에 피워올린 여성 영화인들의 꿈
2월 한달간 한국 여성 영화인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한 KMDb VOD 기획전이 열린다. 제목은 ‘으라차차! 우리가 나가신다! 척박한 땅에 핀 작은 풀 한 포기, 여성 영화인 기획전’. 상영작은 총 7편으로, 한국 최초의 여성감독 박남옥의 <미망인>, 박남옥에 이은 두 번째 여성감독 홍은원의 <여판사>, 최은희 감독의 <민며느리>와 <공주님의 짝사랑>, 의상감독 이해윤이 참여한 <단종애사>, 편집기사 김영희가 참여한 <영>, 한국 최초의 여성 제작사 전옥숙이 기획한 <휴일>이다. 이번 기획전은 지난해 열렸던 ‘도전! 나도 프로그래머’ 공모전에서 2위에 입상한 류동길씨가 기획했다. 그는 KMDb 홈페이지에 “앞으로 더 많은 여성 영화인들이 활약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보이지 않는 장벽과 맞서 싸운 선배 여성 영화인들의 발자취를 살펴보고자 한다”는 기획의도를 밝혔다.
화폭
[culture highway] 척박한 땅에 피워올린 여성 영화인들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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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다는 것이 단순히 돈이 없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개인의 의지로 벗어날 수 있는 두꺼운 코트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가난을 경험해본 적 없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아니면 운좋게도 고도성장기에 돈이 오가는 길목에서 일할 기회를 잡은 사람일 수도 있겠다. 현재 가난은 계층이동 불가능성이라는 특징을 지니는데, 추락은 가능하되 상승은 불가능한 종류의 이동 불가능함이라, 자수성가도 과거의 푸른 꿈으로 끝났다.
돈이 없다는 것은 인생의 모든 선택지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이상적인 선택지가 머릿속에서 사라진다는 뜻이다. 자주 이사해야 한다는 뜻이며, 인간관계 역시 수시로 바뀌어야 한다는 뜻이다. 최현숙이 가난한 70대 남자 노인 둘을 인터뷰한 <할배의 탄생>을 보면 인터뷰이 중 한 사람인 김용술씨는 양복점 테일러, 섹스 비디오방 주인, 채소 장사 등 일자리를 따라 전국을 떠돌며 여자들과 잠깐씩의 관계를 맺었고, 지금도 그렇게 지낸다.
린다 티라도의 는 미국에서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그 자리에 서야 보이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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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에 춤추다
포스터를 가득 채운 뮤지션들의 이름으로 먼저 두근거릴, 제11회 ‘서울재즈페스티벌 2017’이 1차 라인업을 공개했다. 선공개된 팀은 자미로콰이, 타워 오브 파워, 혼네, 세실 맥로린 살반트까지 넷이다. 4년 만에 내한하는 자미로콰이의 그루브, 데뷔 50주년을 앞둔 10인조 브라스 재즈 밴드 타워 오브 파워의 관록, 신스팝 듀오 혼네의 낭만적인 신시사이저 사운드, 2016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재즈 보컬 앨범 부문을 수상한 세실 맥로린 살반트의 보컬을 기대해보자. 5월27일부터 이틀간 올림픽공원에서 열린다.
연두고등학교를 내 손으로 꾸밀 기회, <화이트데이> 사생대회 이벤트
대한민국 공포 게임의 전설 <화이트데이>가 올 3월 PC 및 플레이스테이션4 출시를 앞두고 이용자 대상 공모전을 개최한다. 게임의 무대가 되는 ‘연두고등학교 사생대회’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이번 이벤트는 학교 곳곳에 걸릴 그림과 사진, 급훈 등의 창작물을 접수받아
[culture highway] 재즈에 춤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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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 속으로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의 개봉을 맞아 4월9일까지 스타필드 하남 옥외 특별 전시장에서 <스타워즈 로그원 특별전>이 열린다. 이번 행사는 <스타워즈> 세계를 무대로 한 실감 체험 행사로 3D 프로젝션, VR 등 IT 기술을 활용해 <스타워즈>의 세계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자리다. 전시의 컨셉 또한 독특하다. 관람객은 모두 저항군 신병 신분으로 입장함과 동시에 고유 ID를 부여받는다. 저항군 명단에 등록한 후엔 자유롭게 스페이스 항해를 떠난다. 우주과학에 관심이 많은 아이부터 <스타워즈> 골수팬 어른까지 함께 즐길 수 있는 행사다.
훈데르트바서라는 하나의 미술
오스트리아 출신의 화가 겸 건축가 훈데르트바서의 전시회가 세계 최대 규모로 진행 중이다.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1, 2관에서 3월12일까지 계속된다. 훈데르트바서는 전통적인 색의 조합에서 벗어나 대담하고 전위적인 컬러의 배합을
[culture highway] <스타워즈>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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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시대에 우리가 터득해야 했던 것이 내가 살아남기 위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기술’이었다면, 지금 현재 우리가 터득하고 있는 것은 외면을 넘어 ‘타자-세계를 파괴하는 기술’이다.” 최악이란 말을 쉽게 뱉을 수 없는 시대다. 불안과 공황은 일상이 되었고, 갈 곳을 잃은 무기력한 분노는 혐오로 표출되고 있다. 청년들은 가망 없는 ‘노오력’을 강요받고, 궤도를 이탈하면 언제든 빈곤의 나락으로 빠질 수 있는 상황에서 중·장년층이라고 예외는 없다. 마치 세계의 종말을 향하고 있는 듯한 한국 사회의 징후는 과연 어디서 비롯된 걸까.
사회학자 엄기호의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는 망가져가는 한국 사회에 대한 진단과 함께 나아가 사회를 복원시키기 위한 제안을 담고 있다. ‘1장 리셋을 원하는 사람들’에서 저자는 ‘개인’에게 초점을 맞춰 분노, 자책, 무기력으로 치닫는 개인의 내면과 순교자적 나르시시스트들이 늘어나고 있는 시대적 상황을 돌아본다. ‘2장 리셋을
[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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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바나 다카시는 현대 일본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통한다. 도쿄대학 불문과를 졸업하고 문예지 기자로 커리어를 시작해 논픽션, 평론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저술활동을 이어나가며 인문사회에 관한 주제 외에도 뇌, 생물, 우주, 정보학 등 과학 분야에 이르기까지 지적 탐구의 경계를 확장해왔다. ‘지식의 거장’이란 별명답게 그의 광범위한 지식은 엄청난 독서량에서 비롯된다. 애서가로도 잘 알려진 그는 ‘고양이 빌딩’이라는 이름의 개인 도서관을 열어 고등학교 시절부터 70살에 가까운 지금까지 모은 20만여점의 장서를 진열해두고 있다. 그는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라는 저서를 통해 실용적인 독서법과 도서 관리법을, <지식의 단련법>에서 정보의 수집과 활용에 대해서 철학 등을 논하며 독서활동의 길잡이 역할을 한 바 있다. 신간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 또한 이전 저서들의 연장선에서 그의 독서 활동과 그가 일군 서재를 통해 그의 학문 세계를 돌아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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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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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삶의 궤적도, 가치관도 정반대인 두명의 작가가 있다. 20대 젊은 작가 마거릿 리는 아버지의 헌책방에서 일하며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인물의 전기를 쓴다. “항상 보잘것없는 사람들에게 마음이 끌”리는 그는 수백년간 책장에 파묻혀 있던 평범한 사람들의 일기와 회고록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다른 한명은 ‘금세기의 디킨스’로 평가받는 유명 소설가 비다 윈터다. 본인의 저서만으로 책장을 가득 채울 수 있을 정도로 수많은 이야기를 지어온 그는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신간을 낼 때마다 거짓 인터뷰를 반복해온 탓에 출신과 유년 시절, 심지어 이름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다. 70살을 훌쩍 넘긴 소설가는 자서전을 남기기로 하고, 전기 작가로 마거릿 리를 고용한다. 비다 윈터의 음침하고 거대한 저택에서 함께 생활하게 된 마거릿 리. 사실만을 기록하는 작가와 거짓에 단련된 소설가는 과거의 거대한 진실에 다가서기 위한 줄다리기를 시작한다.
빅토리아 시대를 시작으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열세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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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네 게이스케의 장편 미스터리 소설 <암살자닷컴>에서 청부살인업은 어엿한 서비스직의 하나로 분류된다. ‘조직’이라 불리는 청부살인전문회사는 ‘암살자닷컴’이란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며 살인이란 서비스를 사고판다. “뒤가 구린 악당들”만 처단한다는 신조를 가진 회사는 의뢰의 정당성을 판가름한 후 사이트를 통해 킬러를 공개 입찰한다. 진입 장벽은 높지 않다. 암살자닷컴을 방문한 이라면 누구나 킬러가 될 수 있다. 가장 낮은 금액을 제시한 입찰자가 일을 맡는다. 일단 맡은 일은 무를 수도 없고 실패해서도 안 된다. 만약 낙찰된 일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조직’의 무시무시한 행동대원들에 의해 죽음이란 대가를 치르게 된다. 다른 직업에 비해 특별한 건 높은 수익만큼 위험이 따른다는 점, 개인의 적성과 능력이 조금 더 중시되는 일이라는 점뿐이다.
<암살자닷컴> 속 청부살인업자들은 서늘한 눈빛, 군더더기 없이 일을 처리하는 동작 등이 대변하는 일반적인 킬러의 모습과 인상을
[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암살자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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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북엔즈에 꽂힌 네권의 책은 베일에 싸인 세계를 드러내는 책들이다. 미스터리 스릴러 <암살자닷컴>은 청부살인을 직업으로 삼은 네명의 킬러와 그들의 세계가 작동하는 은밀한 방식을 밝힌다. <열세 번째 이야기>는 죽음을 앞둔 유명 소설가가 그동안 거짓으로 꾸며온 자신의 진짜 인생을 회고하는 내용이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는 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인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를 들여다보며 그의 방대한 학문 세계를 파헤친다.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는 과격화돼가는 한국 사회의 현재를 진단하고 현실적인 청사진을 제시한다.
<암살자닷컴>은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에 이어 일본 미스터리 소설계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는 소네 게이스케의 신작이다. ‘살인’이란 서비스를 사고파는 가상의 인터넷 사이트를 배경으로 청부살인업자들의 의뭉스런 생활과 그 이면을 그려내고 있다. 반인륜적 행위로 끼니를 이어나가지만 보통의 생활인과 다
[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 베일에 싸인 세계를 드러내는 네권의 책들